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2
잠시 샤론을 빤히 바라보았다.
오묘한 무표정. 역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분명 귓속말로 작게 얘기한 거 같은데 그걸 전부 들었다고?
아니 엿들었으면 그냥 조용히 넘어가던가. 아니면 차라리 처음부터 궁금하다고 솔직하게 말한 다음 물어보던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슬쩍 떠본 뒤에 뒤늦게 언급하다니.
굉장히 악질적이잖아. 모양새가 약점 잡혀서 협박이라도 당하는 것 같다고.
“···들었어?”
“우연히.”
내가 한숨을 내쉬자 샤론은 태평하게 얘기했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
에휴. 그렇게 말한다고 진짜 괜찮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이미 네가 입 밖으로 언급해버린 시점에서 잔뜩 불편해진 뒤라고.
“그냥 율리아가 고민이 있다 해서···. 절대 그런 건 아니니까.”
“그런 게 뭔데?”
걸음을 멈추고 샤론을 바라보자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건가?
내 입으로 설명하기는 부끄럽지만 솔직히 한창 청춘인 남녀가 단둘이 만나기로 비밀스럽게 약속한다면 99% 그런 이유 때문이잖아. 물론 나랑 율리아는 아니지만.
“그···. 있잖아. 그런 사이가 아니란 거지.”
“아 이해했어.”
다행히 겨우 알아들은 건지 고개를 끄덕이는 샤론.
“나도 알아. 네가 율리아랑 사귀지 않는다는 건.”
“···그래. 안다니까 다행이네.”
그런데 너무 단호하게 말하는 거 아니야?
왜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 건데. 물론 아니긴 하지만 막말로 내가 율리아랑 사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 가능성이 0%인 건 아니잖아.
설마 내가 그렇게까지 율리아랑 안 어울린다는 건가···?
물론 나도 사귈 마음은 없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참 구차하구나.]
‘···구차해서 죄송하게 됐네요.’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너는 내 가장 소중한 아이이니 배포를 더 크게 가지거라. 세상의 모든 여자를 함락시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저는 그런 난봉꾼이 될 생각은 절대 없거든요?’
[후후. 누구나 처음에는 그렇게들 말하지.]
이 여신은 진짜 왜 저런 쪽에 꽂힌 건지 사연이 궁금해질 지경이다.
자기가 사귀는 것도 아니고 남을 여러 명과 사귀게 만드는 패티시라도 존재하는 건가?
아무튼 무사히 오해가 풀리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함께 아카데미를 나서게 되었다.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했다.
그러고 보니까 샤론이랑 단둘이 있게 된 건 꽤 오랜만인 느낌이네.
제일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장학금 심사받을 때였던가?
참고로 샤론의 장학금 심사는 탈락하였다.
그런데 이 심사 과정이 참 애매했던 게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보 부족이 원인이었다.
샤론 혼시아. 그녀의 풀네임에 따라 혼시아라는 가문을 조사해보았으나 알 수 있는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추가적인 서류를 요구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선 혼시아 가문의 소득 분위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우편으로 돌아온 그녀의 답장은 완곡한 거절. 결국 정보 부족이란 사유로 장학금 심사에서 최종 탈락해버린 것이다.
‘대체 정체가 뭐지···?’
까면 깔수록 수상한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단순히 탐정 셜록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숨기는 점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할 말이라도 있어?”
“어 어?”
내 시선을 눈치챈 건지 덤덤하게 물어오는 샤론.
잠시 당황하다 허겁지겁 떠오르는 화제를 던졌다.
“내일 협동 시험 말이야. 정확히 어떤 내용일까?”
“글쎄. 매번 바꿔서 출제한다니까 당일이 돼야 알 수 있겠지.”
“하하 역시 그렇겠지···?”
다행이다. 일단 무사히 잘 넘긴 것 같네.
“난 여기로 가봐야 해서.”
갈림길이 나오자 샤론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잘 가.”
“응. 너도.”
담백하다 싶을 만큼의 간결한 인사와 함께 우리는 서로 헤어졌다.
혼자 집으로 향하면서도 계속 샤론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결국 내가 이렇게 관심을 두는 이유라고 한다면 샤론의 정체 때문이겠지.
여러모로 내 괴도 활동에 방해가 되는 동시에 흥미진진한 낭만을 챙겨주는 탐정 셜록.
그 정체를 알아내고 싶어서 가장 유력한 후보인 샤론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녀가 정말 셜록이 맞다면?
그걸 확인한 다음에 나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일단 처리한다는 식의 섬뜩한 계획은 절대 아니다.
아까도 말했듯 셜록은 단순한 방해꾼을 넘어서 없으면 아쉬울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낭만적인 라이벌이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마땅히 떠오르질 않았다.
그냥 지금 당장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정말로 샤론이 셜록이 맞는지를.
아무리 유력한 후보라고는 해도 아직 확정 지을 만큼의 증거가 나온 건 아니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까 최근에 후보가 한 명 늘었었지.’
이름은 줄리엣.
수상할 정도로 샤론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 심지어 외모마저 쌍둥이가 아닐까 싶을 만큼 닮았다.
그 여자도 한번 제대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데. 아직 그때 이후로는 별다른 접점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확인이라.
결국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정보였다.
샤론이든 줄리엣이든 간에 아직까진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그렇다고 내가 수업도 빠지고서 하루종일 정보 캐는 데만 매진할 수도 없고.
아카데미 괴도 재단 이사 등등. 할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시간을 내기도 벅찼다.
게다가 아직은 정보 수집력도 한참 모자란 수준이니까.
혼자서 하기엔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았다.
···잠깐만. 굳이 혼자 할 필요가 있나?
갑자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서 희미하게 떠오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끙끙댔다.
지금 내게 부족한 걸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시간이다.
그럼 반대로 뒤집어서 내가 넘치도록 가진 건 뭘까?
답은 간단하다. 바로 돈이다.
‘왜 여태껏 나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하려 했지?’
게다가 지금 내게는 아르센 뤼팽이란 번듯한 신분도 존재한다.
수상할 정도로 돈이 넘치는 재단의 대표 이사. 지금까지 그 신분을 내가 너무 안 써먹고 있던 게 아닐까?
좋아. 일단 집에 들어가서 더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보자.
***
다음 날 아침.
화창한 햇살을 받으니 나도 모르게 하품이 튀어나왔다.
“뭐냐? 어젯밤에 뭐 했길래 그렇게 피곤해하냐?”
“아니 그냥···.”
“흠. 오늘은 실기라서 따로 공부할 것도 없을 텐데. 설마 어제도 소금 처먹으면서 밤샌 거냐?”
순간 무슨 소린가 했더니 엊그제 대충 둘러댔던 변명을 얘기하는 듯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문득 떠오르는 그날 밤의 동화 같은 이야기. 아리엘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잠을 설쳐서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거야.”
“그게 문제라고. 너 나랑 같은 팀인 거 잊은 건 아니지? 왜 컨디션 조절 하나 똑바로 못하냐.”
“미안하게 됐네. 걸림돌은 되지 않게 노력해주마.”
옆자리의 레이첼과 시답잖은 잡담을 한동안 떠들고 있으니 곧 선생님이 앞문으로 들어오며 조례를 시작하셨다.
“오늘은 다들 늦지 않게 왔네. 명단도 제때 제출한 거 같고. 그럼 차례 될 때까지 대기했다가 알아서 이동하면 된다. 다들 수고하고.”
언제 들어도 참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조례였다.
오늘의 협동 시험은 아카데미에서 따로 준비한 시험장에서 치러진다.
시험 내용은 매번 달라지는데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면 채점에서의 최우선 요소가 바로 협동심 즉 팀플레이라는 사실이다.
즉 무슨 시험이든 간에 자신의 개인적 이득을 위해 팀에 위험을 가져다주는 행동은 매우 심각한 마이너스 요소라는 것.
반대로 눈에 띄지 않는 플레이라도 그것이 팀을 받쳐주고 희생하는 행동이라면 플러스로 작용한다.
물론 이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무조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천성이 팀플레이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예를 들자면 그레인저라던가. 진 그레인저라던가. 싸가지 없는 그레인저라던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녀석도 만만치 않으려나.
레이첼의 성격이 나쁘다고 폄훼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협동심이나 팀플레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뿐.
“뭘 꼬라보냐?”
“···내가 언제.”
음. 생각해 보니까 그냥 성격이 나쁜 걸지도.
“다들 좋은 아침! 컨디션은 좀 어때?”
조례가 끝나고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대기하는 시간. 율리아가 자연스럽게 우리 자리로 다가왔다.
“어? 크로 안색이 안 좋아 보여.”
“하하···.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괜찮긴 개뿔. 다크서클이 줄넘기해도 될 만큼 내려왔구만.”
그야 어쩔 수 없었다. 어제는 계획을 세운다고 밤을 새워버렸으니까.
나도 오늘 있을 시험을 위해 컨디션을 관리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침대에 누워도 머릿속이 계획들로 가득 차는 걸 어떡하냐고.
그렇게 한 의미는 충분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일단 지금은 곧 있을 시험에 집중해야지.
“다음 차례 대기해주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의 차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날씨가 엄청 추운 거에용
다들 몸조심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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