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2
“지원자가 상당하군.”
창가를 통해 바깥을 확인하니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총 200명이라고 했던가. 1차 서류 심사에서 합격한 지원자들의 숫자였다.
여기에서 능력과 업무 태도가 괜찮은 사람을 면접으로 가려낼 예정이다. 아무래도 당장은 인력 보충이 절실한 상황이라 큰 문제만 없다면 채용된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이사님. 다 준비됐어요.”
“좋아. 그럼 시작하자고.”
본격적인 면접 시작이었다.
방식은 굉장히 간단했다. 미리 정해둔 번호대로 한 번에 5명씩 면접실로 들어온다.
준비된 서류를 참고하여 한 명씩 간단하게 문답을 나눈 뒤 문제가 없다 싶으면 통과.
줄리엣이 이미 서류 심사에서 한번 솎아냈기 때문에 능력이나 스펙보다도 인성과 업무 태도가 더 중요했다.
참고로 레아는 복도에서 대기하는 지원자들을 인솔하는 역할을 맡았다.
“레아 양. 5명씩 안으로 불러주게.”
“네! 저만 믿고 맡겨주세요!”
결연에 다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서는 레아.
설마 이렇게 단순한 일도 제대로 못 하는 건 아니겠지?
곧이어 문이 살짝 열리며 떨떠름한 표정의 지원자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언뜻 봐도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분위기에 가장 앞에 있던 사내에게 물었다.
“왜 그러시나요?”
“그···. 원래 마지막부터 시작하는 건가요?”
뒤늦게 그가 목에 건 번호표에 당당히 적혀있는 ‘200’이라는 숫자를 확인하고 이마를 짚었다.
반대로 데려와 버렸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동요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상냥한 미소를 꾸며내었다.
“저희 직원이 실수한 것 같군요. 공지해드린 대로 면접은 1번부터 순차대로 진행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다섯 명이 쪼르르 다시 나가고 조용해진 면접실. 옆에 앉아있던 줄리엣은 평소와 다름없는 어투로 얘기를 꺼냈다.
“레아 씨가 실수했나 보네요.”
“그런 것 같군···.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라서 다행이지.”
뒤이어 다시 방안으로 후다닥 들어온 레아가 안절부절못하며 연신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1번부터 보냈어야 했는데 깜빡하고 반대로···!”
“괜찮네. 진정하고 긴장 풀게나.”
“네. 후- 하- 후- 하-.”
심호흡을 몇 차례 내쉬던 그녀는 겨우 진정을 되찾았는지 다시 복도로 향했다.
다행히 두 번의 실수는 없이 무사히 1번부터 5번까지의 지원자가 방 안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우선 가볍게 지원자들의 얼굴을 체크했다. 지금부터 있게 될 면접 때문인지 다들 긴장해서 바싹 얼어붙은 모습이었는데 유일하게 1번 지원자는 혼자 차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모습에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슬쩍 1번 지원자의 서류를 훑어보니 적혀있는 것만으론 딱히 특별한 것 없이 평범히 지방에서 상경한 젊은 여자였다.
일단 더 확인해보자.
“먼저 저희 뤼팽 재단에 지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섯 분의 간단한 자기소개와 입사 지원 동기를 들어보고 싶군요. 1번부터 차례대로 짧게 부탁드리죠.”
아무래도 처음 순서면 충분히 당황할 만한데도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시작하는 1번 지원자.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겸손함이 묻어나오는 자기소개.
그리고 이어지는 깔끔한 입사 동기까지.
그야말로 면접 합격의 교본과도 같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직 아무 질문도 안 했는데 벌써 합격 도장에 스멀스멀 손이 갈 정도.
그다음 2번부터 5번까지의 지원자들도 나름대로 최대한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긴 했으나 1번 지원자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당장 아무 준비 시간도 없이 제일 먼저 한 1번인데 그녀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수준 차이가 상당했다.
이후로도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으나 처음의 분위기는 쭉 유지됐다.
1번에게는 어떤 걸 물어도 막힘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일부러 답하기 어렵고 껄끄러운 질문을 던졌는데도 미꾸라지처럼 자연스레 빠져나가 버리니 황당할 정도였다.
그럴수록 격차를 누구보다 실감하는 나머지 지원자들은 자신감을 잃어가며 소극적으로 변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끝에 가서는 걷잡을 수 없는 양극화로 방 안의 모두가 면접 결과를 예상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 다섯 명 가운데는 아마 1번만 붙으리라.
“수고하셨습니다. 면접 결과는 추후 편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어깨가 축 늘어져서 면접실을 떠나는 네 명과 반대로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띤 채 마지막까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며 사라지는 1번 지원자.
조용해진 면접실에서 줄리엣과 함께 서류를 정리했다.
“어땠나?”
“1번은 합격. 나머지는 전부 애매하더군요.”
“흠···.”
역시 나랑 똑같은 결론을 내렸구나.
하지만 어딘가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아 계속해서 서류를 뒤적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내 착각일 수도 있네만 1번이 너무 유능한 것 같단 말이지.”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물론 좋은 거지. 그런데 왜 그리 유능한 인재가 우리 재단에 지원했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단 말일세.”
냉정하게 말해서 뤼팽 재단은 아직 이름조차 안 알려진 신생 단체다.
심지어 일반적인 기업도 아니고 자선 사업을 목표로 하는 재단법인이다.
면접 지원자가 200명이나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거야 산업혁명의 여파로 런던에 노동자가 잔뜩 몰려있는 상태니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중요한 건 평범하게 시골에서 농사나 짓던 일반 노동자가 아니라 어느 회사에 가도 엘리트로 취급받을 만한 인재가 우리 재단에 지원할 이유가 있냐는 거다.
1번 지원자는 단순히 화술이 좋은 것만을 넘어 보유한 기술이나 학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막말로 다른 4명도 1번 지원자와 함께 묶여서 비교당하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노동력이었기에 채용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왜 그 정도의 엘리트가 굳이 많고 많은 회사를 제쳐두고 우리 재단에 지원한 걸까?
“그거야 급여가 높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음? 급여 말인가?”
“네. 이 정도 금액은 어디를 가든 받기 쉽지 않으니까요.”
당연하다는 듯이 꺼내는 얘기에 싸함을 느끼고 한구석에 놔둬 두었던 채용 공고를 꺼내 읽었다.
“······.”
거기에 적힌 액수를 확인하고서 눈을 의심했다.
그러니까 이게 연봉이 아니라 월급이라는 거지?
우리 재단만 21세기에 들어선 것처럼 인플레이션이 한껏 치솟아있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순수한 의도로 줄리엣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우리가 직원들에게 이 정도 봉급을 지급할 여력이 되나?”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가능하죠.”
“아니 당장 다음 달에 월급을 줘야 할 것 아닌가.”
설마 나한테 돈을 더 채워 넣으라고 돌려서 압박을 넣고 있는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줄리엣을 내 조수로 삼으려던 계획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지도. 이 정도 씀씀이면 제아무리 괴도라 할지라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파산할지 모른다.
“걱정하지 마세요. 거기에 있는 금액은 부서의 팀장급이 받을 봉급이니까요. 당연히 평직원은 그보다 적게 책정해놨어요.”
다시 서류를 확인해보니 그 말대로였다.
일부러 높은 금액을 눈에 잘 보이게 쓴 다음 밑에 작게 평직원은 40%부터 시작한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여전히 많은 액수임은 변함없었다.
일반적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상상도 못 할 수준이었으니까.
“인재를 불러들이기 위해선 이게 최선이니까요. 당장 저희는 명성도 정통성도 하물며 입소문도 나지 않은 상태이니 넘쳐나는 돈이라도 써먹어야죠.”
“···그래. 좋은 생각이로군.”
줄리엣의 판단은 정확했다. 면접이 이어질수록 비슷한 사례가 속출했으니까.
심지어 어떤 차례에서는 함께 들어온 5명 전부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엘리트만으로 구성될 정도였다.
‘뭔가 이상한데?’
수상하리만큼 뛰어난 엘리트의 비율이 너무나 높다.
농담이 아니라 이 정도면 세계적인 대기업을 하나 차려도 되지 않을까. 아니면 국가 기관을 새로 하나 창설한다던가.
게다가 하나 같이 다들 너무 착하고 올바르다. 뤼팽 제단의 슬로건인 ‘세계 평화’를 당연하다는 듯이 입에 담는 모습은 위화감이 들 지경.
하루 만에 200명을 전부 면접 보고 나니 마쳤을 땐 늦은 저녁이 되었다.
그렇게 뽑힌 인원수는 47명.
그중 엘리트의 숫자는 거의 40명 가까이나 되었다.
“오늘 면접 보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나야 편하게 앉아서 질문한 게 전부인데 뭘. 그보다 레아 양이 수고가 많았지.”
“헤헤. 아니에요! 이 정도로는 끄떡없는걸요!”
이제 곧바로 합격자 명단을 만들어 편지로 배송하고 나면 직원들도 출근하기 시작할 것이다.
드디어 뤼팽 제단도 제 궤도에 올라서게 되었으니 이제는 여기에 너무 묶여있을 필요는 없겠지.
귀찮은 건 전부 집어던지고 그냥 마음껏 괴도 활동이나 하고 싶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들어가 쉬게나.”
“이사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약간의 찜찜함만을 남긴 채 면접은 무사히 종료되었다.
***
텅 빈 사무실.
문단속을 구실로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아있던 줄리엣은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정기 보고서]
‘1차 계획은 무사히···.’
그녀가 무엇을 적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뮹뮹은 알고 있는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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