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7
마침내 중간시험이 끝났다.
일주일 동안 머리를 싸매던 학생들은 성적과 상관없이 오늘만큼은 편하게 쉴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기에 남아있는 걸까.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조금만 참아.”
상담실 앞의 복도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나와 율리아. 그리고 레이첼까지.
현재 저 안에서는 샤론이 담당 시험관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차례로 한 명씩 전부 말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협동 시험에서 있었던 소란 때문이었다. 간단한 진술 조사라고 하는데 샤론이 안에 들어간 지 5분이 지나서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꽤 길어질 듯싶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남아서 주절주절 떠들어야 하냐고.”
지금만큼은 레이첼의 불평에 깊이 동감했다. 만약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운 나쁘게 그레인저와 같은 타임에 시험을 치렀다는 것뿐이니까.
물론 아카데미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그만큼이나 이번 사건의 여파가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험 과정은 부정행위를 염려하여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은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나갈 확률이 높다.
아마 지금쯤 아카데미 측은 상당히 골치가 아프겠지. 다른 건 전부 제쳐두고서 마지막에 전투 중단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무시당해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그건 그레인저의 의지는 아니었다. 녀석은 드래곤에 집어삼켜져 이성을 잃은 상태였으니까. 전투 중단 명령이 무시된 것도 텔레포트 마법이 깨진 것 역시 드래곤의 권능 탓이었다.
그렇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땐 시험 규칙을 어긴 부정행위임은 사실이다. 그러니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무엇보다 드래곤을 소환한 행위 자체는 그레인저 본인의 선택이 맞으니까.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줄 위험이 있는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징계감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다음. 크로 모리스 학생.”
샤론이 상담실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안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가며 샤론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안에서 뭐래?”
“그냥 시험장에서 일 물어보던데.”
“알았어.”
대충 예상하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양이다. 긴장을 풀고 안으로 들어가니 1학년 부장 선생님이 사근사근한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자리에 앉으렴.”
“네.”
이렇게 일대일로 마주 보고 얘기하려니까 조금 부담스럽네. 약간 빳빳한 태도로 먼저 얘기를 꺼내길 기다리자 선생님은 테이블에 놓인 종이를 뒤적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떤 내용을 물어볼지 대충 예상했니?”
“네. 어느 정도는요.”
“일단 너희 팀은 너무나 잘해줬어. 정확히 얘기해줄 수는 없어도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될 거야.”
아마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던져주는 금칠이겠지만 그래도 듣기에 좋은 말이었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너희한테 문제는 없어. 오히려 따지자면 피해자인 셈이지. 그래도 현장에 있던 사람은 너희 다섯 명뿐이니 우리가 섣불리 잘못 판단하지 않도록 신중하기 위해서 너희를 부른 거야.”
“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좋아. 이해해준다니 다행이네.”
선생님이 말한 대로 우리는 잘못한 것이 전혀 없는 떳떳한 입장이다. 그러니까 거리낄 것도 없이 물어보는 내용에 사실대로 대답해준 다음에 돌아가면 끝. 다른 애들은 전부 집에 갔는데 우리만 남게 되니 귀찮을 뿐이지 문제 될 건 없었다.
“진 그레인저 학생이 마지막 소환수를 소환했을 때 그 공격을 막아내고 결정타를 날린 사람이 너였다고 들었는데.”
“음···. 맞는 것 같아요.”
“확실하게 대답해야 해. 네 마법으로 소환수를 쓰러트렸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네. 정확히는 제 마법으로 브레스의 경로를 틀었던 거지만요.”
아직도 구멍 나버린 천장으로 보이던 푸른 하늘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런 결과는 의도적으로 노린 거니? 아니면 우연의 일치니?”
“약간 도박수긴 했죠. 그런데 브레스를 모을 때 마력이 워낙 솟구치길래 역으로 이용하려고는 했어요.”
“의도됐다는 뜻이구나. 그럼 가슴팍을 노린 것도 마찬가지니?”
“그건···.”
잠시 멈칫한 채 창밖으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네. 마찬가지예요.”
“알았어. 그럼···.”
그 뒤로도 몇 차례의 질문이 이어졌다. 대부분 마지막 전투에서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고 지나칠 법한 세심한 부분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대략 10분 정도 질문에 대답한 뒤에야 겨우 내 차례가 끝나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음. 율리아 그레이스 학생.”
“네.”
율리아와 교대하며 상담실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레이첼의 투덜거림을 들어주었다.
“아니 왜 내가 마지막인데! 첫 빠따로 하고 바로 돌아가려 했더니!”
“네가 우리 중에서 제일 전투 중요도가 높으니까 그런 거겠지.”
“웃기고 있네. 마지막에는 딱히 한 것도 없구만.”
틀린 말은 아니다. 레이첼의 활약은 어디까지나 드래곤이 나오기 전까지로 집중되어 있으니까.
생명의 위험까지 치달았던 마지막 상황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상을 선보인 인물은 누가 뭐래도 샤론이었다.
만약 그녀가 곧바로 드래곤의 약점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지금 상담실이 아니라 수술실에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전부 샤론의 마법 덕분이었다.
나는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던 샤론을 빤히 쳐다보았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며 흐지부지 일단 넘겨버리고 말았으나 그녀의 마법을 처음 봤을 때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의문.
여태까지는 심증만 있었으나 오늘 마침내 중요한 물증 하나를 찾아냈다.
샤론이 셜록일 가능성이 한층 더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확인해야 할까. 고작 증거 하나 발견했다고 다짜고짜 ‘네가 셜록이지!?’ 하고 물어봤자 순순히 인정할 리 만무하다. 아예 오리발 내밀지도 못하게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할 텐데.
일단 내 머릿속에서 ‘샤론=셜록’은 거의 확정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틀렸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진 않아도 매우 희박할 것이다.
너무 성급하게 알아내려 하지 말고 천천히 단계를 밟아 나가보자. 때마침 어제 내가 구상했던 계획과 접목해본다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한번 헛기침한 뒤에 조심스레 그녀를 불러보았다.
“샤론.”
“얘기해.”
“오늘 고생했어.”
대화의 물꼬를 틀기 위해 던진 인사에 격렬히 반응한 건 옆에 있던 레이첼이었다.
“야! 왜 바로 옆에 있던 나는 무시하고 쟤한테만 신경 써주냐? 고생은 내가 다 했는데.”
참 애같이도 군다. 헛웃음을 흘리면서 투정을 받아주었다.
“그래. 네가 제일 수고했지.”
“이건 뭐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됐거든?”
해달라고 해서 원하는 대로 해줬더니 반응하고는.
대놓고 한숨을 푹 내쉬자 자기도 찔리는지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콕콕 쑤셔댔다.
“야. 하지 마.”
“흥.”
샤론이랑 얘기를 나눠야 하는데 자꾸 옆에서 방해가 들어온다. 레이첼이 이렇게 유치하게 시비를 걸 때 제일 좋은 방법은 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억지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샐쭉한 표정으로 흘겨보며 투덜거리는 레이첼.
“치. 짜증 나.”
“짜증은 내가 나야 정상 아닐까?”
“시끄러워. 바보.”
진지하게 녀석의 정신 연령을 검사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엔 딱 초등학생 정도일 거 같은데. 만약 시커먼 남정네가 이랬다면 진심으로 혐오했겠지만 그나마 레이첼이라 귀여움과 짜증 사이에 턱걸이하는 거다.
“다음. 레이첼 스칼렛 학생.”
“에에.”
대답인지 헷갈리는 흐느적거림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이첼.
이제야 방해꾼이 사라졌구나. 이 틈에 얼른 샤론에게 물어봐야겠다.
“샤론.”
“응.”
“그 있잖아. 아까 시험장에서···.”
그때 상담실에서 나온 율리아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둘이 무슨 얘기해?”
“아 그냥 시험 관련으로 궁금한 게 있어서.”
“진짜? 뭐가 궁금한데? 내가 다 대답해줄게!”
아니 샤론한테 궁금한 거니까 넌 대답 못 할 거야.
그나저나 시험이 끝나서 그런지 율리아의 텐션이 상당히 높다. 물어보지도 않은 내용을 마구 조잘거리면서 중간에 끼어들어 버리니 어떤 의미로는 레이첼보다 더한 방해꾼이 등장해버렸다.
“이번 필기시험에서 무슨 과목이 제일 어려웠어? 나는 둘째 날에 봤던 ‘생활 마법의 응용’ 과목이···.”
재잘재잘. 쉬지 않고 옆에서 삐약거리는 병아리 같다. 그것도 상당히 시끄러운 병아리.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며 맞장구쳐주는 게 오히려 문제인가? 나도 샤론처럼 그냥 시크하게 무시해버려야 하는 건가?
진지하게 고민하던 와중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서 율리아가 내게 갑자기 귓속말을 시전했다.
“크로. 오늘 약속 안 잊었지?”
움찔.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
뭐지? 내 착각인가?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 반응 없던 샤론이 이쪽으로 살짝 눈길을 줬던 거 같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귓속말하면 귀가 간지러운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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