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1
오랜 탐사 끝에 마침내 도달한 비밀방 안에는 찾아 헤매던 보석 대신 시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우리는 사건 현장을 발견하는 즉시 선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아무리 몰래 잠입해있던 상태라지만 이건 그냥 덮어두고 모른 척 넘어가기엔 너무 중대한 문제였다.
핑계는 적당히 원래 구상했던 대로 길을 잃어 헤맸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다행히 별다른 의심은 받지 않았다. 처음부터 둘이서 함께 다닌 것과 우리가 먼저 신고하지 않았다면 시체가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았을 거라는 점 무엇보다 율리아와 레이첼의 적극적인 변호 덕분이었다.
사건 조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이 내려졌다.
이것은 명백한 살인 사건이라고.
애초에 비밀방에 있어야 할 보석이 사라졌다는 것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뭐!? 보석이 사라져···!!?”
보석이 사라졌단 사실이 알려지자 보석의 주인인 듯한 사내가 길길이 날뛰었다.
생긴 것부터 마치 라파노처럼 탐욕이 그득한 졸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사내였다.
반면 소식을 들은 선장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태도로 상황을 정리해나갔다.
“일단 진정하시지요. 보석이 사라졌다 한들 이곳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 위입니다. 준비된 비상용 보트도 전부 멀쩡하니 범인은 아직 이 안에 있을 겁니다.”
“보트가 없다고 해서 도망치지 않으리란 보장 있는가!? 만약 도망쳤으면 어쩌려고! 자네가 물어낼 거야?!”
“승객들과 선원들을 전원 집합시켜 인원을 세어보면 됩니다. 숫자가 맞으면 범인이 아직 도망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선장의 깔끔한 정리에도 불구하고 보석 주인은 쉬이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보석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기나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야 할 거야!!”
“걱정하지 마시고 나리께선 마음 편히 기다리기만 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최초 목격자란 이유로 얼떨결에 둘의 대화를 바로 옆에서 구경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쪽으로 눈길을 돌린 보석 주인이 괜히 화를 애먼 데 풀기 시작했다.
“이 꼬맹이들이 범인 아니야!? 경비를 죽이고 보석을 훔친 다음에 뻔뻔하게 나오는 거 아니냐고!”
“두 학생은 이미 몸수색을 비롯해 주변 학생의 증언까지 받았습니다. 이들이 범인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합니다만.”
“마법을 썼을 가능성은! 이놈들 전부 사악하고 께름칙한 마법사들이잖아!”
참 아무리 일반인들에게 마법이 꺼림칙한 이미지로 여겨진다곤 하지만 사람이 듣는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망발을 쏟아낼 줄이야.
그나마 선장이 곧바로 우리를 두둔해줘서 한번은 그냥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비밀방 내부에는 마력 탐지기가 설치되어 있으니 마법을 이용한 범죄일 확률은 낮습니다. 그리고 이분들 또한 엄연히 제 배에 탑승한 감사한 손님들이니 무례는 삼가주십시오.”
“···쯧! 됐으니까 빨리 범인이나 찾아서 내 앞에 데려오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끝까지 자기 할 말만 남긴 채 성큼성큼 뒤돌아 객실로 돌아가는 보석 주인.
진짜 세게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만큼 짜증 나는 녀석이다.
선장실에 우리만 남게 되자 선장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우리에게 깍듯하게 머리를 숙이며 정중한 어투로 말했다.
“우선 두 분도 식당으로 내려와 주십시오. 두 분의 결백함은 입증되었으나 수사에 차별을 두면 아까처럼 쓸데없는 항의가 빗발칠 수도 있으니까요.”
“네. 그럴게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두 분이 아니었다면 제 부하는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 오랜 시간 홀로 방치되었을 겁니다. 그 창고는 보석을 지키는 경비 빼고는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고 명령해놨었거든요.”
솔직히 보석 주인처럼 의심의 눈총을 보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게 되니 좀 얼떨떨했다. 얼굴을 맞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지만 이 선장이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쯤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선장과도 인사를 끝낸 뒤 우리는 식당으로 내려가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특히 샤론은 눈빛만 봐도 이 상황을 냉철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것을 대놓고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그때 대뜸 날아온 그녀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나는 잠시 답을 골랐다.
“보석을 훔치기 위한 범행임은 확실해.”
이건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방 안에서 경비를 서던 선원을 직접 찾아 죽이고 보석은 우연히 눈에 띄어서 겸사로 챙겼다? 한 문장으로 요약해봐도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지 느껴지지 않나.
그렇다면 수사는 의외로 쉬울지 모른다. 이 배 안을 샅샅이 뒤져 보석을 찾으면 되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보석을 지니고 있던 사람이 무조건 범인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물론 이러한 수사법은 우리가 현장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무 의미 없는 가정에 불과했으리라.
시체를 확인하고 수사를 진행하려 할 땐 이미 배에 탔던 승객들이 전부 유럽에 상륙해 온갖 곳으로 퍼져나간 지 오래일 테니.
“뭔가 이상해.”
“···뭐가?”
굳이 따지면 행복만 가득했어야 할 수학여행 첫날에 이런 참사가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만 샤론은 그런 와중에서도 유달리 이상한 점을 느낀 모양이다.
적어도 이런 상황에선 나보다 탐정 나리인 샤론의 추리가 더 예리하겠지.
아닌가? 나도 괴도니만큼 그에 뒤지지 않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뭐가 이상하냐고 묻자 그녀는 즉시 답했다.
“우리가 처음 사건 현장을 발견했을 때 창고는 물론이고 비밀방까지 문이 열려 있었어.”
“음. 그랬었지.”
“당연히 범인은 현장이 늦게 발각될수록 유리할 텐데 왜 굳이 그렇게 허술한 상태로 놔둬 놓고 떠난 거지?”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나는 한동안 이유를 고민해보다 나름의 추측을 내놓았다.
“당장 생각나는 가능성은 두 가지 정도겠네.”
“얘기해줄래?”
“첫째는 범인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탓에 패닉에 빠져 허겁지겁 도망쳤다는 것.”
지금 상황에서 따져봤을 때 그나마 제일 현실적인 이유였다.
우연히 비밀방에 모셔둔 보석의 정보를 입수하고 탐욕에 눈이 멀어 훔치려고 시도하다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하지만 피를 흘린 채 죽어가는 선원의 모습을 보고 뒤늦게 현실을 자각한 뒤 흔적을 지워야 한다는 생각도 못 하고 달아난 거지.
만약 이 예측대로라면 범인을 잡는 건 생각보다 훨씬 쉬운 일일 것이다. 범행 현장에 증거도 그대로 남아있을 테니 조금만 조사를 하면 금방 용의자가 특정될 테니까.
막말로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눈을 못 마주치고 똥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을 찾아내 적당히 압박하다 보면 알아서 술술 자백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린다면 참 좋겠지만 말이지.
문제는 그게 아닌 두 번째 가능성이었다.
“두 번째는···.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가능성이야.”
언뜻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고 느껴질 것이다.
범행은 은밀할수록 좋다. 따라서 범인이 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를 일부러 방치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그 말은 웬만해선 절대 깨지지 않을 진리였다.
하지만 언제나 특수한 상황이라는 예외는 존재한다.
그 예외의 대표적인 산증인이 다름 아닌 괴도 레이븐 즉 나 자신이지 않은가.
나는 대놓고 범행을 저지를 예정이라는 예고장을 뿌린다.
또한 사람들의 앞에도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 오히려 이목을 집중시킨다.
범행을 은밀히 숨기지 않는다.
왜? 그래야만 하는 목적이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저지르는 범죄이니까.
즉 만약 이번 살인 사건의 범인 또한 나와 마찬가지인 두 번째 이유로 알면서도 일부러 흔적을 방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샤론 또한 어렵지 않게 그러한 결론에 이르렀는지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각각의 이유에 따라 수사의 난이도는 천지 차이로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내 직감이었지만 이런 고립된 크루즈 위에서 대담하게 살인을 저지를 만한 녀석이라면 후자의 경우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다소 심란한 마음으로 식당에 내려가니 이미 승객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식당 내부는 그야말로 혼란으로 가득 찬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아직 자세한 설명은 시작하지도 않았건만 벌써 소문이 돌았는지 내부에 심각한 범죄가 일어났다는 얘기가 일파만파 퍼지고 있었다.
참고인 자격으로 선장실에 먼저 들렀다 내려와 있던 율리아와 레이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반겼다.
그런 상황 속에서 모든 승객이 식당에 집결하자 선장은 덤덤히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미 얘기가 나도는 듯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현재 배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소문이 사실로 확정되니 파문은 순식간에 좌중을 압도해나갔다. 공포에 이성을 잃고 아우성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승객 중 대부분이 아직 미성년자인 아카데미 학생들이었던 만큼 혼란은 더욱 극심했다.
그럼에도 선장은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범인을 체포할 때까지 이 배는 육지에 상륙하지 않고 대양을 떠돌며 수사를 진행할 겁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살인 사건은 차치하고서라도 일국의 왕에게 진상할 보석이 절도 당했다. 이대로 그냥 육지에 정박하는 건 범인 보고 용서해줄 테니까 잘 살라고 손을 흔들어주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응? 아직도 뭐가 더 있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와중 그는 절대 그냥 넘겨들을 수 없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괴도 레이븐의 예고장이 발견되었습니다.”
···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틀이나 쉬어버려서 죄송합니당..!!
한번만 봐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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