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7
“정신질환?”
“혹시 그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있나?”
내 질문에 조앤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쪽은 이제 막 연구되기 시작하는 분야예요. 제가 의술을 배울 땐 정식 분야로 인정받지도 않았을 때고요.”
“역시 그런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으나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내 대답에서 살짝 실망하는 기색을 눈치챈 걸까 그녀는 궁금하다는 눈치로 몸을 가까이하며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요? 원래도 그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요즘 들어 궁금해질 만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런 거라면 제가 알 만한 전문가를 찾아볼까요? 그래도 제가 전쟁터에서 꽤 굴렀다 보니 나름 발은 넓은 편이거든요.”
뜻밖의 희소식이 기쁘면서도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괜히 나 때문에 걱정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군.”
“뭘 이 정도로요. 게다가 우리는 한배를 탄 파트너잖아요?”
맞는 말이다. 오늘 그녀의 병원을 방문한 것도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서였으니까.
“이미 기초적인 얘기는 지난번에 전부 끝냈다고 들었는데 맞나?”
“네. 그런데 있잖아요. 그 비서분은 대체 정체가 뭔가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의미심장한 질문에 흠칫 놀라며 조앤을 쳐다보았다.
설마 줄리엣의 정체를 눈치챈 건가? 그걸 한번 만나고서 곧바로 알아차렸다고?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속으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줄리엣이 어설프게 단서를 흘렸으리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주 실낱같은 빈틈을 비집고 정체를 밝혀냈다는 건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엉뚱한 도박중독자 의사가 그만한 통찰력이 있다고 믿긴 힘들었다.
고민 끝에 내가 취한 행동은 시치미 떼기였다.
그리고 다행히 이어진 그녀의 반응은 내 선택이 정답이었음을 알려주었다.
“정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니 어디서 그렇게 유능한 비서를 뽑은 거냐고요. 심지어 더럽게 예쁘기까지 하더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심 긍정했다.
줄리엣이 다른 건 몰라도 일 처리 하나는 완벽하긴 하지.
문제는 그런 유능함의 이유가 간첩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경쟁국에 첩자로 파견될 정도면 능력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왠지 낯익은 것 같단 말이지···. 분명 어디서 봤던 거 같은데.”
뒤이어 혼자 중얼거리는 조앤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 지난번 카지노에서 셜록이 위장했던 때를 떠올린 거겠지. 그때 자기 이름을 샬럿이라고 소개했던가?
줄리엣이 셜록과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한 만큼 그렇게 기시감을 느끼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둘이 동일 인물이 아닐까 강하게 의심하기도 했으니까.
사실 별개의 인물임을 깨달은 지금 순간에도 출생의 비밀 같은 사연이 섞여 있지 않을까 진지하게 예측하는 중이다.
아무튼 조앤이 말한 대로 이미 어지간한 이야기는 줄리엣과 만나 끝내놓은 상태였다.
오늘 만남은 결정권자끼리 모여 서류에 도장을 찍기 위한 자리일 뿐이고.
“이제부터 저희는 공식적인 협력 관계가 되는 거네요.”
“협력이야 진작부터 해오고 있지 않았나.”
“그래도 뉘앙스가 다르잖아요. 게다가 우리 병원이 처음이라면서요?”
그렇긴 하다. 조앤의 병원부터 시작해 하나씩 협력 업체를 늘려나가 재단의 복지 시스템을 꾸려나갈 계획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후보지는 어디인가요?”
“여러 곳을 생각 중이네만 현재는 아카데미를 최우선 목표로 잡고 있지.”
내 대답에 꽤 놀란 표정을 지으며 격하게 반응하는 조앤.
“와···.”
“왜 그러나?”
“아니요. 어찌 보면 이것도 운명 아닌가 싶어서요.”
“운명?”
이해할 수 없는 표현에 눈을 찌푸리자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후후. 그런 게 있어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불안함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그런데 왜 하필 아카데미인가요? 신비 진영은 원래 폐쇄적인 면이 있어서 좀 기피되지 않나요?”
조앤의 의문은 타당했다.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이지만 막상 사람들이 마법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통제가 불가능한데다 제대로 이해할 수조차 없는 미지의 존재라고 할까.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마법사를 비롯한 신비 진영도 일반적인 세상에서 떨어져나와 스스로 고립되어가기 시작했다.
시대가 흘러갈수록 둘의 사이는 멀어져갔고 지금에 이르러선 빛과 그림자처럼 아예 양분되어버린 모양새에 가까웠다.
“둘을 다시 잇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음. 원대한 포부네요.”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 당장 아카데미 학생한테 장학금을 지원해주기도 했으니까.”
물론 단순히 학생 하나를 장학금 지원해주는 것과 아카데미 자체와 연결되는 건 다른 문제였지만. 이렇게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어차피 줄리에몽이 알아서 해줄 테니 나는 믿고 지원만 해주면 될 거다. 아마도.
“아무튼 앞으로는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환자 일부를 우리 재단에서 지원할 걸세.”
“네. 저희야 딱히 손해 보는 일도 아니니 반대할 이유가 없죠.”
“내 생각이네만 이런 복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꽤 효과가 있지 않겠나?”
나름 신경 써서 건넨 제안이었는데 막상 그녀는 시큰둥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적당히 대답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나름 자네의 병원을 생각해서 한 얘기인데 너무하는군.”
“아 그게 말이죠. 저 사실 이번에 퇴직하거든요.”
순간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몇 초의 딜레이가 이어졌다.
뒤늦게 알아차렸을 땐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진심인가?”
“이런 걸로 거짓말해서 뭐 하겠어요.”
“그럼 지금 하는 계약은?”
“제 공식적인 마지막 활동이에요. 나름 좋은 일을 한 것 같아서 뿌듯하네요.”
황당함이 밀려들었다.
아니 이런 건 진작에 좀 얘기해주던가.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폰도 없는 시대에 이렇게 직접 대면해서 소식을 전하는 게 일반적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도 계약하기 전에 제일 먼저 알려줬어야지.
아니면 줄리엣이랑 만났을 때 미리 얘기해놓던가.
인제 와서 그래봤자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얘기하는 꼴을 보니 이미 퇴사는 확정된 모양인데 되돌릴 수도 없을 테고 그럴 마음도 전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왜 퇴사하는 건가?”
“스카웃 제의가 왔거든요. 사실 이 병원도 제가 원장으로 있을 뿐이지 제가 차린 개인 병원도 아니고. 제대 후에 돈이나 벌려고 시작했던 거니까.”
이 병원의 대표가 길버트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군대에서 친분을 쌓았다고 했으니 이 병원에서 일한 것도 그와 관련이 있겠지.
중요한 건 대귀족이 운영하는 만큼 병원의 시설이나 규모 등이 매우 좋다는 것이다.
“아니. 여기보다 좋은 병원이 얼마나 있다고 옮긴단 말이냐. 대표원장 직함이라도 보장받았나?”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조앤.
“비밀이에요.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것 같으니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
화창한 평일 아침.
밤에는 괴도 주말에는 재단 이사로 변하지만 이 시간대의 나는 언제나 아카데미에 다니는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카데미를 향해 등굣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갈림길에서 마주치게 된 아는 얼굴.
다름 아닌 지나 그레인저였다.
어쩌다 보니 녀석의 집에 놀러 가게 되면서 우리가 같은 방향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마침 딱 오늘 이렇게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솔직히 첫 만남은 최악에 가까웠으나 이젠 나름 미운 정도 들면서 가까워져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이는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녀석을 향해 반갑게 인사했더니.
후다닥!
돌아오는 반응은 단순 무시를 넘어 도피였다.
명백히 나를 인지하고 인사조차 무시한 채 도망가버린 상황.
무슨 급한 일이 있었겠거니 이해하려 해도 이미 마음속에선 그녀가 날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사실만이 자리 잡아 착잡한 기분을 선사했다.
덕분에 아침부터 기운이 훅 떨어져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반에 들어섰다.
그러자 나와는 정반대로 아침부터 텐션이 하늘을 뚫을 듯 올라가 있는 달리아가 나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모리스!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오늘 아침에 새로운 보건 선생님이 출근했대!”
“이 타이밍에?”
새 학기가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분기가 바뀌는 달도 아닌 평범한 평일에 뜬금없이 새로운 교사가 뽑히다니.
“소문으로는 되게 예쁜 여선생님이래! 지금 속으로 기대했지?”
“음. 아니.”
“부끄러워하기는! 모리스도 어떤 분일지 궁금하지? 같이 구경하러 가자!”
“잠깐만. 난 간다고 얘기도 안 했···.”
내가 대답을 내뱉기도 전에 강제로 잡아끌고서 1층으로 내려가는 달리아.
얘도 보통은 아니구나.
그나저나 새로 온 교사 과목이 뭐라고 했지?
보건 선생님이라고 했던가?
···흠. 잠깐만.
왠지 불안감이 엄습하려던 찰나 때마침 1층 복도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하얀 가운을 입은 여인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내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음을 깨닫고 말았다.
또한 어째서 조앤이 조만간 알게 될 거라고 했는지도.
“어머. 1학년생들이지? 안녕?”
대체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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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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