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9
“허억!”
비명을 삼키며 눈을 떴다.
나도 모르게 이마로 향하는 손. 두개골을 꿰뚫고 지나가던 총알의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지만 정작 이마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상태였다.
뭐지? 내가 꿈이라도 꾼 건가?
돌이켜보면 무언가 이상했다. 일반적인 총탄이었다면 어렵지 않게 피했을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 회피 마법을 이미 걸어둔 상태였으니까.
아니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상대가 내게 총구를 겨눈 순간 살기를 감지했어야 정상이다.
단순히 방심했다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무엇보다 가장 이상한 것은.
‘총알이 보이지 않았어.’
분명 총성도 들렸고 이마에 감각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봐도 자신에게 날아오는 탄환은 존재하지 않았다.
총을 쏜 선글라스 사내는 분명 새하얀 제복을 입고 있었다.
즉 그 또한 캐서린과 마찬가지인 집행자라는 거겠지. 그렇다면 내게 쐈던 총알 역시 무언가 일반적인 공격이 아니라 마법일 가능성이 컸다.
대강 상황을 정리한 뒤 고개를 들었다.
“···어?”
배경이 달라졌다. 내가 원래 있던 금고와는 전혀 다른 공간.
이곳은 칙칙한 어둠이 내려앉은 황량한 공동묘지였다.
설마 죽어서 영혼만 남은 건가?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뜬금없는 장소에 혼란을 느끼며 주변을 돌아보던 와중.
맞은편에서 여유롭게 걸어오는 누군가.
기억 속 마지막에 보았던 선글라스의 집행자였다.
“이야. 이렇게 직접 뵈니까 영광이로군!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단 말이지. 괴도 양반.”
“···당신의 마법으로 절 여기 데려온 건가요?”
“비슷해. 정확히 말하면 네 영혼을 데려온 거지만. 몸은 아직 은행에 그대로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는 킬킬거리며 손에 들린 권총을 자랑하듯 흔들었다.
“이 총으로 널 쏘는 순간 너는 내 세계로 초대받은 거야. 여기선 얼마나 오래 있어도 바깥의 시간은 흐르지 않아. 즉 단둘이서 영원히 머물 수도 있다는 거지. 마음에 들지 않나?”
“죄송하지만 전 남자는 취향이 아니라서요.”
“그거참 유감이로군.”
문답을 나누면서도 힐끔거리며 최대한 주변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대충은 이해했다. 문제는 여기서 빠져나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건데.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마법 시전자인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
이게 정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차피 탈출법을 알아내기 위해 협박한다 쳐도 일단 상대를 제압하는 건 필수인 듯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주제를 꺼내는 상대.
“여기서 나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겠지?”
“당신을 쓰러트리라는 건가요?”
정답이라는 듯이 씩 환한 미소를 드러내며 돌아온 대답.
“당신이 아니라 리퍼라 부르도록.”
꽤 살벌한 이름에 뭐라 반응할 찰나도 없이 곧이어 등골을 쭈뼛대게 만드는 변화가 일어났다.
음산하던 공동묘지가 천천히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체가 아님에도 깨어난다는 말만큼 정확한 표현이 없었다.
단순 마력의 흐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의 낯선 무언가였다.
뒤이어 어느샌가 상대의 손에 들린 거대한 낫을 보며 왜 그의 이름이 사신인지 그가 만든 세계가 하필 공동묘지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바깥에서 내 능력은 별 볼 일 없지만···. 이 안에서만큼은 모든 법칙이 뒤집혀 버리지. 망자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여기서도 어디 한번 마음껏 날뛰어 보라고. 가능하다면.”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묘지의 땅이 갈라지며 일렁거리는 반투명한 팔들이 튀어나왔다.
헛숨을 삼키며 일단 뒤로 후퇴하려 했지만 묘지를 파고 나온 썩은 시체들이 내게 달려들어 왔다.
‘윽···!!’
이런 건 딱 질색이다. 난데없는 공포 분위기에 질색하면서 탈출구를 모색했다.
다행히 마법 자체는 사용 가능했다. 일단 위로 올라가서 공격을 피하면서 주변 지형부터 파악해보자.
하늘로 높이 솟구쳐 탁 트인 전경을 눈에 담고선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시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모든 공간이 전부 똑같은 풍경이었다. 끝없이 묘지가 계속 펼쳐져 있던 것이다.
아마도 이 세계 자체가 묘지로만 구성되어있는 거겠지. 물리적으로는 결코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리라.
“어때? 탁 트여서 꽤 괜찮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밑에서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리퍼.
농담이 아니라 이런 곳에 조금만 더 있다간 정신병이 와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능글맞게 웃는 집행자와 싸워서 이겨야만 한다.
내 강점을 살리기 위해 웬만해선 정면 승부는 최대한 피하려 했지만 지금은 도망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더 잴 것도 없이 속전속결로 끝낸다.
이곳이 적의 홈그라운드인 만큼 질질 끌어봤자 좋을 것도 없을 테니.
땅으로 내려옴과 동시에 카드 3장을 투척했다. 상대는 딱히 긴장한 기색도 없이 평온하게 낫을 휘둘러 카드를 전부 베어냈다.
펑! 퍼펑!!
묘지를 가득 채우는 폭발음. 상당한 화력에 순간 이대로 끝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이렇게 쉽게 끝날 리는 없었다.
“휴우. 화끈한데?”
연기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리퍼.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미소를 보고 있자니 마치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 상당히 열받았다.
“그럼 나도 장난은 이쯤까지만 하고 제대로 가볼까.”
그렇게 말하자마자 리퍼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장난스럽던 웃음기가 사라지자 몸을 짓누르는 위압감이 숨을 턱 막히게 하였다.
지금 순간만으로 따지자면 여태 만났던 어떤 적들보다도 강력하게 다가왔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패배하고 말 것이라는 무력감이 몸을 덮쳤다.
천천히 상대의 모습이 변해갔다.
새하얀 제복 차림 위로 덧씌워지는 불길하게 일렁거리는 새까만 로브.
마치 가면을 쓰듯 로브 사이로 보이던 얼굴이 새하얀 해골의 형상으로 뒤덮여갔다.
영락없이 저승사자로 변한 그에게선 더 이상 어떤 인간적인 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건 노이즈가 잔뜩 낀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제 너의 생명을 수확할 시간이다. 어리석은 필멸자여.]
마치 여신님이 말할 때와 같이 머릿속으로 때려 박히는 음성.
그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는 증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여신님? 이제 어떡하죠?’
문득 여신님의 존재를 떠올리고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았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어째서? 평소엔 글러 먹은 모습을 보여주긴 해도 이런 진지한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믿음직했던 여신님이 지금은 왜 대답조차 하지 않는 거지?
이유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는 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상대가 만들어낸 내면의 세계. 그곳에 초대된 건 나 하나뿐이었기에 여신님은 지금 이곳에 없는 것이다.
그래. 결국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현실이 아니었다.
일종의 꿈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무엇을 그리 생각하느냐. 제 죽음이 바로 앞에 놓인 상황에서도 어리석기 그지없구나!]
노호를 터뜨리는 저 해골바가지도 진짜가 아닌 가짜다.
놈의 등 뒤에서 넘실거리는 정체 모를 기운도 한낱 꿈속의 잔상이다.
그렇게 스스로 최면을 걸듯 되뇌다 보니 막막하기만 했던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얼핏 떠오르는 듯했다.
[참으로 시시한 필멸자로군. 이제 죽어라.]
사신이 붉은 안광을 밝히며 거대한 낫을 휘두르는 순간조차도.
나는 머릿속에 희미하게 떠오른 생각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알아냈다.”
답을 알아낸 이상 머뭇거릴 필요는 없었다.
나는 즉시 카드를 한 장 꺼내 마법을 사용했다.
상대가 아닌 나 자신에게.
카드 속에 그려진 조커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최면 마법이 발동하고 그대로 내 정신은 한 단계 더 깊은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 무어냐? 무슨 짓을 한 거냐!?]
당혹해하는 리퍼의 목소리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원래라면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으리라. 현실의 내가 무방비해지니 상대한테 나 좀 때려달라고 부탁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있던 곳은 본래의 법칙이 통용되던 현실 세계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뒤집히는 리퍼가 만든 내면세계. 여신조차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공간이다 보니 오히려 내가 이렇게 최면을 걸어도 현실에선 위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천천히 세상의 색채가 뒤바뀌어간다.
음산하던 공동묘지가 허물어지며 그 자리를 대신해 땅에서 솟아나는 건물들.
[아 안 된다! 멈춰라!!]
그렇게 소리쳐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이 내면 공간의 주체는 그가 아니라 나였으니까.
어둠뿐이던 하늘에 달과 별빛이 새겨지며 푸른 빛을 머금은 나만의 세상이 만들어졌다.
“음. 훨씬 낫네.”
이런 달빛 아래 런던이야말로 괴도에게 어울리는 무대라 할 수 있지.
어느샌가 변신마저 풀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집행자를 내려다보며 싱긋 미소를 돌려주었다.
“자 그럼 이제 2차전을 시작해보죠.”
반격의 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괴도는 죽지 않는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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