EP.154
# 154
르샤흐 경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저자의 실력은 잘 모른다· 하지만···’
마법사 이안이라는 이름은 부하들이 알려준 이름이었다·
르샤흐 경은 이안이란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성 산티아고 기사단과 황금 손가락의 타카리온을 도와줬다는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줬을 뿐·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르샤흐 경은 이안에 대해 확실하게 평가했다·
‘이안은 지혜로운 마법사임이 분명했다·’
현명한 마법사가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라는 이야기는 옛날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동화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르샤흐 경은 본인의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지금 눈앞에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법한 현명한 마법사가 있었으니 말이다·
강령술사 마리아를 둘러 싼 이야기의 전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안 한 사람뿐이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마리아가 살인자라고 생각했다·
르샤흐 경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어지러운 정보의 바다 속에서 어떠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냈다·
만약 그것이 타당한 근거를 갖추고 있다면···
설령 마리아가 무고하다고 주장해도 르샤흐 경은 동의할 생각이었다·
“마법사 이안· ‘굶어 죽은 유령’에 대해 설명하도록·”
이안은 어린이들을 돌려보낸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 저는 우연히 마리아가 죽음의 신비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모습이었지?”
“땅을 파헤쳐 지렁이를 잡아먹으려는 모습이었죠·”
“···”
“···”
소영주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고 르샤흐 경도 살짝 놀란 눈치였다·
“확실히 보통 일은 아니군·”
“평범한 사람이 마리아를 목격했다면 그냥 미친 사람인 줄 알았을 겁니다·”
이안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로버트 부부가 생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로버트 부부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소영주가 부부를 다그쳤다·
“말해보아라! 너흰 마리아의 이상함을 알고 있었나?”
“그 그것이···! 식탐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식탐이 많다·
그것 역시 로버트 부부가 마리아를 미워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가끔씩 걸신들린 듯 음식을 처먹어대는데 그게 그렇게 얄미워보일 수 없었던 것·
그러나 로버트 부부는 마리아에게 달라붙은 죽음의 신비를 알아보지 못했다·
마리아는 진짜로 ‘걸신’이 들려 있었다···
“음식을 밝히는 게 귀신 때문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하면 됐다·”
이안은 로버트 부부를 째려보았다·
지은 죄가 있기에 그들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제가 보았다시피· 그리고 죠셉과 로버트 부부가 알다시피··· 마리아는 ‘굶주린 유령’에게 시달리는 상태입니다·”
죠셉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합니다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딱!
이안은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마리아는 강령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신비를 통제하는 방법을 모르고 오히려 신비에게 휘둘리는 모습만 보여주었습니다·”
아·
르샤흐 경이 낮게 감탄했다· 이안이 뭘 말하려는지 이해한 것이다·
르샤흐 경도 성서와 마로니우스 어를 공부한 클레릭이다·
마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었다·
“그렇군· 만약 마리아가··· 우연히 신비에 휘말렸다면···”
역시 대학물 먹은 사람은 다르군!
이안이 씩 웃으며 르샤흐 경의 말을 이어받았다·
“네· 사람을 해칠 여유 따윈 없었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만약 마리아가 우연히 구울에 빙의됐다면!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썩은 고기를 찾으러 달려갔을 겁니다!”
“···!”
“···!”
소영주와 마을 사람들은 동시에 경악했다·
이안이 선언하듯 소리쳤다·
“마리아에게 달라붙은 신비는 바로 ‘굶주린 유령’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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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증명하고자 했던 세 가지 진실은 바로 이것들이다·
마리아가 살인을 저지른 동기와 수단· 그리고 실행 가능 여부다·
이안은 마리아에게 살인의 동기가 모호함을 증명함은 물론 실행 가능 여부조차 불투명함을 입증했다·
마리아가 우연히 구울에 빙의됐을 수는 있다· 그건 신비의 변덕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러나···
빙의된 마리아는 에릭을 찢어 죽일 수 없다·
죽음의 신비에게 지배당한 마리아는 그저 음식만을 탐하게 변해버리기 때문이었다·
지렁이를 잡아먹으려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마리아에게 달라붙은 신비는 공격성이 없습니다·
“··· 하지만 에릭을 잡아 먹기 위해 살해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죠셉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시체를 기억해봐라· 에릭의 시체는 어떤 상태였지?”
“그건···”
죠셉은 곧 입을 다물었다·
에릭의 시체를 파묻은 사람은 죠셉 본인이다·
에릭의 시체는 크게 손상됐을 뿐 식인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상황을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이안이 다시금 말했다·
“에릭이 살해당하던 날· 마리아는 누군가에 의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상태였습니다·”
“그때 이 사건의 ‘진범’은 구울을 조종하여 에릭을 살해· 이후 유유히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여러분은 구울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마리아뿐이라는 이유로 마리아를 범인이라고 생각했죠·”
예· 마리아는 충분히 구울에 빙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유령은 오직 음식에만 정신이 팔린 녀석입니다· 마리아가 그 녀석의 힘을 빌렸다면 음식을 탐하면 탐했지 사람을 공격할 리가 없습니다·
“···”
무거운 침묵이 법정을 뒤덮었다·
그 죽음 같은 침묵을 가로지른 건 한 소녀의 흐느낌뿐이었다·
“흑··· 흐으으윽···!”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이곳이 영주의 법정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땅에 머리를 붙이며 오열했다·
“으아아아아아!”
키라와 벨렌카가 서둘러 마리아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마리아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자신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죽어버린 에릭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진범을 향한 분노·
온갖 감정이 뒤섞인 채 작고 여린 소녀의 마음속에서 휘몰아쳤다·
그 고통과 울분은 쉬이 멎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리라···
이안은 마리아가 있는 힘껏 울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마리아의 울음이 잦아들자 르샤흐 경이 말했다·
“충분히 이해했다· 이안· 마리아는 에릭을 해친 범인이라 보기 어렵군·”
“그렇습니다·”
“계속 말해봐라· 자네가 생각하는 진범은 이 마을 안에 있나?”
마을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있습니다·”
경악과 탄식이 뒤섞이는 와중에·
이안이 말했다·
“양치기 파엘·”
“···!”
“역시 그자밖에 없지요·”
파엘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밀려나왔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안에게 말했다·
“저 말씀이십니까? 나리?”
“너 말씀이다· 파엘·”
파엘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도망갈 길을 찾는 것처럼·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무척 당혹스럽고 곤란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의 지적이 너무나 엉뚱하게 느껴졌던 것·
“설마 제가 살인을 목격했다고 범인이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확실힌 증거 없이 몰아붙이는 건 나쁜 버릇입니다만···”
이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파엘의 반응이 너무나 범인 새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거 아나? 파엘? 추리 소설에서는 말이야· 탐정이 진범을 지목하면 범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렇게 말해· ‘증거 있냐?’라고·”
“··· 무슨 소설이요?”
이안은 처참한 중세의 독서-수준에 한탄했다·
평소에 도서관에서 책 좀 읽으란 말이다!
도서관도 없고 책도 없고 문자를 읽을 지식도 없지만!!!
“니가 말한 대로· 널 범인이라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니가 유일한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파엘은 즉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알렸다는 이유 때문에 범인 취급을 하시면···”
“니가 알렸기 때문에 의심스럽다는 거다· 잘 들어· 마리아는 구울에 빙의되지 않았어· 그렇다면 구울은 누가 조종했지?”
“···”
“현장에는 마리아와 에릭· 그리고 너밖에 없었다· 에릭은 뒤졌고 마리아는 기절했지· 그럼 남은 건 너밖에 없잖아?”
파엘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숨어 있던 강령술사가···”
“그렇다면 더더욱 이상하지· 길 가던 강령술사가 심심해서 구울로 마을 주민을 습격한다? 그것도 마리아랑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남자애를?”
동기의 모호함·
이안이 그 사실을 지적하자 파엘은 곧바로 반박했다·
“괴상한 강령술사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마법사는 원래 괴팍하니까요!”
주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르샤흐 경마저 동의하는 눈빛이었다·
이안의 순진무구한 마음이 상처를 입을 것만 같았다·
이거 마법사 혐오야! 차별이라고!
저딴 말에 설득이 되는 현실이 더럽게 서러웠다···
“아니· 너한테는 마리아의 남친 후보를 죽일만한 동기가 있어·”
“오호· 제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 이 새끼·
이젠 숨길 생각도 없냐?
파엘의 뻔뻔한 대답에 이안은 씹어 뱉듯 말했다·
“너는 마리아를 원했던 것 아니냐?”
그러자 파엘은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봐 정신 나간 소리네요! 제가 마리아 한 명을 가지겠다고 에릭을 죽였다고요? 강령술을 배우고 구울을 준비시켜서?”
“···”
“마법사님· 파엘한테서는··· 죽음의 신비가 보이지 않습니다·”
죠셉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건 알고 말하는 거지? 라고 조언하는 듯했다·
물론 이안도 알고 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지· 넌 처음부터 강령술사였으니까·”
파엘의 부모님· 그리고 지인들이 화들짝 놀랐다·
우리 애가··· 원래부터 강령술사였다고요?!
파엘이 이안을 비웃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
그러나 이안은 파엘의 말을 끊었다·
“‘넌’ 원래 강령술사라는 거다· 이름 모를 마법사여·”
“···!”
이안이 지목하는 대상은 명확했다·
파엘이 아닌 파엘이란 껍데기 뒤에 숨어 있는 마법사다·
파엘의 지인들이 경악하며 파엘을 쳐다봤다·
파엘은 이안의 말에 당황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큭큭··· 대가리 좀 굴러가는데? 마법사·”
이안은 담담하게 파엘을 쳐다봤다·
양치기 파엘·
그는 마을에 잠입한 강령술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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