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6
가젯의 주도 아래 괴도 체포 작전은 속전속결로 준비되었다.
마치 지난 한 달간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그녀의 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팀원들의 표정은 죽상이었으나 가젯의 얼굴에는 이전까지와 달리 생기가 가득 넘친 상태였다.
예고된 날짜는 바로 오늘 밤. 시간에 맞춰 괴도를 잡을 수사망을 꾸리기 위해선 잠시도 쉬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젯은 꽤 오랜만에 서장에게 호출을 받았다.
“그래. 결국 놈이 다시 돌아왔군.”
한숨이 섞인 서론에 그녀는 덤덤히 고개만 끄덕였다.
“예고장은 확인했나?”
“네. 이미 대응팀을 꾸리는 중입니다.”
“가젯. 네가 제일 잘 알고 있겠지만 수사권은 이미 우리 손을 떠났어. 괴도를 잡는 건 우리가 아니라 집행자의 일이라고.”
알고 있다. 길다면 긴 공백이었으나 사실 고작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궁전 습격 때부터 이미 자신은 여기서 손을 떼란 통보를 들었었다. 거기에 불복해 혼자서라도 놈을 잡겠답시고 난리를 피웠다가 공주와 대면까지 했었으니 잊을 리가 없었다.
여전히 자신에겐 수사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젯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이번에도 저희가 나서지 않으면 경찰을 향한 시민들의 불신감은 더 커질 텐데요.”
“크흠···.”
앓는 소리를 내며 눈두덩이를 문지르는 서장.
그녀의 말대로 이미 경찰을 향한 여론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마음껏 활개 치는 괴도를 잡지 못해 무능력한 조직으로 인식이 박혀버린 탓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집행자가 깔끔하게 체포하면 그걸로 문제는 해결될 것이었다. 결국 집행자 역시 대외적으로는 경찰 조직에 속하니 경찰이 잡았다고 발표하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얄미운 괴도 녀석이 예고장을 대놓고 공개해버렸다는 점이다.
즉 언제 어디서 무엇을 노리는지 브리타니아의 전 국민이 다 알고 눈에 불을 켠 상태다.
당연히 구경꾼들이 바글바글 모여들 것이며 괴도를 체포하는 과정도 시민들이 전부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정체도 모를 수상한 제복 차림의 마법사들만 보인다면? 그런데 나중에 공식 발표는 경찰들이 체포한 거라 나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마음 같아서야 저 제복 입은 마법사들이 경찰 조직 소속이라고 밝히고 싶지만 그건 엄연한 국가 기밀이기에 속 시원히 밝힐 수도 없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합동 수사해야죠.”
괴도는 집행자가 잡더라도 최소한 현장에는 경찰들이 쫙 깔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경찰이 체포했다고 발표해도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테니까.
어차피 경찰 인력을 동원해야 한다면 경험이 제일 많은 가젯 팀이 나서는 게 이치에 맞으니.
그녀가 지금처럼 서장의 앞에서도 당당히 고개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웬만하면 시민 통제에만 집중해라. 어차피 체포는 집행자 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네. 사고 안 치고 얌전히 있겠습니다.”
들려오는 대답에 서장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대답 하나는 참 잘한다. 그녀가 얌전히 있지 않으리란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의 수였다.
“난 머리 아프니까 그냥 신경 안 쓸란다. 네가 집행자랑 잘 조율해서 알아서 해.”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너 되게 신나 보인다? 괴도가 돌아온 게 그렇게 좋냐?”
자신은 과장 보태 제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밤마다 기도했을 정도인데.
그 망할 좀도둑 하나 때문에 얼마나 골치를 썩였던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비난 여론 덕분에 스트레스로 머리가 빠지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서장님. 이번에는 반드시 잡아내겠습니다.”
“···그래. 제발 부탁한다.”
서장은 손을 대충 휘적이며 그녀에게 이만 나가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마지막까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며 서장실을 떠나는 가젯의 모습에는 열정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경찰서에 새하얀 제복 차림의 집행자가 방문했다.
“지금 취조실에서 팀장님 기다리고 있답니다.”
“알았어.”
회의실도 있는데 왜 굳이 취조실에서 기다리는지 모르겠지만 가젯은 발걸음을 옮겨 자신을 기다리는 집행자에게로 향했다.
어두운 취조실에 앉아있는 냉철한 인상의 여인.
새하얀 제복 위로 드러난 무표정한 얼굴은 아름다웠으나 그보다 위압감이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게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일단 앉으시죠.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으니까요.”
마치 손님과 주인이 뒤바뀐 듯한 대화였으나 가젯은 순순히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굳이 집행자를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부터 함께 협동해야 하는 처지인 만큼 최대한 좋게 좋게 가야 하지 않겠는가. 가젯은 괴도를 잡을 수만 있다면 그깟 자존심쯤이야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다고 되뇌었다.
“괴도 레이븐을 전담하던 팀장 가젯이라고 합니다.”
“캐서린이에요. 소속은 굳이 밝힐 필요 없겠죠?”
물론이다. 그녀의 정체는 새하얀 제복과 엠블럼이 모두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듣기로 집행자는 부장을 제외하곤 세세한 직급이 나눠지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규격 외의 전력이다 보니 위아래를 나눌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집행자 측에선 한 분만 지원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절 포함해서 두 명이네요.”
가젯은 눈을 찌푸리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무 적은 거 아닌가요?”
사실 수사권을 놓고 집행자와 신경전을 벌일 때도 있었다. 이건 자신이 해결할 문제인데 갑자기 굴러온 돌이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까 생각했듯 이젠 녀석을 잡기 위해 알량한 자존심은 미뤄놓고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냉정하게 따져 가장 좋은 방법은 집행자를 최대한 활용하는 거겠지.
“이미 다른 집행자들은 맡은 임무가 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마 두 명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혹시···. 저번이랑 똑같이 그분이 오시는 건가요?”
“아니요. 에반 부장님은 오지 않습니다.”
망설임 없는 즉답에 아쉬움이 맴돌았다.
에반 레지널드. 집행자에 관한 건 거의 모르지만 직접 만나본 그 남자는 확실히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무려 괴도 레이븐에게 스카우트를 제안할 정도로 별종인 인물이었으나 그만큼 압도적인 힘이 뒷받침된 강자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이번에도 나섰다면 레이븐을 확실히 잡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한 분도 부장님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강한 분이니까요.”
“그런가요? 그럼 캐서린 씨는요?”
가젯의 당돌한 질문에 캐서린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저야 집행자 내에선 평균 이상 정도겠네요.”
“평균 이상···.”
집행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얼마나 강한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쯤이야 대충 알고 있다. 그런 집단에서 평균 이상이면 과연 어느 정도일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괴도를 잡는 데 무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막말로 경찰들이 놈과 정정당당히 싸워서 패배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힘보다 중요한 건 녀석을 뒤쫓을 스피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놈의 트릭을 간파할 지혜였다.
가젯은 호흡을 한번 고른 뒤에 차분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먼저 세부적인 작전을 짜기에 앞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네. 편하게 말씀하시죠.”
“괴도 레이븐은 평범한 도둑 따위가 아닙니다. 녀석은 마치 마술 같은 마법을 사용해서 모두를 농락하는 걸 즐기는 악질적인 놈이죠. 체포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콧대 높은 집행자라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캐서린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가젯의 경고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저희도 괴도를 잡기 위해 조사했었으니까요.”
하긴 그렇겠지. 집행자의 존재 이유가 신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 건데 최근 브리튼에서 괴도만큼 떠들썩한 문제가 또 어디 있겠는가.
“좋아요. 그럼 이제 본격적인 작전 회의를 시작하죠.”
“먼저 범행을 예고한 장소부터 완벽히 파악해야겠군요.”
가젯은 고개를 끄덕이며 예고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번에 녀석은 이곳에 나타날 겁니다.”
“···브리타니아 중앙은행.”
브리타니아의 자금은 모두 이곳을 거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경비 보안도 철저한 곳이다. 레이븐이 예고장을 보내지 않았더라도 터는 게 쉽지 않았을 정도로.
그렇지만 가젯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은행의 자체 경비와 경찰 측의 인력 거기에다 집행자 둘까지 붙었음에도 말이다.
이유는 너무나 분명했다.
괴도를 잡기 위해선 그녀가 반드시 있어야만 했기에.
“외부에 따로 도움을 요청하려 합니다.”
“경비 업체인가요? 아니면 마법사?”
집행자의 물음에 형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탐정입니다.”
***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런던 전체가 수군대고 있다. 모두가 한 주제만을 가지고서 떠들어댄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괴도’라는 단어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역시 저는 이때가 제일 좋은 거 같아요.”
[그렇다면 다행이로구나.]
“한 달만의 복귀전이네요. 잘할 수 있겠죠?”
[물론. 너는 언제나 그랬듯이 멋지게 성공해낼 거다.]
여신님의 응원에 킥킥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늘의 무대인 브리타니아 중앙은행. 그 주변에는 구경하러 몰려든 수많은 인파와 그를 제지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 도둑이 터는 장소의 근본 하면 역시 은행 아닌가.
그러니 괴도의 화려한 복귀전으로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일파만파 예고장을 흩뿌려놨으니 경찰 측에서도 이번만큼은 단단히 대비해뒀으리라.
아마도 저 은행 어딘가에는 집행자도 나를 잡기 위해 대기하고 있겠지.
하지만 걱정은 들지 않았다.
나도 이날을 위해 최대한 열심히 준비해뒀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은행에 들어갈 땐 번호표를 뽑아야 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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