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오늘 과제는 유명한 마법사를 조사하여 조별로 발표하는 거예요.”
아니 대학교 교양 과목도 아니고 왜 아카데미에서 조별 과제를 내는 거야.
뜻밖의 상황에서 크나큰 장벽을 마주하고 말았다.
과연 이보다 더 험난한 시련이 존재하기나 할까?
“조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나누는 게 편하겠죠? 4명씩 하면 인원도 딱 맞겠네요.”
그런 시련이 있었구나. 그것도 바로 앞에.
차라리 선생님이 조를 나눠주면 안 될까요?
아니면 번호순으로 해도 좋으니까 제발.
[그게 그리 힘든 일이더냐?]
‘이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어요.’
심지어 4인조면 나를 제외하고 친구가 3명이나 더 필요하다는 거잖아?
인생에서 진정한 친구 하나 사귀기도 어렵다는데 셋이나 사귀는 건 절대 불가능한 위업이나 다름없지.
[학교 과제 같이할 조원이 언제부터 인생의 진정한 친구가 된 것이냐.]
‘크흠. 여신님은 인간 세계를 잘 모르셔서 그러는 거예요.’
아무튼 조별 과제는 여러모로 악명이 높은 시련 중 하나이다.
특히 빌런이 하나라도 끼어있다간 나머지 조원도 다 같이 피해를 받는 점에서 참으로 악랄하기 그지없다고 평가할 수 있으리라.
“잠시 시간을 드릴 테니까 조를 정해서 칠판에 이름 다 써주세요.”
조원을 정할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반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친한 친구들에게 다가가 같이 조를 하자고 권유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가운데서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꿋꿋이 앉아있는 나.
그리고 옆의 레이첼.
“야 찐따. 왜 가만히 있냐? 설마 같이 팀 하자고 제안할 친구도 없어?”
윽. 뼈가 시린 직격타였다. 차마 순순히 긍정할 수는 없어서 괜히 역으로 질문하며 되받아쳤다.
“너도 앉아있잖아.”
“야. 나는 귀찮게 안 움직여도 다른 애들이 와서 제안할 테니까 가만히 앉아있는 거거든? 내가 너 같은 찐따랑 같겠냐고.”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레이첼에게 다가오는 아이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예쁘면 뭐 하는가? 성격이 더러워서 애들이 다 무서워하는데.
물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딱히 레이첼이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칠판에 하나씩 적혀가는 이름들. 점차 팀이 완성되어가는 가운데 우리는 서로 나란히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
문득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지막에 나랑 레이첼 단둘이서만 남으면 어떡하지?
생각만 해도 가슴 아파지는 시나리오였다. 문제는 그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는 거겠지.
반면 우리와 전혀 다른 예시도 있었다.
앞자리에 앉아있는 율리아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율리아! 우리 같이 조 하자! 어때?”
“아 미안해. 나는 이미 팀에 들어가서.”
“그래? 칠판에는 안 적혀 있길래···. 아쉽네.”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율리아를 영입하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졌다. 농담이 아니라 현재 만들어진 모든 조가 전부 그녀에게 제안했을 정도.
저건 단순히 예쁘고 인싸라는 이유만으로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율리아가 그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고 반 전체와 두루두루 친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괜히 기분만 울적해졌다.
아니야. 나는 괴도라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거리를 두는 거니까.
전혀 슬프지 않아.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걸.
[안쓰러우니 그만하거라.]
‘저를 동정하지 마세요.’
다른 예시를 살펴보자.
나와 레이첼처럼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반 아이가···.
한 명 찾았다. 우리의 반대편 뒷문 근처에 앉아있는 금발의 소녀.
샤론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책을 읽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림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쟤도 보면 참 특이한 편이네.
옆에서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지금 3명이지? 남은 1명은 누구로 할까?”
“지금 남아있는 애가···. 레이첼?”
가장 먼저 언급된 이름은 의외로 레이첼이었다. 하긴 그녀는 존재감이 없어서 선택받지 못한 게 아니니까. 오히려 존재감이 너무 강렬한 게 문제라면 몰라도.
레이첼의 이름이 튀어나오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기겁하는 상대.
“야···! 레이첼은 좀···.”
“무섭긴 해. 그냥 다른 사람으로 하자.”
근데 쟤들은 자기들이 조용히 말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기엔 대화 내용이 너무 선명하게 들리는데. 아니면 이것도 여신님의 능력으로 강화된 건가?
[내 능력은 밤이 아니면 약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아 그랬었죠.’
그냥 쟤네가 조심성이 없는 거구나.
부들부들.
‘음···.’
아무래도 레이첼도 쟤네 대화를 들은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타이밍에 갑자기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러면 또 누가 있지?”
“보니까 샤론도 아직 조 안 든 거 같던데.”
“아 샤론은···. 음···.”
이번에는 약간 고민하는 눈치였다. 사실 샤론은 레이첼과 달리 딱히 문제 될 부분은 없었다. 말수가 없는 거야 성향의 문제일 뿐이니.
다만 샤론은 뭐라고 해야 할까? 레이첼과는 다른 의미로 쉽게 다가가기 힘든 타입이었다.
말하자면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풍기는 셈이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다른 애는 없나? 조금 더 무난한.”
참 까다로운 친구로군. 어쨌든 앞서 언급된 두 사람이 후보에서 제외된 순간 사실상 여전히 남아있는 매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 나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솔직히 툭 까놓고 나 정도면 조원으로 나쁘지는 않잖아?
레이첼처럼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샤론 같이 다가가기 힘든 타입도 아니잖아.
그냥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평범한 아싸에 불과하니까.
이게 과연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난하다는 특징에 나처럼 어울리는 후보는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슬며시 기대하며 뒤이어 들려올 말에 집중했다.
“남은 사람이 없는데?”
“진짜? 다 채워진 거 맞아?”
“응. 저 둘 말고 없어.”
무슨 소리야!!
순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며 일어날 뻔했다.
여기 있잖아! 아직 뽑히지 않은 후보 여기 있다고!
제대로 확인하란 말이야. 왜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건데···.
“풉.”
화룡점정으로 옆에서 들려오는 비웃음 소리.
분명 의도한 거였다. 같이 얘기를 듣던 레이첼이 나를 놀리려고 의도하고 비웃은 거다.
[음···. 힘내거라.]
‘전혀 힘이 나지 않아요···.’
이 자괴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무슨 표현을 갖다 붙여도 내 감정을 완벽히 표현하긴 힘들어 보였다.
나는 이렇게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채 심지어 기억에 남지조차 못하는 다크템플러로 끝나버리는 것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좌절하던 찰나.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크로. 혹시 팀 정했어?”
“···응?”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내 앞에는 율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혹시 아직 안 정했으면 나랑 같은 조 하지 않을래?”
나는 입도 제대로 열지 못한 채로 멍하니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자 진심으로 기뻐하는 율리아.
“다행이다! 벌써 다른 조에 들어갔으면 어쩌나 걱정했어.”
아니. 아마 평생 기다렸어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야.
너 말고는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조차 없었거든.
그야말로 천사의 등장이었다.
지금 율리아의 등 뒤에 새하얀 날개가 펼쳐진 듯했다.
설마 이렇게 극적으로 구원받을 줄이야.
이런 전개는 옆에 있던 레이첼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똥 씹은 표정으로 황당해하고 있었다.
‘후후. 어떠냐? 너와 달리 난 선택 받았다고! 그것도 반의 최고 인기녀인 율리아한테!’
[참 추하구나.]
‘본심에 충실한 거라고 해주세요.’
우울함이 싹 사라지고 절로 미소가 방긋 지어졌다.
나는 율리아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 조 다른 애들은 누구야?”
“아직 없는데?”
“···응?”
“지금은 우리 둘뿐이야. 이제 남은 두 명도 구해야지.”
잠깐만. 방금 옆에 애들이 얘기하면서 분명 남은 인원은 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는 말은 즉···.
8조
– 율리아 그레이스
크로 모리스
레이첼 스칼렛
샤론 혼시아
“하하···.”
명단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거 참 완벽한 조합이잖아.
반 최고 인기녀와 선택받지 못한 세 아이라니.
심지어 개성마저 완벽하게 채워놓았다.
모범생 아싸 일진 얼음 공주까지.
신이시여. 대체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음. 완벽한 하렘이구나!]
‘아···.’
여신의 음성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이 여자는 원래 이런 상황을 좋아하는 변태녀였다는 것을.
참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상황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다들 잘 부탁해.”
조장인 율리아의 인사에.
“쯧. 과제 같은 거 개 귀찮은데.”
불평을 터뜨리는 레이첼과.
“······.”
아예 대답조차 생략하는 샤론.
벌써 앞날이 캄캄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벤져스 어셈블이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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