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4
언뜻 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줄리엣의 반응.
하지만 유심히 관찰하면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레이첼이 처음 그녀를 보고 샤론이라고 불렀을 때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정하며 말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는 게 정상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생판 남의 이름을 듣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과 닮은 사람이라 착각했다고 결론 내렸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빨랐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유달리 판단력이 빠르거나 감정을 잘 숨기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다음에 줄리엣이 보여준 반응은 분명 잘못되었다.
레이첼이 뒤이어 샤론을 모르냐고 물었을 때 잠깐이나마 표정이 살짝 흔들렸으니까.
아예 처음부터 흔들렸으면 모를까 잘 숨기다가 나중에 드러나니 더 의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줄리엣을 붙잡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금 잡아봤자 아니라고 잡아뗄 게 분명하니까.
그녀가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와. 사람이 저렇게 닮을 수 있나?”
“왜? 네가 아는 사람이랑 닮았어?”
“응. 샤론이라고 같은 반 애인데 생긴 건 그렇다 치고 분위기가 너무 똑같은데.”
과연 샤론이 줄리엣일까?
글쎄. 아직 확신하기엔 이르지만 솔직히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굳이 여러 신분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나처럼 괴도가 아닌 이상에야 왜 힘들게 본인의 정체까지 숨기며 여러 삶을 살겠는가.
물론 확인해볼 필요는 있다. 안 그래도 줄리엣을 직원으로 고용하며 본격적으로 뒤를 조사해볼 생각이었으니 잘 됐다.
굳이 어렵게 갈 필요도 없이 아카데미 수업 시간에 줄리엣의 존재를 확인만 하면 된다. 둘이 동일 인물이라면 샤론이 수업받는 동시에 줄리엣이 존재할 수는 없을 테니까.
“아 그러고 보니까 뤼팽 씨도 제 친구 얼굴 보셨잖아요. 전에 장학금 심사받으러 왔다고 들었는데.”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랬었죠.”
“둘이 진짜 닮지 않았어요?”
“저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자매라던가 가족 사이인 거 아니에요?”
“제가 알기로 줄리엣 양에게는 가족이 따로 없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래. 내가 중점을 두는 방향도 둘이 동일 인물이 아니라 혈연관계인 게 아닐까 하는 쪽이었다.
그냥 우연이라기엔 소름 돋을 만큼 분위기가 비슷한 두 사람.
줄리엣은 고아 출신이며 샤론은 자신의 가족에 관한 얘기를 꺼낸 적이 한 번도 없다.
복잡한 사연으로 어린 시절 헤어지게 된 자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줄리엣의 반응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평정을 잘 유지하던 그녀가 흔들린 결정적인 순간.
바로 샤론의 이름을 들었을 때. 더 정확히는 샤론의 풀네임 즉 혼시아란 성이 나오자마자였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그레이스와 달리 혼시아란 성은 원작에서도 등장하지 않은 낯선 가문이었으니까. 여태껏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조사할 수야 있었지만 친구의 뒤를 캔다는 사실이 어딘가 찝찝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쯤 되면 더는 그냥 넘길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샤론과의 ‘정체 밝히기 대결’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
***
다음 날이 되었다.
어제는 레이첼 자매에게 사무실을 적당히 구경시켜주고 돌려보냈다.
괴도 추종자 모임은 가지 않았다. 라파노 저택에 침입했다 들킬 뻔했던 것 때문에 잔뜩 경계하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당분간은 몸을 사리는 게 안전할 테니까.
어차피 간단히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건 확실하니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할 생각이다.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할지라도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처럼 샤론의 문제도 같이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이걸 해결이라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예상했던 대로 레이첼은 어제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진짜? 그럼 언니분 다시 복직한 거야? 정말 잘 됐다!”
“그러게. 솔직히 얘기 나오자마자 해결되니까 좀 떨떠름하긴 한데.”
순수하게 기뻐해 주는 율리아와 달리 샤론은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그러더니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정말로 괴도가 도와준 거 아니야?”
“엉? 뭔 소리냐. 재단 이사님이 고용한 거라니까? 얘기할 때 졸았냐?”
“혹시 모르지. 둘이 관련되어있다거나.”
저렇게 대놓고 언급할 줄은 몰랐는데. 얘기하는 것만 들으면 내가 괴도라고 확신하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표정을 보면 별생각 없이 툭 던진 말 같기도 하고.
그 말에 대답한 건 율리아였다. 단호하게 손가락을 가로저으며 반박 주장을 펼치는 그녀.
“그건 말이 안 돼. 레이첼이 괴도한테 직접 부탁한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한 이야기였잖아. 만에 하나 이사님이 레이븐이랑 관련이 있다 해도 어떻게 알고 일자리를 주선해주겠어?”
논리적인 주장에 샤론은 고개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우리 얘기를 엿들었을 수도 있지.”
“그 말은 우리 반에 레이븐이 있다는 거야?”
“뭐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잖아.”
이쯤 되면 거의 알면서 즐기는 수준 아닌가 싶다.
물론 역으로 생각해 보면 아직 그녀도 확신이 없으니 일부러 떠보는 중인 걸지도.
만약 내가 괴도라고 확정 지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언급하며 경계심을 키울 이유도 없을 테니까.
때마침 마주치는 우리의 시선. 여전히 뭘 생각하는지 읽기 힘든 오묘한 표정의 샤론.
그렇게 한동안 미묘한 대치가 이어지던 가운데 레이첼이 급작스럽게 끼어들었다.
“아 맞다! 어제 샤론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 봤음.”
“똑같이 생긴 사람?”
“언니 일하게 된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거기 직원이 샤론이랑 겁나 닮았더라고. 줄리엣이라고 하던데. 혹시 가족이야?”
샤론은 몇 차례 눈을 깜빡이다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 일련의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에 연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샤론은 진짜 줄리엣이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흠. 그럼 그냥 닮은 사람인가? 진짜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보고 싶어. 샤론이랑 똑 닮은 사람이라니!”
“약간 뭐라 해야 하지. 약간 더 성숙한 느낌? 몇 년 지난 얼음공주라 해야 하나. 그래서 당연히 언니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자매라면 줄리엣이 언니 쪽일 확률이 높겠지.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그녀의 나이가 샤론보다 2살 더 많았으니까.
“크로도 봤어?”
갑자기 내게 돌아오는 화살.
율리아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뤼팽이면 몰라도 크로 모리스인 나는 줄리엣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상태였다.
“아니. 나도 궁금하네.”
“구경할 방법 없나? 나도 장학금 지원해볼까?”
그 말을 들은 레이첼이 황당한 표정으로 율리아를 바라보았다.
“야. 넌 장학금을 받을 게 아니라 남들한테 줘야 할 입장이잖아.”
“누가 받는대? 그냥 지원만 하면서 샤론네 언니 보고 싶다는 거지.”
“내 언니 아니야.”
샤론의 반박은 가뿐하게 씹혀버렸다. 이미 샤론의 언니로 확정 나버린 줄리엣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떠드는 두 사람.
“최근에 들어온 거겠지. 저번에 갔을 땐 아무도 없었거든.”
“진짜 말 나온 김에 한번 가볼까? 크로도 같이 갈래?”
“응? 나?”
멋쩍게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잔뜩 당황해버렸다.
나와 뤼팽이 동시에 한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
저번에 샤론이 찾아왔을 때 트릭으로 속여넘기긴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사무실에 줄리엣이라는 변수가 추가되었으니 말이다.
저번과 똑같은 방식을 사용해선 줄리엣의 행동에 전부 대응할 수가 없다. 단순 고객이 아니라 직장 동료이니만큼 훨씬 폭넓은 커뮤니케이션을 나눠야 하니까.
괜히 여기서 섣불리 승낙했다간 망할 수도 있다. 차라리 조금 의심을 받더라도 안전하게 적당한 핑계를 대고 불참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미안. 내가 오늘은 볼일이 있어서···.”
“네가? 우리 말고 친구도 없는 주제에 무슨 볼일?”
“레이첼.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건 실례되는 일이야.”
곤란한 질문을 대신 막아준 율리아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주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여자들끼리 갈게!”
“나도 오늘은 힘들 거 같아.”
“어? 샤론까지?”
“응. 나도 일이 있어서.”
“그래···?”
샤론의 불참 선언에 잠시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던 레이첼이 눈가를 가늘게 뜨며 의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뭔가 이상한데. 전에도 너희 둘만 이렇게 빠진 적 있지 않았냐?”
“그 그랬던가···?”
“분명 있었어. 조별 과제 때문에 미술관 갈 때 둘이 동시에 빠졌었잖아!”
쓸데없이 기억력도 좋네. 얘기를 듣고 율리아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래. 그런 적이 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괴도라서 당연히 빠져야 했었고 샤론도 셜록이면 빠지는 게 당연한 거잖아.
문제는 그렇게 곧이곧대로 해명할 수가 없으니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너희 설마···. 둘이 사귀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얼레리꼴레리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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