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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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밤 태양의 미소를 가져가겠다.
-괴도 레이븐
“하. 괴도는 얼어 죽을.”
심술궂게 생긴 대머리 중년. 라파노가 콧방귀를 뀌며 예고장을 구겨버렸다.
“태양의 미소를 가져가겠다고?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라지!”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를 떵떵 내뱉으며 방안을 서성이기를 한참. 그는 강철로 된 금고를 어루만지며 낮게 웃었다.
“요즘 그 녀석이 난리를 피운다지만 이번에는 어림도 없지.”
오늘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녀석은 오늘을 끝으로 건방진 도둑질을 다시는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괴도 레이븐. 녀석은 최근 악명을 떨치고 있는 매우 질 나쁜 도둑이었다. 본인은 자신을 소개할 때 괴도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라파노의 생각은 달랐다.
녀석은 아직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 못해 우쭐댈 뿐인 애송이에 불과했다. 자신은 다른 바보들처럼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 않을 테니까.
그 좀도둑이 마법을 꽤 다룬다는 건 라파노도 인정하였다. 소문만 들었을 땐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귀신이나 다름없다며 악명이 자자할 정도.
“그래서 이 마력 감지 센서를 준비해둔 거지.”
이 방에서 조금의 마력이라도 새어 나오는 순간 즉시 센서는 알람을 울리며 방은 완전히 폐쇄된다. 이 센서의 성능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대신 그만큼 가격이 어마어마했으나 결국 태양의 미소를 지킬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게다가 그 건방진 좀도둑을 박멸할 수 있다면 손해도 아니지.’
이미 녀석은 상당한 부호와 권력층에게 반감을 산 상태다. 여기서 자신이 녀석을 잡기만 한다면 그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과 신뢰를 얻을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감지 센서는 어디까지나 마력에 반응할 뿐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막아주진 못한다. 아무리 방이 폐쇄된다고 해도 녀석에게 조금의 틈만 내비친다면 또 금방 탈출할 게 뻔했다.
“그러니 네 역할이 매우 중요한 거다. 알겠냐?”
“네.”
“그래. 고용한 값을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게 될 거야.”
라파노는 자신의 앞에 묵묵히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카드. 바로 메이지 킬러였다.
마법사와의 전투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메이지 킬러는 그야말로 마법사의 천적.
방이 폐쇄되며 당황한 틈을 노려 단번에 쓰러트린다는 계획. 아주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제 남은 건 녀석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인가.”
만반의 준비는 갖춰졌다. 만약 녀석이 꽁무니를 내빼고 도망친다면 그거대로 좋다. 예고장에 나와 있는 내용을 지키지 않은 거니 괴도로서 쌓아 올리던 명성은 단박에 무너지고 말 테니까.
“어떠냐. 놈을 상대할 자신은 있나?”
“네.”
끝까지 단답만을 반복하는 사내의 모습에 라파노는 작게 혀를 찼다.
“재미없는 녀석이군. 그래도 그런 놈들이 일머리는 괜찮지.”
슬슬 녀석이 올 때가 됐는데. 아니면 정말로 도망친 건가?
그때 바깥 복도에서 다급한 뜀박질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주 주인님! 큰일입니다!”
“뭐냐. 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라!”
“지금 바깥 뒤뜰에 그 괴도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군!”
라파노는 떨거나 긴장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잠깐 바깥 상황을 살피고 오마.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방을 단단히 지키도록.”
“네.”
결국 괴도가 향할 최종 목적지는 태양의 미소를 보관하는 이 방이다. 그러니 이곳에 메이지 킬러를 배치해 놓는다면 제아무리 녀석이라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라파노가 집사와 함께 방을 떠나고 잠시 후.
혼자 방에 남아 있던 사내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후우. 시간에 맞춰서 잘 작동했나 보네.”
이내 남자는 자신의 얼굴을 한손으로 붙잡더니 그대로 움켜쥔 후 거칠게 뜯어버렸다. 떨어져 나간 건 실제 피부가 아니라 정교하게 만들어진 분장용 가죽.
분장을 벗은 그는 과묵하며 진중한 사내에서 앳된 소년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어서 손에 낀 반지에서 푸른 빛이 나면서 나긋나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고의 비밀번호는 외워뒀느냐?]
“물론이죠. 이 일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이 세 번째로 기억하고 있다만.]
“···크흠. 아무튼 얼른 끝내버리죠.”
능청맞게 목소리의 지적을 넘기며 금고로 다가가는 소년. 미리 확인해뒀던 금고의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문이 열리면서 아름다운 보석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게 바로 태양의 미소. 확실히 예쁘긴 하네.”
작게 감탄하며 보석을 들어 올린 순간.
위잉! 위잉!
[경보음이 울리는구나.]
“윽···. 골치 아프게 됐네요.”
라파노 녀석. 왠지 빈틈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믿는 수가 하나 있었던 건가.
아까 녀석이 자랑했던 대로 경보음이 울림과 동시에 방이 완전히 폐쇄되었다. 문은 물론 모든 창문까지 철창이 내려오며 굳게 닫힌 상황.
[어떻게 할 생각이냐?]
자신이 일이 아니라는 듯 태평하게 묻는 여인의 목소리. 소년은 잠시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호오. 한번 기대하며 지켜보마.]
***
한편 뒤뜰에 갔던 라파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집사를 닦달했다.
“이게 뭐냐!? 좀도둑이 있다길래 와봤더니 아무것도 없잖아!”
“아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습니다! 다른 하인들도 전부 똑똑히 봤었습니다!”
“어이. 너희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계속 여기 있었으면 제대로 설명해 보란 말이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씩씩거리는 주인의 모습에 겁에 떠는 하인들. 그 속에서 용감한 하녀가 나와 머뭇머뭇 상황을 설명했다.
“그게···. 분명 방금까지 뒤뜰에서 크게 외치던 괴도가 갑자기 시간이 지나니까 풍선처럼 펑 터져버렸어요···.”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냐?”
“분명 괴도의 마법일 거예요!”
“맞아요! 마법이 분명해요!”
하인들의 간곡한 얘기를 들으며 라파노는 겨우 화를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저 말이 맞다면 확실히 그건 마법일 것이다. 사람이 풍선처럼 팡 터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마력 감지 센서야 3층의 안쪽 방에 달아두었으니 뒤뜰까지 범위가 닿지 않아도 이상하진 않겠지.
‘그런데 어째서?’
왜 굳이 뒤뜰에 이런 마법을 사용한다는 말인가?
중요한 마력을 낭비하면서까지 굳이?
“시선을 돌리는 용도네요.”
그때 뒤에서 들리는 한 소녀의 목소리.
라파노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을 때 거기엔 금발 녹안의 아름다운 소녀가 현장에 불쑥 난입해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에다 행색 역시 이 저택의 관계자라곤 보이지 않는 모습.
“누구냐!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고!”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나요?”
“뭐···?”
“쉽게 말해 이 뒤뜰의 마법은 연막작전이란 거예요. 당신의 시선을 끌기 위한.”
시선을 끌기 위한 연막이라고? 그 말은 즉···.
라파노가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르려 할 때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경보음이 저택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 좀도둑 녀석이···!”
그는 허겁지겁 다시 3층으로 전력을 다해 올라갔다. 역시나 철창으로 굳게 닫혀있는 문. 이 상태에선 오로지 저택의 주인인 본인만이 열 수 있었다.
“어이! 어떻게 됐어!? 좀도둑은 잡았냐?!”
안에 있을 메이지 킬러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는 라파노. 하지만 소리가 철창을 넘어서 닿지 않는 건지 안에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급함이 일었지만 문을 섣불리 열었다간 괴도가 도망칠 탈출로를 만들어주는 꼴이다. 그는 곧바로 비상용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당장 모두 3층으로 올라와!!”
저택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하인들은 물론 고용한 경호원들까지. 모두가 라파노의 성화에 곧바로 3층의 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비상 상황에도 괴도를 잡을 충분한 전력을 갖춘 뒤 라파노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리고 펼쳐진 방안의 풍경.
“어이! 어떻게 된 거야! 일어나!!”
방에는 쓰러져 있는 메이지 킬러 하나뿐. 금고는 이미 열려 안은 휑하니 빈 상태였다.
강한 경종이 머릿속에 울렸다. 불길한 직감이 강하게 몸을 휘감는다.
사람들이 상태를 확인하며 어깨를 흔들자 그제야 힘겹게 눈을 뜨는 메이지 킬러.
그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통탄한 듯이 외쳤다.
“큭···! 놓치고 말았습니다···.”
“말도 안 돼! 방은 완전히 폐쇄되었는데 어떻게 놓쳤다는 거야!!”
“마법을 사용해서 창문 밖으로 순간이동을···.”
라파노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몸을 가누던 메이지 킬러를 마구 밟아댔다.
“이 한심한 녀석! 너한테 준 돈이 얼만데 그걸 못 잡고 놓쳐!?”
“하지만 거의 다 잡은 상태였습니다. 녀석도 치명상을 입었으니 멀리 도망가진 못했을 겁니다.”
“큭! 지금 그딴 걸 변명이라고!”
“잡으려면 지금 당장 추격해야 합니다.”
그의 확신에 찬 어투에 결국 설득되고 만 라파노는 경호원들에게 외쳤다.
“당장 녀석을 잡아 와! 아니 나도 따라간다!!”
그대로 저택 밖으로 나와 도망쳤을 괴도를 붙잡기 위해 서둘러 움직이는 경비들.
라파노 역시 뒤뚱뒤뚱 느리게나마 그들을 따라가려던 순간.
아까 봤던 소녀가 다시 한번 뒤에서 불쑥 나타나 말을 걸었다.
“어떻게 됐나요?”
“녀석은 마법으로 도망쳤다!!”
“네? 뒤뜰에서 그만한 마법을 쓰고 바로 또 사용했다고요?”
뭔가 이상한데.
그렇게 중얼거린 소녀가 캐묻듯 라파노를 붙잡으며 집요하게 물었다.
“뭔가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지금 이 상황은 이상한 것투성이야! 메이지 킬러가 마법사도 못 잡는 게 말이나 되냐고!”
“메이지 킬러···? 지금 그 사람은 어딨죠?”
“바닥에 나자빠져 있지!”
“설마 그를 혼자 놔둔 거예요?”
이젠 아예 질책까지 하는 듯한 말투에 라파노는 인상을 찌푸리며 삿대질했다.
“그러는 넌 아까부터 뭔데 자꾸···.”
“그 메이지 킬러가 범인일 수도 있다고요!”
“···뭐?”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 그것을 등진 채로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괴도가 공연의 피날레를 알렸다.
“거기 아가씨. 추리력이 상당하잖아.”
“너는···! 괴도 레이븐!!”
“이런. 배불뚝이 영감님은 뒤로 빠져주지 않겠어?”
어둠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괴도와 소녀.
검은 실크햇에 모노클. 검은 정장과 펄럭이는 망토. 그리고 손에 든 지팡이까지.
괴도 레이븐의 푸른 눈동자가 밝게 일렁였다.
“예고했던 대로 태양의 미소는 내가 가져간다.”
“거기 서라! 이 망할 녀석!!”
라파노의 꽥꽥거림을 가뿐하게 무시하며 레이븐이 소녀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거기 아가씨.”
“···말해.”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밝은 낮에 말이야.”
장난스레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에 섞여 작게 덧붙는 뒷말.
“지금은 너무 어두워서 예쁜 얼굴이 잘 안 보이거든.”
“그래. 다음에 봐. 그땐 반드시 잡아줄 테니까.”
“그거 꽤 무섭네. 기대하고 있을게.”
그럼 이만.
펄럭이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괴도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사라진 옥상을 한동안 응시하던 소녀의 앞으로 살랑살랑 검은 깃털이 내려앉았다.
깃털을 낚아챈 소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꼭 잡아줄게.”
반드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잘 부탁드립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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