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1
“여기인가.”
원장에게 들은 줄리엣의 집 주소로 향했다.
굉장히 서민적인 공동주택이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값싸고 초라했다. 동네 자체도 치안이 그리 좋지 않은 슬럼가에 가까웠으니.
그녀의 정체와는 별개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고아원에 후원하고 싶다는 건 어느 정도의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럴 만한 환경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물론 실제로 사정을 자세히 들어보기 전엔 속단할 수 없겠지만. 그것보단 줄리엣이 정말로 셜록이 맞느냐가 더 중요하기도 하고.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가 그녀가 사는 집 문 앞에 멈춰 섰다.
똑똑.
문을 두드리며 나지막이 불렀다.
“줄리엣 양 계십니까.”
곧 안에서 들려오는 경계심 섞인 목소리.
“···누구시죠?”
“잠시 고아원 관련으로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 괜찮습니까?”
“고아원이요?”
잠깐의 기다림 끝에 문이 열리며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봤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집 안에서도 붉은색 머플러를 하고 있다니. 답답하지도 않은가?
“당신은···.”
“아까 고아원에서 마주쳤었죠. 제 이름은 아르센 뤼팽입니다.”
이름을 소개하면서 미리 만들어뒀던 명함을 건네주었다.
거기에 적힌 간략한 정보를 읽고서는 작게 중얼거리는 줄리엣.
“뤼팽 재단?”
“구호·장학·의료·인재 양성 등등. 비영리적 사회 복지를 위해 설립된 자선 재단입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아직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신생 단체니까요.”
카드를 전부 살펴본 그녀는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저한테는 무슨 일이신가요?”
“아까도 말했듯 고아원의 후원에 관한 문제 때문입니다.”
“정확히 어떤 문제라는 거죠?”
상당히 성깔이 있으시네. 일단 직접 대화를 나눠보고 평가하자면 지금까진 셜록과 상당히 느낌이 다른 듯했다.
목소리부터 이쪽이 살짝 더 허스키하고 말속에 가시가 돋쳐있다고 할까. 물론 낯선 사람이 집까지 들이닥쳤으니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아직은 더 살펴볼 필요가 있겠군.
“간단합니다. 원장님에게 듣기론 당신도 고아원에 후원할 목적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네. 그게 문제라는 건가요?”
“아니요. 당연히 문제는 아니죠. 다만 각자 합의도 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후원하면 비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하나만 필요한 생필품을 겹쳐서 구매해버린다던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는 판단했는지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겠네요.”
“거기에 더해 재단 차원에서 체계적인 지원을 진행할 계획인데 줄리엣 양만 괜찮다면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게 어떨까 싶군요.”
“···제 후원금을 그쪽에서 쓰겠다고요?”
“물론 껄끄러우시단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미 저희 뤼팽 재단은 원장님과 깊은 상의를 나누고 제 의견을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이건 말하자면 불필요한 과정을 생략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본인이 직접 후원해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많은 사람이 자선단체를 이용해 간편하게 기부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말이다.
다소 갑작스러운 제안에 줄리엣은 눈가를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굳이 재촉하지 않고 문 앞에 서서 여유롭게 기다려주었다.
“갑자기 나타난 당신을 믿기는 힘들어요.”
“물론 그럴 수밖에요. 당연히 이해합니다.”
“저를 설득시킬 뭔가를 보여주세요.”
“흠.”
꽤 의외의 대답이었으나 가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좋습니다. 저희 사무실로 오시죠.”
“네?”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셨으니 확실하게 보여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지금 당장요?”
“편하신 대로 하시죠. 명함에 사무실 주소가 적혀 있으니 언제든 방문하셔도 상관없습니다만. 빠르게 처리할수록 후원도 신속히 진행될 테니까요.”
잠시 머뭇거리던 줄리엣은 이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겠어요. 지금 바로 가죠.”
***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서류들을 보여주었다.
이런 것들은 제대로 처리하고 있으니 떳떳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음···.”
“아직 신생 재단이라 활동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계획만 거창할 뿐이죠.”
“···이렇게 많은 돈을 후원하셨다고요? 저희 고아원에?”
“저에겐 그리 큰돈도 아닙니다.”
자랑처럼 들릴지 몰라도 사실인 걸 어떡하겠어.
“그런 것치곤 사무실은 별 볼 일 없는데 의외네요.”
“하하···. 아픈 곳을 찌르시는군요.”
물론 나도 사무실이 작다는 거야 절실히 느끼고 있다. 괜히 사업가가 비싼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게 아니듯이 보이는 면은 결코 무시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 집 근처에 빈방이 나질 않는걸. 그렇다고 너무 멀면 왔다 갔다 하기 귀찮고.
“중요한 건 사무실 크기가 아니라 후원금 아니겠습니까.”
“말은 번지르르하네요.”
그녀는 뒤이어 다른 서류도 살펴보았다.
“마법 아카데미 학생의 장학금도 주는군요.”
“예. 아직 많이 안 알려져서 신청자는 적지만 어떤 학교든지 조건만 갖춘다면 지원해줄 생각입니다. 대학교까지요.”
“대학생을 지원한다고요? 왜요?”
지금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인 모양이다. 현대에야 대학교가 훨씬 서민 친화적인 학술 기관이 되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말 그대로 국가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을 위한 엘리트 기관이니까.
“투자인 셈이죠.”
“투자요?”
“예. 뤼팽 제단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친구라면 당연히 제 활동에 호의적으로 될 테니까요.”
“단순히 호의를 사기 위해 그 막대한 학비를 지원해준다고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죠. 산업 시대가 열리며 대도시가 만들어지고 날이 갈수록 단 한 명의 천재가 이루어낼 업적은 커질 겁니다.”
사실 내가 똑똑한 척하면서 뭐라 말해봤자 큰 의미는 없겠지. 나는 200년 뒤의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직접 보았기 때문에 잘난 척 떠들어댈 수 있는 것이다.
“···참 대단하시네요. 그렇게까지 해서 이루려는 목표가 뭔가요?”
“세계 평화입니다.”
“풉.”
뭐야. 설마 방금 비웃은 거야?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린 그녀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생각보다 재밌으신 분이네요.”
“저는 나름 진지하게 답한 겁니다만.”
“네. 그래서 재밌다는 거였어요.”
이쯤 되면 혹시 내 정체를 알아차려서 그런 건가 생각될 정도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만큼 그녀가 대체 어떤 부분에 꽂혀 웃음을 터뜨린 건지 전혀 모르겠다.
“오늘 고아원에 들렀던 건 병원 검진 때문이었어요?”
“네. 그러다 우연히 줄리엣 양과 마주친 거죠.”
“이젠 놀랍지도 않네요. 아예 병원을 통째로 예약해서 애들이 전부 진료를 받게 해준다니.”
“괜히 다른 사람하고 부딪힐 바엔 그게 훨씬 편하지 않습니까.”
서류를 펄럭거리며 한숨을 터뜨리는 줄리엣.
“스케일이 너무 다르네요. 이런 재단에 제 코 묻은 돈이 합쳐진다고 뭐가 다를까요?”
“돈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남을 돕길 원하는 마음 그 자체죠.”
“참 입바른 소리는 잘하시네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나저나 여태껏 너무 당연하게 넘어가서 놓치고 말았던 중요한 점이 있었다.
“서류를 잘 읽으시는군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어려서부터 얼마 전까지 쭉 고아원에서만 자라왔다고 들었습니다. 복잡한 서류는커녕 글자를 읽는 것도 힘들어야 정상일 텐데요.”
딱히 고아를 무시할 생각은 없다. 그저 당연한 팩트를 말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이런 시대엔 아직 문맹률이 높은 편이기도 하고.
“독학했어요.”
“대단하군요.”
“원장님이 글을 읽을 줄 알았으니까요. 도움을 받아 기초를 익히고 책을 사서 읽으면서 공부했죠. 그리고 아이들한테 가르쳐주고요.”
“애벗 양이 당신을 많이 따르더군요. 언니 얘기만 어찌나 하던지.”
물론 그건 내가 먼저 물어봐서 대답한 것뿐이지만.
아무튼 실제로 줄리엣에 관한 얘기를 잔뜩 해댄 건 사실이니까.
확실히 능력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여자다.
평생을 고아원에서만 자라왔는데도 몇 달 만에 직장과 집을 구하고 심지어 고아원을 후원할 돈까지 마련했다니.
그러니까 더더욱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지?
일단 궁금증을 참고 그녀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정도면 믿을 수밖에 없겠네요. 좋아요.”
“좋습니다. 그럼 어떻게 후원하실 건지 구체적인 계획을 먼저 알려주십시오.”
“그냥 돈으로 할 생각이었어요. 금액은···.”
줄리엣의 입에서 튀어나온 액수 단위를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제법 많군요.”
“문제가 되나요?”
“당연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 구두계약으로 처리하기엔 서로 불편할 테니 확실히 계약서를 작성하는 편이 좋겠네요.”
혹시 몰라 미리 준비해놨던 서류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후원 신청 서류였다.
간단한 신원 정보와 직업을 작성해야 하는.
내게 종이를 받아든 그녀가 서류에 적힌 내용을 빤히 바라보았다.
“···꼭 써야 하나요?”
“뒤탈이 없으려면 그편이 서로에게 좋을 겁니다.”
머뭇거리고 있다.
어째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배가 고프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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