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1
다음날.
당연하게도 신문에는 내 활약상이 큼지막하게 대서특필되어 나왔다.
[한 달만의 등장! 이번에도 놓치고 만 괴도 레이븐···.]
[중앙은행마저 털렸다. 괴도의 다음 목표는?]
[재점화되는 경찰 무용론. 어째서 괴도를 체포하지 못하는가?]
[갈수록 늘어나는 괴도 추종 세력. 왜 사람들은 괴도 레이븐에게 열광하나.]
생각보다 엄청나다. 단순히 1면만 차지한 걸 넘어 신문 전체가 괴도에 관한 주제로 가득한 수준. 그야말로 괴도 특집 신문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심지어 한 신문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런던에서 발행된 모든 신문이 다 비슷한 상태였다.
“흠···.”
신문을 천천히 읽던 와중 업무에 집중하고 있던 줄리엣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사님도 괴도한테 관심이 있으신가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적당히 대답을 꾸며냈다.
“런던 시민 중 그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 더 드물지 않겠나.”
“하긴 그렇겠죠.”
“그러는 줄리엣 양이야말로 신문에 별달리 관심이 없어 보이네만.”
“지금은 업무 시간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면 한가롭게 신문이나 읽고 있던 내가 머쓱해지는데 말이지.
잠깐 휴식 시간이란 느낌으로 쉬고 있던 것뿐이라고.
줄리엣은 처리 중인 서류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저도 도둑이 들었거든요.”
흠칫. 속이 덜컹하며 내려앉는 듯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심하게 내뱉은 말이라 더 당황하고 말았다.
설마···. 내가 집에 침입했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건가?
아니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정말 그런 거라면 굳이 이렇게 화두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물증 없이 의심 선상에 올려놓은 정도겠지. 그것만으로도 꽤 위험한 건 맞지만 티만 내지 않는다면 그녀도 더 캐물을 수는 없으리라.
당황한 기색을 자연스레 감추고 걱정스러운 낯빛을 띠며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어디 다치지는 않았나?”
“네. 다행히 집에 침입한 흔적만 있고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그나저나 침입을 눈치챘다는 것만으로 솔직히 좀 놀랐다. 내가 남긴 흔적이라 해봐야 서둘러 도망치느라 창문을 잠그지 못한 것뿐이었는데 그 정도면 단순 착각으로 넘어갈 만한데도 괴한의 침입이라 확신하다니.
“천만다행이로군. 경찰에 신고는 했나?”
“아니요. 딱히 훔쳐 간 것 같지는 않아서 일단 그냥 넘어갔어요.”
“그건 위험하다네. 언제 다시 괴한이 침입할지 모르니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을걸세.”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말해도 그녀는 아마 신고하지 않겠지.
당연하다. 줄리엣의 집에는 경찰들이 절대 봐선 안 되는 위험한 증거들이 잔뜩 있으니.
만약 경찰이 집을 수색한다면 오히려 집주인인 그녀가 체포될 것이다.
막말로 일개 좀도둑 따위보다 경쟁국의 간첩이 훨씬 흉악한 중범죄자니까.
어쩌면 그녀가 내 침입을 눈치챈 것도 그런 신분으로 인한 조심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면 위험해질 처지이니 사소한 변화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아무래도 다음에 정보를 캐낼 때는 더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찰나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소 용구들을 한껏 끌어모은 채 끙끙대며 힘겹게 들어오는 그녀.
“조 좋은 아침이네요!”
“지금은 오후 4시이네만.”
“아···. 이제 막 출근하니까 당연히 아침인 줄 알았네요! 헤헤.”
천연덕스럽게 웃음을 흘리는 레아를 보고 있자니 레이첼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물론 귀엽고 힐링 되는 것도 맞긴 하지만 내 가족이 저러면 걱정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쨌든 일은 열심히 하긴 했다. 안 입어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메이드복까지 챙겨입고 출근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렇게 좁은 사무실에 청소할 것이 얼마나 있다고 저리 청소용품을 바리바리 챙겨 오는지 모르겠다. 그냥 적당히 하는 시늉만 해도 뭐라 할 생각 없는데.
출근하자마자 쉬지도 않고 곧장 청소를 시작하는 레아. 저러고 있으니 괜히 나만 너무 빈둥대고 있던 것 같아 눈치가 보였다.
“이사님. 이 서류들 결재해주시죠.”
“아.”
툭!
테이블에 놓이는 서류 더미. 그 높이에 아찔함을 느끼며 그냥 계속 빈둥거리고 싶다는 열망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역시 나는 이렇게 앉아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서 괴도 일이나 하는 게 천성에 맞는가 보다.
하지만 인제 와서 시작한 사업을 철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하나씩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줄리엣을 내 편으로 만드는 수밖에.
그래야 내가 이 업무 지옥에서 탈출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금 결의를 다졌다.
간신히 테이블에 올려진 서류들을 전부 처리하고 나니 피로가 확 쌓이는 기분이었다.
다른 둘은 어떤지 슬쩍 쳐다보니 줄리엣은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새로운 서류를 작성 중이었고 레아는 분명 아까 청소했던 곳일 텐데도 또다시 뽀득뽀득 닦기 바빴다.
그제야 나는 두 사람이 상상 이상의 일벌레라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어쩌면 직원을 잘못 고용한 걸지도.
오늘은 슬슬 퇴근해야겠다. 안 그래도 며칠 동안 몸을 사리느라 괴도 추종 모임을 빠졌으니 복귀전을 치른 김에 그쪽의 동향도 살펴볼 생각이다.
절대 일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게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헛기침을 뱉었다.
“크흠. 오늘은 내가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는데 자네들도 이만 퇴근해도 된다네.”
“저는 아직 처리할 서류가 남아서 조금 이따 들어가 보겠습니다. 문단속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부하 직원이 저렇게 말하는데 먼저 퇴근하려니 좀 무안하긴 했지만 지금 괜히 붙들렸다간 밤새 철야 근무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군. 레아 양은?”
“저는 그럼 퇴근할게요! 같이 나가죠!”
헤실헤실 웃으며 내 옆으로 쫄랑쫄랑 따라붙는 레아.
“그럼 수고하게.”
“먼저 들어갈게요~!”
“네. 조심히 들어가시길.”
줄리엣을 뒤로한 채 우리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슬슬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 시간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살랑살랑 걷는 모습을 보니 상당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녀에게 라파노에 대한 정보를 캐내야 한다는 목적이 있는 만큼 그녀와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다. 전 직장에 대한 뒷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레아가 나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걸까. 그 마음을 이용한다는 생각에 조금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레아 양. 일은 좀 어떤가?”
“좋아요! 솔직히 조금 심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두 분 다 상냥하시고 월급도 이전보다 많이 주시고!”
“그렇다면 다행이군. 아마 조만간 사무실을 이전하고 나면 심심할 틈도 없을 걸세.”
“얼른 옮겼으면 좋겠네요!”
꽤 분위기가 괜찮은데 자연스럽게 주제를 꺼내 볼까?
“이전 직장은 어떤 느낌이었나?”
“어 전 주인 아가씨의 저택에서 일할 때는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기간도 얼마 안 되는 데다 왠지 모르게 기억이 좀 흐릿하지만요.”
“흠.”
아마도 그건 베로니카의 마법의 영향이리라. 실제로 레이첼 역시 그녀의 최면에 당해 실험체로 끌려갈 뻔했는데도 당시의 기억이 꿈처럼 흐릿한 상태라고 했으니까. 저택에서 일하던 고용인들에게도 비슷한 암시를 걸어뒀던 거겠지.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드라칸의 일원인 만큼 이런 쪽으로는 철저하게 조처를 취해놨을 테니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라파노에 관련된 정보가 더 시급했다. 당장 녀석과 드레이크 간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드라칸일 확률은 상당히 낮았으니까.
게다가 레아는 라파노의 저택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메이드로 일해온 걸로 알기에 필요한 정보를 캐낼 확률도 더 높았다.
“레이첼 양에게 듣기로는 그 이전에 일했던 직장에서 꽤 부당하게 해고됐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인지 대충이나마 설명해줄 수 있는가? 가능하다면 내가 도울 수 있나 싶어서 그러는 거니 부담 갖지 말게나.”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조심스레 꺼낸 제안에 레아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괜히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그녀가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라파노는 저희 사이에서도 괴짜로 유명했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전부 하는 사람이었죠. 가까이서 보다 보면 나쁜 짓을 서슴없이 하는 모습도 보여요. 그래서 괴도가 보석을 털었을 땐 잘 됐다고 좋아하는 동료들이 대부분일 정도였으니까요.”
얘기만 들어도 답답해질 정도였다. 그런 남자의 밑에서 하녀로 일해야 한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게다가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했어요.”
“예를 들자면?”
“갑자기 하인들을 전부 불러서 오늘 하루는 저택에 얼씬도 하지 말라며 쫓아낸다던가···.”
이거다. 듣자마자 이 정보가 지난번과 관련이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더 자세히 확인해야 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휴가를 챙겨주는 착한 라파노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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