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1
“우웩···.”
케이크를 한 조각 입에 넣었다가 곧바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레아.
워낙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음식이니만큼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었다.
차라리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막 오븐에 구워 나온 따뜻하면서 부드러운 케이크다 보니 민트초코의 식감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아니 그런데 민트초코가 산업혁명 이전에도 존재했었다는 말이야?
의외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레시피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그와 반면 아무렇지 않게 케이크를 포크로 찔러 입에 넣기를 반복하는 줄리엣.
언뜻 보기엔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이었으나 뺨에 살짝 홍조가 어려있는 데다 입꼬리도 살며시 올라가 있었다.
행복해하고 있다. 민트초코를 아주 맛있게 음미 중이다.
“흠···.”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니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사람마다 입맛과 취향은 전부 다른 법 아니겠는가?
다만 민트초코를 향한 호불호를 떠나 저녁 메뉴로는 너무 안 어울리지 않나.
정말 이걸 저녁으로 먹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당장 레아는 억지로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가 톡톡히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은가.
“이사님은 안 드시나요?”
“음. 그게 말이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순진무구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민트초코를 좋아할 것이라 확신하는 표정.
국가 스파이인 주제에 이런 쪽에 너무 둔감한 거 아니야?
아니면 설마 전부 철저하게 설계된 연기인 건가. 나한테 일부러 민트초코를 먹이기 위해서···.
그런 망상이 스멀스멀 자라나가다 고개를 휙휙 내저으며 머릿속에서 전부 몰아내 버렸다.
나한테 독도 아니고 민트초코를 먹여서 얻는 이점이 뭐라고 그러겠는가.
레아의 반응을 보면 독보다 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민트초코를 혐오하지는 않았다.
“많이 먹게. 나는 오늘···. 입맛이 영 당기질 않는군.”
“그런가요. 케이크가 정말 맛있는데 못 먹으신다니 아쉽네요.”
전혀 아쉬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혼자서 독식할 수 있단 사실을 깨닫고 작게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얄밉긴커녕 여태 보지 못했던 신선하면서도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식사를 지켜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자리를 끝까지 지키며 어떻게든 꾸역꾸역 케이크를 먹으려 하는 레아 역시 범상치는 않았다.
“이사님이 사주신 케이크···! 남길 수는 없어요!”
“다른 케이크를 하나 더 사줄 테니 취향에 안 맞으면서 억지로 먹진 말게.”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시키자 그제야 방긋 웃으며 맛있게 먹기 시작하는 레아.
줄리엣은 그런 모습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왜 굳이 민트초코를 두고 저런 거를 먹는지.”
왜냐면 모두의 입맛이 너처럼 특이하지는 않거든.
아니 유럽에서는 오히려 반 민초파가 특이한 편에 속하는 건가?
어쨌든 조금은 이색적인 저녁 회식도 무사히 끝마쳤다. 사무실에 있을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 보이는 줄리엣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적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호감도가 올랐을 거라 믿는다.
“오늘 저녁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이 정도로. 자네들의 노력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 앞으로도 종종 자리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때는 아마도 지금보다 인원이 훨씬 많겠지만.”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즉답을 내뱉어버리는 줄리엣.
“저는 사람이 많은 자리는 좀. 그때는 그냥 빠질게요.”
“······.”
단 한 순간에 방금까지 힘겹게 쌓아 올린 호감도가 0 스택으로 초기화된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칼바람과 같은 매정한 대답에 이쯤 되면 나중에 퇴사하겠다는 말을 돌려서 꺼낸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그때 레아가 천연덕스러운 태도로 줄리엣에게 엉겨 붙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 셋이서만 따로 만나요!”
“셋이서요?”
“네! 초창기 원년 멤버! 예전 사무실을 경험해본 사람들의 모임! 어때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줄리엣은 이윽고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가요.”
“히히. 좋아요!”
적극적인 찬성은 아니었지만 분명 긍정의 뜻이 담긴 답변이었다.
이렇게나 손쉽게 설득할 수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않았기에 내심 감탄했다.
레아의 순수함이 이런 결과를 낼 줄이야.
그나저나 별다른 뜻 없이 진짜 단순하게 사람들이 많은 자리가 싫어서 거절했던 것뿐인가?
뭔가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정말 그 이유 하나가 전부였다고?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사님 안녕히 가세요!”
“둘 다 조심히 들어가게.”
가게 앞에서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다음에는 하와이안 피자를 먹여봐야 하나?
***
“오. 여기로군.”
“어떤가요?”
오늘은 아카데미를 가지 않는 주말.
화창한 오후 시간대에 줄리엣과 단둘이서 거리를 걸었다.
보통 남녀가 주말에 만난다면 데이트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새롭게 이전하기로 한 사무실의 인테리어가 끝났다는 얘기를 듣고 확인차 들른 것뿐이니까.
사실 혼자 가도 상관은 없는데 사무실을 고른 사람이 줄리엣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녀와 둘이서 동행하는 흐름이 되어버렸다.
잠깐만. 다른 사람들이 보면 상사가 억지로 주말에 외근에 끌고 나간 느낌 아니야?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돈 많이 주면서 일은 적당히 시키는 꿀 상사가 되고 싶다고.
지금이라도 그냥 쉬라면서 돌려보낼까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곰곰이 되새겨보니 주말에 같이 가자고 제안한 건 오히려 줄리엣이었구나.
그렇다는 건 내게 최소한의 호감도는 쌓여 있다는 거겠지?
꼴 보기도 싫은 상사랑 자진해서 주말에 같이 붙어 다닐 이유는 없잖아. 적어도 붙어있는 것조차 싫은 수준은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줄리엣과 도착하게 된 새로운 사무실은 꽤 만족스러운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그 많던 돈을 어디에다 펑펑 써댔는지 편린을 깨닫게 되었달까. 물론 그걸 감안해도 의아할 만큼 지출된 액수가 상당했지만.
“여기 열쇠요.”
“아 고맙군.”
줄리엣으로부터 받아든 열쇠로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확실히 넓다. 원래의 사무실과 비교하면 실례될 만큼 엄청나게 넓다.
이 정도면 하루종일 일해도 레아 혼자서는 청소를 다 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
“위층도 올라가 보죠.”
“···위층도 우리 층이었나?”
“네. 서류로 보여드렸을 텐데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1층만 해도 이 정도인데 2층까지 있다니.
“잘 되어있군. 수고가 많았겠네.”
“맡은 업무를 처리한 것뿐인걸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수고가 많았다는 게 느껴진다. 대충 둘러봐도 각 구역에 맞춰 용도를 세분화했음이 한눈에 보였으니까.
1층은 비교적 공개적인 구역이었다.
정문으로 들어올 때 마주하는 넓은 메인 홀과 인포데스크. 그 안으로는 손님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접견실과 상담실 등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2층은 직원을 위한 공간이라 보면 되었다.
업무에 따라 나누어진 각 부서의 사무실들 그리고 회의실 또한 대표이사실도 가장 안쪽에 마련되어 있었다.
막말로 21세기의 어지간한 중소기업 회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비록 커다란 빌딩 전체가 하나의 회사로 되어있는 굵직한 대기업에 비하면 부족하더라도 지금이 19세기임을 감안하면 이 정도도 엄청난 것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런던에 있는 회사 가운데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가 아닐까.
전체적으로 쓱 둘러보고 나니 왜 재단의 잔고가 바닥을 보이는지 이해가 갔다.
이런 건물을 통 크게 일시불로 질러버렸으니 거덜 날 수밖에.
그래도 괜찮다. 줄리엣은 투자한 비용을 흑자로 전환할 능력이 있으니까.
“직원 면접은 다음 주라고 했나.”
“네. 1차 합격자는 총 200명입니다.”
“생각보다 많군. 최종 합격자는 얼마나 뽑을 생각인가?”
나는 기본적인 방향성만 제시할 뿐 나머지는 전부 줄리엣이 처리하고 있다 보니 채용 인원도 내가 그녀에게 물어봐야 하는 처지다.
당연히 내가 인원을 정해두면 그대로 따르겠지만 그렇게 하나씩 간섭할 바에는 차라리 전부 맡기는 편이 더 효율적일 테니 어지간해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러다가 줄리엣이 뒤통수라도 쳐버리면 진짜 큰일인데 말이다. 그러니만큼 하루빨리 그녀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일단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원활히 굴러갈 정도의 최소 인원만 뽑을 생각이에요.”
“프로젝트라면?”
“후원 시스템 설립과 귀족 컨설팅 준비 정도가 있겠네요.”
음. 둘 다 내가 벌여놓은 일이구만.
앞에 거야 그렇다 쳐도 사실 후자는 재단을 표방하고 있는 입장으로선 고개가 갸웃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귀족을 도와주며 대가로 돈까지 받는데 이걸 과연 비영리라고 할 수 있는가?
돈을 받는 시점에서 이미 영리적인 행위라고 봐야 할 텐데 이걸 기부재단에서 하는 게 옳은 일인가?
‘나중에 나눠야 할지도 모르겠네.’
당장은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변명하고 있지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규모가 커지면 귀족 컨설팅만을 담당하는 조직을 따로 꾸려야겠다.
“면접은 저랑 이사님 둘이서 같이 보시죠.”
“그거야 물론이지.”
이것까지 혼자 시킬 생각은 없다.
사실 둘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레아를 면접관으로 앉힐 수는 없으니까.
어우. 상상만 했는데도 끔찍하다. 그건 절대 안 되지.
“부디 유능한 직원들이 지원해줬으면 좋겠군.”
“그러게요.”
그렇게 단순히 생각하며 면접 날을 기다렸다.
뒤늦게 이상함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는 뜻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답은 뮹뮹은 민초를 좋아한다에용!
시원해서 아주 맛있는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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