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0
순탄치 않은 여행길이 되리란 불안감은 정확히 예측대로 흘러갔다.
“어라? 여기가 아닌가?”
지금 같은 시대에 인공위성을 통한 GPS 시스템이 존재할 리 만무하고 나는 아일랜드엔 생전 처음 방문한 외지인이었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도를 든 채 당당하게 앞장서는 도로시를 믿는 것뿐이었다.
다만 길잡이인 그녀가 꽤 심각한 길치라는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하아···.”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그런데도 나는 한숨만 내쉴 뿐 뭐라 강하게 지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디까지나 내가 먼저 도움을 구했던 처지인데다 도로시가 여정에 동행해준 것도 순수한 호의였으니까. 돈도 한 푼 받지 않고 공짜로 길을 안내해주겠다는데 면전에 대고 어떻게 볼멘소리하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처음 한두 번이지 똑같은 구도가 몇 번이나 반복되니 이쯤 되면 나로서도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이건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되어가는 수준이잖아.
“어라? 아까는 분명 북쪽이었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죠?”
“네? 일부러라니요?”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지도를 뺏어 거꾸로 돌려주었다.
그제야 자신이 지도를 뒤집어서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도로시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음을 흘렸다.
“하아···.”
이걸 진짜 어쩌면 좋을까.
결국 고민 끝에 내가 지도를 보고 앞장서기로 했다. 주변 지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그래도 동서남북을 헷갈릴 만큼 절망적인 길치는 아니니까.
“모허 절벽이 여기인가요?”
이름 없는 신전들을 하나씩 찾아 나가며 아일랜드 전역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섬은 매우 아름다웠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자연경관과 여유가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은 한창 산업 혁명의 태동기에 휩쓸리고 있는 런던에선 볼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앗! 여기 있다! 도착했어요!”
몇 시간의 사투 끝에 도착한 첫 신전. 노을이 지고 있는 해안가를 배경으로 서 있는 신전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완벽함이 느껴졌다.
도로시는 들뜬 기색으로 신전을 쳐다보다 내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어떤가요? 여기인 거 같나요?”
“음···.”
나는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신전을 하염없이 응시한 뒤에 대답했다.
“모르겠는데요.”
애초에 내가 이런 쪽에 전문가는커녕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인데 겉으로만 보고서 어떻게 알아맞힌단 말인가. 그게 가능했다면 굳이 도로시와 동행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 신전이 섬기던 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나요?”
“음···. 아마 쉽지는 않을 거예요. 당연히 여기도 누가 조사를 했을 텐데 이름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그럼에도 도로시는 의욕을 불태우며 신전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신전에는 섬기는 신에 관련된 요소들이 배치되어 있어요. 직접적으로 이름이나 조각상 등을 세우기도 하고 또는 은유적인 상징을 놓기도 하죠.”
길 찾기가 끝나고 다시 신학으로 넘어오니 믿음직한 전문가로 돌아왔다.
갭의 차이가 너무 큰 거 아니야? 애초에 지금처럼 신전을 찾는 것도 신학에 있어 필요한 능력 아닌가? 아니면 그건 고고학이라 상관없나?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는 매우 꼼꼼하게 신전을 조사해나갔다.
“크로 님이 찾고 계신 신이 크로노스건 아르얀로드건 혹은 알려지지 않은 다른 신이건 결국 시간이라는 영역을 관장하는 신의 상징은 거의 비슷해요.”
“시계인가요?”
시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은 당연히 시계였다.
내 대답에 도로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오해를 바로잡아주었다.
“네. 그런데 저희가 흔히 생각하는 기계식 시계는 13세기 무렵이나 개발되었어요. 그 이전까지는 모래시계나 해시계 등을 사용했죠.”
“아 그렇겠네요.”
“예나 지금이나 시간이라는 개념은 우리 삶에 밀접히 관련된 주제에 되게 추상적이라 간단명료하게 나타내기가 힘들어요. 엄밀히 따지면 시계도 시간을 관측하는 도구일 뿐 시간 그 자체인 건 아니잖아요?”
그 말대로다. 시간에 관한 물리 법칙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정립한 뒤에야 빛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 상대적 물리량이란 게 밝혀졌으니까.
“그래서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시간의 신들은 대개 이해하기 힘들고 꺼림칙한 존재로 묘사돼요. 분명 능력은 엄청 좋은데 막상 신화에서 등장하는 횟수는 의외로 적기도 하죠.”
설명을 들으니 그럴듯한 느낌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신들을 섬기던 고대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시간의 신을 좋아할 이유가 딱히 없을 것 같다.
농경이 중요했던 시대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낸다. 하늘의 신인 제우스에게 제발 비를 내려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그러다 비가 내리면 신이 응답을 들어주었다고 기뻐하며 신앙심이 더욱 깊어진다. 그런 흐름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신의 위상이 드높여지며 섬기는 신자들도 늘어나게 된다.
반면 시간의 신은 어떻겠는가? 시간은 절대적으로 흐른다.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고 지구상의 그 어떤 존재도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언가를 청한다 해서 달라질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하물며 걸리면 반드시 죽는 불치병이 낫는 기적이 있을 수는 있어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노화를 거슬러 다시 젊어지는 건 절대 불가능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까 사무실에서 도로시가 다양한 신화 속 시간의 신들을 차례로 언급할 때 아무도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한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신이니 당연히 인기가 많을 수가 없던 것이다.
물론 이런 결론은 신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현실의 가치관에 바탕을 둔 내용이다.
그와 반대로 이 세상은 마법을 비롯한 온갖 환상이 실존한다. 신의 존재 또한 이곳에선 구시대적이고 터무니없는 믿음 따위가 아니다.
당장 나와 함께 붙어 다니며 하렘을 연호하는 여신님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시간의 신은 판타지가 실존하는 이 세계관에서는 밸런스가 무너진 수준의 사기적인 존재였다. 당장 권속인 하양이만 하더라도 세상을 멸망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거울 세계에 갇혀 지내고 있지 않은가.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찰나 엉금엉금 기는 자세로 신전 기둥의 밑부분을 살펴보던 도로시가 나를 불렀다.
“아 찾았어요.”
“네? 찾았다고요?”
“여기 조개껍데기랑 물고기 그림 보이시죠? 이 신전은 아무래도 바다의 신을 섬겼나 봐요.”
신전을 특정할 만한 요소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여긴 시간의 신과는 관련이 없던 모양이다.
“뭐 애초에 이런 해안가에 세워진 것만 해도 유추할 수 있던 시나리오였지만요.”
“···어쩔 수 없죠.”
다소 아쉽긴 했으나 한 번 만에 찾을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도 않았다. 총 11곳이 있다고 했으니 아직도 열 군데나 남아있는 상황. 웬만하면 이번 주말 안에 찾기로 했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다른 두 군데는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거기까지 둘러본 다음에 쉬죠.”
도로시를 만나 탐색을 시작한 타이밍 자체가 좀 늦은 시각이었던 탓에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일반인에 불과한 그녀를 데리고 너무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적당히 둘러본 다음 충분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주변에 있던 신전 두 곳을 더 탐색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첫날을 아무런 소득 없이 날려버리고 나니 어느덧 보름달이 머리 위에 떠 올라 있었다.
어둑한 밤. 당연하게도 고대 신전들은 도심 지역에서 한참 벗어난 외곽 지역에 있었고 그곳에는 머물만한 숙박 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있다고 한들 주변 지리를 전혀 모르는 우리가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야외에서 노숙하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도로시가 챙겨온 탐험가 세트에 침낭과 모포가 존재했다는 것.
도로시는 침낭에 집어넣고 나는 바닥에 모포를 깐 다음 몸을 눕혔다. 지금이 따뜻한 봄이 아니었다면 분명 입이 돌아가 얼어 죽었겠지.
“크로 님. 춥지 않으세요?”
“괜찮아요.”
“제 침 침낭에 들어오셔도 괜찮아욧···!”
말을 더듬다 못해 삑사리까지 내며 침낭에 들어오기를 제안하는 도로시.
나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서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됐어요. 1인용 침낭에 제가 왜 들어가요.”
“그 그래도···.”
“안녕히 주무세요.”
“히잉.”
나는 깍지를 껴 머리에 배고서는 밤하늘을 넋 놓고 올려다보았다.
자연 속에 누워 감상하는 별빛은 제법 아름다워 잠기운도 싹 달아날 정도였다.
이게 정말 아무 걱정 없이 즐기는 여행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기묘한 여정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는 결말이 무엇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자꾸만 불안해졌다.
지금 여신님이 옆에 있어 줬다면 조금이라도 나았을까.
‘여신님.’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아직도 어째서 그녀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꿎은 반지만 한참 동안 매만지다 나는 지쳐 쓰러지듯 잠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욤욤잉님 후원 감사합니당~~!!
누가 지어준 건지 모르겠지만 닉네임이 아주 멋있으시네용
어떤 캐릭터를 제일 좋아하냐고 물으셨는데 뮹뮹은 작가로서 모든 캐릭터를 똑같이 사랑한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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