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0
천년 진주는 브리튼의 서쪽 바다에 잠들어 있다고 한다.
정확히는 리버풀과 아일랜드 사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목적지가 생각보다 멀다는 것이다.
지금 위치인 런던에서 리버풀까지는 반나절 만에 걸어서 도착할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반 마차나 열차를 타자니 지금 시간이 밤이라 운행할 리도 없고.
이쯤 되면 오늘은 그냥 포기하고 주말에 도전하는 편이 맞겠지만 웬만하면 지금 동기 부여가 확실히 된 상태에서 움직이고 싶단 말이지.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마도공학 기차를 이용하는 것.
평범한 열차와는 달리 24시간 운행하는 마도공학 기차라면 하룻밤 사이에 여유롭게 왕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냥 하고 싶다 해서 무조건 가능한 방법이 아니다.
마도공학 기차를 타기 위해선 탑승권이 필수인데 단순히 돈을 낸다고 구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네. 이럴 때 믿을 건 마녀 씨뿐이니까요.”
“정말. 오랜만에 재회인데 너무하시네요.”
그녀는 우는 척 연기하며 은근슬쩍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설마 괴도 씨는 제가 그립지 않으셨던 건가요?”
“하하···.”
“저는 매일 밤 괴도 씨만을 생각하며 베개를 눈물로 적셨는데···.”
너무 뻔뻔하게 거짓말을 치니까 뭐라 하지도 못하겠네.
확실히 오랜만에 들른 건 맞다. 최근에는 여러모로 성장하면서 굳이 마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큰 어려움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봤던 때가 예언의 마녀를 찾기 위해서였던가?
그때도 지금처럼 마도공학 기차의 티켓을 받았었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내가 먼저 요구한다는 것 정도이고.
“솔직히 좀 서운했어요. 제 도움으로 프랑크 왕국까지 가서 제 친구를 만나 놓고서는 감사 인사 한번 하러 오지도 않는다니!”
“음. 그게···. 그 뒤부터 일이 여러모로 겹쳤달까요···?”
[확실히 이건 네가 잘못했구나.]
그래. 적어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 없이 내 잘못이 맞았다.
심지어 마녀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여신님마저 이번만큼은 그녀의 편을 들어줄 정도였으니.
그렇지만 정말 변명이 아니라 그 뒤부터 너무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느라 여유가 하나도 없었는걸.
오죽하면 여신님이 원래 목표를 잊고 지내는 게 아니냐고 말할 정도겠는가.
물론 그와 별개로 여태껏 감사 인사 한번 없다가 도움이 필요해지자마자 철면피를 깔고 다시 찾아온 건 나 스스로 생각해도 상당히 염치없는 짓이긴 했다.
그래도 어쩌겠어. 지금은 그녀의 도움이 없으면 아예 목적지까지 갈 수도 없는 상황인데.
이제부터라도 좀 더 신경 써주는 수밖에.
한 번으로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마주칠 사이니까.
“죄송해요. 앞으로는 자주 찾아뵐게요.”
“흠. 그럼 한 번만 용서해드릴게요.”
다행히 그녀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사과를 받아들여 주었다.
“대신 뽀뽀 한번 어때요?”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너무해라. 그래도 고민 정도는 해주시면 안 돼요?”
입을 삐쭉이며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저게 농담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저번과 똑같은 이유랄까요.”
“어머. 또 제 친구를 만나시러 가려고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오늘은 반대쪽에 용무가 있어서요. 저번처럼 마도공학 기차의 티켓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프랑크 왕국의 정반대 쪽의 아일랜드 해안이 목적지였다.
“괴도 씨. 저는 매표원이 아니랍니다?”
막상 그렇게 말하면서도 순순히 티켓을 건네주는 마녀. 그와 함께 제시한 가격을 들으니 확실히 비싸긴 했다. 일반적인 기차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나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금액.
“상당히 비싸네요.”
“그렇죠? 사실 저렴하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만요.”
마녀는 티켓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유혹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긴 한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다른 방법이요?”
“멤버십에 들어가면 회원들에게는 매달 주기적으로 무료 기차 티켓을 주거든요.”
“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얘기에 어리둥절 되물었다.
“멤버십이라니 어느 단체를요?”
“그야 당연히 마도공학회죠.”
그녀는 테이블 위에 카드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태엽에 마법진이 그려진 마도공학 특유의 상징.
“그 외에도 혜택은 다양해요. 뭐든 간에 마도공학과 관련되어 있다면 서비스 이용에 할인을 받을 수 있죠.”
“흠···.”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긴 했다. 내 무대가 단순 런던뿐 아니라 브리타니아 더 나아가서 유럽 전체로 확장될수록 마도공학 기차의 활용성도 점차 올라갈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매달 무료 티켓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마도공학 서비스에 할인을 적용받는다면 멤버십에 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좋아요. 멤버십은 어떻게 들어가면 되나요?”
“학회에 직접 찾아가시면 돼요. 가입 비용만 내면 누구든 조건 없이 받아주죠.”
“이런 정보까지 알려주시다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뽀뽀 한 번만 해주면 되는데.”
“일단 오늘은 이 티켓만 살게요. 지금 급하게 출발해야 하느라 멤버십 가입은 다음에 해야겠네요.”
아주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반면 마녀는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볼을 부풀렸으나 그런 사실은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나중에 일 끝나면 다시 찾아뵐게요.”
“흥. 그러던가 말던가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었다.
“그렇게 제가 좋으시면 마녀 씨 이름이나 알려주실래요?”
“···어 네?”
명백하게 당황하는 마녀.
그럼 그렇지. 그냥 나를 적당히 놀리려고 자꾸 뽀뽀네 뭐니 하지만 막상 본인도 진지하게 나오면 깜짝 놀라서 시선을 피하기 바쁘잖은가.
“음. 크흠! 아앗 생각해 보니 깜빡했던 약속이···! 괴도 씨도 바쁜 일이 있다고 하셨으니 얼른 가보세요. 저도 슬슬 가게를 닫아야겠어요. 그럼 수고하세요!”
얼마나 당황했으면 아예 가게 문을 닫는다는 핑계로 내쫓기고 말았다.
물론 나도 안다. 마녀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도는.
아무튼 무사히 티켓을 얻어낸 다음에 곧장 런던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도공학 승강장인 벽 너머로 들어갔다. 저번에 한 번 경험했는데도 참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오늘도 이곳은 매우 썰렁했다. 내가 매번 한밤에 와서 그런 건가? 아무리 비싸다곤 해도 이 넓은 승강장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있으니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역에 모습을 드러내는 마도공학 기차. 언제 봐도 참 펑크 느낌이 물씬 풍기는 디자인이다.
참고로 이 기차는 티켓을 문 앞에 가져다 대야 인식하고 열리는 구조다.
19세기인데도 ID카드를 완벽히 구현했다고 해야 하나.
이런 걸 보면 마도공학 기술이 현 세계관에서 오버 테크놀로지임은 분명했다. 기술의 개발자인 프랑켄 박사가 사라지며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되어버렸지만.
기차 안에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중간에 웬 카우보이 가면 남자가 탑승해서 잠깐 얘기를 나눴었지. 이번에도 그런 기묘한 만남이 생길까 기대 반 불안 반으로 빈 좌석에 착석했다.
미끄러지듯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차. 조금의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는 쾌적한 탑승감에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농담이 아니라 현대의 지하철보다도 편안한데?
심지어 창밖의 풍경을 보면 속도도 매우 빨랐다. 못해도 KTX와 비등하거나 그 이상이지 않을까.
음. 바로 내일 마도공학 멤버십에 가입해야겠다.
하찮은 마법 따위보다 마도공학이야말로 진정 위대한 힘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런던에서 리버풀까지의 거리는 대략 200마일.
거의 320km 정도이니 서울-부산 거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걸어서는 며칠이 걸리고 KTX 직행을 타도 최소 2시간 이상.
그런데 마도공학 기차가 런던에서 리버풀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40분이 걸렸으니 얼마나 빠른지 감이 잡히리라.
정말 쾌적한 여행이었다. 비록 이번에는 아무도 마주치지 못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느긋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옆에서 여신님이 떠들어대긴 했지만.
그렇게 도착한 리버풀. 사실 역사가 긴 도시는 아니다.
산업 혁명과 함께 세계화가 진행되며 지리적 요인으로 빠르게 발전한 항구 도시이니.
즉 정확히 지금 타이밍에 나날이 성장하는 중인 신도시라 볼 수 있겠다.
“이 바다 어딘가에 있단 말이죠?”
별빛이 내려앉은 밤바다를 구경하면서 여신님께 물었다.
[바다 한가운데이니 배를 타고 나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이 시간에 배를 어떻게 구하죠?”
[나는 네가 해낼 거라 믿고 있단다.]
그거참 감사하기도 해라.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무책임한 응원을 받으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 같은 야밤에 배를 구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안녕하세요.”
“응? 넌 뭐냐?”
뱃사람 특유의 거친 성격으로 화답해주는 털보 아저씨.
“그 낚싯배 선장이신가요?”
“바쁘니까 꺼져. 이제 퇴근할 시간이니까.”
긴말이 필요할까. 그냥 다짜고짜 그에게 돈다발을 건네주었다.
자신의 손에 들린 액수를 확인하더니 표정이 급변하는 어부.
그래. 돈이면 뭐든지 해결이지.
뭐? 돈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도 있다고?
만약 그렇다면 돈의 액수가 부족한 건 아닌지부터 확인하면 된다.
“좋아요. 그냥 저를 바다로···.”
“감사합니다. 나으리! 이렇게 뱃값을 두둑이 주시다니!!”
내 손을 꼭 붙잡고 격하게 흔들던 어부는 그대로 룰루랄라 나를 지나쳐 부둣가를 떠나버렸다.
“···어?”
혼자 남게 된 나는 우두커니 서서 혼란에 빠졌다.
뭐야. 설마 지금 대놓고 먹튀 당한 거야?
그러다 내 손에 느껴지는 감촉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내려보았다.
어느샌가 손바닥 위에 올려진 밧줄. 쭉 이어진 밧줄의 끝에는 다름 아닌 정박한 낚싯배가 있었다.
잠깐만.
설마 뱃값이라는 게···. 그냥 배 소유권을 통째로 팔아버린 거였어?
“나 항해법 모르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부가 된 낭만 괴도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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