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8
대체 이 여자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싱긋 웃는 조앤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생겼다.
설마 병원을 퇴직하고 스카웃 되었다던 곳이 아카데미였다는 건가?
어지간한 능력이 아니면 일반인이 마법 아카데미에 입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의사인지 실감이 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조앤이 내 정체를 알 리는 없다는 것.
만약 들켰다면 참 골치 아파졌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크로. 너무 넋 놓고 있는 거 아니야?”
옆에 있던 달리아의 속삭임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흘리는 조앤. 순간 소름이 돋아버렸다.
“후후. 이쪽의 남학생은 귀엽네. 그렇게 빤히 쳐다볼 정도로 나한테 홀딱 반해버린 거니?”
당신. 원래 이런 이미지였어? 재밌어서 참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매우 열받았다.
설마 내가 누군지 알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진심으로 그녀가 무서워질 것 같았다.
“마침 잘됐네. 두 사람 괜찮다면 나 좀 도와주지 않을래? 보건실에 짐을 옮겨야 하는데 혼자서는 힘들 것 같거든.”
아주 곤혹스러운 부탁이었다. 그녀와 더 붙어있다간 내 정신이 피로해질 것 같아서 얼른 도망치려 했는데.
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모두에게 착하고 상냥한 달리아가 덥석 부탁을 승낙해버렸다.
“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크로도 괜찮지?”
“···그래. 당연히 도와드려야지.”
차라리 시간이 별로 없었으면 그걸 핑계라도 댈 텐데 오늘따라 아침 일찍 눈이 떠져 등교도 빨리 한 탓에 조례까지 시간이 꽤 남은 상태였다.
결국 도망치지도 못하고 조앤의 짐을 함께 옮겨주었다. 보건실에 채워지는 짐 박스.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생각보다 금방 끝나 보건실에서 차를 얻어 마시게 되었다.
아무래도 달리아는 조앤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넘치는 친화력으로 말을 붙였다.
“그런데 원래 보건 선생님은 갑자기 나가신 거예요?”
“가족분이 위독하셔서 간병하느라 휴직하신 거야. 그분이 추천해주셔서 내가 들어올 수 있었던 거고.”
“아···. 그런 거였구나.”
나도 내심 궁금했던 내용인데 그런 사정이 숨겨져 있었던 거군.
그나저나 확실히 달리아 못지않게 조앤 역시 친화력이 상당했다. 두 사람이 아주 짝짜꿍이 잘 맞아 걸즈토크가 끝날 기미가 안 보일 정도.
결국 조례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내가 그녀들의 사이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제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얘기 너무 재밌었어요!”
우리가 인사하자 입가를 가리며 조신하게 웃는 그녀.
“어울려줘서 고마워. 쉬는 시간에 언제든 내려오렴.”
“정말요?”
“그럼. 어차피 난 수업도 없이 항상 여기 앉아있는 게 일이니까.”
가까스로 보건실을 벗어나 반으로 돌아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침부터 기가 쭉 빨리는 기분이네. 역시 조앤은 여러모로 위험한 여자였다.
“정말 좋으신 분 같지 않아?”
“어? 아 응. 그러게.”
“게다가 외모도 예쁘신데다 몸매까지 좋으시고.”
“와. 정말 대단하다.”
영혼 없이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던 와중 달리아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혹시 보건 선생님한테 반했어?”
“응. ···응?”
뒤늦게 그녀의 말뜻을 눈치채고 멍청하게 되물었다.
내 표정이 얼마나 망가졌으면 나를 보고서는 달리아의 애써 웃음을 참는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 여자한테 반하다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물론 달리아가 말한 대로 조앤이 외모도 나쁘지 않은데다 몸매도 성숙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성격도 그렇고 무엇보다 도박중독이라는 엄청난 페널티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막말로 그녀와 결혼하는 순간 어느 날 눈을 뜨니 하루아침에 재산이 탕진돼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저번에 보니까 나이에 대한 콤플렉스도 좀 있는 것 같고.
연상이 별로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학생인 나랑 비교하면 나이 차이가 상당할 테니 현실적으로도 이어지긴 힘들 수밖에 없다.
[원래 처음엔 다들 그렇게 시작하는 거다.]
‘불길한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될까 무섭네.
“반응 뭐야? 혹시 진짜 좋아하는 건 아니지? 율리아한테 이른다?”
나를 놀리는 데 맛을 들여버린 달리아는 반에 올라갈 때까지 계속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그나저나 거기에서 율리아 이름은 갑자기 왜 나오는 거니.
그렇게 반에 들어가니 아까는 보지 못했던 삼인방이 전부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중 율리아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짓다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왜 둘이 그렇게 꼭 붙어서 같이 들어와?”
딱히 붙어있진 않았는데. 달리아가 나를 놀리느라 평소보다 거리가 가까워졌던 모양이다.
그 짓궂은 장난기가 이번에도 발동되어버린 건지 나와 율리아를 번갈아 바라보다 씩 웃는 달리아.
“우리 사귀기로 했어.”
“쿨럭! 쿨럭!”
난데없는 핵폭탄 발언에 우리는 물론 주변에 있던 다른 아이들까지 슬쩍 나를 곁눈질하며 흥미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세 여자 사이에서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그중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레이첼이었다.
그녀는 분명 웃고 있는데 왠지 무서웠다. 그동안 사그라들었던 불량 여고생의 기질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하. 좋겠다? 신성한 아카데미에서 연애질이나 하고. 아주 달달하겠어? 응? 깨가 막 쏟아지겠네?”
가시로 쿡쿡 찌른다는 느낌이 들 만큼 날카롭고 신랄한 물음을 마구 던져댄다.
율리아는 반대로 싸늘한 무표정이 되어 얼굴에 음영이 드리웠다. 평소 상냥하던 그녀는 온데간데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랬구나···. 둘이 사귀기로 했구나···.”
별다른 말 없이 그렇게 중얼거리기만 하니 더 무섭다.
다행히 마지막 샤론은 겉보기에 평소와 똑같아 보였다. 원래 그랬듯이 조용하며 표정의 변화도 전혀 없었다. 그냥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시선이 살짝 부담스러울 뿐.
관찰 일기를 쓰려는 것도 아니고 반응을 더 지켜볼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너무 당황해서 잠시 굳어있던 것일 뿐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해명을 시도했다.
“진짜 믿는 건 아니지? 사실일 리가 없잖아!”
“헉.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부정할 만큼 내가 싫었던 거야···? 나는 그냥 잠깐 즐기는 용도였던 거구나···.”
“상황 더 이상하게 만들지 말고 너도 제대로 말해!”
아무리 장난을 친다 해도 정도를 지켜야지. 이러다간 변명할 새도 없이 사회적 쓰레기로 낙인찍혀 매장될 판이었다.
상황은 겨우 수습되었다.
“헤헤. 미안!”
뒤늦게 달리아가 전부 장난이었다고 말했을 때의 그 숨 막히는 분위기란···.
그녀의 평소 행실이 조금만 안 좋았더라면 이렇게 조용히 넘어가지도 못했으리라.
화를 가라앉히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율리아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고 한숨을 흘렸다.
“에휴. 달리아. 너는 가끔 너무 장난이 과한 것 같아.”
“이잉~ 미안해. 많이 화났어?”
애교로 넘어가려는 태도가 매우 괘씸하다.
더 괘씸한 것은 넘어갈 수밖에 없을 만큼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저게 바로 여자의 특권인가? 거뭇거뭇한 남정네가 저랬다간 바로 분노 수치가 2배로 펌핑되었을 텐데.
“그런데 있지. 혹시 오늘 보건 선생님 새로 온다는 얘기 들었어?”
그때 율리아가 공교롭게도 그런 주제를 던졌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신나서는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하는 달리아. 대체 텐션이 왜 떨어지질 않는지 혹시 무한 동력을 탑재한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신나게 떠들다 보니 자연스레 언급되는 날조된 내용.
“그러고 보니까 크로가 보건 선생님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즉시 내게로 쏟아지는 시선들. 이미 한번 당해놓고 또 똑같은 레퍼토리로 흘러가려는 거냐고.
“아니야. 그런 마음 없어.”
“에이! 이번에는 나도 농담 아니거든? 처음 선생님 보자마자 넋 놓고 얼굴 바라봤잖아! 아니야?”
그거야 거기서 조앤이 튀어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런 거고.
하지만 그건 사실대로 얘기할 수가 없는 내용이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 반응을 무언의 긍정이라 여긴 건지 율리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도 보러 갈래.”
“···응?”
“보건 선생님이 그렇게 예쁘시다며. 얼마나 예쁘시길래 입을 헤 벌리고 멍청하게 쳐다볼 정도인지 확인해야겠어.”
대체 내가 언제 그랬다는 건데. 이젠 그냥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왜곡된 현실만을 받아들이는 지경까지 도달한 모양이다.
“지금은 조례 시작할 시간이야.”
와중에 혼자서만 무덤덤한 샤론의 팩트 폭력에 율리아는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지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내게 선포했다.
“점심시간에 다 같이 가자. 크로도 빠지지 마.”
“···네.”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말았다.
절대 쫄아서 그런 건 아니다. 아무튼 아니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당..
요즘 몸이 좀 골골대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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