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7
“안녕. 괴도 레이븐.”
샤론의 인사에 나는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초록색 눈동자 속에 비친 내 표정은 다행히 겉으로 동요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만 고작 그 정도로 안심하기엔 상대가 던진 직구가 너무나 묵직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애써 태연한 척 시치미를 떼보았으나 샤론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마치 절대 자신이 틀릴 리가 없다는 것처럼. 이미 그녀는 내 정체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확신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언제 들킨 건지?
이번 사건에서 샤론이 괴도를 용의자로 여겼을 때 나는 안심하면서도 실망했었다.
그녀가 나를 괴도로 의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안심했었고 괴도 레이븐을 살인마로 본다는 사실에 실망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샤론은 반나절 사이에 나를 괴도라 확신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오늘의 수사 과정에서 내가 덜미를 주었다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특별한 순간은 없었던 것 같은데.
기껏해야 내 마법을 사용해 식당을 빠져나갔을 때 정도. 하지만 그마저도 샤론이 직접 얘기했듯 아카데미에서도 이미 선보였던 적이 있었기에 확실한 물증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샤론은 단순히 직감에만 의지해 판단하는 삼류가 아니다. 반드시 객관적인 증거들을 토대로 논리적인 추론만을 내놓는 탐정이었으니까.
즉 분명히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상대가 알아차릴 만한 정보라면 당연히 나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게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민을 거듭하는 중에도 샤론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마치 변명할 게 있으면 얼마든지 해보라는 것처럼.
“···지금 너는 나를 괴도라고 확신 중이구나.”
“맞아.”
“만약 네 생각대로라 치자. 그럼 지금 네 진짜 친구는 어디 있다고 생각해?”
내 질문을 들은 샤론은 멀뚱멀뚱 눈만 깜빡이다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거야 지금부터 알아보면 될 일이지. 너한테서 말이야.”
···통한 건가?
혹시나 해서 던져본 미끼.
아카데미생인 크로와 괴도 레이븐은 서로 다른 인물이다.
즉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건 자신의 친구로 변장한 괴도였다···. 라는 느낌으로 슬쩍 유도해봤는데 의외로 잘 먹혀든 것 같았다.
좋다. 이제야 탈출로가 좀 보이는 기분이다.
이걸 잘 공략한다면 무사히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으리라. 나중에 적당히 괴도한테 납치당해서 기절해있던 척 연기만 잘하면 된다.
열심히 희망 회로를 굴리고 있던 와중 뒷짐을 진 샤론이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를 띠었다.
“열심히 고민 중인가 봐?”
훅 풍겨오는 소녀의 향기와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나는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덕분에 샤론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에 다소의 시간이 걸렸다.
“···뭐라고?”
“나쁘지 않은 수였어. 크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언제나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리던 희망이 한순간에 아스러졌을 때다.
나는 그 사실을 방금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무 무슨 소리일까. 하하.”
“크로. 역시 너는 천재야. 나도 운이 좋지 않았다면 네가 레이븐이란 사실을 평생 증명해내지 못했겠지.”
틀렸다. 이미 그녀는 내가 괴도와 동일인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더는 발뺌하기도 힘들 것 같다.
아니 근데 진짜 어디서 꼬리를 잡힌 거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샤론에게만큼은 절대 걸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용을 써왔는데. 그간의 모든 노력이 결국 수포로 돌아가버렸네.
“지금 어쩌다 정체를 들킨 건지 생각 중이니?”
“······.”
뭐야. 설마 관심법이라도 익혔니? 그런 거라면 내 정체를 눈치챈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미안하지만 오늘이 아니야.”
“오늘이 아니라고···?”
“제일 처음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는 너희 집에 갔을 때였어. 조별 과제 때문에 처음 같이 모였던 날 말이야.”
그때가 대체 언제였지.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질 만큼 오래전이라는 것만 생각난다.
막 우리 넷이 같이 모이던 시점이면 학기 초였을 테니 사실상 반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의심해왔다는 뜻이다. 그 당시엔 괴도로 처음 활동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을 텐데.
“그때 화장실에 괴도가 사용했던 거랑 똑같이 생긴 빨간 손수건이 놓여 있었거든.”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언뜻 기억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엔 샤론이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가길래 눈치 못 챘다고 안심하며 별로 신경 안 썼었는데 지금 보니 그날부터 이미 나는 용의선상에 올라가 버린 것이었다.
“그 이후로 늘 의심했어.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언제나 의심에서 그쳐야만 했지. 잘못하다가 내 정체가 먼저 탄로 나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샤론도 나와 똑같은 과정을 지나온 모양이다. 내가 그랬듯이 심증만을 품은 채 상대를 주시하는 답답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눈치 싸움.
“그러다 마침내 기회가 찾아온 거야.”
그녀는 내 정체를 알아낸 순간이 오늘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인 걸까? 나는 이어질 샤론의 말에 주의를 곤두세웠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넌 내 마법을 완벽히 파훼했어. 내 완벽한 패배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막상 네 몸에 새겨진 표식은 곧바로 지우지 못하더라고.”
잠깐만. 그러면 설마···.
“다음 날 아침에 표식이 지워지긴 했지만 그건 딱히 상관없었거든. 전날 밤에 이미 전부 확인을 끝낸 뒤였으니까.”
얘기를 듣고 나니 어떻게 된 건지 전부 이해하고 말았다.
설마 표식에 위치 추적 기능까지 있을 거라곤···. 아니 지금 생각해도 그 마법 너무 사기잖아.
“괴도한테 남긴 표식이 내 친구의 집에서 느껴진다. 이것보다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니?”
비비안은 손짓 한번에 표식을 지워주었다.
즉 내가 곧장 밤에 호수로 향하기만 했으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날 일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늦은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 일이 이렇게 꼬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물며 표식에 위치 추적 기능이 있다는 것도 비비안이 표식을 없앨 수 있다는 것도 당시의 나는 전혀 몰랐었으니.
표식을 지우고 아카데미에 갔을 때 샤론이 내비쳤던 오묘한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때 당시엔 내가 한 방 먹였다고 득의양양했었는데 지금 보니 얼마나 가소로워 보였을까 쪽팔릴 지경이다.
모든 사실을 깨닫고 나니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사실 내 동거인이야.”
“그날 밤 집에 있던 건 너 혼자였잖니.”
“······.”
마지막으로 꺼내 본 변명도 씨알 하나 먹히지 않고 논파 당해버렸다.
잠깐만. 근데 내가 혼자 잤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뭔가 이상한 것 같지만 대충 표식에 그런 기능도 있었겠거니 짐작하며 넘기기로 했다. 왠지 이 이상 더 파고들었다간 위험할 것 같아.
체크메이트다.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으니 꼼짝없이 승패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샤론 또한 자신의 정체를 밝힌 셈이니 비겼다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누가 먼저 밝혀내냐가 중요한 거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넘기기엔 아쉬웠으니 억지를 부리듯 잡아뗐다.
“사실 나도 네가 셜록이란 거 눈치채고 있었어.”
“흐응. 그래?”
그녀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표식 얘기를 꺼낸 순간부터 샤론 또한 자신의 정체를 직접 밝힌 셈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렇다고 나도 거짓말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가 셜록이라고 이미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객관적인 증거보단 직감에 의지한 편이란 게 사소한 문제려나.
“궁금하네. 무슨 이유로 내가 셜록이라 확신한 거야?”
그럴듯한 이유를 대라면야 적당히 끼워 갖다 댈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고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기로 했다.
“헷갈릴 수 없는 눈동자 색이라.”
신비로운 에메랄드빛. 그녀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뇌리에 깊이 박힌 눈동자 때문이었다.
지금은 내 충실한 부하인 줄리엣도 처음 봤을 땐 셜록과 너무나 똑 닮은 외모 탓에 상당히 헷갈리기도 했다. 어쩌면 샤론이 아니라 줄리엣이야말로 진짜 셜록이 아닐까 고민했을 정도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줄리엣을 오래 마주할수록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얼굴은 닮을 수 있어도 저 눈동자만큼은 누구도 똑같이 흉내 낼 수 없다는 걸.
샤론은 내 대답을 듣고서는 갑자기 이상해졌다.
마치 로봇이 작동을 중지한 것처럼 얼굴에 표정이 싹 사라지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뭐지? 설마 기분 나빴나?
자기는 완벽한 물증을 잡아서 밝혀냈는데 막상 내가 대충 감으로 때려 맞췄다고 하니 실망한 건가?
내가 안절부절못하며 샤론의 눈치만 살피자 보다 못한 여신님이 탄식을 터뜨렸다.
[이 답답한 아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대체 뭔데요. 이유라도 알려주시고 불평하시죠?’
[흠. 그래도 오히려 좋구나.]
진짜 뭐냐고. 나만 모르는 거야?
샤론의 얼굴은 어두운 밤하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붉은 기가 맴도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욤욤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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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넘무넘무 감사한 거에용♡
앞으로도 계속 완결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당!!
독짜님들 모두 재밌게 읽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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