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6
‘이것까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셜록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삼격 필살. 마법을 발동시켜 상대에게 표식을 새긴 뒤 공격을 3번 명중시키면 대상을 즉사시키는 사기적인 마법. 심지어 탄환을 저지하거나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에 당하는 상대로선 어떻게 대응할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 마법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법에 당한 적은 반드시 죽기 때문에.
적당히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다. 마법을 도중에 중단할 수도 없다.
이 마법이 시전된 이상 선택지는 단둘뿐이다.
삼격을 맞아 상대가 죽거나 그 전에 시전자인 자신이 죽거나.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 마법은 절대 사라지지 않으며 마크는 평생 남아있게 된다.
즉 사기적인 성능만큼 리스크도 매우 큰 마법이었다.
그러나 셜록은 당연하게도 레이븐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아무리 괴도가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건 너무 과한 처사니까.
그녀는 단지 괴도에게 겁을 주어 순순히 자수하게 만들 계획이었다.
두 발을 쏘고 나면 한 발이 남는다. 그때가 되면 레이븐 본인도 직감적으로 깨달으리라. 한 발만 더 맞으면 정말로 죽는다는 것을.
둘 중 한 명이 죽기 전까지 마법은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풀리지 않는 채로 놔두면 될 일이다. 이번이 처음 사용인 만큼 앞으로도 이 마법을 쓸 일은 거의 생기지 않을 테니 딱히 상관없다.
표식이 지워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겠지만 어차피 자신과 괴도를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괴도가 자수하고 나면 자신과 맞닥뜨릴 일도 없을 테니 표식이 신경 쓰일 이유도 없고 레이븐 본인은···.
죄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표식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니니 그냥 무시하며 살 수 있을 거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다.
‘손거울?’
총알이 날아가는 순간 괴도가 품에서 꺼내든 손거울을 보기 전까지는.
뭘 하려는 속셈이지? 적어도 지금껏 봐왔던 전투 구도에선 등장한 적 없는 양상이었기에 셜록은 눈을 부릅뜨며 레이븐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레이븐은 별달리 특별한 움직임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모습은 마치 삶의 미련을 놓아버린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대체 뭐지···?’
셜록이 여태 부딪쳐오며 봐왔던 괴도는 이렇게 간단히 포기할 녀석이 아니었다. 아무리 철저히 방책을 세워도 얄미울 만큼 요리조리 빠져나가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런 극단적인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한 것이고.
정말로 포기한 걸까?
그런 거라면 차라리 다행인 걸지도 모른다. 만약 괴도가 이번 총알을 맞고 나서도 순순히 자수하지 않고 계속 저항을 시도했더라면 셜록 역시 굉장히 난감했을 테니까.
탄환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찰나의 순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졌다.
끝내 레이븐이 저항을 포기했다고 결론을 지으려던 순간.
그가 눈을 뜸과 동시에 모든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무슨···.”
셜록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부릅뜨며 탄식을 내뱉었다. 괴도가 손을 내뻗자 그를 향해 날아가던 총알이 허공에서 정지해버린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의 마법인 심판의 탄환은 그 어떤 물리적·마법적인 간섭도 무시할 수 있다. 즉 총알의 움직임을 막아내는 것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의문은 타당했다. 실제로 레이븐이 사용한 능력은 현실 세계의 법칙을 초월한 제3의 힘이었으니까.
그것은 초월자의 권능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신에게 부여받은 기적의 힘이었다.
드래곤으로부터 내려져 온 마법과는 아예 결이 다른 능력이나 다름없다.
셜록은 관측자의 눈으로 탄환을 막아 세운 힘의 편린을 느낄 수 있었다. 초록색 눈동자를 반짝이던 그녀는 경악에 휩싸인 채 중얼거렸다.
“시간을 멈췄다고···?”
언뜻 보기엔 그저 총알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셜록은 총알이 적에게 향한다는 과정 속의 시간이 멈춰버렸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말았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시간을 다스리는 힘은 인간이 건드리긴커녕 감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아득한 영역이니까. 마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우면 누구든 알게 되는 기초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눈앞의 괴도는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능력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레이븐이 사실 정체를 숨긴 신이었다는 건가?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이 떠오를 만큼 터무니없는 상황이었다.
“너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셜록은 자신과 괴도가 한창 전투 중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것처럼 대놓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레이븐은 한쪽 팔을 계속 뻗은 채 얄밉게 어깨를 으쓱댔다.
“글쎄. 너한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나?”
“······.”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실제로 적한테 자신의 능력을 대놓고 설명해주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으니까. 물론 셜록은 본인의 삼격 필살에 대해 순순히 털어놓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레이븐을 투항시키도록 유도하기 위한 계획이었으니 예외였다.
“아무튼 이걸로 네 마법도 무용지물이 됐네. 내 승리지?”
아주 얄밉다. 실실 웃으면서 말하는 얼굴에 딱밤을 때려주고 싶을 만큼.
눈을 부라리며 상대를 노려보던 셜록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총구를 내렸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결판이 날 수는 없을 테니까.
자신이 승리했다는 사실이 그리도 기쁜지 레이븐은 히죽 웃으며 제 가슴팍의 빛나는 문양을 가리켰다.
“그럼 이것 좀 지워줄래?”
“아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응?”
그녀는 아까 얘기해주지 못했던 마법의 특징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한번 사용하면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 풀리지 않는 마법.
다시 말해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가슴에 새겨진 마크는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 하하. 농담하지 말고. 재미없으니까 얼른 풀어주지?”
점점 딱딱하게 굳어가는 레이븐의 표정을 보며 셜록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을 쓰면 되잖아.”
“···못해.”
그게 가능했다면 굳이 그녀한테 부탁할 리도 없이 레이븐 본인이 직접 풀어냈으리라.
하양이에게 전해 받은 시간의 권능에는 조건이 있었다.
생명에게는 사용할 수 없으며 시간을 멈추는 것 외에는 다른 조작이 불가능하다.
마크를 지우려면 시간을 과거로 돌려야 한다는 뜻인데 그만한 조작은 인간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억지로 시도하다가는 상상하기도 힘든 대가가 뒤따를 것이란 본능적인 직감이 뒤따랐다.
레이븐은 가슴팍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마크와 셜록을 번갈아 쳐다보다 나지막이 물었다.
“그럼 어떡해?”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자 셜록은 피식 콧방귀를 끼며 대답했다.
“평생 그렇게 살면 되잖아.”
사실 둘 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방법은 존재했다.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마법은 풀린다. 레이븐의 시간 조절 권능으로 인해 셜록은 그를 죽일 수 없게 되었으나 그 반대는 여전히 가능했다.
즉 괴도가 탐정을 죽인다면 해결될 문제.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진지하게 고려하지조차 않았다.
그리고 중간에 끼여서 전투를 구경 중이던 조앤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다.
엉뚱하고 특이한 성격과는 별개로 의사인 만큼 나름 명석한 두뇌를 가진데다 눈치도 재빨랐기에 그녀는 단박에 깨닫고 만 것이다.
괴도와 탐정 두 사람은 마냥 서로를 적대하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부부싸움 한번 요란하네.”
그러니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
“하아···.”
깊은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엑스칼리버는 무사히 훔쳤다. 공주가 선뜻 도와준 이상 처음부터 그리 어려울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마지막 복도에서의 전투는 찝찝함만을 남긴 채 어영부영 흐지부지 끝나버리고 말았다.
하양이의 도움을 통해 가까스로 넘어가나 했더니 뭐? 둘 중 한 명이 죽기 전까지는 절대 안 풀리는 마법이라고? 세상에 그딴 게 어디 있냔 말이다.
대체 셜록은 나한테 왜 그런 마법을 걸었냐고 따지고 싶은 충동이 차올랐다.
물론 이해야 갔다. 설마 내가 그 개사기 마법을 파훼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겠지.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최후의 필살기 같은 느낌으로 꺼내 든 것이리라.
아무튼 그 덕에 엑스칼리버를 챙겨 무사히 빠져나왔으나 가슴팍에 새겨진 문양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녀가 말한 대로라면 평생 죽을 때까지 이대로 달고 살아야 한다는데 그게 말이 되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라. 나름 어울리지 않느냐.]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인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선명히 보이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거울을 볼 때마다 번쩍 빛나는 초록빛의 문양이 너무 거슬린다고. 심지어 시야를 밑으로 숙이기만 해도 대놓고 보인다.
덕분에 너무 우울해져 비비안한테 들리지도 못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엑스칼리버는 내일 갖다주거나 해야지. 몇백 년이나 기다렸는데 하루 정도 늦는다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는가.
그래. 나는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 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두구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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