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
물론 확신하기엔 이르다.
확실한 증거를 찾아낸 건 아니니까.
하지만 의심할 정황은 충분했다. 녹안뿐 아니라 체형이나 목소리도 상당히 흡사한 느낌이고.
게다가 특유의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분명 둘이 닮은 부면이 꽤 있었다.
[물어볼 생각이냐?]
‘글쎄요.’
섣불리 물어보는 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괜히 의심만 키워서 정체를 철저히 숨기게 되거나 심지어는 아예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먼저 확실한 증거를 찾을 필요가 있다.
직접적인 추궁보단 은근슬쩍 유도신문을 통해 정보를 스스로 뱉어내게 하는 편이 가장 좋겠지.
너무 의도가 뻔히 읽히는 질문은 샤론도 눈치챌 것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꼬아버리면 증거의 분별력이 떨어질 테고.
일단 가볍게 한번 미끼를 던져볼까.
“보통 수업 마친 뒤엔 뭐 하고 지내?”
“왜 그런 걸 묻는 거야?”
딱히 수상할 것도 없는 일상적인 질문인데도 돌아오는 물음이 매섭다.
이건 정체를 숨기기 위한 과민반응인가?
사실 그냥 원래 샤론의 성격일 확률이 높았다. 차갑고 무뚝뚝해서 약간 정 없는 말투랄까.
“그냥. 너랑 단둘이 있는 건 처음이잖아? 딱히 얘기도 거의 해본 적 없고.”
“너만 그런 건 아니야. 다른 아이들이랑도 마찬가지니까.”
참 반응하기 곤란한 대답이네.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기고 있다.
이런 걸 자발적 아싸라고 하던가.
모두가 샤론을 따돌리는 게 아니라 그녀가 모두를 따돌리는 수준이었다.
사실 내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진심을 떠보기 위해 억지로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아무튼 내 질문에는 대답 안 해줄 거야?”
“그냥 집에 있어.”
“흠···. 그래?”
과연 사실일까? 뭔가를 추측하기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애초에 말이 계속 단답으로만 끝나는데 어떻게 정보를 얻겠냐고.
답답함에 한숨이라도 푹 내쉬고 싶었다.
“도착했어. 교회.”
“어 그렇네.”
그런 사이에 우리는 어느새 목적지였던 교회에 도착했다.
야밤에 봤을 때와는 꽤 다른 분위기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밝은 대낮에 보니 교회는 상당히 허름하고 볼품없었다.
브리타니아 수도에 세워진 것치곤 너무 초라한 거 아니야?
“들어가 보자.”
“응.”
내가 앞장서서 나아가 닫힌 교회 문을 슬쩍 열었다.
예배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예배 시간이어도 딱히 사람이 많이 몰릴 느낌은 아니긴 한데.
휑한 공간을 둘러보면서 조심스레 인기척을 내보았다.
“저기요? 아무도 안 계시나요?”
그러자 곧 안쪽에서 사부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녀복을 입은 젊은 여자였다.
“누구신가요?”
부드러우면서 청초한 인상의 목소리.
[경건한 신앙심이 느껴지는구나.]
‘그러게요.’
[너도 저 아이처럼 나를 열렬히 섬겨줄 수는 없는 것이냐?]
‘여신님이 여신답게 행동해야 신앙심이 생기죠.’
참. 사람을 앞에 두고 이렇게 떠들고 있으면 안 되지.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교회에 방문한 목적을 설명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율리아와 같은 반 친구입니다.”
“아 그렇군요. 여러분들이 그 인터뷰를 진행한다던 학생들이신가 보네요.”
“네. 맞아요.”
율리아가 말했던 대로 우리가 찾아올 거라고 미리 얘기해놨던 모양이다.
그녀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반가워요. 저는 테리시아라고 해요.”
시스터 테리시아.
원작에서도 꽤 중요한 비중을 지닌 조연 인물 중 한 명이다.
처음 등장과 초반부에선 주로 율리아와 엮여서 등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주인공인 레이어드와도 친해지면서 작중 내내 주인공 일행을 도와주는 조력자 포지션의 캐릭터이다.
“저는 크로에요.”
“샤론입니다.”
서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주고받은 뒤 우리는 교회 안쪽에 있는 휴게실 같은 공간으로 이동했다. 방 안에 들어서자 테리시아는 멋쩍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조금 누추해도 이해해주세요.”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은걸요.”
조금 작고 시설이 낡긴 했어도 관리를 잘했는지 더럽거나 너저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래된 유적지를 관광하는 느낌이라 조금 설렌달까.
자리에 앉은 뒤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가벼운 담소를 나눴다.
“율리아는 어떤가요? 아카데미에서 잘 지내고 있나요?”
“물론이죠. 저희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걸요.”
“어머. 그건 잘됐네요. 후후.”
거짓은 섞지 않았다. 정말로 율리아는 반을 넘어 학년 전체로 따져도 손에 꼽을 만큼 인기가 많으니 말이다.
“두 분도 인기 많으시겠네요.”
“네···?”
“미남미녀시잖아요.”
갑작스러운 칭찬 공격에 당황하고 말았다.
사실 객관적으로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려나.
샤론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수준. 사실상 외모로만 따지면 원작 히로인인 율리아와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으니까. 저 정도 레벨이면 취향 차이로 갈린다고 봐야겠지.
다만 성격이 워낙 특이하다 보니 애들이 쉽사리 접근하지 못할 뿐이다. 마치 건드려선 안 되는 미술품을 멀찍이서 관상만 하는 것처럼.
나도 못생긴 편은 아니지. 굳이 분류하자면 잘생긴 편에 속하지 않을까?
자아도취가 아니라 내가 빙의한 크로란 녀석이 허우대는 참 멀쩡하다. 다만 작가의 선택을 받지 못해 엑스트라로 살아갈 운명을 지녔을 뿐.
그러나 테리시아의 말은 결국 틀렸다.
외모와 별개로 우리는 율리아와 달리 인기가 많은 인싸가 아니거든.
샤론은 존재감이라도 있지 나는 아예 같은 반 애가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만큼 철저한 아싸였다.
“하하···.”
물론 그런 사실을 내 입으로 직접 실토할 수는 없었다.
멋쩍은 웃음으로 말끝을 흐리며 무마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제 인터뷰 시작해도 될까요?”
“아 그렇죠.”
때마침 샤론이 나서준 덕분에 잡담은 흐지부지 끝을 맺었다.
준비해둔 질문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우선 저희가 듣기론 괴도 레이븐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네. 사실이에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었나요?”
수녀님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우리에게 꼼꼼하게 설명해주었다.
날짜 시간대 위치 그날의 상황 등등.
내가 기억하던 내용과 완벽히 일치한 설명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내가 한 행동을 들으니 꽤 신기하네.
그녀의 얘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세세하게 수첩에 메모하는 샤론.
곧 설명이 끝나자 곧바로 추가적인 질문을 쉴새 없이 던졌다.
“레이븐을 직접 목격한 건 아닌가요?”
“네. 그렇죠.”
“문 앞에 놓인 돈 보따리와 위에 놓인 카드가 전부였다는 거군요.”
“맞아요.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뭐랄까. 분명 평범한 인터뷰 현장일 텐데 왜 이렇게 취조하는 느낌이 드는 거지.
마치 옆에 있는 샤론이 탐정처럼 느껴졌다.
‘설마···.’
아니야. 그래도 이걸로 확정 짓기에는 너무 심증뿐이잖아.
탐정처럼 꼬치꼬치 캐물으며 인터뷰한다고 셜록이라 단정 짓는다니. 너무 무리수잖아.
“혹시 그때 받은 카드를 아직 가지고 계시나요?”
“네. 혹시 모르니까 보관해놨어요.”
“괜찮으시다면 카드를 보여주실 수 있으실까요.”
“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나 카드를 챙겨 돌아오는 테리시아.
“여기요.”
우리는 그녀가 건네준 카드를 꼼꼼히 살폈다.
간단한 까마귀 그림과 함께 단조롭게 적혀있는 한 문장.
부디 좋은 곳에 써주시길.
-괴도 레이븐
음. 역시 디자인을 잘 뽑았어.
깔끔하면서도 괴도라는 특징이 잘 드러나는 레이븐의 전용 카드였다.
다만 크기가 좀 작은 편이라 예고장에 글을 많이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멋있는 거 같기도 했다.
속으로 흡족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샤론도 고개를 주억이며 카드를 다시 수녀님에게 돌려주었다.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뭘 이 정도로요.”
이제 사실상 마지막 질문이었다.
“좀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레이븐에게 받은 돈을 어디에다 사용하셨나요?”
여태껏 막힘없이 술술 대답하던 수녀님이 처음으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사실 처음에는 많이 고민했어요. 괴도 레이븐이 누구인지야 잘 알고 있고 그가 준 돈이 떳떳한 방법으로 얻은 게 아니었으니까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도 했었죠.”
나는 살짝 놀랐다. 설마 그런 생각을 했을 줄이야.
솔직히 나였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짝 갈등하더라도 결국 괴도에게 감사하면서 낼름 받아먹었겠지.
이게 신앙심의 차이인가?
아니 가만 생각해보니까 난 여신한테 직접 부탁받아서 훔치는 거잖아.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제가 돌보는 어린아이가 병에 걸려서 괴로워하고 있었거든요. 아이를 고치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했어요. 저는 홀로 교회에 남아 밤늦게까지 기도했죠. 제발 가엾은 어린 양을 도와달라고.”
어? 밤늦게 교회에 남아서 기도했었다고?
그러면 설마···.
“혹시 그다음에 레이븐이 온 건가요?”
“맞아요. 기가 막히는 우연이죠.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고요.”
수녀님은 잠시 고민하다 덤덤히 고했다.
“저는 그게 기도의 응답이라 생각합니다.”
“······.”
‘여신님. 설마 전부 노리신 거예요!?’
[뭔 소리냐. 교회로 가자고 했던 건 네가 아니었느냐. 애초에 저 아이가 섬기는 신은 이 몸이 아니니라.]
하긴 그럴 리가 없지.
이 썩어빠진 하렘무새 여신이 무슨.
그러면 정말로 우연일 뿐인 건가?
참 기가 막히는 신기한 이야기다.
그때 테리시아의 얘기를 가만히 듣던 샤론이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은 달라요. 그건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말 우연일까용..?
아니면 설마 여신님이 전부 설계한 걸까용!?
정답은…
모르겠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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