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5
얼얼했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최근 들어 괴도 활동이 뜸해졌다는 건 인식하고 있었다. 워낙 여러 일이 겹치며 바쁘게 지내느라 활동을 재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간이 나질 않았던 탓이다.
그나마 바쁜 중간시험 일정 속에서 밤까지 새워가며 괴도로 활동을 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바닷속에서 펼쳐진 사건이다 보니 일반 사람들은 알 방법이 없었다.
즉 괴도 레이븐의 공식적인 활동은 궁전 습격에서 멈춰있는 것이다.
벌써 그것도 한 달 가까이 되어가니 상당히 오래 쉬었다고 봐야겠지.
물론 매일같이 밤마다 등장하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만큼 오래 쉬는 건 위험하다.
하물며 잠깐의 휴식기가 설마 이렇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가장 착잡한 사실은 에반의 지적에 뭐라 반박할 변명조차 없다는 점이다.
장본인인 나야 그냥 다른 일이 바빠서 그런 거라며 넘겼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내 잠적이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사실 레이븐의 본업은 괴도가 아니다. 그는 드라칸 소속이며 괴도는 단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눈속임 신분에 불과했다. 그래서 목표였던 나팔을 훔치자마자 잠적해버렸다.’
집행자가 이렇게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는 공교롭게 맞아떨어진 우연이라 할지라도 이건 엄연히 내 잘못이었다.
“······.”
입만 살짝 벙긋거리다 결국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날의 얘기는 흐지부지 끝이 났다. 결과적으로 궁금했던 뒷사정을 어느 정도 듣긴 했지만 속 시원히 풀리긴커녕 마음만 더 무거워지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문득 얼마 전 여신님이 내게 해줬던 얘기가 떠올랐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기억하란 말이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목표를 잊지 말거라.]
마치 귓가에 들려오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
아니 진짜 여신님이 기억 속과 똑같은 말을 반복한 것이었다.
“···남의 마음 함부로 염탐하지 마세요.”
[후후. 뭐가 그리 고민이 되길래 상념에 잠겨있는 것이냐?]
“그냥요. 제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건가 갑자기 의문이 들어서요.”
지난번 여신님과 얘기를 나누고 괴도 활동에 전념해야겠다며 의지를 불태웠었다.
바로 그날 밤 기차를 타고 브리튼의 반대편까지 횡단해 바닷속을 탐험하며 천년 진주를 찾았고.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쏟아지는 문제와 사건에 휩쓸려 결국 또다시 괴도 활동을 뒷전으로 미루고 말았다.
어차피 나중에 할 수 있으니까. 굳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 눈앞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한 다음에 천천히 하면 되겠지.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하며 시간을 보내니 지금이 되었다.
마치 업보를 청산하듯 뒤로 미뤘던 문제가 현재 다시 돌아와 묵직하게 명치에 꽂혔다.
[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거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랬다가 이번처럼 문제라도 터지면요?”
[그걸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 아니겠느냐?]
참 태평하다 싶을 만큼 낙관적인 말이었다.
어찌 보면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의 시선에선 인간의 생로병사가 별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걸지도.
[저번에도 말했듯이 너는 가끔 강박에 얽매어있는 것 같구나. 가장 중요한 목표를 잊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무슨 뜻인지 알아요. 앞으로는 다른 일을 줄이고 괴도 활동에 집중할게요.”
그래. 내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괴도로서 보석을 모으는 것이다.
다른 일들은 결국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괴도를 뒷전에 미루다니. 여신님은 그동안 옆에서 내 허튼짓을 지켜만 보면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아이야.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란다.]
“네? 그러면요?”
[흠. 비밀이다. 직접 알아내 보려무나.]
장난기가 넘치는 여신님의 말투에 한숨을 내쉬었다.
돌이켜보면 여신님과 함께한 시간도 상당히 쌓였는데 여전히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취향이 상당히 독특하고 악질적이라는 것 정도.
아무튼 그녀는 자신이 직접 밝힐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 내가 직접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괴도 활동은 다시 시작할 거예요.”
[일일이 내 의견을 구할 필요 없다. 네가 알아서 하면 되지 않느냐.]
“정말요? 그럼 제가 이대로 그냥 은퇴해도 안 말릴 거예요? 보석 찾아야 하잖아요?”
애초에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여신님의 제안 때문이었다. 자신의 힘이 담긴 보석을 가져와 주면 힘을 빌려주고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제안.
사실 딱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마법은 한번 써 보고 싶었던 데다 괴도라는 낭만 넘치는 직업 자체가 재밌어 보였기에 수락했었다.
그렇게 이 세계에 빙의되어 여신님과 함께 괴도로 활동해온 지도 어느덧 시간이 꽤 지났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힘들었거나 목숨이 위험한 적도 있었지만 그만큼 재밌고 두근거렸던 적도 많았다.
그 모든 시간은 전부 여신님의 능력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만약 여기서 이대로 내가 은퇴해버린다면 지금껏 해왔던 여정이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여신님은 결사반대하며 막아야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네가 그러고 싶다면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느냐?]
“···정말로요? 제가 은퇴하면 여신님은 어쩌려고요?”
[그걸 몰라서 묻는 것이냐? 여태까지랑 똑같이 네 옆에서 연애질이나 구경하고 있겠지.]
“······.”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신님은 자신의 잃어버린 힘을 되찾는 게 목표 아니었던가?
그래서 지금처럼 반지 속에 갇혀서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나를 괴도로 만들어준 거 아니었나?
[아까 처음에 내가 뭐라 그랬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요?”
[그래.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다. 네가 지금 순간을 최대한 즐겼으면 한다. 그거면 된다.]
여전히 이해는 안 되지만 여신님의 진심이 담긴 마음이 느껴져 꾹 입을 다물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로 캄캄한 천장을 올려다보다 손을 뻗어 올렸다.
내 손에서 반짝거리는 까마귀 반지를 멍하니 바라봤다.
“···고마워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
“하아···.”
한 여인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뿜은 담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생각에 잠기는 그녀.
곧이어 여인의 앞에 다가온 어리바리한 인상의 경찰이 깍듯하게 경례하며 외쳤다.
“가젯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일찍 좀 다녀라.”
“하하···.”
친근하게 인사를 건넨 부하 경찰은 약간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팀장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안 좋은 일? 그런 거 없는데.”
“요즘 들어 묘하게 가라앉으신 느낌이라서···.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그런가? 부하의 얘기를 듣고 자신의 모습을 점검해본 가젯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가라앉을 이유가 없긴 하죠. 팀장님 골치 썩히던 녀석이 사라졌지 않습니까.”
“흠. 그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녀석은 누구지?”
“에이. 농담도 참!”
진짜 농담이라고 믿는 듯했다. 본인이 골치를 안 썩인다고 확신하는 모양새에 가젯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아니라 괴도 녀석 말하는 거잖습니까.”
“아···. 그 녀석 말이지.”
그녀는 괴도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눈가를 좁히며 사색에 잠겼다.
그런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부하는 태평하게 수다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사라지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대로 영영 안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벌써 한 달쯤 됐나요?”
“···아마 그럴 거다.”
부하의 말대로였다. 괴도가 처음 등장하면서부터 줄곧 수사를 전담했던 가젯 팀은 괴도가 잠적한 뒤로부터 굉장히 여유로우며 한적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별 의미도 없는 정보 수집 정도가 전부. 다른 팀에서 지원 요청이 올 때가 아니면 하루종일 멍하니 자리에 앉아 대기하는 경우도 흔했다.
팀원들은 이런 한가로운 휴식기를 매우 반겼지만 막상 가젯은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없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처럼 밖에 나와 멍하니 담배나 태우는 시간이 길어져 버렸다.
마치 지난날들이 한순간의 꿈처럼 느껴졌다.
괴도를 쫓으며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가 아스라이 스쳐 지나갔다.
탐정 셜록을 만나고 부장의 명령에 대놓고 불복하기도 하고 집행자와 신경전을 벌이고 심지어 공주와 소소한 잡담을 떠들기까지 했다.
그런 스펙터클한 사건들이 갑자기 뚝 끊기며 심심하고 따분한 일상이 한 달 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에 괴도 레이븐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디서 비명횡사라도 한 건지 아니면 몸을 숨긴 채 뭔가 엄청난 일을 준비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대로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 영영 끝이라고 생각하면 어딘가 공허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팀장님? 그런데 안에 안 들어가십니까?”
“들어가봤자 할 것도 없는데 뭐하러. 이것만 태우고 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라.”
“네. 그럼 오늘도 수고하세요!”
가젯은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빨아내며 고민했다.
이제 놓아주는 게 맞는 걸까? 어떻게든 억지를 부리며 괴도 수사를 이어가겠다고 얘기는 해놨지만 그것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나버렸다. 부하들을 생각해서라도 슬슬 괴도 사건은 놓고 다른 일에 집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룰루랄라 안으로 들어갔던 부하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뛰쳐나왔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가젯은 어째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마도.
저 얼빵한 부하 녀석의 다급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팀장님! 예 예고장입니다!!”
그녀는 담배꽁초를 버리며 씩 미소 지었다.
한 달 만에 가장 활짝 피어난 웃음꽃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담배꽁초는 함부로 버리면 안 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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