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8
수업이 끝날 때까지 샤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부러 나를 피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마저도 점심시간 이후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기에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 거라 결론 내렸다.
애초에 샤론은 원래부터 말수가 적었으니 딱히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실제로 다른 애들도 전혀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건 오히려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만약 샤론이 정말로 셜록이고 나를 괴도라 의심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내 가슴팍에 표식이 새겨져 있으리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 마법은 초월자가 돕는 수준이 아니라면 무슨 수를 써도 없애지 못했을 테니까.
즉 나한테 표식이 없는 것을 확인했으니 내가 괴도가 아니라는 알리바이가 생긴 셈이다.
어쩌면 샤론이 점심시간 전까지 평소와 달라 보였던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뭐가 됐든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전화위복이라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막막하던 일이 하루 만에 내게 유리한 카드가 되어버릴 줄이야.
마지막까지 혹시 들킨 건 아닐까 하고 가슴 졸이며 눈치를 봤지만 결국 아카데미를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샤론은 그와 관련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건 한 번만 써먹고 넘기기엔 너무 아쉬운데.
위조 마크를 만들어서 나중에 괴도로 활동할 때 셜록을 속일 수만 있다면 나는 두 번 다시 의심받을 일이 없게 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마법의 시전자를 교묘히 속여넘길 만큼 정교한 문양을 꾸며내는 건 아마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일단 생각만 해두자. 지금 당장은 위기를 무사히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천만다행인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참 막막해 보였지만 어떻게 하나씩 차근차근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젠 비비안이 알려준 아일랜드에 있다는 신전으로 향할 시간이다.
나는 집에서 옷만 갈아입고서 곧바로 밖으로 다시 나왔다.
마침 내일부터는 주말이니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해도 상관없다. 재단도 이미 줄리엣의 통솔 아래 나 없이도 잘 굴러가고 있는 상태니까.
다른 데 한눈팔 필요 없이 시간의 신을 찾는 데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아일랜드까지 가는 거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마도공학 열차를 타면 되고 만약 배를 타고 가더라도 금방 도착할 만큼 브리튼 섬과 가까웠으니까.
‘그날 이후로 처음이네.’
마도공학 정거장을 다시 찾으니 익숙했던 풍경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전까지는 단순하게 엄청난 신기술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상을 멸망시킬 원인이라고 하니 좀 꺼림칙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의문은 더더욱 강해졌다.
대체 프랑켄 박사는 뭐 하는 사람인 걸까.
오퍼레이터가 얘기해주길 박사는 하양이와의 거래를 통해 마도공학 기술을 개발했다고 하였다.
시간 가속의 권능으로 태엽의 회전량을 늘려 마력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시스템.
즉 과학이란 껍데기를 이용해 권능을 마법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이해하니 왜 마도공학이란 시대를 한참 앞서는 오버 테크놀로지가 존재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신의 힘이니 당연히 그 정도로 사기적일 수밖에.
그렇다면 프랑켄 박사는 어떻게 하양이와 거래를 한 거지?
내가 하양이에게 시간 정지 능력을 받은 것처럼 박사는 시간 가속의 권능을 양도받은 거겠지.
문제는 내가 언어를 가르쳐주기 전의 하양이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던 인형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모방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낸다고 해서 그 뜻을 완벽히 이해하고 말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건 나중에 하양이한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네.’
혼자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하양이의 말문이 트이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의문도 모두 해결할 수 있겠지.
그리고 지금 만나러 가는 시간의 신 또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의 연장선이었다.
과연 모든 진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내가 마주할 답이 무엇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부디 예언대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정거장에 우두커니 서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들어섰다.
나는 품속에서 마도공학 멤버십 카드를 꺼내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 카드는 하양이를 죽이는데 일조해달라는 부탁을 승낙하며 받은 거였구나.
잊고 지내던 사실을 되새기니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하양이를 죽인다는 선택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전부 끝나고 난 뒤 유일한 해답이 오퍼레이터가 말한 대로 하양이를 죽이는 일이라면 과연 내가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이미 나는 하양이에게 상당히 정을 붙여버리고 말았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도 더 가까워지면 가까워졌지 멀어질 일은 없으리라.
“하아···.”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일단 생각을 뒤편으로 미뤄두었다. 여기서 이렇게 궁상이나 떨고 있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의문을 해결해야 뭐라도 답을 찾을 시간이 생기리라.
나는 개폐문에 카드를 대고 열차 안에 탑승했다.
역시 오늘도 언제나처럼 텅텅 비어있는 객차 내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창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기관장이 찾아올까?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곤 생각했지만 그 역시 초월자란 얘기를 들었을 때는 살짝 충격이긴 했다.
그 사람은 과연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을까?
하양이는 시간 오퍼레이터는 거울 세계라는 권능을 다뤘다.
비비안은 특별한 권능이 존재하는 건 아니었지만 마법에 조예가 깊었으며 엑스칼리버와 같은 전설의 무기도 보유하고 있었지.
만약 오늘도 나타난다면 그에 관해 자세히 물어봐야겠다.
“···안 오네.”
꽤 오랫동안 기다렸는데도 기관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못 만나려나 보다.
···혹시 일부러 나를 피하는 건 아니겠지? 지난번에만 하더라도 몇 시간 동안 계속 옆에서 쫑알대길래 제발 사라져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었는데 막상 오늘 옆에 보이지 않으니까 괜스레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혼자서 고요한 여행을 즐겼다.
런던에서 아일랜드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과장 보태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수준이었으니까.
사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아일랜드는 처음 와보는데 이 넓은 땅에서 으스러진 신전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비비안한테 좀 더 자세히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아니 그때 반응을 보면 집요하게 캐물어도 흐지부지 넘길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내게 시간의 신에 관해 얘기해주는 걸 엄청나게 꺼리는 듯한 눈치였으니까. 아일랜드라는 장소를 특정해준 것만으로 나름의 최선이었던 거겠지.
이럴 때 내가 의지할 대상은 한 명뿐이었다.
“여신님. 으스러진 신전이 어딘지 아세요?”
······.
“힌트라도 좀 주시면 안 돼요?”
고요하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아예 답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보통 내가 말을 걸면 침묵을 지키더라도 여신님의 기척은 느껴지는 게 정상이다.
지금 그것마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저번처럼 아예 숨어버린 게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물어봐도 절대 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곧바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시간의 신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길래 여신님마저 대답을 회피하는 걸까?
이러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나는 낯선 외지의 땅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 마침내 걸음을 옮겼다.
지금으로선 무작정 맨땅에 헤딩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아일랜드의 중심지인 더블린에서 돌아다니는 행인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으스러진 신전이라고 아시나요?”
돌아오는 반응은 역시나 차가웠다. 대부분은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거나 모른다는 짧은 대답만을 남긴 채 휑하니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의미 없는 탐문을 이어나가던 중 마침내 유의미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흠. 그런 거라면 신학 연구회에 물어보는 게 어떤가?”
신학 연구회. 말 그대로 다양한 종교들의 역사와 특징 등을 연구하는 학문 집단이라고 한다. 특히 고대에 존재했던 토속 신화들을 집중해서 파헤친다고 하니 으스러진 신전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귀중한 정보를 알려준 행인에게 감사를 전한 뒤 곧장 신학 연구회로 달려갔다.
연구회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취미 수준의 활동이 아닌가 싶을 만큼 단출한 크기였기에 살짝 실망하고 말았다.
정말로 여기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일단 들어가 보는 수밖에.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자 곧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문 구독 안 한다니까요!?”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큰일이에용!
저녁인데 커피를 마셔버린거에용..
이제 오늘 잠은 글러버렸어용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