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4
상황이 꽤 난처하게 됐다.
‘설마 조앤이 여기서 나타날 줄은···.’
대체 당신이 왜 여기 있냐고 따지고 싶지만 그랬다간 본인 스스로 정체를 자백하는 꼴이다 보니 겨우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꾹 억눌렀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당장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정체를 폭로해버리겠다는 협박에 기겁하며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뤼팽과 레이븐 사이의 연결점을 찾아냈다고?
그 어벙하던 조앤이 어떻게?
천하의 줄리엣조차 모르는 사실이다. 뤼팽을 의심하는 느낌은 있어도 괴도와의 접점을 발견해내지는 못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냥 단순한 우연? 아무 근거도 없는 망상?
아니 그렇다기엔 그녀의 태도가 너무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뭐가 됐든 지금 당장은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의문은 잠시 뒤로 미뤄두는 수밖에.
오랜만에 가까이서 마주하게 된 셜록. 아는 지인과 닮았다는 사실은 둘째치고 역시 속으로 감탄할 만큼 출중한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흠. 직업의 특징을 제외하고서 단순히 사람만 놓고 보면 내가 생각하던 이상형에 제일 가깝지 않을까.
물론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부질 없는 잡생각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나랑 싸울 생각이야? 자랑은 아니지만 나 집행자들도 전부 이기고 왔는데?”
줄곧 부지런히 보석을 털었던 결실이라고 해야 할지 이미 내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어지간한 상대는 가뿐히 이길 정도가 되었다. 특히 지난번에 환상 세계에서 리퍼를 상대했던 전투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지금이라면 1학년 최강자인 지나도 내가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당연히 셜록도 내 상대가 될 수는 없으리라. 그녀가 샤론이 맞다면 아무리 실력을 숨기고 있어봤자 지나보다는 약할 테니까.
“자만하기엔 아직 이를 텐데.”
셜록은 조금도 겁먹은 기색 없이 덤덤하게 권총을 꺼내 들었다.
정말로 싸울 작정인가 보네. 그러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상대해줘야겠다.
굳이 전력을 다할 필요까지는 없을 테고 적당히 맞춰주면 되겠지.
탕!!
총구가 불을 뿜으며 탄환이 내게로 날아왔다.
별다른 위기감도 느끼지 않고 가볍게 흘려내자 총알은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경로를 뒤집어 내게 다시금 쏘아졌다.
이 패턴이야 이미 예상했다. 지난번에 한 번 당할 뻔했었으니까.
그때는 진짜 죽는 줄 알고 식겁했었지만.
카드를 휘리릭 날려 총알을 반으로 베어냈다. 그와 동시에 날아간 카드에서 빛이 뿜어나오며 마법이 발동됐다.
카드 문양인 하트가 땅에 새겨지더니 마치 결계처럼 주변 공간을 둘러막기 시작했다.
“어?”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는 셜록과 당황해하는 조앤.
나는 그 둘을 보고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다치지는 않을 거야.”
그 대신 상당히 특이한 마법이긴 하다. 실제로 써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잘 먹혀들려나?
분홍색의 장막이 점점 진해져 갈수록 마법의 효과도 차츰 강해져 갔다.
그러자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조앤의 상태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넋을 놓은 것처럼 잠시 멍하니 있던 그녀는 어느샌가 눈동자에 선명한 하트가 생겨나 있었다.
“셔 셜록···. 나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세상에. 이런 흥미진진한 광경이 또 있을까?
팝콘이 있었다면 당장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구경했을 텐데.
사실 조앤이야 평소와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그랬고 진짜 하이라이트는 셜록의 반응이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셜록이 어떤 모습일지 감상하였다.
“시답잖은 장난질은 그만둬.”
“···음. 조금 실망이네.”
혹시나 했는데 설마 아무렇지도 않을 줄이야. 초월적인 정신력으로 버텨낸 거라면 박수를 쳐주겠으나 그냥 아예 마법의 효과가 없는 모양이다.
내가 사용한 하트 마법은 짐작할 수 있듯이 매혹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만능은 아니다. 발동 조건이 워낙 까다로워 실전에서 사용하기란 꽤 힘든 마법이니까.
일단 시전자 즉 나한테 반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하트 장막 안에 시전자를 제외한 두 사람이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다. 즉 3명 이상부터는 효과가 없다.
게다가 마법을 사용한다고 무작정 사랑에 빠지는 것도 아니다.
정확한 효과는 서로의 호감도를 증폭시켜주는 것. 즉 애초부터 상대한테 호감이 있지 않다면 전혀 효과가 없다.
심지어 하트 안에 오래 있을수록 효과가 강해지는데 정작 하트 장막은 보기에만 결계처럼 보일 뿐 이동을 가로막을 수도 없기 때문에 그냥 제 발로 나가면 끝이다.
한마디로 단점투성이에 그냥 재미로 사용할 법한 마법에 불과하다.
애초에 사람의 감정을 조종한다는 것이 쉬우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만.
“흠.”
조앤은 예상대로 매혹에 빠졌지만 셜록은 완전 멀쩡하다.
호감이 아예 없어서인가 싶었으나 그건 아닐 것이다. 굳이 이성적 호감뿐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느끼는 호감이어도 증폭 조건으로는 충분하니까.
그보다는 아마 저 빛나는 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눈동자에 분홍색 하트가 새겨지려나 싶다가도 금세 초록색 눈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 말이다.
“뭐 어쩔 수 없지.”
마법을 취소했다. 이게 마력 잡아먹는 하마 수준이라 효과도 없는데 계속 유지하는 건 낭비였다.
“···응? 방금 뭐였지? 뭔가 되게 콩닥콩닥했는데.”
하트가 사라지자마자 원래대로 돌아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조앤.
두 여인의 금지된 사랑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었던 만큼 아쉬움이 남았다.
“진지하게 싸우는 게 좋을 거야.”
셜록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초록색 눈동자로 노려보았다.
그러자 눈에서 특이한 문양이 번뜩이더니 그대로 내 몸 정중앙에도 똑같은 문양이 초록빛 마크로 새겨졌다.
“어라?”
이건 처음 보는 마법인데.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기도 잠시 셜록이 다시 한번 권총을 내게 겨누었다.
탕!
이번에도 한 발의 탄환을 쏘는 그녀.
아까와 똑같이 막으면 된다는 생각에 카드를 던졌지만.
“···에?”
카드는 허무하게 총알을 통과해 땅에 박혀버렸다.
나는 당황해 다른 방어 수단을 황급히 꺼내 들었다.
카드뿐만 아니라 모자 망토 비둘기 그 밖의 온갖 것들을 꺼내도 상황은 똑같았다.
탄환은 마치 홀로그램이라도 된다는 듯이 모든 물체를 통과해 내게 맹렬히 날아왔다.
마지막 수단으로 직접 피해 보려 했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유도탄 기능까지 탑재되어 있는지 집요하게 나를 따라왔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손바닥으로 궤적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총알은 그마저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내 팔마저 통과해 가슴에 새겨진 문양을 향해 돌진했다.
수웅-.
“···뭐야?”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눈을 깜빡였다. 총알을 맞았음에도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해명을 요구하듯 셜록을 빤히 바라보자 그녀는 친절하게도 대답해주었다.
“삼격 필살. 앞으로 두 번만 더 맞으면 너는 죽어.”
진심인가? 말하는 걸 보니 농담은 아닌 거 같은데.
“세 번만 맞으면 반드시 즉살. 나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지는 않아서 그동안 쓰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봐주지 않아.”
“···하하. 이건 조금 위험하네.”
“레이븐. 지금이라도 순순히 항복해.”
저런 개사기 마법이 존재할 줄이야.
언뜻 들으면 살짝 오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사람은 총알 한 방만 제대로 맞아도 죽으니까. 굳이 세 번이나 쏴야 죽는 마법 따위 효율 제로처럼 느껴지니까.
하지만 그 효과가 반드시 죽는 ‘즉사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온갖 괴수들이 판치는 이 세계관에서 단 세 방으로 적을 확실히 죽인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었다.
심지어 총알을 막을 방법이 없잖아. 막으려 하면 전부 통과하고 피하려 하면 유도로 끝까지 따라오는데 어쩌라는 건데.
진정해. 침착하게 생각하자.
저런 압도적인 성능의 마법에 단점이 없을 리 만무하다. 당장 내가 직전에 사용한 하트 마법만 하더라도 더럽게 까다로운 조건이 붙지 않았던가.
분명 파훼법이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내야만 한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됐구나.”
탕!!
셜록이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저걸 맞아버리면 남은 기회는 단 한 번밖에 없는데. 눈치를 보니 셜록은 나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그거야 모르는 법이다. 적의 자비에 목숨을 배팅할 수는 없지 않은가.
뭐라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당장 총알은 내게 날아오고 있는데 한가하게 작전 구상에 잠겨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최소한 돌파구를 떠올릴 찰나의 시간이라도 주어졌더라면.
‘잠깐.’
그런 거라면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이 상황을 타개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간을 벌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총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혹시 몰라 비상용으로 챙겨왔던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비비안한테 얘기 듣기 전까지는 안 돌아가려 했는데···!!’
지금은 상황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손거울을 꽉 쥔 채 눈을 지그시 감고 하양이가 있을 거울 세계를 떠올렸다.
‘제발!’
잠시 후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한밤의 시계탑 앞 광장으로 이동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세번 맞으면 죽는 거에용!
탕! 탕!
벌써 두번 맞았어용!
특별히 마지막 한발은 봐주도록 할게용..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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