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5
# 85
늑대는 언제나 농부들의 골칫거리다·
한 마리의 늑대조차 인간이 상대하기 버겁다· 커다란 덩치의 늑대가 살의를 품고 덤벼들면 어지간한 성인 남성조차 맞서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늑대가 출몰하는 영지는 주기적으로 사냥 대회를 열어 늑대를 사냥한다·
드보시 남작도 곧잘 늑대 사냥 대회를 열고는 했다·
영주는 재밌는 사냥을 즐기고 기사와 사냥꾼들은 활약을 하고 돈을 벌며 농부들은 좆같은 늑대들이 사라지니 모두에게 행복한 행사가 바로 늑대 사냥 대회였다·
그런데 루이스는 사냥 대회 없이 늑대들을 치워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작고 가난한 영지에서 사용하면 아주 적절한 능력이었다·
‘괜찮은데?’
이안은 루이스의 고용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물론 늑대 통솔은 이안에게 필요한 능력은 아니었다· 이안은 소환술사고 짐승에게 의지를 투사할 줄 알았다· 심지어 이안이 직접 늑대를 부리는 것도 가능했다·
이안이 생각하는 건 바로 탈리안 영지였다·
늑대 통솔 능력은 탈리안 영지에서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기사와 사냥꾼들을 동원하지 않아도 늑대를 치울 수 있으니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좋아· 벨렌카· 루이스를 풀어줘·”
“··· 알겠다·”
벨렌카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루이스의 포박을 풀었다· 그녀는 여전히 루이스를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아니었다·
소환술사의 직감이 루이스의 감정을 이안에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루이스를 풀어줘도 문제는 없다·
롱테일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속박에서 풀려난 루이스는 점잖은 몸짓으로 절을 올렸다·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귀하신 분이여·”
“블랑쉐의 루이스· 너는 하늘의 뜻을 따르길 맹세했으니 나와 정당한 계약을 나눌 수 있는 자라고 생각하겠다· 동의하나?”
“동의합니다!”
“너는 내게 대적하다 포로로 잡혔으나 나의 자비로 목숨을 건졌다· 그걸 금액으로 환산하면···”
“제국 금화 100개다·”
“고마워· 벨렌카· 제국 금화 100개를 빚졌다고 하는군· 블랑쉐의 루이스· 내게 제국 금화 100개를 지불하면 너는 자유의 몸이다·”
“자비로운 분이여· 관대한 결정에 감사하나 제겐 금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금화 100개만큼의 공을 세워 지불을 대신하기로 하지· 이 계약에 동의하나?”
“동의합니다!”
벨렌카가 칼을 뽑는 시늉을 했다·
“내리치라고?”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주종 계약을 맺으려면 칼이 필요하단 뜻이었다·”
아하· 이안은 아노리실을 뽑아 루이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블랑쉐의 루이스· 네 몸값을 다 갚을 때까지 너는 나를 섬기는 기사다· 계약을 어긴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늘님의 진노 앞에 영원토록 지옥에서 고통 받으리라·”
“저 루이스· 하늘님에게 맹세코 신성한 계약을 저버리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제 빚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마법사 이안은 저의 주인입니다·”
전형적인 천신교의 계약에 따라 이안과 루이스의 주종계약이 완료됐다· 입회인은 윈츠의 벨렌카· 이제 루이스는 마법사의 기사다·
“나참· 살다살다 늑대인간이 기사가 되는 꼴을 다 보는군·”
벨렌카가 투덜거리자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때? 천신교 신자잖아·”
“그건 그렇지만·”
사실 벨렌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녀도 목숨 빚을 갚기 위해 이안의 기사가 됐으니·
그때 이안의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스킬 획득!]
[소환술 – 늑대인간 소환]
[당신의 기사이자 하인 늑대인간 루이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기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루이스는 부름에 응할 것이다·]
이안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늑대인간도 마법적인 존재라서 소환술에 묶인 모양·
이로써 루이스는 계약과 스킬에 이중으로 속박됐다·
“··· 이렇게 정식으로 당신을 섬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루이스는 그윽한 눈빛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가 퍼리 애호가들이 정신줄을 놓아버릴 만큼 잘생긴 늑대인간이긴 했는데 이안은 루이스에게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아· 늑대인간은 간지나구나· 정도의 감흥·
“고작해야 마법 계약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제대로 제 빚을 인정해주시다니···”
“???”
이안은 저게 무슨 소리인가 한참을 고민했다· 계약서에 빚이 있다고 적힌 게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하지만 이안은 몰랐다· 이 세계에서는 빚이 있다고 인정받는 일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이안처럼 금화 몇 개 은화 몇 개인 식으로 빚을 못 박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내가 만족할 때까지’ 빚쟁이를 뜯어 먹었고 거기에 항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야 빚을 수금하러 온 사람이 더 강할 게 뻔했으니까·
최소한 기사 이상은 되어야 빚을 계약화 시킬 수 있었다·
일단 계약이 완료되면 설령 왕이라 할지라도 손을 댈 수 없었다· 계약은 전지전능하신 하늘님의 이름으로 맺어진 것이기 때문에 멋대로 손을 대면 천벌을 받거나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약자일수록 자신의 빚을 정확하게 계약화 시키길 원했다· 그래야 나중에 뒷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안· 여행에 저 녀석을 데리고 다닐 거냐? 귀찮은 일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만·”
아마 100% 시비에 휘말릴 것이다·
아무리 천신교 신자라 해도 루이스는 늑대인간이다· 누가 사고인 척 살해해도 스리슬쩍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루시한테 보낼 건데?”
“탈리안 남작한테?”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늑대 통솔은 이안의 여행에 그다지 쓸모가 없는 기술이다· 차라리 루시에게 보내서 영지의 치안에 도움을 주는 편이 훨씬 나았다·
“루이스· 너한테 임무를 내리마·”
“하명하십쇼· 나의 주인이시여·”
“우선 드보시의 다이어 울프들을 치워버리고· 일이 끝나는 대로 탈리안으로 가라·”
“탈리안 말씀이십니까?”
“그래· 가서 탈리안 남작을 만나거든 마법사 이안이 보내서 왔다고 말하거라· 탈리안 남작은 내 친구이니 나를 섬기듯 정성껏 모시도록 해라·”
늑대인간 루이스라면 탈리안의 부족한 무력을 보충해줄 수 있으리라·
루이스는 명령을 이해하고 부복했다·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이안은 소환술 스킬을 활용하여 루이스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가끔씩 이렇게 너를 부를 때가 있을 거다· 그러면 의심하지 말고 달려오도록·]
[아···! 이것은 마법이군요! 이해했습니다!]
몬스터를 기사로 삼으니 이런 점은 좋았다·
루이스는 이안이 명령에 따라 다이어 울프를 통솔하여 숲으로 사라졌다·
마법사 라라벨도· 늑대인간 루이스도 치워버렸다·
이제 남은 건 이안이 납치(?)한 캐서린의 아들 뿐·
“이제 성으로 돌아가자·”
#
“이런·”
이안은 짧게 탄식했다·
캐서린 아들이 그새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전투에 휘말려 죽지 않게끔 자유롭게 놓아준 것이 화근이었다·
“이안· 찾았다·”
하지만 주변을 수색하던 벨렌카가 금세 그를 찾아냈다·
사람이 숨을만한 곳을 들쑤시기 시작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발견한 것이다·
“부 부디 목숨만은 살려다오···”
그는 이안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가리부터 박았다·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고 조금 짠하기도 했다·
귀족의 아들이라고 모두가 용감한 건 아니었다· 타고난 천성이 나약하여 사소한 일에도 벌벌 떠는 자들도 있었다·
귀족으로 태어났기에 망정이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간 평생 짓밟히기만 했을 것이다·
“자자· 상황은 다 끝났으니 자세한 얘기는 집에 가서 하자고·”
이안은 그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성으로 향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성은 세레나 남작 부인이 점령한 상태였다·
“저길 봐! 이안님이랑 키라님이다!”
“이안님이 마법사를 쓰러뜨렸나봐!”
“키라님이 도와주신 게 분명해!”
성의 거주자들은 세레나 부인으로부터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었다·
물론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세레나 부인이 다급하게 이야기를 쏟아낸 감은 있었다· 일이 어떻게 잘못될지 또 모를 일이니까·
하지만 이안은 마법사를 잡아내는데 성공했고 당당히 성으로 귀환했다·
하늘도 이안을 축복하듯 찬란한 새벽빛이 성벽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다녀왔습니다·”
세레나 부인은 캐서린의 아들 카턴이 살아있지 우선 안도했다·
카턴이 죽었어도 뭐· 딱히 문제될 건 없었지만 세레나 부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 여린 마음이 남아있었다·
나름 가족처럼 지내던 아이의 죽음을 달가워할 만큼 타락하진 않았던 것·
“성공하셨습니까·”
이안은 눈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거대한 장대를 짊어진 벨렌카가 당당하게 대중 앞에 섰다·
“오오!”
“세상에· 저게 대체 뭐야?!”
“원숭이인가? 그런데 검을 차고 있다니···!”
벨렌카가 장대로 묶어 끌고 온 그것은··· 바로 원숭이 암살자였다·
라라벨을 팔아넘기고 루이스를 부하로 삼은 지금 소동의 범인으로 지목할만한 괴물은 원숭이 암살자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이도 원숭이 암살자는 겉보기에 충분히 흉측했다·
“저 어설프게 인간을 흉내 내는 모습이라니!”
“사악한 괴물이 틀림없다!”
흥분한 성직자들이 돌을 주워(···) 원숭이 시체를 향해 던졌다·
퍽퍽· 피와 살점이 튀자 성직자들은 환호의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사악한 괴물이 죽었다!!!”
이안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저건 뭐· 박 터트리기 놀이냐?
애써 마법사처럼 보이도록 꾸며두었지만 성직자들이 보자마자 시체를 훼손하기 시작했으니 노력과 정성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상황은 아주 잘 정리됐다·
“보시다시피 저 괴물이 드보시 성의 질서를 어지럽히던 범인입니다·”
“오오!”
“그래 보이는군!”
마법을 익힌 원숭이가 괴수를 부리며 인간을 농락했다는 스토리는 중세인들의 가슴에 강하게 다가와 꽂혔다·
“자세히! 더 자세히 말해주시오!”
자고로 인간과 괴물의 대결· 선과 악의 대결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히는’ 소재다·
근본이 철철 넘쳐흐르며 개꿀잼 소재라는 것이다·
창작물의 홍수 속에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에게 인간과 괴수의 대결은 심심하면 우려내는 사골국과 같은 친숙함이 느껴지는 소재지만·
드라마고 소설이고 없는 중세 판타지 주민들에게는 아직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흥행 보증 수표였다·
그런데 밤새 마법사가 괴물을 쫓아 대결을 벌였다?
시발 존나 궁금하다!
사람들은 구름같이 이안을 둘러 싼 채 너나할 것 없이 소리쳤다·
2편! 2편을 내놓아라!
네놈이 본 걸 우리한테도 말해달란 말이다!
이안은 ‘응애 나 애기 성직자~ 2편 보고 싶어~ 2편 줘~’하며 떼를 쓰는 성직자들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으휴· 저렇게 도파민에 취약해서야· 저러니 마법사는 괴팍할수록 강하다는 둥 하는 헛소리를 진지하게 믿지·
“이야기는 조금 뒤에 들려드리겠습니다· 우선 남작님부터 뵈러 가죠·”
“아차! 당장 갑시다!”
이안은 사람의 벽을 가르며 드보시 남작의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드보시 남작과 캐서린 남작 부인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이안은 강한 의지를 담아 마로니우스 어로 말했다·
“[돌아와라·]”
그러자 남작 부부가 동시에 무언가를 뱉어냈다·
“헉!”
“저 저게 대체···!”
그것은 지네를 닮은 새하얀 벌레였다·
마법사 라라벨이 길들인 것으로 숙주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괴물의 일종이었다·
이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러니 아무것도 못 알아냈지·
남작을 괴롭히던 ‘병’의 정체는 커다란 기생충이었다· 신비로운 마법도 병균도 아니었다·
현대라면 MRI· 아니 X-RAY 한 방이면 깔끔하게 정체가 밝혀졌을 텐데·
사람의 몸에 기생충을 심어 넣는 방법은 이안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미리 알았다면 의심했겠지만 이번에는 몰라서 찾지 못한 경우였다·
라라벨에게서 소환수의 통제권을 넘겨받은 이안은 너무나 손쉽게 기생 벌레들을 제거했다·
“저것들이 남작님을 괴롭히던 범인입니다·”
“아아···”
세레나 부인이 외마디 탄식과 함께 주저앉았다· 그녀는 보는 눈이 많은데도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하녀들은 부인을 말리긴커녕 같이 부둥켜안고 울기 바빴다·
이안은 세레나 부인이 실컷 울도록 내버려두려 했다·
막 방을 나서려던 이안을 세레나 부인이 붙잡았다·
“···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남편이 원인 모를 병으로 쓰러진 뒤 전쟁을 불사할 것만 같은 살벌한 분위기를 견뎌온 부인의 심리를 이안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별 말씀을·”
다만 이안은 많은 신비와 비밀을 알아냈으니 나쁠 것 없었다·
그래서 이안은 부인과 달리 기분이 좋은 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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