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8
세상이 멸망한다니.
난데없이 훅 커져 버린 스케일에 혹시 상대가 악질적인 농담을 던지고 있는 건지 순간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오퍼레이터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했기에 방금의 얘기가 진실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도공학 기술을 계속 사용하면 세상이 멸망한다.
다시 곱씹어 봐도 참 허무맹랑하며 황당한 얘기였다.
“그런 거라면 애초에 쓰지를 말아야 하는 거잖아요···?”
“맞는 말입니다. 그걸 위해서 학회가 존재하는 거니까요.”
얘기를 들을수록 더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다.
학회의 존재 이유가 마도공학 기술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고? 그럼 방금 내가 타고 온 열차는 뭔데?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이해합니다. 천천히 설명해드리죠.”
그렇게 마도공학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마도공학 기술의 원천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원천이요···? 마법이랑 과학을 합친 거 아닌가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원리를 더 자세히 파고들 필요가 있죠. 마도공학은 기계의 동력 장치를 이용해 주문자의 캐스팅을 생략하여 마법을 발동시킵니다. 즉 마법사가 관여하지 않고 스스로 발현되는 마법인 셈이죠.”
그런 것까지는 몰랐다. 애초에 그런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도 방금 처음 알았다.
마법은 비상식적인 힘이지만 비현실적인 힘은 아니다.
무슨 말장난이냐 싶어도 마법이란 힘 역시 아무런 대가 없이 뿅 하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마법이 발동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필수 요소가 존재한다.
마력(Mana)과 주문(Casting).
더 자세히 파고들자면 한도 끝도 없어지니 최대한 간략화시켜 나눴을 때의 기준이다.
결국 이 두 요소를 얼마나 잘 활용해 마법을 시전하느냐가 마법사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법사가 없이 스스로 발동하는 마법이란 비상식적인 걸 넘어 비현실적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수업 내용으로만 따져도 불가능해야 정상인 방법이란 뜻이다.
“그게 가능하다고요?”
“아니요. 불가능합니다. 그건 마법사인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겠죠.”
이제는 저 화법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일부러 헷갈리는 결론만 툭 내뱉은 다음에 이러쿵저러쿵 부연 설명을 덧붙이니 더 이해하기 어렵고 머리만 아팠다.
“태엽의 힘만으로는 주문을 발동시킬 수 없습니다. 현재의 과학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하죠. 어쩌면 몇백 년이 지나도 힘들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공했잖아요.”
“그렇기에 프랑켄 박사가 세기의 천재라 불리는 거죠. 다만 성공의 비결에는 그의 재능뿐만 아니라 한 가지 요소가 더 필요했습니다.”
더 이상은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벗어난 얘기처럼 들렸기에 괜히 머리 아프게 원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가 들려주는 얘기만을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오퍼레이터는 테이블에 무언가를 올려두었다.
그것은 조그마한 태엽 장치였다.
“마법을 발동시키기 위해선 태엽을 더 빠르고 많이 돌려야 했죠. 당신이라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겠습니까?”
“···태엽을 더 많이 설치하거나 성능이 좋게 개발하겠죠?”
“박사는 천천히 기술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빠르면서 위험한 길을 택했습니다. 금단의 영역에 손을 댄 것이죠.”
그렇게 말하며 장치의 스위치를 꾹 누르자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는 태엽 장치.
그러다 갑자기 비정상적인 속도로 빨라지며 태엽에서부터 마력이 선명히 새겨져 갔다.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된 순간 강렬한 위화감을 눈치챘다.
저것의 작동 원리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
“시간의 가속입니다.”
“···네?”
“태엽의 성능이 아니라 시간을 건드린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단 1초의 시간이지만 이 태엽은 하루가 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죠.”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진심을 담아 물었다.
“프랑켄 박사는 신인가요?”
“아니요. 그는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다만 그와 비슷한 존재에게 도움을 받긴 했죠. 하지만 시간을 다스리는 힘은 위험합니다. 그렇기에 마도공학 기술은 잘못 사용하면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죠.”
대체 스케일이 어디까지 커지려는 걸까. 지금이라도 전부 못 들은 걸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돌아갈 방법이 없구나. 하하.
“대체 누가 도와줬길래 시간을 막 주무른대요?”
“그게 당신이 원하던 질문의 답입니다. 우리가 죽여야 하는 소녀가 바로 시간의 권능을 지닌 초월자니까요.”
“······.”
이쯤에서 다시 정리해보자. 안 그러면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프랑켄 박사는 초월자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다스리는 능력을 이용해 마도공학 기술을 완성하였다.
하지만 그 기술은 세상을 멸망시킬 위험성을 지녔기에 학회는 초월자를 죽임으로 위험을 제거하려 한다.
요약하니까 더 허무맹랑한데. 이걸 진짜 믿으라고 얘기해준 건가?
“초월자라고 부르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 소녀는 인격이 없는 인형과 다름없습니다. 당신을 여기까지 안내해준 기계인형과 똑같은 존재이죠.”
“그럼 그냥 죽이면 되잖아요.”
“불가능합니다.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에겐 적의를 품는데 그녀는 이 세상에서 탄생한 모든 필멸자의 시간을 지배할 수 있으니까요.”
···개사기잖아. 그럼 무슨 수로 이겨?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소녀를 죽인다는 문제에 관해 양심과 도덕적인 문제만을 고민했는데 지금 들어보니까 그런 것들은 둘째치고 애초에 쓰러트릴 수조차 없는 존재이지 않은가.
“그럼 어떻게 죽인다는 건데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요. 그리고 당신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 열쇠입니다.”
“···제가요?”
개꿀잼 몰래카메라인가.
전투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내가 세계관 최강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초월자를 죽일 핵심 열쇠라고?
“말했듯이 그녀는 이 세상에서 태어난 모든 필멸자의 시간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예외이죠.”
“아···. 어?”
나는 이 세계에서 태어났다고 보기 힘들었다. 원작을 읽고 작중 엑스트라 등장인물에 빙의한 거니까 다른 세계 출신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
그런데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는 건데.
오싹 소름이 돋아 살짝 몸을 뒤로 빼며 눈치를 보았다.
“너무 놀랄 필요 없습니다. 본래 초월자는 당신의 존재를 대강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는 건 그쪽도 초월자라는 거예요?”
“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초월자라 해서 신과 같은 존재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정령 같은 느낌에 더 가깝죠.”
그렇다 해도 놀라운 건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정령 같은 존재면 호수의 여인처럼 자연에 파묻혀 있어야지 왜 이렇게 세련된 학회를 운영하는 거냐고.
그러다가 자연스레 이어져 떠오르는 추측 한 가지.
“혹시 기관장도···.”
“네. 감이 예리하시군요.”
왠지 수상하다 했다. 하긴 평범한 인간이 내 감지를 속일 수 있을 리가.
그럼 첫 만남 때 내 진짜 모습에 대해 언급한 것도 사실 변장이 아니라 빙의를 꿰뚫어 본 건가?
어우. 소름 돋아.
“당신은 소녀의 권능 앞에서 자유로울 겁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는다면 죽일 수 있겠죠.”
“···꼭 죽여야 하는 거죠?”
“그래야 세상이 안전해집니다. 물론 지금은 저희가 마도공학 기술을 통제하고 있으니 당장 세상이 멸망하지는 않겠지만 굳이 그런 위험을 남겨둘 필요는 없죠.”
그 소녀가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로봇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럼에도 꺼림칙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설명은 거의 다 된 것 같으니 슬슬 결론을 지을 때였다.
일단 아직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부터 전부 물어보기로 했다.
“그 소녀를 죽이면 마도공학은 쓰지 못하는 거네요?”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된 힘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이죠.”
“학회는 마도공학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없애는 게 목적이었던 거고요?”
“정확합니다.”
이해는 가는데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내 원래 목적 자체가 마도공학을 이용하려던 거였으니까.
“그래서 그 초월자는 지금 어디 있는데요?”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내미는 오퍼레이터.
지도인가 싶어서 받아드니 전혀 생뚱맞은 물건이었다.
“손거울?”
“지금 소녀는 그 안에 있습니다.”
“그게 뭔···. 잠깐만.”
불현듯 떠오르는 원작의 내용.
“아시는가 보군요. 거울 세계에 대해서.”
당연히 알고 있다. 원작에서 가장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배경이니까.
거울 세계는 쉽게 말해 원래 세상과 매우 비슷하지만 아주 살짝 다른 평행 세계 같은 느낌이라 보면 된다.
설마 여기서 거울 세계가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원작에서는 거울 세계를 통해 드래곤을 불러내려던 드라칸의 음모로 서로를 잇는 통로가 생겨났다는 설정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드라칸 녀석들 만악의 근원이잖아.
“이걸로 거울 세계로 갈 수 있다니. 어떻게 가능한 거예요?”
“그게 저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와···.”
초월자 개사기잖아.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하지 않나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만들어내질 않나.
“부탁에는 보답이 따라야겠죠. 듣자 하니 공간적 제약을 줄일 방법을 찾고 계신다 하셨나요. 제 능력이라면 도움이 될 겁니다.”
“···에?”
이거 아무래도 훨씬 더 대단한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진도가 안 나가는 것 같아서 조금 액셀을 밟겠습니당!
꽉 잡으세용! 부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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