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6
샤론 이 무서운 여자 같으니라고···.
마치 귀신이라도 본 마냥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선장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괜히 동정심까지 밀려들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녀가 뭘 생각하는지 완벽히 알지 못했다. 진짜 괴도를 만들어내자고 얘기한 것과 달리 우리가 한 거라곤 고작해야 카드 한 장을 꾸며낸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심지어 내가 가지고 있던 진짜 카드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샤론이 즉석에서 따라 만들어낸 모조품이었으니 그 누가 이런 결과를 예상이나 했을까.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샤론은 모습 한번 보여주지 않은 채 상대를 완전히 궁지로 몰아넣어 원하던 대로 움직이게 만들어냈다.
그녀에게 작전 설명을 들었을 때도 정말 그렇게 순순히 흘러갈까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결과로 보여준 이상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 하는 짓이냐! 누가 이곳에 마음대로 들어오라고 했지!?”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이네. 아니면 일부러 큰소리를 뻥뻥 치는 건가?”
확실한 증거를 찾아낸 순간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무덤덤한 모습 그대로인 샤론.
선장의 눈빛에 서서히 뚜렷한 적의가 담기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그녀의 옆으로 이동했다.
“이미 전부 끝났어. 괜히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는 게 좋을 거야.”
“끝나긴 뭐가 끝났다는 거냐?! 통제에 따르지도 않고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걸 보니 너희가 범인인 거였군!!”
아직도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할 셈인가? 오히려 우리를 범인으로 몰아가려는 선장의 태도에 한숨을 내쉬며 현실을 알려주었다.
“혹시 잊어버렸나 싶어서 알려주는데 우리는 마법 아카데미 출신이거든. 일반인을 제압하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란 말이지.”
내 말에서 무언가를 눈치챈 건지 갑자기 선장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으며 흔들리는 눈빛으로 떠듬떠듬 질문을 던졌다.
“설마···. 너희가 꾸민 짓이냐? 괴도가 이 배에 탑승해있던 것처럼 날 속인 거냐?!”
“엄밀히 따지면 그쪽이 먼저 차려둔 밥상에 우리는 숟가락만 올린 셈이랄까.”
그제야 모두 포기해버린 건지 그는 제 잘못을 순순히 실토하기 시작했다.
“하···. 그래. 내가 죽이고 훔쳤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냐?”
선장은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샤론에게 겨누었다. 물론 이 정도의 반항은 진작 예측했었기 때문에 선장실에 들어오기 전 미리 보호 마법을 시전해둔 상태였다.
“말했을 텐데. 일반인은 마법사의 상대가 못 돼.”
“흥. 내가 그딴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는 머저리인 줄 아나?”
오히려 나를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은 선장이 계속 이어 말했다.
“어차피 다른 승객들은 전부 식당 안에 있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도 모르지. 내가 너희를 범인으로 지목하면 과연 사람들이 누구를 믿어줄까? 현장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주장하는 마법사 꼬맹이들? 아니면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하던 베테랑 선장?”
여론전까지 끌고 가서 더럽게 진흙탕 싸움까지 이어가 보겠다는 건가.
확실히 현재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승산 높은 대책이었다. 보석이라는 확실한 물증도 막말로 바다에 던져버리면 없어지는 셈이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순수한 학생들이라 무르게 대처했을 때나 가능한 경우다.
아쉽게도 나나 샤론 둘 다 그런 쪽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타입이라 말이지.
선장이 꺼내든 비장의 카드는 도리어 자신의 목을 겨누는 자충수가 되어버렸다.
“아마 지금은 모두 우리를 믿을 것 같네.”
샤론의 무뚝뚝한 대답에 선장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아마 그녀의 말투에 담겨있는 확신이 불안감을 피어오르게 하였기 때문이리라.
“말했잖아. 우리 마법 아카데미생이라고. 지금 떠드는 얘기들 전부 식당 쪽에 생중계하고 있거든.”
“···뭐?”
“믿을 만한 친구한테 미리 부탁해놔서 멀미로 꽤 고생하고 있는 것 같지만.”
통신 마법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만 그걸 스피커폰 설정하듯 남들에게도 들리도록 변환하는 건 마법의 구조를 뜯어고쳐야 하는지라 난도가 급격하게 올라간다.
그러나 율리아가 누구던가? 그레이스 가문의 대귀족이자 아카데미 성적 또한 최상위권을 지키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팔각형 아가씨가 아니던가.
비록 지나 그레인저 급은 아니더라도 율리아 또한 작중 손에 꼽히는 천재 캐릭터였다.
아무리 멀미로 고생한다 해도 이런 일쯤이야 가볍게 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마친 건지 선장의 안색이 이제는 거무죽죽하게 썩어들어갔다. 처음엔 새파랗다가 곧 새하얘지더니 이젠 검은색이라. 나도 모르게 감탄해버릴 만큼 다채로운 반응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말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쪽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아마도 이 충격적인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 들은 승객들이 화를 참지 못하고 위로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이미 게임은 끝났다. 제 입으로 직접 범행을 인정한데다 그걸 모든 사람이 엿들었다. 선장이 알고 보니 대마법사여서 모두의 기억을 최면으로 제거하지 않는 이상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절대 없었다.
곧이어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선장실의 문이 홱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몸을 던져 헥토파스칼 킥을 선사했다.
“끄억···!”
“이 썩어 죽일 놈이!!”
분노에 찬 보석 주인은 선장이 쓰러졌는데도 멈추지 않고 발길질을 퍼부으며 온갖 상스러운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너무 급작스럽게 발생한 상황인지라 차마 말릴 새도 없어 우리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말릴 필요성을 못 느낀 거였지만.
하긴 보석 주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자기가 데려온 경비를 죽이고 보석을 훔친 주제에 아무렇지 않은 듯 뻔뻔하게 연기하며 비위를 맞춰주는 걸로 모자라 그 보석을 자기와 함께 있던 방에다 숨겨놓았었다니.
이 정도면 속에서 열불이 타오르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겠지.
그렇다 해도 더 놔두면 정말 죽여버릴 기세였기에 슬슬 말려야 할 듯했다. 만약 선장이 죽기라도 하면 괜히 상황이 더 꼬일 수도 있으니까.
공정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주자. 어차피 왕의 진상품에 손을 댄 이상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순 없겠지만.
“더 때리면 죽겠어요.”
“후우···.”
다행히 그도 완전히 이성을 잃지는 않았던 건지 우리가 말리자마자 긴 숨을 토해내며 발길질을 그만두었다. 혹시나 해서 살펴보니 아래쪽에서 작게나마 간헐적인 신음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보석 주인은 여기까지 쉬지 않고 뛰어와 선장을 신나게 밟아댄 탓인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며 나한테 손을 건넸다.
“범인을 찾아낸 탐정이 자네인가! 정말 고맙다. 이 은혜는 잊지 않고 갚도록 하마.”
“제가 아니라 이 친구가 한 일이에요. 저는 옆에서 거들어줬을 뿐이고요.”
내가 한 일이라고 해봤자 그녀가 식당을 빠져나오도록 도와준 정도가 전부이며 나머지는 전부 샤론 혼자서 해낸 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옆에 있던 샤론을 가리키자 그 또한 시선을 돌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한 발언을 내뱉었다.
“이 친구는 아녀자잖아. 기껏해야 네 조수 정도겠지.”
“···반대입니다. 제가 보조이고 이 아이가 주입니다.”
“흠. 믿기 힘든데.”
그래. 이해는 한다. 시대가 시대이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겠지.
아직은 여성의 참정권조차 보장되지 않았던 시대다. 여자는 집에서 밥이나 하라는 말도 지금은 당연한 상식으로 통용될 정도니까.
마법 학계에서는 워낙 능력을 우선시하다 보니 인종 성별 등의 기타 요소는 딱히 눈에 들어오지도 않지만 지금처럼 바깥세상에 살짝만 나와 있다 보면 확실히 내가 알던 현대와는 다르단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저게 옳다는 건 절대 아니다. 잘못된 건 잘못된 거였기에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제 친구에게 정중하게 사과해주시죠.”
내 요구가 의외였는지 보석 주인은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그간 언뜻 봤던 인상으로는 도리어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는 선선히 제 잘못을 인정하였다.
“미안하다. 내가 실수한 모양이군.”
샤론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나지막이 답했다.
“괜찮습니다. 별로 신경 쓰지도 않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아직 서로 통성명도 못 나눈 것 같은데 내 은인들의 이름은 알아두고 싶어서 말이야.”
그는 이번엔 제대로 샤론에게 먼저 손을 건네며 말했다.
“내 이름은 장 드 세인트 엑쥐페리다.”
“샤론이에요.”
“크로입니다.”
“음. 샤론과 크로. 확실하게 기억해두었다.”
뭔가 어디선가 들어본 것만 같은 이름이네. 성만 들어도 귀족이란 건 확실해 보였다.
하긴 왕의 진상품을 챙겨오는데 일반 평민이면 그것도 이상하려나?
“처음에 너희를 범인으로 의심한 건 미안하다. 그래도 솔직히 누가 봐도 의심할 만한 상황 아니었더냐?”
“하하···.”
“아무튼 아까 말한 대로 이 은혜는 꼭 갚으마. 일단 육지에 내려서 폐하께 보석부터 전해준 다음에 말이다. 참! 이제 범인도 잡았으니 얼른 배를 출발시켜야지. 선장!!”
음. 자기 발밑에 깔려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새 까먹은 건가?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었다.
상황이 진정되기까진 꽤 시간이 걸렸다. 기절한 선장을 밧줄로 제압하고 분노한 승객들을 겨우 달랜 다음 방조죄로 내몰리기 싫으면 처신 잘하라고 부선장을 협박해 겨우 배를 움직였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어둑한 밤중 갑판을 산책하며 승리의 기쁨을 즐겼다.
“잘 해결돼서 다행이네.”
조용히 내려앉은 달빛. 한 발짝씩 걸음을 내딛던 샤론이 입을 열었다.
“아직 안 끝났어.”
“응?”
“말했잖아. 괴도를 어떻게 잡을지 생각했었다고.”
나는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밝은 달빛 조명 아래서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안녕. 괴도 레이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쉬었다 온 만큼 맛있는 내용으로 준비해왔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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