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5
콰앙!!
얕은 잠을 확 달아나게 만드는 강렬한 폭발음.
반사적으로 상체를 벌떡 일으킨 나는 지금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확실히 구별하지도 못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뭔 일이야···?”
그때 마법으로 증폭된 1학년 총괄 교수의 목소리가 숙소 전체에 울려 퍼졌다.
“건물 3층에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인솔에 따라 서둘러 건물 바깥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몇 차례 반복되는 경고를 듣고 난 뒤에야 지금이 꿈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수학여행 내내 온갖 사고가 펑펑 터지는 탓에 마지막 날에도 뭔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지레짐작은 했었지만 설마 동이 트기도 전부터 이렇게 터져줄 거라곤 감히 상상도 못 했다.
덕분에 잠기운이 확 사라져 어리벙벙한 상태로 침대를 벗어나니 지나는 이미 방문을 열고 복도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때?”
“난리 났네.”
사실 지나가 말해주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 주변에서 쏟아지는 소리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바로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 다급한 발소리와 웅성대는 속삭임 이따금 귀를 찌르는 비명까지.
제아무리 일반인이 아닌 마법사를 양성하는 특수 아카데미라 할지라도 결국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학생들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서 패닉에 빠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냥 창가로 뛰어내리는 게 빠르겠는데.”
반면 나와 지나는 상대적으로 침착했다. 나야 괴도로 활동하면서 온갖 일을 겪었으니 적응이 된 탓이고 지나는···. 그냥 너무 강해서 위기의식을 못 느끼는 걸지도.
“읏차.”
아무튼 우리는 신속한 판단으로 창가를 통해 가뿐히 뛰어내렸다. 우리가 머문 방은 2층이었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숙소에 딸린 마당으로 내려오니 폭발로 인한 피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경보 내용대로 3층의 구석 창가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 걸까. 단순한 사고? 그렇다기엔 타이밍이 너무 공교로운데.
만약 의도적인 폭발이라면 사건은 훨씬 심각해진다. 누군가 아카데미 학생들이 머무는 숙소를 노리고 테러를 일으켰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니까.
“크로! 무사했구나!!”
사태를 지켜보던 와중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주인공 레이어드가 안도감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 옆에 있던 지나와 눈이 마주치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지만 두 사람은 그냥 서로를 못 본 척 무시해버렸다.
생각해 보니까 저 둘은 원작에서도 라이벌 관계인데다 나로 인해 전개가 뒤바뀐 지금도 다소 껄끄러운 사이였지. 사실 한동안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만 신경 쓰기에도 너무 벅찼던 탓에 주인공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지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우리 반 남학생 중에 너만 안 보이길래 혹시나 했거든.”
“그래? ···잠깐만. 남학생 중이라니? 여자애들은?”
내 물음에 레이어드는 살짝 어두운 안색으로 변해버렸다.
“···우리 반 여학생들은 전부 3층에 있어.”
“뭐!? 그런데 왜 이렇게···!!”
“진정해. 이미 교수님들이 전부 3층으로 올라가셨어. 어차피 우리가 다시 들어가봤자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거야.”
무슨 뜻인지 이해는 한다. 학생과 교수의 격차는 엄청나니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교수가 구해주기를 기다리며 느긋하게 손가락만 빠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율리아 레이첼 그리고 샤론까지.
폭발이 일어난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직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나는 곧바로 땅을 박차고 달리며 레이어드에게 외쳤다.
“만약에 애들이 입구로 나오면 거기 가만히 있으라고 해줘!”
“뭐? 크로 잠깐만···!!”
입구는 여전히 혼란스러울 테니 뒤쪽으로 돌아갔다. 굳이 안으로 들어갈 필요 없이 외관 벽을 타고 3층까지 단번에 올라가면 된다. 괴도인 나에게 이 정도쯤은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불길이 나오지 않는 반대편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에 머물렀을 여학생은 이미 밖으로 나간 건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니 자욱하게 깔린 연기와 함께 뜨거운 열기가 몸을 후끈하게 달구었다. 이미 3층은 불길이 퍼져나갈 대로 번져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거지···?
이미 전부 대피한 건가?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부지런히 복도를 헤집으며 방문을 하나씩 열어젖혔다.
없다. 정말로 아무도 없다. 애초에 이만큼이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텐데.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연기를 최대한 들이키지 않기 위해 코와 입을 막은 채 3층을 마저 탐색해나갔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땐 다시 아래로 내려가 일단 사태를 파악하는 게 옳았다.
그러나 레이어드가 말한 대로라면 아직 3층에 아이들이 있을 가능성이 큰데 그냥 내려갈 순 없었다.
게다가 내 직감이 이곳을 더 샅샅이 뒤져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서서히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가운데서 내 움직임 역시 조금씩 굼떠져 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억지로 정신을 붙든 채 마지막 남은 폭발의 진원지 주변을 수색해나갔다.
“하아···. 하아···.”
흐릿한 시야 너머 마지막 남은 방문의 손잡이를 잡고 거칠게 열어젖혔다.
그와 동시에 나는 여태껏 엄습해오던 불쾌한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고 말았다.
언젠가부터 여신님이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녀의 기척이 지금처럼 아예 사라졌던 상황은 단 두 가지뿐.
아일랜드에서 여신님이 내가 아닌 도로시의 몸에 빙의했을 때.
그리고 리퍼와 싸울 때나 하양이를 만날 때처럼 내면세계에 들어갔을 때.
지금은 후자였다. 그 사실을 방 내부를 보자마자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밟은 문턱을 경계선으로 그 너머에는 숙소 내부라곤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이게 대체···.”
내 눈앞에 에펠탑이 있었다.
불타 무너지는 에펠탑이 있었다.
파리에 종말이 찾아온 것처럼 하늘은 어두웠으며 불씨가 일렁이고 있었다.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도 모를 절규 어린 비명이 그치질 않았다.
그림자처럼 검은색으로 뒤덮인 형상의 군대가 어딘가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왕궁에는 프랑크의 국기 대신 생전 처음 보는 깃발이 꽂혀 있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할 만큼 괴이하고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 끝에서 간신히 떠올려낸 것은 예언의 마녀였다.
언제나 에펠탑을 올려다볼 때마다 함께 있던 그녀가 이번에도 무슨 짓을 저지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추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앞에 등장한 인물은 전혀 다른 이였다.
“···샤론?”
이 순간조차 반짝이는 금발과 아름다운 외모. 누가 보더라도 영락없는 샤론이었다.
아니 달랐다.
처음에는 헷갈렸지만 그녀의 눈을 마주한 순간 눈치채고 말았다.
눈앞의 여인이 샤론이 아니라 줄리엣이라는 사실을.
“줄리엣.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더는 이 상황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잠들기 직전까지의 내 모든 고민이 우스워질 지경이었다.
이런 흐름을 누가 감히 예상이나 했을까. 지금 내 꼴을 자조적으로 비웃는 이 순간조차 사실 폭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이 그냥 황당한 개꿈이 아닐까 의심했다.
“대답해!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고···!!”
줄리엣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 무덤덤한 어투로 답했다.
“이건 꿈이 아니라 미래입니다.”
“···뭐?”
“동이 트기 전까지 당신이 샤론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모두가 죽을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내 입에서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줄리엣이 아니구나. 넌 대체···. 누구야?”
겉모습을 바꾼 예언의 마녀?
여태껏 태평하게 등장해 당당히 말을 섞던 그녀가 지금 와서 정체를 숨길 이유가 있나?
다른 제삼의 인물이라기엔 짐작 가는 인물이 전혀 없었다.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줄리엣으로 변장한 건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끝이 머지않았습니다.”
그 말은 예언의 마녀가 얘기한 내용과 비슷했다.
“저는 늘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그와 동시에 세상이 유리처럼 금이 가며 깨지더니 곧 내가 지나쳤던 문이 나를 이끌어 당기기 시작했다. 복도로 튕겨 나오며 문이 거칠게 닫히자 아까까지 마주했던 세상은 사라지고 다시 현실의 숙소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방문을 바라보다 재차 손잡이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아까와는 달리 불타는 빈방이 나를 반겨주었다. 폭발의 흔적은 창문 바깥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누군가의 의도적인 소행임이 분명했다. 벽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으니까.
[자유 평등 우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체 무슨 일인 거에용..!!
뮹뮹은 너무 어지러운 것이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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