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5
“자 이건 뭘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 손에 집어 든 물건을 다른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내 손짓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양이가 대답했다.
“초콜릿.”
“좋아. 먹어도 돼.”
“냠.”
우물우물. 참 맛있게도 먹는 하양이의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교육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먼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잘 배우고 있는 것 같으니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아직 말을 가르치는 단계는 아니었다. 방금의 의사소통도 사실은 말보다 손가락질이라는 행동을 통해 얘기한 것에 가까웠으니.
기초적인 단어. 이를테면 크로나 하양이와 같은 서로의 이름이나 ‘손’ ‘먹어’ ‘기다려’ 같은 기본 명령어 정도만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초콜릿까지 더하면 완벽하네.
쉽게 말해 지금의 하양이는 조금 멍청한 강아지와 비슷한 단계였다.
간단한 명령이나 의사소통은 알아듣지만 똑똑한 개들만 가능한 복잡한 교감은 아직 시기상조였다.
이래선 언제 어엿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지 막막한데.
얼른 하양이를 가르쳐야 직접 물어보고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단 말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찰나 어느새 초콜릿을 다 먹었는지 우물거리기를 끝내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하양이.
“응? 왜 그래?”
뭔가를 원하는 눈빛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도 계속 붙어있다 보니 대충 표정만 봐도 뭘 원하는 건지 짐작이 가능해졌다고 할까.
설마 먹자마자 바로 초콜릿을 또 달라고 하는 건가? 하양이의 속내를 알아내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던 도중 곧 원하는 게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자. 이제 됐지?”
쓰다듬어주는 걸 깜빡했네. 원래 명령 후에 보상의 명목으로 초콜릿과 함께 쓰다듬어주며 칭찬해주던 것이 습관화되어 아예 세트로 묶이고 말았다.
덕분에 이제는 명령이 아니라 그냥 초콜릿을 줄 때도 반드시 쓰다듬어줄 때까지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다.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받아들이는 하양이의 모습은 영락없는 고양이 같았다.
귀여운 반응에 피식 웃기도 잠시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이어져야 할지 떠올리니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가장 큰 문제는 하양이가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분명 적게나마 몇 가지 단어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특히 내 이름은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도 나를 먼저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강아지와 아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성인과 비교하면 지능이 덜 발달해 복잡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강아지는 말을 하지 못하는 반면 아기는 옹알이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옹알이로 엄마 엄마 하다가 서서히 복잡한 단어들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아기가 평균보다 말을 떼는 속도가 느리다면 부모는 애간장이 탈 수밖에 없다.
말문이 트여 부모와 소통을 나눠야 제대로 학습하며 성장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어찌 보면 지금의 하양이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퇴화한 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도 일단 전부 따라 하고 봤었으니.
막상 교육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지나치게 과묵해져 버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나는 비장의 무기를 챙겨왔다.
“하양아. 이건 책이라는 거야.”
이름하여 그림책 되시겠다.
원래는 동화책을 챙겨 오려 했었지만 생각해보니 하양이는 글은 물론이고 그림이라는 개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아무리 재밌는 동화를 들려준다 한들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그림책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솔직히 하양이가 평범한 아기가 아니다 보니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시도해봐서 나쁠 건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은 어딘가 미묘했다.
“이건 참새야. 짹짹.”
“······.”
참새 그림을 보고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하양이.
“해님이네. 음···.”
태양의 그림을 보며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난감해졌다.
그렇다. 이곳 거울 세계는 아무런 생명도 없는 곳.
시간조차 흐르지 않아 평생 밤만 계속되는 곳.
현실 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하던 요소들이 이곳에 사는 하양이에겐 단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판타지적인 존재나 다름없는 것이다.
자신이 실제로 보고 느낀 것을 알려줘도 모자랄 판에 이해하지 못할 개념을 그림 한 장으로 가르치려 하니 제대로 진행이 될 리가 없었다.
이런 당연한 것도 생각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 그림책을 덮으려 하던 찰나.
여태껏 아무 반응도 없던 하양이가 처음으로 살짝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그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우연히 넘긴 페이지에 그려져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시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담아 그림 수업을 이어갔다.
“이건 시계야. 째깍째깍.”
그림을 빤히 쳐다보던 하양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어딘가로 달려갔다.
화들짝 놀라 황급히 뒤따라가자 시계탑 최상층의 밖으로 나와 거대한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 소녀.
그러고는 내가 초콜릿을 가리키던 것처럼 커다란 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맞아. 그게 시계야.”
거울 세계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시계는 그중에서도 하양이가 직접 살던 집의 일부인 만큼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으리라.
아니 어쩌면 그게 끝이 아닐 수도.
하양이는 시간의 초월자다. 또한 그녀가 머무르는 이 시계탑은 내부 모습으로 보았을 때 분명 평범하지 않은 장소였다. 눈앞의 거대한 시계에도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시계를 멍하니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언젠가는 이 거울 세계에도 시간이 흐를 날이 올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양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양이도 결국 신이 아닌 이상 영원히 살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초월자는 영원히 살 수 있나? 사실 초월자라는 게 뭔지도 잘 모르니 혼자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리도 없었지만.
그냥 막연히 하양이한테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듯싶다.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냥 답답한 상태로 지내야 하는 건가.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여신님은 안 되고 오퍼레이터나 기관장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것 같지도 않고.
다른 나머지는 초월자라는 존재 자체를 모를 확률이 높은데.
‘잠깐만···.’
그러고 보니 한 명이 더 있긴 했다.
과연 그녀가 내 부탁을 순순히 들어줄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앞선 선택지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좋아. 한번 해보자.
***
설마 살아생전에 이곳을 다시 찾아올 줄이야.
이 호수 속에 맡겨둔 물건이 물건인지라 늙어 죽을 때까지 이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뭐 어차피 보관 기간은 아직 한참 남았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초월자의 시간 개념이 인간과는 사뭇 다른 덕분에 적어도 내 10대손 정도 내려오기 전까지는 괜찮은 수준이니까.
지금 이렇게 생각해보니 초월자도 그냥 신처럼 불멸자인 거 아니야?
상당히 그럴듯한 추론을 떠올리던 찰나 호수의 가운데로부터 잔잔한 물결이 시작되더니 이내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의 여인. 이름만 들으면 뭐 그리 대단한 존재인가 싶어도 그녀가 얽힌 이야기들을 나열하기 시작하면 어지간한 영웅은 명함도 못 내민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나 아서왕 전설.
그 유명한 엑스칼리버를 아서왕에게 건네준 본 주인이 바로 그녀였다.
“음. 네놈은···. 벌써 반납 기간이 되었느냐!? 좋다! 얼른 가져가거라!”
“아니에요! 얼른 집어넣으세요!”
호수에서 튀어나와 나를 보자마자 천사의 나팔을 냅다 던지려던 그녀를 겨우 말리고 진정시켰다.
아무리 초월자라 할지라도 요한의 묵시록을 부르는 열쇠인 천사의 나팔은 가지고 있기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하기야 세계 멸망의 스케일이니 당연한 건가.
다시 나팔을 호수에 집어넣은 그녀는 툴툴대며 용건을 물었다.
“다시 돌려받으러 온 것도 아니면 무슨 낯짝으로 뻔뻔히 찾아왔느냐? 우매한 인간 녀석아.”
“정령님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내 대답을 듣고서는 콧방귀를 끼는 그녀.
“하. 내가 부탁 한번 들어주니 만만하게 보이나 보지? 네놈의 시시콜콜한 문답 따위에 어울려줄 만큼 이 몸이 자비로워 보이더냐?”
초월자답게 참 오만하기 그지없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날 때도 이런 모습이었나? 왠지 기억 속에 남아있는 호수의 여인은 훨씬 어리벙벙한 모습이었는데.
[비비안. 내 아이한테 너무 날을 세우지 않으면 좋겠구나.]
“히익! 여 여신님!? 아직도 그 놈팡이···. 아니 도련님 곁에 계셨어요?!”
한순간에 놈팡이에서 도련님으로 신분이 격상했다.
전에도 느꼈던 건데 둘이 대체 무슨 사이길래 저렇게까지 극 저자세가 되어버리는 걸까.
그나저나 이름이 비비안이었구나. 예전에도 한 번 들었던 것 같은 낯익은 이름이었다.
다음에 또 찾아올지도 모르니 기억해둬야지.
적절한 타이밍에 나와준 여신님의 어시스트로 비비안은 순식간에 사근사근해졌다.
“그래. 우리 도련님께서는 무슨 볼일이니?”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녀에게 물었다.
“초월자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나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즘 글을 쓰고 나면 자꾸 손목이 아프네용..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