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5
“이게 해마차구나.”
얘기로만 들었을 땐 뭔가 했는데 말 그대로 해마+마차였다.
이렇게 커다란 해마라니. 심지어 성격도 순해서 머리를 쓰다듬어도 얌전히 받아들인다.
“목적지가 도버 해협이라 하셨죠?”
“응. 어딘지 알아?”
“그럼요. 육지는 몰라도 바닷길은 훤히 꿰고 있으니까요.”
내 옆자리에 앉은 아리엘은 능숙하게 해마들을 다루며 고삐를 잡아들었다.
“자주 몰아봤나 봐?”
“심심할 때마다 기분 전환용으로 나가는 거죠. 그러다 어머니한테 혼난 적도 많지만.”
확실히 여왕이 은근 딸바보 기질이 있어 보인단 말이지.
그나저나 아리엘이 공주님이었을 줄이야.
지금 돌이켜 보면 추측할 정보는 많았던 것 같으면서도 막상 실제로 밝힌 적은 없었으니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동화로만 나오던 바로 그 인어 공주.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니까 자꾸만 감탄하게 되던 미모도 납득이 갔다.
“그럼 출발할게요. 가까우니까 금방 도착할 거예요.”
금방 도착한다고? 지금 여기서 런던 앞의 도버 해협까지 가려면 브리튼 전체를 빙 돌아가야 할 텐데.
히이잉!!
해마가 말처럼 울더니 물살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리엘이 한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까딱 잘못해 손잡이를 놓치면 그대로 나가떨어져 심해 속의 미아가 될 수준이다.
막연히 육지의 마차와 비슷하게 생각했던 방금의 나 자신을 반성한다.
농담이 아니라 이 정도면 마도공학 기차와 비벼볼 만하지 않을까? 아니면 단순 체감 차이 때문에 내가 너무 호들갑 떠는 건가?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속도감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서 한시름 편해져지긴 했다.
“레이븐님.”
“응?”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왜 반드시 집으로 당장 돌아가야만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 정도야 딱히 난감한 질문도 아니니 선선히 대답해주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거든.”
“기다리는 사람이 계신 건가요···?”
“뭐 그렇게 말해도 아예 틀린 건 아니지.”
내가 끝까지 안 오면 담임 선생님이 결석 처리를 해버릴 테니까 약간 관점을 비틀어 보자면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대답을 듣고서 고개를 푹 숙이는 아리엘.
“역시···. 이미 연인이 있으셨군요.”
“···어?”
잠깐만. 그게 그런 뜻이었어?
누가 봐도 침울해 보이는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하였지만 차라리 이렇게 오해하게 놔두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까 전 궁전에서 여왕이 조심스레 꺼냈던 부탁.
‘부디 내 딸 아리엘과 약혼이라도 맺어주지 않겠느냐?’
당연히 거절했다.
약혼이라니. 결혼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결국 언젠가 결혼하자고 약속하는 것 아닌가.
단순히 상황을 넘기기 위해서 거짓말로 속이기보단 솔직하게 거절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물론 아리엘은 예쁘고 성격도 좋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종족의 장벽을 뛰어넘긴 힘들어 보였다. 애초에 결혼하고 싶을 만큼 호감을 느낀 것도 아니었고.
그냥 하룻밤 겪었던 인상 깊은 꿈으로 간직해주면 좋을 텐데.
문제는 아리엘은 나를 꽤 진심으로 좋아했던 모양이다. 결혼까지 진지하게 생각할 만큼.
솔직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결혼까지···?
인어의 결혼 관념은 인간과 상당히 다른 건가 싶기도 했지만 아무튼 내 단호한 거절에 꽤 상처를 받은 듯하다.
지금도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어도 시들시들해진 느낌이 확실히 보인달까.
그러니까 차라리 깨끗하게 잊고 단념할 수 있도록 이미 나한테 임자가 있다고 착각한다면···.
‘하지만 그러면 결국 아리엘을 속이는 거 아닌가···?’
하 나도 모르겠다.
지고지순한 순애보 사랑만을 꿈꾸는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얌전히 포기하고 운명을 받아들이거라.]
절대 싫다.
그렇게 말할수록 오기만 충전될 뿐이란 걸 깨닫게 해주지.
“혹시 인어가 슬퍼하면 물거품으로 변하고 그런 건 아니지?”
“네? 그런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요?”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설마 동화의 결말처럼 사랑에 실패해서 물거품이 된다거나 한다면 어쩌나 철렁했다.
“레이븐님. 도착했어요.”
“어? 벌써?”
아니 출발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도착해?
“제가 물가 앞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아까처럼 내게 손을 건네는 아리엘.
잠시 고민하다 맞잡으니 그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밝아지는 빛. 어둡지 않은 걸 보면 일단 한밤중은 절대 아니었다.
슬슬 거의 다 왔다 싶을 무렵.
아리엘이 내 손을 놓더니 서글픈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저는 여기까지예요. 더 갔다간 인간한테 들킬 수도 있으니까요.”
“고마워.”
“아니요. 오히려 저야말로 너무 감사해요. 레이븐님은 저희 메로우를 구해주신 영웅이신걸요.”
아리엘은 곧이어 품에서 그녀의 주먹보다 더 큰 반짝이는 진주를 꺼내 들었다.
“여기 천년 진주에요.”
“계속 네가 들고 있었던 거야?”
“네. 처음부터 돌려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그거야 예언 때문이니 지금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일반적인 진주보다 훨씬 거대한 크기. 천년 진주를 받아서 우선 품에 집어넣었다.
“이제 정말로 작별이네요.”
“그러게. 조심히 들어가. 고래 인형 잊어버리지 말고.”
“네···.”
미련이 뚝뚝 담겨있는 아리엘의 목소리.
여기서 괜히 질질 끌어봤자 그녀한테도 악영향만 줄 뿐이다. 곧바로 뒤돌아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 아리엘이 소리쳐 나를 붙잡아 세웠다.
“레이븐님!”
“왜 그래?”
“그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참 애매한 질문이었다. 다시 만나고 싶다 해봤자 우리 둘 다 상대방의 집 주소조차 제대로 모르는데 무슨 수로 만난다는 말인가?
기껏해야 서로의 이름밖에 모르는 하룻밤의 인연에 불과한데.
“아마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럼 그때까지···.”
당신을 기다릴게요.
뒤의 말은 바닷속에 물거품처럼 흩어졌으나 내 귓가에는 분명하게 닿았다.
그렇게 아리엘과의 작별 인사를 마치고 나는 육지를 향해 마저 나아갔다.
수면 위로 올라가 바라본 풍경엔 막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녘의 하늘이 보였다.
***
바닷가로 올라온 뒤엔 아카데미까지 미친 듯이 이동했다.
그 덕에 아슬아슬하게 시험 시간에 걸쳐서 겨우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겠지만 시험 준비는 하나도 못 한 상태였다.
처음 진주를 구하려고 마음먹은 시점부터 어느 정도 각오했던 일이긴 했으니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시험 준비는 둘째치고 밤을 꼴딱 새운 덕분에 잠도 한숨조차 자지 못했다는 거겠지.
불과 방금 직전까지 심해 속에서 대모험을 즐기고 온 상황.
당연히 이런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험에 멀쩡히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덕에 첫 교시는 대차게 말아먹고 말았다.
내가 제대로 문제를 풀긴 했는지 애초에 문제 내용이 뭐였는지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쉬는 시간이 되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으니 내 근처로 모이는 환상의 사인조.
“야. 진짜 솔직하게 말해. 늦잠 잔 거 아니지?”
“크로. 안색이 되게 안 좋아 보여.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최대한 태연하게 준비해둔 변명을 던졌다.
“사실 어제 시험공부 하겠다고 밤을 새웠다가···. 마지막에 못 참고 깜빡 졸아버린 거야.”
“에휴. 미련하게 그래서 지각한데다 컨디션 관리까지 실패하냐?”
“하하···.”
사실 시험공부 때문이라기엔 방금 과목의 성적은 바닥을 치고 말았지만 그걸 얘네가 당장 알 방법은 없으니 변명거리론 이만한 것도 없지.
그때 이쪽으로 다가온 샤론이 얼굴을 가까이 내밀더니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소금 냄새.”
움찔. 샤론이 내뱉은 단 네 글자에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최대한 티 나지 않도록 신경 쓰고 들어온 건데. 어떻게 보자마자 그걸 알아차리냐고.
얘는 진짜 천성부터 탐정인 게 분명하다.
“응? 소금 냄새?”
“킁. 킁킁. 그러고 보니까 약간 짠내가 나는 거 같기도 하고···.”
그 말을 들은 율리아와 레이첼 역시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위험하다. 서둘러 다른 변명을 생각해내지 않으면.
아니면 차라리 그냥 솔직하게 말할까?
진주를 찾으러 아일랜드 바다까지 갔다가 죽을 뻔했는데 인어가 살려줘서 고마워했지만 사실은 통수를 치려 했던 거고 여차여차 크라켄을 무찔러 인어들을 도와줬더니 알고 보니까 내가 만났던 인어가 바로 동화 속에나 나오는 인어 공주여서 나를 좋아한다는 걸 뿌리치고 돌아왔다.
심지어 이 모든 일이 하룻밤 만에 일어난 거다.
참 잘도 믿어주겠군.
절대 사실대로는 못 말한다. 그랬다간 미친놈 취급받을 게 분명해.
한참을 고민하다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그···. 소금이 암기력에 도움을 준다는 말이 있더라고.”
“엥?”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출처는?”
세 사람의 부담스러운 눈초리를 애써 피하며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도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냥 혹시나 해서 잠이나 깰 겸 해서 소금을 먹으면서 공부했던 것뿐이야. 딱히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고.”
“흠···.”
“크로. 소금은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아.”
다행히 그런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는지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참 선생님이 너 오면 교무실로 오래. 아마 출석 때문인가 봐.”
“으윽···. 알겠어.”
이 황금 같은 쉬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반을 나서서 교무실로 내려가던 도중.
“어이. 오랜만이다?”
또 이상한 녀석을 만나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해마가 끄는 마차…!!
꼭 한번 타보고 싶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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