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9
‘···없네.’
반에 들어온 율리아는 반사적으로 뒷자리에 시선을 두었다.
아직 등교하지 않은 모양이네.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에 앉자 자연스레 그녀의 주변에 몰려드는 반 친구들.
율리아는 그들과 정답게 얘기를 나누면서도 머릿속으론 빈자리의 주인인 소년을 떠올렸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아이들로 가득 차며 북적해진 반.
조례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소년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상습 지각생인 레이첼조차 자리에 앉아 빈둥대는 중인데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의아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빈자리로 다가갔다.
“레이첼.”
“응?”
“크로는 아직 안 왔어?”
“그러게. 맨날 나보다 일찍 와서 앉아있던 놈이 웬일이래.”
막상 그녀는 딱히 걱정되지도 않는지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지레짐작했다.
“뭐 늦잠이라도 자나 보지.”
“시험에 늦으면 안 될 텐데.”
조례에 늦는 거야 지각 벌점만 받고 넘어가면 되니 큰 문제까지는 아니지만 만약 시험 시간에도 늦어버린다면 설령 중간에 들어오더라도 부정행위로 간주 되어 시험을 못 치게 한다. 즉 늦으면 무조건 빵점이라는 거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는데. 시험이 끝난 뒤 자신과 함께 미술관에 가서 얘기도 나눴었고.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던 소년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설마 그게 마지막 모습이라던가···.
괜히 떠오르는 불길한 상상에 율리아는 점차 초조해짐을 느꼈다.
그런 율리아의 모습을 슬쩍 바라본 레이첼이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말했다.
“냅둬. 걔가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누가 보면 네가 걔 엄마인 줄 알겠네. 자기 인생은 원래 자기가 사는 거야.”
정말 그 말대로 자신이 그냥 유난을 떠는 것뿐일까?
아니면 반대로 레이첼이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만약 이랬는데 크로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친구인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닐까.
크로는 자신을 도와줬는데 이렇게 모른 척하고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걸까.
“역시 걱정돼. 크로는 아무 이유 없이 지각할 애가 아닌걸.”
“그러면 내기할래? 놈이 점심시간 전까지 멀쩡하게 반에 들어올지. 만약에 그때까지 안 오면 네 말대로 무슨 일이 생긴 걸 수도 있으니까 집에 찾아가 보면 되고.”
“만약 내가 지면?”
율리아의 질문에 레이첼이 답했다.
“넌 크로의 엄마가 되는 거지.”
“···뭐야. 그게.”
“재밌잖아?”
뭐가 재밌다고 킥킥대는 건지.
그와 별개로 그녀가 내놓은 제안은 꽤 합리적이었다. 일단 기다려 보고 끝까지 오지 않는다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크로의 집을 찾아가 보는 것. 주소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데다 거리도 멀지 않으니 문제는 없었다.
“금방 올 거야.”
“아씨! 깜짝이야!”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제삼자의 목소리에 레이첼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등장한 샤론.
사실 그보다는 그녀가 말한 내용이 더 중요했다.
“금방 온다고? 혹시 크로가 왜 안 오는지 알고 있는 거야?”
“아니.”
“그럼 어떻게 금방 온단 사실을 아는 건데?”
“직감이야.”
참 논리적인 대답이었다.
전혀 기대했던 답이 아니었기에 율리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2 vs 1이네?”
“나도 크로가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해. 그냥 걱정된다는 것뿐이지.”
“아무튼 한번 보자고. 이놈이 과연 언제 등장할지.”
크로는 조례할 시간이 되어 선생님이 들어올 때도 나타나지 않았다.
“음? 그 빈자리는···. 레이첼. 크로는 아직 안 왔니?”
“네. 그런 거 같네요.”
“딱히 연락받은 건 없는데. 일단 나중에라도 오면 교무실로 올라오라고 하렴.”
“넵.”
그 얘기를 들은 율리아의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갔다.
선생님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무단 지각이라니. 역시 크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문제는 이제 10분 뒤에 곧바로 시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과목에서 아예 빵점을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엔 최소 성적을 채우지 못해 유급될 가능성도 존재했으니까.
이럴 줄 알았다면 어제 헤어지기 전에 더 신경을 써줬어야 하는 건데.
물론 그녀는 미래를 읽을 줄 아는 마녀가 아니므로 이런 상황을 예측할 방법이 존재할 리 만무했다.
율리아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얼른 소년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잠시 후 수업 종이 울림과 동시에 드르륵 열리는 교실 앞문.
혹시나 했으나 반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크로가 아닌 중년의 교사였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교탁까지 다가가 반을 쓱 둘러보는 선생님.
곧이어 레이첼 옆의 빈자리를 발견하고는 작게 눈썹을 찌푸렸다.
“그 옆에는···.”
그의 말이 이어지려던 찰나 복도에서부터 후다닥 뛰어오는 소리와 함께 뒷문이 거칠게 열렸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자리의 주인은 살짝 눈치를 보더니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좋은 아침이네요.”
“이제 등교한 거냐?”
“아 그게. 1층에서 물건을 옮기는 걸 누가 도와달라고 해서요.”
“누가?”
“···그러게요. 저도 그걸 모르겠네요. 아하하···.”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도와줬다? 참 성인군자구나. 이번 한 번만 봐줄 테니 얼른 자리에 앉아라.”
“감사합니다!”
만약 모두에게 시험지를 나눠준 상황이었다면 절대 봐주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선생님은 너그러운 스승의 아량으로 제자의 허술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주기로 했다.
허겁지겁 자리에 앉자 레이첼이 작게 속삭였다.
“뭐 하다 늦었냐?”
“늦잠.”
“킥킥. 노답이네.”
곧 시험지가 모두의 책상 위에 올려지고 시험 셋째 날의 첫 교시가 시작되었다.
만약 조금 더 여유가 있어서 소년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더라면 그가 이번에도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늦잠 때문에 지각한 학생이라기엔 그의 눈가가 너무나 충혈되어 있었으니까. 마치 밤을 꼬박 새우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크로는 늦잠을 자거나 1층에서 누군가를 도와주느라 늦은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선 시간을 거슬러 어젯밤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
“주인 없는 보석이요?”
[그래. 모든 보석이 주인을 찾은 건 아니란다. 오히려 비율만 따지자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겠지.]
무슨 말인지야 알겠는데 그럼 엄밀히 따져서 괴도 활동이 아니잖아.
주인이 없는 물건을 무슨 수로 훔친단 말인가? 그건 괴도가 아니라 탐험가나 보물 사냥꾼이라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하리라.
“아니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내 목표를 잊지 마라 괴도의 네가 제일 잘 어울린다 그렇게 말해놓고 갑자기 주인 없는 보석을 노리자니 너무 휙 바뀌는 거 아니에요?”
사실 그냥 말만 번지르르할 뿐 딴짓 그만하고 얼른 보석이나 모으라는 잔소리에 불과한 건가?
[씁. 난 어디까지나 제안한 것뿐이다. 사전 준비 없이 바로 오늘 보석을 훔치고 싶다고 한 건 네가 아니었느냐? 그래서 가장 괜찮은 선택지를 알려준 건데 그런 내 호의를 의심하다니.]
“음···. 그런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일단 그 말대로 내가 먼저 여신님께 바로 오늘 해치울 수 있는 목표는 없냐고 물어본 건 사실이다.
여태껏 내가 해왔던 방식을 살펴보면 목표를 정한 다음 며칠 동안 철저한 조사 끝에 트릭을 설계해 보석을 훔쳤었다.
그런데 오늘은 오랜만의 복귀전이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바로 해치우고 싶단 말이지. 며칠 동안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 따위 없었다.
“알겠어요. 그래서 목표가 뭔데요?”
[천년 진주다.]
“오. 이름이 예쁘네요.”
진주라면 일단 보석류는 확정이고.
이름 그대로 천년이나 된 진주라는 건가?
그런데 이번 목표는 주인이 없는 보석이라고 했으니까···.
“잠깐만요. 그 진주가 있는 곳이 어딘데요?”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으냐.]
진주가 조개에서 나온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다.
즉 주인이 없는 자연 상태 그대로의 진주라면 당연히 조개 속에 있겠지.
“···바다에요? 설마 바닷속은 아니죠?”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단다.]
아니 이런 한밤중에 바닷속에 입수하라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껌껌한 밤바다 속으로?
이건 진짜 아니다. 농담이 아니라 차라리 궁전을 터는 게 훨씬 낫다.
주인 없는 보석이라길래 너무 쉬운 거 아닌가 했더니 여태까지 중에서 제일 어려운 극악 난이도잖아.
나 심해 공포증 있다고.
[걱정하지 말거라. 어디에 있는지 위치는 파악해두었으니.]
“···그러면 좀 낫긴 하겠지만.”
[단 살짝 문제가 있다면 이 위치라는 게 위아래까진 구분이 안 돼서 말이다.]
뭐야. 바닷속에서 Z축이 표시가 안 되면.
어디까지 깊이 잠수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소리잖아.
역시 이번 목표는 무리다. 깔끔하게 접고 다른 보석을 노리도록 하자.
[참고로 천년 진주는 지금껏 흡수한 그 어떤 보석보다 강하단다.]
“그 바다가 어디예요? 늦기 전에 얼른 가야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낭만적인 밤바다 여행이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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