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0
얼떨결에 시작된 선상에서의 보석 탐사.
일단 샤론의 제안을 승낙하고 얌전히 뒤따르고는 있지만 이 넓은 크루즈 안에서 꼭꼭 숨겨두었을 보석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무슨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는 걸까?
“보석은 어떻게 찾을 셈이야?”
“의심 가는 곳들을 하나씩 둘러봐야지.”
“음···.”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지라고 보긴 미묘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벌써 배에 올라탄 지 30분이나 흘렀으니 많아봤자 2시간 30분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물론 정말로 보석을 단순히 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생각한 대로 보석을 훔치려고 할 경우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뭐 그녀로서도 지금 내놓은 대답보다 뚜렷한 방안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으리라.
지금 하는 일이 떳떳한 짓도 아니니 선원들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내게는 그보다 훨씬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지하에 있는 냉동 창고 안쪽 금고에 있는 것 같구나.]
‘감사해요.’
단 1초 만에 너무나도 손쉽게 위치를 파악하고 내게 알려주는 여신님.
그녀는 보석에 깃든 자신의 힘을 어디서든 느낄 수 있었다. 그걸 이용해 평소 괴도로 활동할 때 어디를 털어야 할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던 거고.
여신님 덕분에 장소는 파악했다.
문제는 이걸 샤론한테 어떤 식으로 알려줘야 하냐는 건데···.
사실대로 말하면 내 정체까지 전부 털어놓는 거니 고려할 가치도 없고 그럼 다른 변명거리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인데 뭐라 말해야 그녀가 의심하지 않고 믿어줄지 고민이 됐다.
아니 내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보석의 위치를 말해줄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나는 보석을 꼭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호기심이 들긴 하였으나 못 봐도 살짝 아쉬운 정도지 무슨 일이 있어도 봐야 할 만큼 필사적일 이유는 없었으니까.
원래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나는 옆에서 적당히 거들기만 하고 샤론이 직접 보석을 찾도록 유도만 해야겠다. 이참에 그녀의 추리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감상하는 시간이나 가져야지.
“자 먼저 이걸 봐봐.”
“응? ···이건 어디서 났어?”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지도였다. 언제 챙겼는지도 모를 크루즈의 안내도가 대뜸 눈앞에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그렸어.”
“···뭐?”
“안내도에 나와 있던 거랑 내가 직접 확인한 곳을 비교하면서 그린 것뿐이야.”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것치고는 평범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언뜻 봤을 때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깔끔한 디자인에 당연히 전문가가 제작한 공식 안내도라고 생각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손수 만들어냈다니.
···애초에 계속 옆에 붙어있었는데 대체 언제 그린 거지?
알면 알수록 감탄만 나오는 그녀의 능력에 혹시 내가 라이벌을 잘못 고른 게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뒤 지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샤론의 수제 지도에는 빈 곳이 상당히 많았다. 그녀가 참고했을 선내 안내도는 어디까지나 승객이 이용할 만한 장소만을 표시해뒀을 테니 식품 창고 같은 곳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샤론은 비어있는 공간들을 가리키며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이 중 하나일 거야.”
“어째서?”
“승객들의 발이 닿는 곳에 보석을 놔뒀을 리는 없을 테니까.”
합리적인 추측이긴 했지만 그렇게 조건을 걸어도 여전히 탐색해야 할 장소는 넓은 편에 속했다.
“그리고 아마 위쪽보단 아래쪽일 가능성이 커.”
“왜?”
“갑판 위는 우리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잖아. 만약 절도가 발생하면 용의자를 특정하기가 상당히 어려워. 하지만 지하는 일반 승객이 딱히 드나들 이유도 없고 만약 접근한다 쳐도 계단에 인력만 배치하면 막기가 훨씬 수월해.”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논리적이면서도 복잡하지 않은 근거들을 앞세우니 아주 쉽게 이해가 갔다.
확실히 탐색할 장소는 구체적으로 좁혀졌다. 지하만 집중적으로 찾는다고 하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다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어떻게 하려고? 네 말대로면 지하는 경비가 삼엄하다는 거잖아.”
애초에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도록 접근을 제한해놨을 것이다.
괴도 레이븐이라면 하품하며 통과할 만큼 간단했겠지만 선량한 아카데미 학생에게는 달랐다.
어떤 식으로든 경비를 뚫고 출입 제한 장소에 잠입한다는 것 자체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잘못이니까.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여러모로 상당히 곤란해지리라.
내 질문에 샤론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길을 잃어서 잘못 들어간 거야.”
“······.”
본인이 직접 제작한 지도를 들고 하기엔 너무 뻔뻔한 말 아닌가?
뭐라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지만 이미 그녀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 이후였기에 큰 의미도 없을 듯하여 그냥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샤론이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지금 상황은 탐정이 괴도로 움직이는 셈 아닌가. 그녀는 단순히 보석을 구경만 할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사람 앞일이야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아무튼 우리는 걸음을 옮겨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잠입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짜려면 우선 주변 상태를 꼼꼼히 파악해야 하는 법이니. 말하자면 평소 하던 대로 루트를 짜는 셈이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선원 한 명이 계단을 지키듯 서 있었다. 아래로 향하는 길은 사실상 저기가 유일하니 어떻게서든 저 계단을 통과해야만 했다.
선원의 존재를 확인한 샤론은 내 귓가를 간지럽히듯 속삭였다.
“혹시 좋은 방법 있어?”
그녀의 속삭임에 살짝 움찔한 나는 괜히 헛기침을 내뱉으며 적당히 대답했다.
“저 사람의 주의를 돌린 다음에 몰래 지나가는 건 어때···?”
길을 잃고 우연히 지하로 내려간 컨셉이라 했으니 선원을 기절시키는 등의 과격한 방법은 제외해야 했다. 그럼 남는 방법이라 해봤자 방금 얘기한 정도가 제일 무난한 선택지지 않을까.
“나쁘지 않네.”
그리 대답한 샤론은 상당히 고전적인 수법을 시도했다.
몸을 안 보이게 숨긴 다음 동전 하나를 선원의 시야에 닿으면서도 적당히 먼 거리에 투척한 것이다.
짤랑!
동전이 땅에 부딪히며 명쾌한 소리를 울려 존재감을 알렸다.
“웬 동전이···.”
선원은 탐스럽게 빛나는 동전을 빤히 내려다보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천천히 그쪽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그 틈을 노려 잽싸게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몸을 숙여 동전을 줍는 선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이런 고전적인 수법에 당해주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하긴 딱 보니까 전문적인 경비도 아니고 그냥 일반 선원이 계단만 지키고 있던 모양인데 그리 체계적일 리도 없나? 어쩌면 저 사람은 자신이 뭘 지키는지도 모른 채 그냥 선장의 명령에 따르고 있던 걸지도.
어쨌든 무사히 지하로 내려오긴 했으나 아직 방심은 금물이었다. 위쪽에 비하면 사람이 훨씬 적긴 했으나 이곳에도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모두 유니폼을 갖춰 입은 걸 보면 이곳은 선원들만 전용으로 이용하는 층인 모양이다.
하긴 보석이 있는 곳도 냉동 창고 안이라고 했었지. 그곳도 당연히 지키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건 또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샤론의 행보를 기대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선원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한 곳씩 보석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피면서 넘어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원래 이런 짓은 항상 혼자 해왔는데 옆에 다른 사람이 같이 있으니 어쩐지 기분이 미묘했다.
특히 그 동행자가 다름 아닌 숙명의 라이벌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아무래도 여기도 없는 것 같네.”
상황이 상황인지라 계속 나지막이 속삭여서 말하는 샤론. 마치 ASMR을 듣는 것 같아서 자꾸만 귓가가 간지러웠다.
차라리 목소리가 안 좋았으면 아예 무시해버렸을 텐데 감미로운 목소리로 저래 버리니까 괜히 더 신경 쓰였다.
그렇게 천천히 수색을 진행하다 보니 지하만 뒤지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아마 지금쯤 위에서는 율리아랑 레이첼이 우리를 찾고 있지 않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원들에게 들키지 않고 잘 숨어다닌다는 거려나.
나야 원래 직업이 이거니까 당연한 일이었지만 샤론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위장에 소질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도둑질에 재능이 있다고나 할까.
그 덕에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결국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했다.
여신님의 얘기에 따르면 이 냉동 창고 너머에 비밀방이 존재한다고 한다.
“···뭔가 이상해.”
우리는 창고의 앞에 서자마자 동시에 위화감을 눈치챘다.
창고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변에는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
“들어가 보자.”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들어가자마자 하얀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 창고 안. 여신님이 알려준 대로 비밀방이 있는 위치로 다가가던 중 내 발걸음은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
활짝 열린 비밀방의 문틈으로 아름다운 보석 대신 싸늘한 시체 한 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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