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커버보기
<속보 – 태양의 미소 결국 도난! 예고장을 통한 범죄 예고!?>
<괴도 레이븐. 그는 누구인가?>
<지역의 대부 라파노. 현재의 심경 토로해···.>
“아주 난리네요.”
[슬슬 유명세를 타는 모양이구나. 이렇게 신문에 대서특필도 나고.]
“그야 벌써 세 번째니까요.”
[그래도 아직 한참 부족하다. 적어도 이 나라에 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거 좋은 거 맞죠? 도둑질로 얻는 명성이라니.”
[다른 도둑처럼 사리사욕만을 위해 훔치는 게 아니잖느냐. 그러니 너도 이 활동에 동의한 거고 말이다.]
“그렇긴 하죠.”
내가 어쩌다 괴도가 되었냐? 여기엔 아주 깊은 사연이 담겨 있다.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좋을까.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즐겨 보던 만화 속 엑스트라로 빙의하였다. 존재감 없는 단역인 만큼 능력 역시 별 볼 일 없는 그런 애매한 캐릭터.
이름은 ‘크로 모리스’.
원작에서 출연한 횟수를 다 합쳐도 10번은 될까? 모아 놔도 1화도 채우지 못할 만큼 비중이 작을 것이다. 웬만큼 열성적인 팬이 아니라면 존재 자체를 모르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한 줄로 요약도 가능하다.
주인공 일행과 같은 반인 마술사 컨셉의 엑스트라.
마술사라는 특징적인 컨셉이 있는데도 왜 존재감이 없냐고?
그야 이 세계관 자체가 마법사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마법 배틀물이니까.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마술. 즉 속임수에 기반한 마술 능력은 태생적으로 강해지기 힘든 컨셉에 가까웠다.
덕분에 처음 빙의했을 땐 참 막막했었지. 이 험난한 세계관에서 고작 마술 하나만 믿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고민도 많이 했었다.
지금까지 보면 결과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막상 기간을 세보면 빙의한 지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여차여차 여신님과 만나게 되어 합리적인 거래를 치른 덕분이었다.
여신님은 내게 힘을 제공해주고 그 대신 나는 밤마다 괴도로서 세상에 흩어진 보석을 찾는다.
정확히는 보석에 담긴 여신님의 잃어버린 힘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즉 보석을 찾을 때마다 여신님은 힘을 되찾고 나 역시 능력이 강해지는 선순환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세상에 뿔뿔이 흩어진 보석을 모두 찾아 여신님의 힘을 완벽히 되찾으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한다. 지금의 삶에도 나름대로 만족하는 중이지만.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아직 힘을 되찾으려면 찾아야 하는 보석이 무수히 많으니 말이야.]
“그거참 힘이 나는 소식이네요.”
[너도 나중에는 괴도 일에 푹 빠질 거다. 사람들이 모두 너를 우러러볼 테니까.]
도둑을 우러러본다니. 물론 일반적인 도둑이 아니라 괴도이긴 하다.
아까 말했듯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보석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여신의 힘이다. 따라서 훔친 보석은 다시 되돌려 놓거나 더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하는 등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번에 훔친 태양의 미소 또한 마찬가지고 말이다.
아무튼 그게 전부다.
낮에는 평범한 아카데미 학생.
밤에는 신출귀몰한 괴도 레이븐.
그것이 지금의 내 일상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카데미의 학생으로서 등교할 시간이었다.
***
[오늘도 날씨가 참 좋구나.]
“방금 그 말 되게 나이 들어 보였어요.”
[···정말 너무하구나. 이 몸도 신이기 이전에 여자란 사실을 기억하거라.]
삐진 것처럼 새침해진 여신님의 말투.
참고로 지금 여신님은 내가 낀 반지 속에 있다고 보면 된다. 원래는 반지가 아니라 지팡이지만 아카데미에 지팡이를 들고 다닐 수 없으므로 반지로 변해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주위를 잘 살피면서 다녀라. 어제 그 여자가 어디 있을지 모르잖느냐.]
“아 그 여자요?”
어젯밤 마주쳤던 누군지 모를 여자. 자세히는 몰라도 우리의 작전을 완전히 간파하고 있던 것 같았다. 만약 라파노가 조금만 남의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면 정말 위험했을지 모른다.
“얼굴을 확인 못 한 게 진짜 아쉽네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라. 반대로 상대 역시 너의 얼굴을 못 봤다는 뜻이잖느냐.]
“저는 어차피 인식 방해 마법이 걸려 있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 듣고 보니 우리의 손해 같구나.]
너무 순순히 인정하시는 거 아니야?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아는 거라곤 뚜렷한 초록색 눈동자 정도가 전부.
만약 여기가 21세기 대한민국이었다면 굉장한 특징이었겠지만 아쉽게도 이 세계관은 마법이 판치는 판타지 세상이다.
녹안은 물론 벽안 적안 자안 등등. 온갖 다채로운 색은 다 널려있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란 뜻이다. 그래도 분명한 특징이긴 하니 후보군을 추릴 때는 꽤 도움이 되겠지만.
내 집에서 아카데미까지는 거리가 꽤 가까웠기에 금방 도착해 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물론 기숙사보단 멀다. 이건 너무 당연한 얘긴가?
나는 자연스럽게 내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아카데미 일상에는 꽤 익숙해졌다. 다행이랄지 반 아이들도 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야 원래 말이 없었으니까.
단순히 원작 비중이 없는 걸 넘어 캐릭터 자체가 내성적이고 숫기가 없는 성격인 듯했다.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딱히 없는 것 같고.
‘이걸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 건가?’
[딱히 좋아할 문제는 아닌 것 같구나.]
‘역시 그렇죠?’
애들에게 들리지 않게 여신님과 잡담을 떠들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친구가 없어도 수다를 나눌 여신님이 곁에 계시니까. 뭔가 자기 합리화처럼 보여도 그냥 넘기기로 하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자연스레 주변에서 떠드는 반 아이들의 잡담 내용이 들려왔다.
“오늘 뉴스 봤어?”
“괴도 레이븐 말하는 거지? 벌써 세 번째잖아!”
어라. 내 얘기였다. 더더욱 관심이 가는 주제에 귀를 쫑긋 세우며 얘기에 최대한 집중했다.
“경찰들은 뭐 하길래 도둑 하나를 못 잡는 거야?”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 마법사라고 하던데? 그리고 잡히면 안 되지!”
“뭐? 너 설마···. 그 도둑놈을 응원하는 거야?”
얘기가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오호라. 벌써 너를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구나.]
‘그러게요. 진짜 여신님 말씀대로 될 줄이야.’
[흠? 설마 이 몸의 말을 의심했던 것이냐?]
‘쉿. 얘기 듣게 조용히 하고 계세요.’
[···정말 요즘 아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구나. 나 때는 말이다. 응? 그렇게···.]
뭐라고 구시렁대는 여신님의 하소연을 뒤로 한 채 아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도둑놈이라니! 레이븐은 훔친 보석을 팔아서 고아원에 기부했잖아. 이게 도둑놈이 할 짓이야?”
“그게 진짜라고 어떻게 확신해? 애초에 보석을 어디에 어떻게 팔았는지도 모르고 기부라는 것도 결국 돈다발 위에 자기가 했다고 써놓은 게 전부잖아! 전부 조작한 걸 수도 있지 않아?”
어이. 그걸 어떤 식으로 조작해.
그러면 우연히 고아원 앞에 놓여있던 돈다발 위에 내가 카드만 남겨 놓은 거란 말이야?
“그리고 결국 태양의 미소는 아직 훔친 게 전부잖아. 다시 돌려놓지도 않고 어디에 기부하지도 않았어. 처음 한두 번만 변덕으로 했던 거고 이제부터는 자기가 낼름 가지기로 한 거면?”
거기에 답을 하자면 아직 시간이 없었으니 처리를 못 한 것뿐이다.
애초에 어젯밤에 훔쳤는데 24시간도 안 되어서 그걸 어떻게 바로 처리하겠냔 말이다. 게다가 난 낮에는 아카데미도 다녀야 하는데.
[그렇게 억울하면 직접 가서 말하지 그러냐.]
나를 놀리듯 쿡쿡 웃으면서 말하는 여신님.
당연히 그럴 수야 없었다. 내가 괴도라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되는 비밀이니까.
그때였다.
“두 사람 무슨 얘기를 그렇게 열심히 해?”
나긋나긋하면서도 상냥한 목소리. 열심히 얘기를 나누던 여자애들 앞에 등장한 아름다운 외모의 소녀.
그녀의 이름은 율리아.
엑스트라인 나와 달리 이 세계에서 중심이 되는 주연 히로인. 게다가 착한 성격과 예쁜 외형 등으로 독자들에게도 인기가 매우 많은 캐릭터 중 하나였다.
율리아가 자연스레 대화에 끼어들자 여자애들은 오히려 잘 됐다는 듯 화살을 그녀에게 화살을 돌렸다.
“율리아! 너도 오늘 신문 봤지?”
“신문? 응. 봤는데 그게 왜?”
“괴도 레이븐 말이야! 율리아는 어떻게 생각해??”
예상 밖의 질문이었는지 눈이 커진 율리아는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괜히 내가 떨렸다.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율리아가 나에 대해서 얘기한다니. 과연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율리아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도둑질은 나쁜 게 아닐까?”
“역시. 율리아다운 대답이구나.”
“에···. 괴도 레이븐의 멋짐을 모르는 너희가 불쌍해!”
정말로 모범 소녀인 율리아다운 대답이었다. 이유가 뭐든 간에 도둑질은 나쁜 것이다.
뭐랄까. 원론적인 대답이긴 한데 막상 듣고 나니 흥이 팍 식는 기분이었다.
[후후. 시원하게 차였구나.]
‘차인 거 아니거든요? 애초에 좋아한 적도 없거든요?’
[후후. 그렇다고 쳐주마.]
기분 나빠. 율리아의 대답보다 여신님의 반응이 더 언짢게 느껴졌다.
한숨을 푹 내쉬고 있을 때 뒷문이 벌컥 열리며 새로운 인물이 반에 들어왔다.
그녀는 다름 아닌 내 옆자리 짝인 레이첼이었다.
‘윽···.’
가방을 무심하게 휙 던지며 내 옆자리에 앉는 소녀.
참고로 내 자리는 반에서 제일 오른쪽 끝 창가 옆. 즉 불량한 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리였다.
그녀는 오자마자 턱을 괴고 내 옆모습을 빤히 쳐다보더니 불쑥 말했다.
“야. 찐따. 인사 안 하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궤도가 아니랍니당!
괴도에용!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