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1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배에 올라타서 조타기를 만지작거렸다.
일단 묶여있던 줄을 풀고 닻도 회수했다. 약간의 씨름 끝에 돛도 펼쳤고. 크기가 작은 소형 낚싯배다 보니 혼자서 몰기엔 충분해 보였다.
내가 항해법만 알았다면 말이지.
일단 내 얕은 지식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긴 했는데 과연 무사히 움직여줄지가 문제였다.
“오오! 움직인다!”
바람을 받으면서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는 배.
이제야 겨우 출발에 성공한 것뿐인데도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좋아. 이대로 쭉 가면 되죠?”
[물론. 잘하고 있단다.]
처음에는 살짝 어색했으나 금방 조작법에 익숙해져 갔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데?
바다는 매우 어두웠다. 만약 여신님의 축복이 없었다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서 곧바로 암초에 부딪혀 침몰했을지도.
그래서인지 주변에 보이는 선박이라곤 없었다. 서서히 육지와 멀어지며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 혼자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 파도는 거세지 않고 잠잠했다.
고요한 물결의 일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가끔 심심할 때마다 배나 탈까요? 진짜 좋은데.”
[바다를 유랑하는 것만큼이나 낭만적인 것도 없지.]
물론 바다로 나와서 배를 몰 만큼 시간적 여유가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겠지만.
워낙 벌려놓은 일이 많다 보니까 하루하루가 전쟁처럼 바쁘다.
당장 내일 아침만 해도 아카데미에 등교해서 시험을 치러야 하니까.
아 이미 자정이 넘었으니까 오늘 아침이라고 해야 하나.
그 외에도 율리아의 일이라던가 뤼팽으로서 처리해야 할 재단 운영 등등.
산더미 같이 쌓인 일정을 떠올리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전부 지워내 버렸다.
지금만큼은 전부 뒤로 미뤄놓고서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
밤바다를 홀로 유랑하며 바닷속에 잠든 진주를 찾아 헤맨다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 시간이란 말인가. 비록 과정은 좀 험난하더라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흠.”
잠시 키에서 손을 떼고 지도를 펼쳐보았다.
지금 내 위치는 브리튼과 아일랜드 사이.
거의 딱 달라붙어 있다 보니 앞뒤로 양쪽 육지가 보일 정도였다.
“여기서 정확히 어디라고 했죠?”
[맨섬의 아래쪽으로 가면 된다.]
“이쪽이요?”
잘 모르는 사람도 꽤 있겠지만 사실 두 나라 사이에는 중간에 조그마한 섬이 끼어있다.
그게 바로 맨섬이다.
그냥 평범한 섬 아닌가 싶어도 엄연히 브리튼과는 다른 독립된 섬나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브리타니아 왕실 직할령 소속.
즉 국가가 아닌 왕실의 개인 영토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브리타니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투표권도 없고 여권도 다르게 취급한다. 물론 이 시대는 아직 완전한 참정권이 보장되기 전이지만.
여러모로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특이한 사례라고 할까.
사실 나도 이곳에서 살아가며 뒤늦게 알게 된 정보였다.
일단 여신님이 알려준 대로 세 육지가 교차하는 중앙 바다까지 도착했다. 이러니까 마치 버뮤다 삼각지대에 들어선 기분이네.
사실 지금이 한밤이라 그렇지 날이 밝으면 이 주변에 돌아다니는 배가 가득할 것이다. 브리튼과 아일랜드를 가로지르는 구역이니 교통량이 많을 수밖에.
“일단 목적지까지 왔네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천년 진주를 찾으면 된다.]
“···그냥 여기서 찾으라고요?”
[음. 바로 그거다.]
육지는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일 뿐이고 사방이 망망대해인 한가운데.
주변을 비출 조명이라고는 저 높은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빛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냥 바다에 들어가서 찾으라는 거죠?”
[정확히 이해하였구나.]
“어휴. 처음부터 그럴 거 같더라니.”
사실 여기 오기 전부터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야 바닷속에 있는 진주를 획득할 방법이 달리 뭐가 있겠는가?
막말로 마도공학 탐사 로봇을 이용해 채취할 것도 아니고. 결국 내가 직접 입수하는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거다.
알고 있었는데도 기분이 참 착잡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지금이 추운 한겨울은 아니라는 것 정도일까. 아무리 지금이 완연한 봄이라곤 해도 밤바다는 차가울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데 이 옷차림으로 그냥 들어가요?”
괴도 복장은 낭만은 넘치지만 물속으로 들어가기엔 적절하지 않은 차림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축복을 걸어줄 테니.]
“오···!”
축복이라니. 그거라면 얘기가 다르지.
신의 축복이 얼마나 사기적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껏 기대했다.
곧이어 신비한 검푸른 빛이 내 몸을 감쌌다. 그 아름다운 색채에 감탄하며 여신님께 물어보았다.
“이건 어떤 축복이에요?”
[음. 옷이 더러워지지 않는 축복이란다.]
“···어 그게 끝이에요?”
[그럼 더 필요한 게 있느냐?]
“물속에서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다든지 수중 호흡이 가능해진다든지. 그런 축복은 없어요?”
내 말을 들은 여신님은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런 건 포세이돈한테 부탁해야지. 나는 바다의 신이 아니란다.]
“그렇게 따지면 옷을 더럽히지 않는 건 대체 뭔 축복인데요?”
[그야 이 몸처럼 아름다운 여신에겐 필수적인 축복이지.]
어차피 중간계에선 까마귀 모습으로밖에 못 있으면서 아름다움은 개뿔.
[내 아이야. 혹시 속으로 굉장히 발칙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여신님의 아름다움을 상상해보고 있었는걸요.”
[후후. 물론 보고 싶겠지만 참는 게 좋을 거다. 내 진짜 모습을 보고 나면 다른 하계의 아이들이 못나게 보일 테니까.]
굉장한 자신감이네. 그냥 허세라고 치부하기엔 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했다.
막상 그런 말을 들으니까 더 궁금해진다. 율리아 샤론 레이첼 같은 애들도 실제로 봤을 때 비현실적인 외모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라니.
인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이라.
그렇게 정의를 내리니 떠오르는 인물이 몇몇 있긴 했다.
일단 마녀. 내가 만난 건 둘밖에 없는데도 확실히 둘 다 엄청났었지.
그리고 호수의 여인도 정령으로서 풍기는 아우라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었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다름 아닌 빅토리아 공주였다.
사실 그녀는 특별한 종족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인데도 이쪽에 속하기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율리아나 샤론이 저들보다 못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느껴지는 분위기가 초월적이면서 어딘가 신비스럽다는 것뿐.
[준비는 됐느냐?]
여신님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상념에서 벗어났다.
“네. 그럼 한번 내려가 보죠.”
일단 먼저 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돛을 접고 닻을 내렸다.
수심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숨을 쉬러 올라왔는데 배가 혼자 떠내려가 없어지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제대로 정박해놓은 걸 확인한 다음 입수할 준비를 했다.
새까매서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바다.
이 안으로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다.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허공으로 발을 내뻗었다. 균형이 무너지며 밑으로 추락하는 몸.
그대로 풍덩 바닷속에 입수했다.
역시 물은 생각했던 대로 차가웠다. 미리 보온 마법을 걸어두길 잘했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우주 한가운데 표류한 기분이었다.
간단한 초급 빛 마법으로 주변을 밝혀보았다.
그랬는데도 식별되는 것이 없다. 보이는 거라곤 내 신체와 어두운 색깔의 바닷물. 고개를 밑으로 내려도 땅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심해 공포증이 돋으려 한다.
두 번 다시 이런 미친 짓은 꿈에도 꾸지 않을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악몽으로 꾸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진주가 허공에 둥둥 떠 있을 리는 없겠지. 조개가 있을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일단 잠시 위로 올라가 수면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바다 안에서 바라보는 위쪽의 풍경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흡···!”
다시 한번 숨을 한껏 모은 다음에 바닷속으로 잠수했다.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배가 무사히 정박했다는 건 닻이 바닥까지 가라앉았다는 거겠지. 그러니 닻줄을 따라 내려가면 바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이정표도 없이 무작정 내려가다간 방향 감각을 잃을 것 같았기에 닻줄을 생명줄처럼 꼭 붙잡고 잠수했다.
[숨은 좀 괜찮으냐?]
‘지금은 말 시키지 마세요···!’
[그래. 부디 조심하거라.]
대체 수심이 얼마나 깊은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수중 호흡 마법을 진작 익혀두는 건데.
내가 과연 한 번에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내려가는 데 성공한다 쳐도 다시 올라갈 숨도 남겨놔야 한다.
어차피 중간 지점이 없으므로 여러 번 올라갔다 내려와봤자 체력만 소모할 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럴 바엔 차라리 조금 무리해서라도 한 번에 끝내는 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리라.
‘보인다···!’
드디어 바닥을 발견했다.
고운 모래로 뒤덮인 백사장에 물고기도 제법 많이 보였다. 어디 있나 했더니 전부 바닥 근처에서 놀고 있었군.
이제 조개를 찾아야 한다.
어디 있냐. 천년 진주를 머금은 조개는 어디 있는 거냐?
슬슬 숨이 가빠진다. 지금 올라가서 산소를 보충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닻줄을 붙잡고 수면 위로 올라가려던 찰나 바로 가까이에 있는 새하얀 조개를 발견했다.
분명 저거다. 저 조개밖에 없다.
찰나의 고민과 동시에 경로를 틀어 조개를 향해 나아갔다.
[안 된다. 이 이상은 위험하다!]
여신님이 경고했으나 이미 몸을 틀은 이상 지금 우물쭈물 올라가도 늦는다.
차라리 확실하게 진주를 찾기만 하면···!
목표 지점으로 다가가 꾹 다물린 조개의 입을 억지로 열었다.
그러자 속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휘황찬란한 진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바로 천년 진주.
그 아름다움에 눈이 팔린 것도 잠시 서둘러 진주를 챙기고서 위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던 탓일까?
조금씩 가슴이 괴로워지며 시야가 어두워졌다.
안 돼. 거의 다 가까워 왔는데···.
수면에 비치는 달빛을 향해 손을 내뻗었으나 닿지 않는다.
“컥!”
결국 참지 못하고 산소를 갈망하며 들이마신 숨.
폐부에 들어오는 차가운 바닷물.
그와 동시에 나는 정신을 잃었다.
“···인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금까지 낭만 괴도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