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1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근거가 뒷받침돼야 해.’
‘하나만 더 찾으면 답이 보일 거야.’
샤론의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았다.
지금 내게 부족한 정보가 무엇인지. 만약 하나만 더 찾는다면 무슨 정보를 찾아야 하는지.
결국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죽여야 하는 소녀가 어떤 존재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즉 소녀에 대한 정보 그 자체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그걸 얻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인가?
오퍼레이터한테 묻는 것도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내가 원하는 정보만을 순순히 건네줄 거란 보장은 없었다.
가장 쉬우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따로 있었다.
남한테 물을 필요 없이 내가 직접 소녀를 만나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여태까지 나는 손거울을 사용하면 곧바로 소녀를 죽여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구도 그렇게 말한 적은 없었다.
오퍼레이터는 오히려 소녀가 본인을 위협하는 상대에게만 적의를 품고 싸운다고 했었다.
즉 내가 먼저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소녀가 나를 공격할 리도 없다는 뜻이다.
물론 그의 말을 100% 신뢰하긴 어렵지만 이것만큼은 절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만약 내가 그 말을 믿고 소녀의 앞에 무방비하게 다가갔다 죽어버리면 결국 학회로서도 손해일 뿐이니까.
그렇게 결론을 내리니 앞으로 해야 할 계획도 금방 정해졌다.
일단 거울 속 세계로 가서 소녀를 직접 만나 본다.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릴 필요 없이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좋아. 가자!’
어느덧 시계가 11시 59분을 가리킬 시점.
나는 손거울을 집어 들었다.
***
거울 세계로 향하는 과정은 마치 꿈에 빠져드는 것과 비슷했다.
딱히 특별한 무언가도 없이 정신을 차려 보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전혀 다른 풍경 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도 그러했다. 분명 내 마지막 기억은 침대에 누워 손거울을 집어 들던 때였는데 어느샌가 전혀 다른 공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런던?”
나도 모르게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올 만큼 이곳은 런던의 밤거리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 살피면 전혀 다른 공간임을 눈치챌 수 있다.
애초에 나는 런던에 사는 시민이니 당연히 알아차릴 수 있지만 만약 런던의 구체적인 모습보다는 대략적인 이미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깜빡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소녀는 어디 있는 거지?
오퍼레이터는 그냥 손거울만 사용하면 바로 소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거라고 했는데. 막상 마주한 거울 속 런던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소녀의 행적을 찾아 헤매던 찰나 저 위쪽 시계탑에서 희미하게 누군가의 인영을 발견하였다.
“아!”
그러나 얄궂게도 소녀는 시계탑 내부로 들어가 버리며 모습을 감췄다.
즉시 뒤쫓아 따라가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뭐야? 왜 안 돼?”
설마 거울 세계에서는 마법 사용이 불가능한 건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일단 어쩔 수 없이 맨몸으로라도 시계탑을 오르는 수밖에.
가까이 다가가니 어째선지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훨씬 커 보인다. 거의 빌딩 수준으로 느껴지는 건 단순한 내 착각일 뿐인 걸까?
시계탑의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이 정상적인 공간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여러모로 형이상학적인 풍경이었다.
건물 내부의 풍경을 짐작할 수조차 없는 무한히 펼쳐진 공간과 거대한 크기의 돌아가는 태엽들. 딸깍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와 허공에 수놓아진 계단들.
분위기에 압도당해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꾹 참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갈수록 사이사이의 빈틈이 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그대로 죽겠지? 분명 죽고 말 것이다.
최대한 조심하며 한 계단씩 오르니 최상층까지 오르는 데 한세월이 걸렸다. 그래도 마침내 도달한 꼭대기 층은 또 다른 의미로 장관이었다.
바깥에서 보일 거대한 시계의 내부 구조가 훤히 보였다. 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수많은 태엽 장치가 정교하게 배치되어 맞물리며 돌아가는 모습은 예술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시계를 관리하기 위한 공간인지 마치 무대처럼 넓게 펼쳐진 공간 한가운데.
한 소녀가 마주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신비로운 인상의 소녀였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땅에 닿을 정도로 길게 기른 헤어 스타일.
그런 머리보다 더 하얗다고 생각될 만큼 백옥처럼 창백한 피부.
길고 하얀 속눈썹에 가려진 눈동자조차 하얀색이었다.
흰 원피스 차림의 소녀는 그야말로 백색의 소녀였다.
마치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색상을 모두 빼앗겨 흰색밖에 남지 않은 듯한 느낌.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분명 오퍼레이터가 말했던 그 소녀가 분명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상대방의 행동을 살폈다. 하지만 그녀는 별다른 반응 없이 가만히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진짜 인형인 건가?
아니 분명 아까 시계탑 바깥에 있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었다. 적어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일 것이다.
일단 상대가 나를 적대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뒤 소녀와 소통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크흠. 그 안녕···?”
하지만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말을 못 하는 거라면 정말 인격이 없는 걸지도. 약간의 안도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던 찰나 소녀가 난데없이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우아악!”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 비명을 내질렀다. 바로 뒤에는 허공 계단이 있었다. 잘못했으면 빈틈으로 떨어져 그대로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식겁하며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 틈에 코앞까지 다가와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소녀.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에 살짝 섬칫하다 곧 그녀의 콧바람이 내 얼굴에 닿는 감각을 느끼고 혼란에 빠졌다.
사람처럼 숨을 쉬면서도 막상 표정에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소녀.
겉보기엔 사람 같으면서도 도무지 사람 같지 않은 소녀.
더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안녕!”
“···안녕?”
돌아온 대답에 흠칫 놀랐다.
그러다 소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사람인···거야?”
“사람인···거야?”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내 이름은 크로야. 너는?”
“내 이름은 크로야. 너는?”
내 말을 따라 하고 있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히.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눈높이에 맞춰 시선을 들어 올리는 소녀. 자꾸 시선을 빤히 맞추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이건 뜻밖의 난관이었다. 그냥 한번 보고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작 어떻게 사람인지를 구별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은 진지하게 생각해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설마 이렇게 말을 똑같이 따라 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내가 고민에 잠겨 넓은 복도를 서성이자 그녀도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멈춰 서면 그녀도 따라 멈춰서서는 질리지도 않는지 내 얼굴만 빤히 바라보았다.
···이건 그냥 애완동물이잖아.
말까지 따라 하니까 영락없는 앵무새 아닌가?
소녀를 바라보다 문득 의문점이 생겼다.
사람이랑 동물이 뭐가 다르지? 결국 지능의 차이일 뿐 살아 숨 쉬는 생명이라는 점은 똑같잖아.
당장 눈앞의 소녀는 겉모습만 봤을 땐 명백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말을 못 한다고 해서 소녀를 사람이 아니라고 봐야 할 근거가 되나?
오퍼레이터는 그녀에게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과 다름없다고 그러니 소녀를 죽이는 것도 아무 문제 없는 행위라 말했었다.
그럼 인격이란 뭘까? 지금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뒤를 졸졸 따라오는 건 인격에 의한 선택인 걸까 아니면 정해진 시스템에 따른 행동에 불과한 걸까.
“너는 대체 뭐야?”
“너는 대체 뭐야?”
소녀의 목소리는 가늘고 고왔다. 다만 그 속에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동물 또한 감정은 존재한다. 강아지는 산책을 시켜주거나 간식을 주면 기뻐한다. 고양이는 자기를 귀찮게 하면 성질을 낸다. 하지만 소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위협을 가하면 적의를 품는다고 했던가. 그건 감정에 의해서일까 아니면 누군가 정해둔 방어 시스템일 뿐일까.
이대로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냥 소녀가 사람이 아니라고 합리화하면서 죽인다면? 나는 무조건 후회할 것이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빠져 평생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수도 있다.
폐건물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조차 안 하고 불을 질러버리는 것과 같다.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근거가 뒷받침돼야 해. 설령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도 하나라도 단서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게 맞아.’
샤론의 말이 옳다. 아무리 급하다 해도 지금 바로 선택을 내려선 안 된다.
적어도 백색의 소녀가 사람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결론을 지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답을 내렸다.
사람은 학습의 동물이다.
아무리 강아지한테 글자를 가르쳐줘도 강아지가 말을 할 수는 없다.
앵무새가 말을 따라 할 수는 있어도 책을 읽지는 못한다.
소녀를 가르치면 된다. 만약 그녀가 정말 사람이라면 뚜렷한 변화를 보이겠지.
어차피 아직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 시간은 충분하니 그동안 소녀를 가르치며 이건 사람일 수밖에 없다 싶은 증거를 찾아보는 것이다.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결론지어야겠지만.
“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려나.”
“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려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바로…!
글을 읽고 추천을 누른다는 것이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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