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5
“질문에 대답해줄 수 없는 건가요?”
닥터 프랑켄이 살아있냐는 질문에 시간의 여신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여태까지와는 명백히 다른 반응. 분명 무언가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럼 하양이가 프랑켄을 도와준 건 맞나요?”
오퍼레이터는 마도공학 기술의 원천이 시간의 권능이라고 말했었다. 기술 개발자인 프랑켄이 하양이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으며 그 위험성이 세계를 멸망시킬 정도였기에 거울 세계에 가둬버렸다고.
하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답해주는 기준이 따로 존재하는 건가? 오로지 단답만 가능하니 왜 답변해주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하물며 표정이라도 알아볼 수 있었다면 그걸 통해 짐작이라도 해볼 텐데.
“혹시 둘이 친한 사이인가요?”
또다시 묵묵부답.
이쯤 되면 확정 지을 수밖에 없다. 그녀가 프랑켄에 관련된 질문에는 전부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심지어 대답해줄 수 없는 거냐고 확인차 물어보는 것까지 침묵을 지키는 걸 보면 타협의 여지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지금 떠오르는 의문점들을 해결할 핵심 열쇠가 다른 누구도 아닌 프랑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지?’
지금 가진 정보만으로는 무언가를 섣불리 추측하기 힘들었다. 단서를 더 획득해야 할 텐데 막상 시간의 여신이 프랑켄에 관해서 만큼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잠시 고민한 끝에 우선 주변부터 하나씩 물어보며 천천히 진행해보기로 했다.
“마도공학 협회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네.]
“협회 부회장인 오퍼레이터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는가요?”
[네.]
좋아. 여기까지는 문제없이 대답할 수 있다는 거군. 그렇다는 건 여신이 대답할 수 없는 주제는 ‘마도공학’이 아니라 ‘닥터 프랑켄’에 한해서란 점도 유추할 수 있다.
“하양이를 거울 세계에 가둔 사람이 오퍼레이터가 맞나요?”
[네.]
“본인의 권속이 감금당한 거잖아요. 일부러 막지 않은 건가요?”
[네.]
하양이가 거울 세계에 갇히는 걸 일부러 묵인했다니. 설마 했는데 진짜 그렇다는 확답을 들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곳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면서 나름대로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거울 세계는 현실과 비교해 너무나도 삭막하고 쓸쓸한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아무런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도시의 풍경은 마음을 우울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거울 세계가 어떤 공간인지 안다면 그곳에 자신의 소중한 권속을 내팽개치고 방관할 리 없었다. 혹시 시간의 여신은 하양이를 그저 장기 말 정도로만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양이가 걱정되지는 않는 건가요?”
[아니요.]
“···걱정된다고요?”
[네.]
그 대답이 거짓인 것 같지는 않았다. 대화가 시작된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대답은 생각과 감정의 형태로 전달되어왔기에 실제로 하양이를 걱정하고 있다는 마음까지 분명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양이를 당장 구해줄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건가.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그것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마도공학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거겠지.
“그럼 제가 하양이를 거기서 빼내도 괜찮나요?”
내가 질문하자 그녀는 처음으로 ‘네·아니오’가 아닌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아직.]
아직은 안 된다. 상당히 오묘한 대답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당장 빼내선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거울 세계에 특별한 변화가 생길 리는 없을 텐데.
답답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시원하게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고 싶은데 짧은 대답밖에 못 하는 상황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설상가상 시간의 여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 뒤의 풍경이 비쳐 보일 만큼 반투명해져 버린 상태.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수수께끼가 너무 많았다. 적어도 확실한 단서 하나쯤은 챙겨야만 했다.
“제 운명은 지금도 변함없나요? 조금이라도 달라진 건 없는 건가요?”
[아직.]
“아직이란 건···. 변할 수 있다는 건가요?”
[조심해요.]
그 말과 동시에 그녀의 형체가 급격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정해져 있는 한계 밖의 대답을 억지로 내뱉느라 반작용이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
정말 내 생각대로라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내게 경고를 남겼다는 뜻이다.
조심하라니. 대체 무엇으로부터?
나는 가루처럼 흩어져가는 시간의 여신에게 다급히 외쳤다.
“잠깐만요! 뭘 조심해야 하는 거죠!?”
[나의 언니.]
···뭐?
[그녀는 거짓의 여신이에요.]
“잠깐. 그게 대체 무슨···.”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내심 속으로는 오퍼레이터를 예상하였다. 제대로 밝혀진 것 하나 없는 수상한 사내였으니까.
그가 아니라 기관장 아니면 닥터 프랑켄 하다못해 하양이를 조심하라 했더라도 큰 동요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여신님을 조심하라니. 대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지?
그녀는 누구보다 든든하고 믿음직한 아군이었다. 이 세상에서 여러 다양한 인연을 사귀었지만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를 꼽으라면 단언컨대 여신님이 첫째였다.
일부러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려고 이간질을 한 건 아닐까.
여신님과 사이가 껄끄럽다고 했으니 가능성이야 충분히 있었다. 만약 그런 의도였다면 매우 보기 좋게 당해버린 거겠지. 실제로 지금 엄청난 패닉에 휩싸이고 말았으니.
하지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시간의 여신은 내게 진심으로 충고해준 것이라는 사실을.
내게 조심하라며 일러주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가슴 시리도록 절절한 감정의 홍수가 느껴졌으니까.
생전 처음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내게 그만큼이나 애절한 감정을 쏟아내는 이유가 대체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너무 많은 말을 내뱉은 대가일까. 시간의 여신은 결국 완전히 형체를 잃고 빛무리가 되어 흩어져갔다. 허공으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반짝임 속에서 마지막으로 흐릿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항상 지켜보고 있어요.]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는 아련한 고백처럼 은은히 울려 퍼지는 마지막 한마디를 끝으로 그녀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새하얀 신전에 홀로 남게 된 나는 서서히 내면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의 경고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빛을 집어삼키는 어둠 너머로부터 너무나 익숙하고 포근한 존재감이 나를 부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여신님의 존재가 마냥 반겨지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어둠으로부터 뒷걸음칠 만큼 꺼려지기 시작했다.
그런 내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듯 어둠은 신전을 비롯해 모든 걸 집어삼키며 내게 닥쳐들었다.
동시에 눈을 감았다 떴을 땐 다시 원래의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내면세계로 진입하기 전과 비교해 전혀 달라지지 않은 풍경. 노을이 몸을 감추며 은은한 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간은 특유의 쓸쓸함을 자아내었다.
아스러진 신전의 공터 혼자 덩그러니 놓여 존재감을 과시하는 삐쩍 마른 고목의 앞에 도로시의 몸을 빌린 여신님이 다소곳이 서 있었다.
“돌아왔느냐.”
“···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도로시의 목소리를 가지고 저렇게 여신님의 말투로 얘기하니 상당한 위화감이 들었다.
“원하는 답은 찾았느냐?”
“···글쎄요. 완벽히 해결된 건 아닌 거 같아요.”
아니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여신님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듣게 되다니. 솔직히 아직도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기억을 의심할 정도였다.
‘나는 밤과 거짓의 신이었다.’
‘그녀는 거짓의 여신이에요.’
처음 여신님께 그 말을 들었을 땐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쳤었다. 내가 사용하는 마술이라는 능력의 특징 자체가 거짓에서 기인한 거니까. 당연히 그런 권능을 하사한 여신님이 거짓의 신인 것도 논리적으로 타당한 흐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의 여신이 해준 경고를 듣고 나니 그 말이 다르게 와닿았다.
거짓의 여신은 어떤 존재지? 그녀가 내뱉은 말 중에 거짓이 섞여들어 있나?
생각해 보면 나는 여신님과 오랜 시간을 보낸 것치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녀가 밤과 거짓의 신이고 여동생이 있었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알았다.
내가 모르는 게 얼마나 더 있을까. 정말 내게 해줬던 모든 얘기가 진실인 걸까.
예언의 마녀에게 내 운명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여신님은 충격에 휩싸여있던 나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워주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설령 네가 그 마녀의 말처럼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끝까지 네 곁에 있어 줄 테니.’
그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됐던지 모른다.
만약 그 말이 거짓이라면 나를 보듬어주었던 따스한 품이 전부 가짜였다면.
나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나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로콜라와 콘칩을 뇸뇸 먹으면서 글을 썼더니 키보드가 더러워진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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