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5
어두운 구릿빛 피부에 투박한 인상의 사내.
건들거리는 몸짓은 다소 가벼운 인상을 주었으나 눈빛만큼은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자가 바로 괴도 추종 무리의 리더인 드레이크.
그의 모습부터 시작해 사소한 정보들까지 전부 머릿속에 꼼꼼히 외워나갔다.
그나저나 방금 저들이 나누던 대화 내용이 신경 쓰인다.
날이 갈수록 이 지하 모임의 규모는 커지고 있으며 그 얘기를 들은 드레이크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대답했으니까.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단순히 놀기 위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 아닌 듯했다.
아마도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거겠지. 높은 확률로 뒤가 구린 계획일 테고 말이다.
다만 그 이상의 쓸만한 정보를 얻긴 힘들었다.
아무래도 공개적인 장소라 그런지 이후부턴 녀석도 별다른 얘기 없이 술과 음악을 즐기기 바빴으니까.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위험을 감수하고 깊숙이 들어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굳이 당장 급하게 알아내야 할 이유는 없으니 오늘은 여기서 만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했다.
무엇보다 당장 내일 시험도 쳐야 하는데 여기서 밤을 새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런 분위기는 별로 안 좋아하나 보네?”
그때 자연스레 말을 붙이며 다가오는 누군가.
아까 처음 들어왔을 때 술잔을 건네주었던 여자였다.
“그냥 조금 어색해서요.”
“그래도 여기만큼 재밌는 곳은 없을걸?”
묻지도 않고 내 옆에 털썩 앉더니 술을 들이켜는 노출녀.
이걸 털털하다고 해야 할지 경우가 없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내 이름은 블랑카. 잘 부탁해.”
“예쁜 이름이네요.”
“어머? 지금 나 꼬시려는 거니?”
요염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일부러 옷깃을 풀어 헤치는 블랑카.
안 그래도 살결이 훤히 보이는 옷인데 거기서 더 해버리니 눈을 둘 곳이 없었다.
“풉. 너 생각보다 귀엽구나.”
“···알겠으니까 그만하시죠.”
“알겠어. 그래서 네 이름은 언제 말해줄 건데?”
그녀의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지금 변장한 모습의 이름을 댔다.
“도일이에요.”
“음. 뭔가 어울리는 이름이네.”
“그런가요? 칭찬이라 생각할게요.”
왜 나한테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오히려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조금 부담스럽긴 해도 그녀를 이용해 정보를 캐봐야겠군.
“블랑카 씨는 여기가 꽤 익숙하신가 봐요.”
“뭐 굳이 따지자면 그런 셈이지? 그래도 나름 고참이니까 잘 보이라고.”
“그럼 언제부터 들어오신 거예요?”
블랑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글쎄. 3달쯤 됐나? 아니면 말고.”
내가 처음 괴도 일을 시작한 것이 정확히 3달 전인데.
그렇다면 사실상 괴도 추종자가 처음 생길 때부터 있었다는 거잖아.
즉 그녀는 처음부터 쭉 활동한 원년 멤버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이 모임의 진짜 계획 같은 것도 자세히 알고 있겠지.
물론 이런 내용을 지금 곧바로 캐묻기는 어렵다. 그녀에게 있어 나란 존재는 오늘 막 처음 들어온 애송이 신입에 불과하다.
그런데 다짜고짜 그런 민감한 질문을 던진다? 진짜 괴도 추종자가 아니라 다른 속셈이 있어서 잠입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따라서 정보를 확실하게 입수하기 위해선 먼저 블랑카의 경계심을 풀고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레이븐을 좋아하는 거죠?”
“영웅님.”
“네?”
“우리는 레이븐을 영웅님이라고 불러.”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대화를 엿들을 때도 그렇게 말했었지.
설마 그 사람만 특이한 게 아니라 모두 영웅님이라 부르는 거였다니.
“왜요? 영웅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나요?”
“반대로 물어볼게. 그 사람을 영웅이라 부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네? 그야···.”
괴도는 범죄자다.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심지어 괴도 본인인 나로서도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고결하고 깨끗한 영웅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상반된 존재.
“너는 왜 괴도를 좋아하는데?”
“어 멋있으니까요···?”
이게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유다.
괴도가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
그야 멋있으니까. 비록 정의롭진 않더라도 낭만이 있으니까.
그게 뭔가 싶겠지만 엄연히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나 또한 그런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더라도 낭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내 조심스러운 대답에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면서 연기를 내뿜는 블랑카.
“맞아. 멋있지. 모두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고 여기 들어와.”
“지금은 다르다는 건가요?”
“여전히 영웅님은 멋있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첫째 이유는 바뀌었달까.”
방금 그녀의 대답이 내가 원하던 정보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무슨 이유인데요?”
“지금부터 알게 될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던 찰나 공간을 가득 메우던 음악 소리가 뚝 끊기며 돌연 침묵이 찾아왔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바로 직전까지 공연이 펼쳐지고 있던 무대에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드레이크였다. 그는 무대에 있던 뮤지션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고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다들 오늘의 특별 공연은 잘 즐겼나?”
와아!!
함성과 함께 울려 퍼지는 박수갈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드레이크가 얘기를 이어갔다.
“모두 이렇게 모여줘서 고맙군. 점점 같은 뜻을 지닌 친구가 많아지고 있으니 앞으로는 더 자주 열리게 될 거다. 자유롭게 시간이 될 때마다 찾아오라고. 공짜 술과 공연이 흔한 건 아니잖나?”
최대한 집중하며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일단 돈은 놈의 목표가 아닌 모양이다.
아직 확신하기엔 이르지만 입장료는 물론이고 술과 공연까지 무료로 제공하면서 입회비 같은 명목으로 돈을 걷지도 않는다.
꽤 의외이긴 했다. 보통 이런 수상한 단체의 가장 일반적인 목표는 돈이니까.
취미 정치 종교 성별 등등. 온갖 이유로 만들어지는 꺼림칙한 소규모 단체는 속내를 파헤쳐보면 결국 궁극적으론 돈을 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여기서 보니 새로운 얼굴이 많이 보여. 먼저 다들 환영한다 전하고 싶군. 이 자리는 어디까지나 같은 뜻을 가진 친구들끼리 교제를 나누기 위한 친목의 자리니까 부담가질 필요도 없다.”
단순 친목을 위한 자리라. 말이야 번지르르한데 과연 정말로 그게 전부일까? 아직 속단은 금물이었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뿐이야. 괴도 레이븐이야말로 우리를 위해 나타난 진정한 영웅이란 것.”
이렇게 대놓고 들으니까 좀 닭살 돋는데.
[후후. 인기가 많구나.]
‘하나도 안 좋거든요?’
대체 왜 나를 영웅으로 떠받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 막말로 사람들을 구하긴커녕 보석들을 훔친 것 말곤 한 게 없는데.
“많은 사람은 말하지. 브리튼의 영웅은 그레이스라고. 하지만 정말로 그가 영웅일까? 아니면 높은 사람들이 단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만들어낸 가짜 영웅일까?”
대놓고 위험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군. 만약 이 자리에 귀족이 있다면 곧바로 귀족 모욕죄로 소송당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달라지고 있어. 하지만 귀족과 자본가는 여전히 과거의 틀에 사로잡혀 시민들을 돈을 벌고 권력을 얻기 위한 부품으로만 생각하지. 신은 인간을 모두 똑같이 가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고 말하면서 그놈들은 인간 사이에 선을 긋고 벽을 세우고 있다.”
과연. 그런 거였나?
이제 대충 이 지하 모임의 목적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드레이크가 원하는 건 고작 돈 따위가 아니었다.
여긴 사상의 장이었다.
옛것을 허물고 새로운 시대를 쟁취하기 위한 혁명을 꾸미는 자리였다.
그 자체를 나쁘게 생각할 마음은 없다.
실제로 지금 시대는 아직 제대로 인권이 갖춰지지 않은 때였으니까.
다소 급진적이라고는 해도 이런 움직임은 필요할지도 모르지.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진정한 영웅이 나타난 거다. 누구의 손에 만들어지지 않은 진정한 영웅이.”
이 혁명에 내가 상징으로 앞세워졌다는 점이다.
지금 드레이크는 낭만 괴도를 혁명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
“국가와 귀족 자본가와 상류층이 누리는 것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 여태껏 누리지 못했던 하층민에게 돌려주고 있다. 그는 옛 시대를 저물고 새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상당한 달변가였다. 이미 드레이크의 연설에 모두는 마음을 빼앗겨 무대만을 넋 놓고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조그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이건 상당히 위험하다. 이 과격한 열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엔 단순 연설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쿠데타 반란.
그 움직임의 한가운데서 아이콘이 되어버린 내게도 영향이 오게 되겠지.
만약 이 소식을 알게 된다면 브리타니아는 어떻게 나설까.
중심이 되는 구심점을 없애려 들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누구보다 괴도를 추종하는 자들이 그로 인해 자신들의 영웅을 파멸로 이끌고 있다니.
“······.”
필요한 정보는 전부 얻었다.
이제는 어떻게 할지 결정할 차례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험이 끝나자마자 혁명 모임에 나간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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