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레이븐? 그 도둑놈?”
누가 봐도 호의적이진 않은 레이첼의 반응.
사실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긴 했다. 아무리 레이븐이 유명해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고 해도 근본이 도둑인 이상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샤론의 반응이 더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문제는 우리 팀의 조장인 율리아 역시 레이븐에 꽤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일까.
“음···. 의외로 괜찮을지도 몰라.”
“뭐? 진심이야? 걔가 멀린보다 낫다고?”
“아까 말했잖아. 멀린은 너무 대중적이고 뻔해서 겹칠 확률이 커. 반면에 괴도 레이븐은 최근에 가장 뜨거운 감자인데다 되게 신선하잖아.”
근거 자체야 꽤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지만. 역시 레이첼도 쉽게 납득할 수는 없던 모양이다.
“이상하잖아. 네 말대로면 결국 레이븐도 뜨거운 감자니까 다른 조랑 겹칠 수도 있다는 뜻 아니야?”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쉽사리 시도하긴 힘들겠지.”
“나처럼 생각한다는 게 무슨 뜻인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설마 율리아가 쉽게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완고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래. 솔직히 인정할게. 괴도 레이븐을 향한 시선은 안 좋아. 괜히 섣불리 이런 민감한 주제를 골랐다간 아예 망할 수도 있을 거야.”
“그걸 알면서도 하고 싶다는 거야? 율리아 너 설마 괴도 추종자냐?”
괴도 추종자.
신문이나 라디오 등의 언론에서 줄기차게 사용하는 표현이다.
쉽게 말해 괴도 레이븐의 범죄 행위를 옹호하며 찬양하는 세력들.
당연히 국가가 그걸 좋게 받아들일 리 만무하기에 공식 언론에서도 대놓고 추종자들을 깎아내리며 공개적으로 비방할 정도였다.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율리아가 머뭇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개인적인 은혜를 레이븐에게 받았으니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겠지. 그렇다고 그런 얘기를 자랑처럼 떠드는 것도 이상할 테고.
“오히려 반대야.”
그때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샤론이 입을 열었다.
레이첼이 눈가를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뭐? 반대라고?”
“레이븐을 발표 주제로 주장한 건 추종이 아니라 비판하기 위해서니까.”
여태껏 샤론의 입에서 나온 가장 긴 호흡의 문장이었다.
그 비판의 대상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건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레이븐의 행위는 잘못됐어. 그러니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해.”
“어···. 너 그런 타입이었냐?”
레이첼의 떨떠름한 반응.
솔직히 나도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여태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길래 매사에 시크한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정의감이 투철한 성격이었구나.
어쨌든 샤론의 개입으로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일단 레이첼은 굳이 더 반대하려는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반대로 율리아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게 많은 눈치였다.
“샤론. 구체적으로 어떻게 비판하고 싶다는 건지도 설명해줘.”
“발표 자체에 개인적인 감정을 담진 않아. 그냥 사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발표할 뿐이야.”
즉 판단은 듣는 사람들에게 맡기겠다는 건가.
레이첼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불평을 토로했다.
“왜 굳이 귀찮게 그러냐고. 아까 조장이 말한 것처럼 민감한 문제는 그냥 피하고 대충 다른 마법사로 가는 편이 훨씬 편하잖아.”
참 애매한 상황이네.
이건 레이첼이 조별 과제에 비협조적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자신의 의견을 합리적인 근거와 함께 제시하는 것일 뿐. 실제로 민감한 주제는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으니까.
“나는 찬성이야. 샤론의 말대로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만 발표하는 거라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
의외로 율리아가 찬성했다.
샤론의 비판이 목적이란 얘기를 듣고 반대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러면 지금까지 찬성 둘에 반대 하나네.”
“야 찐따. 너도 뭐라고 얘기 좀 해봐.”
“크로. 어떻게 생각해?”
세 여자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괴도라면 응당 하렘의 시선 정도는 견뎌야 하느니라.]
‘시끄러워요. 고민하는 데 방해되니까.’
[너무하구나···. 훌쩍.]
우는 척 연기하는 여신님을 내버려 두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안전하게 간다면 당연히 반대하는 편이 좋겠지.
괜히 괴도 레이븐이랑 엮였다가 잘못해서 정체를 들키면 큰일이니까.
다만 신경 쓰이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이 발표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장고의 고민 끝에 내가 내놓은 대답은···.
“나도 찬성이야.”
그렇게 우리 조의 발표 주제는 ‘괴도 레이븐’으로 결정되었다.
***
조별 과제의 꽃.
그것은 바로 역할 분담.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꽃은 시체꽃이다.
아무튼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해 일을 나눠야만 효율적인 진행이 이뤄지며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확률도 줄기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었다.
우선 발표는 율리아가 하기로 했다.
사실 가장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나머지 셋은 하나 같이 발표라는 중책을 맡기엔 결점이 너무나 많았으니까.
그리고 보고서 및 발표물 작성은 샤론이 맡았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조별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나 다름없는 역할이다.
그녀가 얘기한 대로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발표가 되어야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물론 레이첼과 율리아 역시 괴도 레이븐을 향한 주관이 너무 뚜렷해서 부적합했다.
남은 두 사람은 자료 수집 역할을 배정받았다.
딱히 이유는 없고 그냥 남은 게 이것뿐이었다.
“에휴. 내가 왜 너 같은 찐따랑 돌아다녀야 하는 건지.”
어이.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자료 수집이란 명목으로 수업이 끝났음에도 그녀와 붙어있어야 했다.
“야. 너는 좋아해야지. 나처럼 예쁜 미소녀랑 단둘이 데이트 하는 거잖아.”
“······.”
“이씨! 대답 안 해!?”
“잠깐 멍 때린 것뿐이야.”
얼굴이 예쁘면 뭐 하나.
이렇게 폭력적인 여자는 절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근데 경찰서는 왜 이리 멀어. 귀찮게.”
그렇다. 현재 우리는 경찰서로 향하고 있다.
당연히 자수하러 가는 건 아니고 조별 과제 자료 수집을 위해서였다.
생각하니까 참 어이없는 상황이네.
내가 범인이면서 경찰한테 직접 찾아가 범인의 정보를 물어보려는 거잖아.
만약 이런 상황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괴도다운 기개라고 칭찬하겠지.]
‘여신님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맞는 말인데 어감이 좀 그렇구나. 왠지 상처받을 것 같다.]
그래도 들킬 리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경찰 중에서 나랑 맞닥뜨린 사람이라 해봤자 하수도에서 만났던 멋있는 누님 정도가 전부인데.
그 누님도 내 뒷모습만 봤을 뿐 조명을 깨트리며 얼굴을 확인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오. 드디어 도착했네.”
동네 파출소라기엔 상당한 크기의 건물.
그야 아카데미가 브리타니아의 수도에 있으니까 당연한 건가.
안으로 들어가자 경찰들이 우리의 방문 목적을 물어왔다.
우리는 아카데미 학생증을 보여주며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인터뷰? 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향하는 경찰관.
레이첼과 단둘만 남게 되자마자 소곤소곤 얘기를 나눴다.
“뭐야. 저 짜증 나는 표정은.”
“귀찮은가 보지. 이런 인터뷰 요청이 한두 번도 아닐 테고.”
최근 가장 핫한 괴도 레이븐에 관한 인터뷰를 제안한 기자가 얼마나 많을까?
아마 우리가 평범한 학생들이었다면 그냥 돌려보냈을 확률이 99%처럼 보였다.
“학생증 보여주니까 표정 바뀌는 거 봤냐?”
“그야 아카데미 학생증이니까.”
한마디로 딱 잘라 설명하긴 힘들지만 아카데미의 위상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그것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간에 말이다.
사실 일반인이 마법사를 바라보는 시선엔 동경만이 있지는 않았다.
낯설고 신비스러운 존재를 향한 두려움 꺼림칙함. 그런 부정적인 시선을 아카데미 역시 그대로 이어받았다.
자리로 돌아온 경찰관이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했다.
“짧게 한다면 가능할 것 같다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감사합니다.”
우리는 안내를 받아 경찰서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좁은 사무실 같아 보이는 방에 한 여자가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구나.]
여신님의 말대로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저번에 하수도에서 마주쳤던 무서운 형사 누님이다.
‘밝은 데서 보니까 더 예쁘네요.’
검은 단발머리에 눈물점의 성숙한 여인.
약간 인상이 딱딱한 것만 제외하면 상당한 미모였다.
[목표로 삼은 것이냐?]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라니까요.’
나는 그렇게 가벼운 남자가 아니라고.
“너희가 인터뷰를 요청한 아카데미 학생들이구나.”
“네.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아. 너희도 귀찮게 질질 끄는 건 싫겠지. 나도 얼른 끝내고 쉬고 싶거든.”
딱 생긴 것처럼 시원하고 거친 성격인 모양이다.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던 도중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그걸 빤히 바라보고 있자 시선을 눈치챈 건지 그녀가 설명했다.
“아 그건 악어가죽이야.”
“와···.”
세상에. 그 괴물을 잡았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악어는 하늘나라로 가버렸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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