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3
하양이의 교육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실 교육보다 훈련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나 싶지만.
훈련의 성과를 체크하기 위해 간략하게 배운 내용들을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나 스스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천천히 말했다.
“내 이름은?”
“크로.”
좋아. 그다음으로 이번에는 반대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이름은?”
“하양.”
“좋아!”
이름을 완벽히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 무조건 내 말만 따라 하던 때와 비교하면 크나큰 발전이었다.
물론 아직 한참 멀긴 했다. 반대로 말하면 이제야 가장 기초적인 한두 가지만 알려준 셈이었으니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하양이가 내 명령은 곧잘 이해하고 따르지만 본인 스스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쉽게 말해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욕구라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초콜릿에는 관심을 보이는 편이지만 그것도 본인이 먼저 달라고 요구하기보단 명령이라는 형식으로 내가 건네주길 기다리는 쪽에 가까웠다.
또한 교육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하양이는 생명으로서 필수라 불리는 욕구에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곳의 시간이 멈춰있다지만 생체 리듬이 멈추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피로를 해결하려면 잠을 자야 하고 물과 음식을 먹으면 배출해야만 한다.
하지만 하양이는 달랐다. 잠을 자지도 않고 노폐물을 배출하지도 않는다.
초콜릿을 먹는 것도 어디까지나 맛있어서일 뿐 음식을 안 먹는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그녀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중요한 건 인격이 존재하는 지성체인지를 판별하는 거겠지.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단순히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건 로봇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감정을 지니고 본인의 자유 의지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냐의 여부이리라.
참 어려운 문제였다. 이것만 해도 참 막막하다 싶은데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해서 하양이를 사람이라 결론 내리면 그때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듯 생각할수록 늘어만 가는 난제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번에 다 해결하려 해봤자 더 엉키기만 할 테니 차근차근 눈앞에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수밖에. 지금 당장은 하양이의 교육에 더 집중할 때였다.
그렇지만 쉬지도 않고 한번에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곳에 있는 동안은 현실 세계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내 정신력이 버텨주질 못한다.
똑같은 풍경에 제대로 얘기조차 나눌 수 없는 하양이와 단둘이서만 있다 보면 지금 내가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던 건지 혹시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 꿈은 아닐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손거울을 쥐고서 현실로 돌아오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후우···.”
하양이를 혼자 내버려 두고 왔다는 사실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아마 거울 세계 또한 이쪽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멈춰있는 상태이지 않을까 싶다. 아까 초콜릿을 가져오느라 잠시 나갔다 올 때 하양이는 똑같은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었으니.
“내일 다시 가야겠다.”
매일 저녁 하루에 한 번씩 거울 세계로 들어가 하양이의 교육을 진행할 생각이다.
하루 만에 전부 끝내겠다고 무리하다간 내 정신이 먼저 망가질지도 모른다. 뭐든지 적당히 조절하면서 해야 하는 법.
그러니까 이제 자자. 시간은 거울 세계에 들어간 이후로 1분밖에 안 흘렀는데 금방이라도 기절하듯 잠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
“···쟤는 뭔데 저기 서 있냐?”
레이첼은 반 밖의 복도에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불만스러운 어조로 투덜거렸다.
그 원인이 누구 때문인지 알고 있는 나로선 뭐라 말하기도 애매해 일부러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런 내 태도에서 무언가를 눈치챈 것인지 레이첼이 따가운 눈초리를 쏘아 보냈다.
“설마 또 너 만나러 온 거야?”
“하하···. 글쎄···?”
말끝을 흐리긴 했으나 그레인저의 목적이 나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레이첼은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율리아와 샤론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크로. 혹시 협박 같은 거 받아서 그런 건 아니지···?”
율리아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지나의 이미지가 얼마나 바닥까지 추락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긴 아무리 사고라고 해도 우리를 죽일 뻔했던 전적이 있는데 경계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려나.
그렇지만 그녀들도 지나의 속사정을 듣게 된다면 태도가 바뀌지 않을까. 어찌 됐든 심성은 여리고 착한 아이들이니까.
“괜찮아. 생각보다 나쁜 애는 아니더라고.”
“하. 그럼 대체 얼마나 대놓고 나빠야 하냐? 뭐 살인이라도 저질러야 하나?”
이것 참 난감한 상황이다. 나름 실드를 쳐주고 싶어도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민감한 개인 문제를 퍼트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무작정 ‘사실은 불쌍한 애였어’라고 말하는 것도 무례한 방식이니까.
“야. 샤론! 너도 뭐라고 한마디 좀 해봐. 얘가 그래도 네 말은 들어 먹잖아.”
샤론은 언제나처럼 덤덤한 무표정으로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얘기했다.
“친구를 사귀는 건 본인의 자유야.”
“아니 그 친구가 우리를 죽이려 했던 놈이라니까!?”
“사고였잖아.”
“하. 쌍으로 답답해 뒤지겠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인상을 쓰던 레이첼은 이내 뭘 생각하는지 예측하기 힘든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흠···.”
“왜? 왜 그러는데···?”
왠지 불안함이 느껴져 물어봐도 대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그러다 대뜸 율리아를 보며 폭탄 발언을 내뱉어버리는 레이첼.
“진짜 남자 좋아하는 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또 시작된 무지성 억까에 격렬히 반발하였지만 어째선지 율리아도 턱을 짚으며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확실히 그레인저는 남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쁘장한 외모이긴 해···.”
“아니 여자만큼 예쁜 남자를 좋아할 바엔 그냥 예쁜 여자를 좋아하겠지!”
“그거야 모르지. 네가 특이 취향이라 그런 쪽에 반응하는 걸지도.”
답답해 미쳐버리겠다. 이걸 그냥 확 그레인저가 여자란 사실을 밝혀버릴까 순간 고민할 만큼 억울함이 차올랐다. 물론 진실을 알려버리면 그녀들의 적개심은 더 커지겠지만 차라리 게이로 몰리는 것보단 그게 더 나았다.
오해를 푸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지난번 사건의 취조로 인한 후속 사건을 처리하는 중이라는 변명이 겨우 먹혀든 덕분이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이 아니긴 했다.
지나의 어머님을 만나 뵙게 된 이유가 그 일로 인해서였으니. 별다른 생각 없이 향했던 녀석의 집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일어나 사정이 좀 복잡하게 된 것일 뿐.
어쨌든 내게 쏟아지는 의심의 눈초리를 겨우 뿌리치고 복도로 나가자 나를 발견한 지나는 살짝 밝은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뾰로통하게 틱틱대기 시작했다.
“너네 반은 뭐 이리 늦게 마치냐?”
“일부러 기다리고 있던 거야?”
“기다리긴 무슨···. 그냥 할 거 없어서 잠시 서 있었던 것뿐이거든?”
하하. 그렇구나. 할 게 없어서 완전 반대편에 있는 우리 반까지 와서 복도에 계속 기대서서 기다렸던 거구나. 변명을 할 거면 좀 그럴듯하게 둘러댈 수 없겠니?
이 녀석이 나를 기다렸던 이유야 뻔할 뻔 자였다.
“그럼 너희 집에 갈까?”
“···야.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오해하지 마라. 나는 싫은데 엄마가 자꾸 너 한번 데려오라고 잔소리해서 그러는 거니까.”
“네. 네. 당연히 그러시겠죠. 지나 씨 말이 다 맞습죠.”
퍽!
내 다리를 살짝 깐 그녀는 씩씩대며 작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새끼야. 누가 아카데미에서 함부로 이름 부르래?”
“어차피 아무도 안 들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먼저 부탁하던 게 누구더라?”
“이···! 그건 단둘이 있을 때 하란 거고! 여기선 하지 마!”
뭐라고 해야 할까. 처음 봤을 때랑 이미지가 너무 달라진 느낌이다.
이런 모습은 원작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아마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진정한 속내일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이 녀석도 제법 귀여운 면이 있구나 싶어 살짝 실소가 삐져나왔다.
그걸 단박에 캐치해낸 지나는 눈을 샐쭉하게 뜨며 물었다.
“뭐냐? 왜 쪼개냐?”
“됐으니까 얼른 가자. 나 오늘은 일이 있어서 오래 못 있어.”
“흥. 누가 오래 있으래? 1초라도 빨리 사라져주면 오히려 나야 고맙지. 잘 됐네!”
콧바람을 내쉬며 씩씩 앞서 내려가는 지나.
설마 고작 이 정도로 삐진 건 아니겠지?
“야. 같이 가!”
무슨 애도 아니고. 참 유치하다 싶으면서도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지우고서 녀석을 뒤쫓아 따라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뮹뮹 저녁을 못먹어서 야식으로 떡볶이를 먺는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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