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
<결국 이번에도 놓쳤다. 괴도 레이븐 완벽 도주!>
<경찰들은 무엇을 하는가? 시민들의 불안감 증폭.>
<사라진 그림. 괴도 레이븐의 트릭을 파헤쳐보자.>
“정말로 콸콸 쏟아져 나오네요.”
[이런 특종을 놓치는 게 멍청한 거겠지.]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이번에도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어제 하루 푹 쉬면서 여러 반응을 천천히 구경했다.
특히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 바로 경찰의 무능함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번엔 반드시 나를 잡겠다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또 실패했으니 여론이 싸늘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려나.
물론 국가 역시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앞으로는 일반 경찰이 아니라 괴도를 체포하기 위한 전담팀을 꾸릴 예정이라고 하니 방심했다간 정말로 훅 갈 수도.
아무튼 이제 보석 흡수도 전부 완료 했으니 다시 괴도 활동을 시작할 때였다.
그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이걸로 발표 내용은 전부 완성이네.”
“어우. 힘들다.”
아카데미 점심시간.
환상의 4인조는 조별 과제를 위해서 도서관에 함께 모여 발표 내용을 정리했다.
각종 인터뷰 내용과 공식 언론 자료 등을 종합해 만든 발표 자료.
확실히 처음 계획했던 대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객관적인 사실만을 제공하는 깔끔한 내용이었다.
“미술관 관련 내용이 적은 게 조금 아쉽지만.”
“이틀밖에 안 됐잖아. 그 뒤로 괴도가 나타난 것도 아니고.”
“엊그제 현장에 갔었을 때 뭐라도 얻었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나와 샤론을 제외한 두 사람.
율리아와 레이첼은 꽤 기대를 품고 엊그제 미술관으로 향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주변이 너무 인파가 많아서 뭘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속절없이 돌아왔다고.
“너희 둘이 안 따라와서 그런 거잖아. 이 배신자들아.”
책상에 널브러져 투덜대는 레이첼.
지금 모습만 봤을 때 제일 대충하는 사람은 당신 같은데. 미술관에 가자고 했던 것도 단순히 재밌을 것 같다는 이유뿐이었으면서.
“이제 발표까지 며칠 안 남았으니까 특별한 내용이 더 나오지 않으면 일단 이렇게 가자.”
“네. 네. 어차피 조장님이 발표하실 건데 알아서 잘하시겠죠.”
“응. 열심히 해볼게!”
레이첼의 빈정거림에도 율리아는 전혀 굴하지 않고 오히려 맞받아쳤다.
역시 아무리 봐도 저 두 사람은 상성 같아 보인단 말이지.
“그리고 샤론도 발표 자료 정리해줘서 고마워.”
“······.”
“샤론?”
“아 응.”
멍하니 무언가를 생각하다 뒤늦게 어영부영 대답하는 샤론.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샤론은 오늘 아침부터 쭉 저런 상태였다.
무언가 심각한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왠지 알 거 같구나.]
‘정말요?’
[음. 분명 사랑하는 임을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도다.]
‘······.’
그럼 그렇지.
괜히 진지하게 여신님의 대답을 기대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율리아가 자료를 정리하며 주제를 던졌다.
“이제 괴도 레이븐은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냐니. 뭐를?”
“여태까지 해온 행동 패턴을 보면 물건을 다시 돌려놓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돈을 줘왔잖아. 이번에는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해?”
질문을 하는 시선이 하필 내 쪽으로 향하고 있으니 조금 부담스럽네.
물론 율리아가 내 정체를 눈치채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연이라고는 해도 조금 섬뜩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런 사소한 일 하나하나 전부 예민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랬다간 괜히 의심을 살 여지를 제공할 뿐이니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대답했다.
“글쎄. 그냥 본인이 내키는 대로 하는 거 아닐까?”
“음···. 내 생각엔 무슨 규칙이 있을 거 같아.”
그러자 레이첼이 귀를 후비며 시큰둥하게 끼어들었다.
“돈 되면 팔고 아니면 그냥 갖다 놓는 거 아니냐?”
“그건 아닐걸. 레이븐이 박물관에서 훔쳤던 목걸이는 엄청 비싼 금품이라던데.”
그때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샤론이 얘기했다.
“소유인의 성향에 따라서야.”
“···응?”
“물건의 주인이 착하면 돌려주고 나쁘면 팔아서 착한 사람에게 준다는 뜻이야.”
레이첼이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웃기네. 착하고 나쁜 건 누가 정하는데. 걔가 법관이라도 돼?”
“그거야 레이븐의 마음이니까.”
“정말로 그런 걸까···? 크로는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줄 알았다.
벌써 그런 것까지 전부 파악했단 말이야? 게다가 추측도 아니고 확신에 가까운 어투였다.
지금까지의 범행 횟수는 겨우 5번 남짓.
심지어 처음 한두 번 때는 이름이 알려지기도 전인 무명 시절이었다.
고작 5번의 사례를 대조해서 내 행동 철칙을 완벽하게 파악해내다니.
진심으로 무서워지는 수준이다.
“아직 그렇다고 확신하기엔 이르지 않을까···? 하하.”
“역시 그렇지? 물론 샤론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다행히 샤론은 그 이상 강력하게 주장하거나 내 말에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듯 짧게 나를 흘겨보고는 다시 멍하니 생각에 잠길 뿐.
휴. 정말로 위험했다···.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어.
***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 우리는 다시 반으로 올라왔다.
그러고 보면 최근 넷이서 어울려 다니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처음에는 조별 과제라 해서 무조건 질색했는데 막상 지금 돌아보면 의외로 나쁘지 않을지도.
조원 개개인의 개성이 상당히 강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큰 문제 없이 제법 잘 어울리는 걸지도 모른다.
[즉 요약하자면 훌륭한 하렘이란 거구나.]
‘전혀 아니거든요.’
내가 팀의 청일점인 것과 별개로 여자들 가운데 내게 이성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레이첼이야 항상 나를 놀리기만 바쁘고.
샤론은 무뚝뚝해서 말도 제대로 못 섞는 사이며.
그나마 친하다고 볼 만한 율리아도 그녀가 워낙 상냥한 성격이라 어울려주는 거지 나와의 관계가 특별하다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괜찮다. 나도 당장은 연애에 큰 관심은 없으니까.
지금은 그보단 괴도 활동에 더 전념하고 싶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원작의 비중 있는 인물과 사귀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현실로 완벽히 구현됐다고 하더라도 만화 속에 등장하던 캐릭터란 사실이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에.
아무튼 현재의 삶에 꽤 만족 중이다.
낮에는 아카데미 학생으로 적당히 친구들과 어울리고 밤에는 괴도로서 활동하며 여신의 힘을 모으는 생활.
“왔네. 잠깐 얘기 괜찮지?”
이런 변수만 없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반에 돌아오니 갑자기 레이어드가 나를 붙잡고 일대일 대화를 요청했다.
밝은 갈색 머리를 위로 올린 남자다운 인상의 미소년.
그의 이름은 레이어드로 이 세상의 바탕이 되는 원작 만화의 주인공이다.
즉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세계의 중심이랄까.
우주의 흐름과 모든 이야기가 철저하게 이 소년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무슨 일이야?”
주인공과 척져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굳이 억지로 친해져서 원작에 개입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에게 원한을 살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다음 교시 대련 때 나랑 하자. 괜찮지?”
“···음.”
그런데 이미 늦은 것 같다.
뭐 때문에 이렇게 됐더라? 얼마 전에 있던 대련 시간에 내가 일부러 봐줬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레이어드는 집요하게 나를 압박했다.
최근에는 잠잠하길래 포기한 듯했더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지금 시간을 기다리며 조용히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것이다.
“이번엔 봐줄 필요 없어. 나도 전력을 다할 테니까.”
그 말만을 남긴 채 녀석은 나를 지나쳐 복도로 나가버렸다.
아니 나는 처음부터 봐준 적 없다고.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오올. 우리 찐따 인기 많네?”
레이첼은 대놓고 비웃으면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율리아. 너 레이어드랑 친하지? 쟤 좀 말려줘.”
내가 간곡하게 부탁하자 율리아는 멋쩍게 웃으며 뜸을 들였다.
“어···. 미안. 내가 말린다고 들을 애가 아니거든.”
“뭐 어때. 이번엔 안 봐주고 죽사발을 만들면 되지.”
“그게 되겠냐고. 애초에 봐준 적도 없다니까?”
내가 저 사기캐를 무슨 수로 이겨. 애초에 내 개성인 마술은 사실상 전투력도 없는데.
두 사람 다 사기적인 개성 마법을 가지고 있으니까 여유롭게 놀리면서 관망하는 거겠지.
[네 능력도 충분히 좋단다. 자부심을 품거라.]
‘네. 물론 저도 알죠. 괴도 활동에 쏠쏠히 도움 되긴 하니까요.’
그렇지만 도둑질이 아니라 전투에선 또 별개의 문제잖아.
막말로 따져서 흉악하게 검을 휘두르는 녀석을 상대로 고작 카드놀이나 하면서 어떻게 이기겠냐고.
[이 몸이 보기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네? 진심이세요?’
[물론. 마침 이번에 힘을 흡수하며 더 강해지지 않았더냐.]
그렇기야 하지만 밤이 아닌 이상 여신님의 힘은 매우 제한된다.
즉 오로지 크로 모리스의 능력만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 셈인데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이 여신을 믿어 보아라.]
‘···그런데 이겨도 그것대로 문제인데요.’
지면 또 봐줬다고 난리 칠 테고.
그렇다고 이겨버리면 괜히 모두의 이목을 끌게 된다. 까딱 잘못하다간 내가 레이븐이란 사실을 들킬지도 모르지.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아 그냥 조퇴할까?’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결국 조퇴도 하지 못한 채 대련실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성사된 리매치에선 누가 이길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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