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5
자리로 돌아가자 블랑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
“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줘야 하나.
뭐라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에 잠시 고민하다 그냥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보시면 알 거예요.”
“···뭐 이상한 짓 한 거는 아니지?”
“그럼요.”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 아직은 하지 않았으니까.
이제부터 할 예정이지만 말이다.
“저희가 도와줄 건 없을까요?”
율리아의 상냥한 제안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와주려는 마음은 기쁘지만 여기서 괜히 나섰다간 오히려 망할 가능성도 있으니 조심해야지.
일단 자리에 앉아서 무대 위의 공연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이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에 내가 올라가면 얼마나 썰렁하게 가라앉을지 기대가 될 정도였다.
고막이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지하 공간. 음악 소리보다도 관중들의 환호성이 장난 아니었다.
마침내 연주가 끝나자 귀가 먹먹해질 만큼 무대를 향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고개를 돌리자 나를 지긋이 응시하며 눈빛을 보내는 드레이크.
그렇게 노려보지 않아도 올라갈 생각이었거든?
그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아예 빼도 박도 못하게 먼저 저쪽에서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무대 관리를 총괄하는 알프레드가 무대로 올라가 마이크를 붙잡고는 모두의 이목을 끌어버린 것이다.
“자 다들 즐기고 있는 가운데 잠깐만 주목해줘. 오늘같이 기쁜 날에 우리 당돌한 신입이 너희한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하네. 어떤 얘기인지 한번 들어봐 줘야 하지 않겠어?”
“우오오!!”
옆에 있던 두 사람은 요상한 분위기를 읽은 건지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뭐라 할 말이 없었기에 그냥 무시해버렸다.
“그럼 기대하고 들어보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올라와 신입!”
이젠 하다 하다 손가락으로 대놓고 지목까지 해버리네. 동시에 지하에 있던 수많은 이의 시선이 모두 우리 테이블로 쏠렸다.
율리아는 쏟아지는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고 블랑카는 속에서부터 끌어나온 듯한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몸을 일으켜 천천히 무대로 걸어갔다. 위로 올라가자 내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건네주는 알프레드.
“어디 한번 잘해봐.”
그럼. 너희 눈이 아주 휘둥그래질 정도로 잘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무대 중앙에 서자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만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의외로 딱히 긴장되지는 않았다. 사실 고작 이 정도에 겁먹을 거면 괴도 일은 애초부터 시작하지도 못했겠지.
일단 가볍게 인사부터 시작해볼까.
“안녕하세요. 다들 즐거워 보이시니 좋네요.”
딱히 돌아오는 호응은 없었다. 사실 이런 의례적인 인사에 뭐라 호응하기도 애매할 테니 개의치는 않았다.
“음. 제가 이 자리에 올라온 이유는 여러분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생겨서입니다.”
처음엔 무대 위에 올라가라는 드레이크의 말을 듣고 당황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이건 오히려 아주 좋은 기회였다.
지금 나는 리더의 공인 아래 추종자 모두에게 공식적으로 얘기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으니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분은 괴도 레이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처음에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내게 시선을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신경의 초점이 내게만 맞춰지도록 지금부터 꺼낼 얘기에 100%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에 가장 좋은 주제는 단연 괴도 레이븐에 관한 얘기밖에 없다. 이 조직의 결성 목적만 생각해도 너무 쉽게 나오는 답이었다.
예상대로 사람들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 집중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지루해하던 눈빛에는 어느새 흥미의 기색이 물든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여기에 와서 처음으로 괴도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죠.”
아직 본론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벌써 술렁이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떻게 듣기엔 괴도가 영웅이 아니라고 깎아내리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니까.
“그 의견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은 저마다 다른 거니까요. 누군가는 정말 미워하는 철천지원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가족인 세상이잖아요.”
일부러 한 박자를 쉰 다음에 또렷한 어조로 다음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을 남한테 강요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죠. 그건 명백히 잘못된 겁니다. 사람은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무엇이든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슬쩍 구석을 바라보니 드레이크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저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괴도 레이븐은 영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정면을 보니 뒤쪽에서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블랑카가 보였다.
“영웅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위한다는 숙명에 얽매여있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괴도 레이븐이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과연 이 가운데서 방금 던진 질문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괴도인 내 대답은 너무나 분명했다.
“아니죠. 레이븐은 오히려 그와 정반대에 있으니까요.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며 어떤 굴레에도 속박되지 않고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영혼이 레이븐입니다.”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고 나는 확신했다. 이미 분위기는 내게 완전히 넘어왔음을.
“그렇기에 레이븐은 영웅이 아닌 괴도로 불립니다. 그가 영웅이라면 정부와 언론에서 레이븐을 매도할 리도 없겠죠. 영웅은 어떤 흠도 없는 고결하고 완벽한 존재여야 하니까요. 마치 그레이스 경처럼 말입니다.”
내 마지막 사족에 율리아가 흠칫 놀라는 것이 보였다. 이번 한 번만 특별히 못 본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여러분이 처음 레이븐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가 영웅이었기 때문이었나요? 아니면 누구보다 자유롭고 낭만 넘치는 괴도였기 때문인가요?”
모두가 넋을 놓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드레이크는 얼굴이 분노로 새빨갛게 타오르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무대로 올라와 나를 제지하지 않는 이유야 뻔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자신이 잘못됐다는 걸 모두의 앞에서 인정하는 꼴이니까.
나는 여태껏 마이크를 잡은 뒤로 단 한 번도 드레이크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즉 드레이크라는 개인이 아니라 괴도 추종자 전체로 문제를 지적했기에 드레이크가 나설 명분이 없는 것이다.
물론 내 얘기를 듣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내가 꼬집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누구인지 떠올리고 있겠지. 그 순간 이미 드레이크를 향하던 맹목적인 지지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잠깐.”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러세웠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다름 아닌 블랑카였다.
“네. 말씀하시죠.”
“너는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영웅···. 레이븐님이 자신을 영웅이라고 여기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야 확신해야지. 내가 레이븐이니까!
그렇게 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간신히 참아내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언뜻 보기엔 나를 배신하고 드레이크를 두둔하는 것처럼 들리는 질문.
하지만 블랑카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고 있으면 그런 의도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궁금한 것뿐이다.
자신이 여태껏 영웅이라 믿었던 괴도의 모습이 잘못된 것인지.
드레이크가 그토록 강조하던 고결한 영웅이란 존재는 전부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한지를.
“처음에 말했듯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본인의 자유입니다. 레이븐을 영웅이라 여긴다고 잘못된 건 아니죠. 다만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모두가 그렇게 여겨야 한다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깔려있었다는 겁니다.”
“어쨌든 너는 레이븐님이 영웅이 아니라고 믿는다는 거잖아.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뭔데?”
아무래도 블랑카는 확답을 원하는 것 같다.
자신의 마음조차 갈팡질팡하니 확실한 결론을 내려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라는 대로 해줘야지.
“이유는 간단합니다. 괴도 레이븐 본인이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지 않으니까요.”
“내 말은 그 근거를 대보라니까!!”
“음. 딱히 근거는 없어요. 그냥 제 감이거든요.”
말문이 턱 막힌 듯한 블랑카와 순식간에 뒤숭숭해진 분위기. 내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급격히 늘어났다.
“아까 제가 말했던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분들도 본인이 좋아하는 괴도를 떠올리며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하신 거겠죠. 사실 아마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
옆을 바라보니 알프레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무대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분위기가 어수선한 틈을 타서 나를 반강제로 끌어내리려는 듯했다.
그럼 이쯤에서 폭탄을 터뜨려 볼까?
“정 뭣하면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겠네요.”
“···어?”
“괴도 레이븐한테 직접 물어보자고요.”
순간 지하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뮹뮹은 영웅이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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