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7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백작은 왕궁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를 만나러 지하로 내려가니 근처에 가자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를 반겨주었다.
단 한 명만이 수감된 철창에 가까이 다가가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백작의 상태는 반 시체나 다름없는 듯 보였다.
딱히 동정심이 들지는 않았다. 본인이 내린 선택의 업보이지 않은가. 오히려 그보다는 저 정도의 고문을 받고도 입을 열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잠깐 자리를 비켜주세요.”
나는 동행하여 지하 감옥까지 안내해준 경비병에게 부탁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지만 여왕의 명령 때문인지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았다.
“···죄인을 죽이지 마십시오.”
“물리력을 행사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왜 야만적인 고문을 가하겠는가. 그보다 훨씬 유용하고 깨끗한 방법이 있는데.
경비병이 자리를 떠난 것을 확인한 뒤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열쇠로 철창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백작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딱히 위기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어차피 상대는 고문 의자에 묶여있는 데다 체력적으로도 완전히 지쳐 있는 듯했으니.
말라붙은 피와 멍으로 잔뜩 망가진 채 푹 숙인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일어나.”
존댓말로 예의를 차릴 생각은 없었다. 상대는 샤론을 납치한 조직의 일원이다. 즉 내게는 적이나 다름없는 사내였다.
말로 몇 차례 불러보았으나 반응이 전혀 없자 손을 뻗어 상대의 턱을 붙잡고 억지로 들어올렸다.
그제야 내 존재를 눈치챈 건지 초점이 풀린 눈동자로 나를 멍하니 올려다보는 백작.
“···누구냐.”
“그건 알 거 없고.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는 내 대답을 듣고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마저도 힘들었는지 희미한 기침이 뒤이어 터져 나왔지만.
“네가 누구든··· 무슨 짓을 하건··· 내게선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을 거다···.”
그것참 숭고한 의지네. 상대는 본인들을 불의와 독재에 맞서는 정의로운 비밀 결사대라고 철저히 믿고 있겠지.
그 가치관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딱히 없다.
괴도 추종자 때부터 줄기차게 얘기했던 대로 나는 정치나 이념 같은 복잡한 문제에 얽혀들고 싶은 마음 따위 없으니까.
단지 상대가 누구든 간에 그게 레지스탕스건 왕실이건 상관없이.
내 소중한 존재를 함부로 건드린다면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게 보석이든 사람이든.
괴도는 빼앗는 존재이지 빼앗기는 존재가 아니기에.
나는 백작의 턱을 계속 붙잡은 채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며 시선을 맞추었다.
[정말 쓸 생각이냐? 정신 관련 마법은 위험성이 크다. 이론 지식을 쌓아두지 않은 상태로 섣불리 시도했다간···.]
‘괜찮아요. 내면세계는 자주 접했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밤이니 여신님이 도와주면 일반인을 상대로는 위험할 리도 없잖아요.’
[후우···. 알겠다.]
여신님은 한숨을 쉬면서도 내 억지에 가까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백작은 내 눈을 마주친 채 세뇌 마법에 걸려 내면세계로 빠져들었다.
“뭐 여 여긴 어디냐···!?”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자 고개를 휙휙 돌리며 당혹감을 드러내는 상대. 이곳은 하양이와 만나던 시계탑 거리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으나 달이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이 푸른 색채로 물든 밤의 도시야말로 나 자신을 드러내는 내면세계.
백작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어딘가로 순간 이동했다고 착각하는 중이었다.
“네놈 마법사였나?”
“뭐 그런 셈이지.”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서 어쩔 속셈이냐. 무슨 짓을 해도 내 입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쫑알쫑알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주제에 입이 열리지 않기는 무슨.
상대가 아무리 의지가 확고하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내면세계에 끌려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내게 주도권이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하자면 백작은 이미 완전한 최면 상태에 빠져든 셈이었다.
상대가 마력을 품고 있거나 이런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면 저항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이 상황을 파훼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미안한데 너랑 쫑알쫑알 떠들고 있을 시간 없어. 그러니까 바로 얘기해주면 좋겠는데. 지금 샤론 어디에 있어?”
내가 질문하자마자 눈빛이 흐려지며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백작.
“모른다. 애초에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어···.”
“그러시겠지.”
딱히 거짓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사람은 애초에 우리가 파리에 도착하기 전부터 지하 감옥에 갇혀있던 상태였으니까.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확인할 소통망이 없었겠지.
“그럼 네놈들의 본거지가 어딘지 불어.”
“···그것도 모른다.”
이번에도 실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백작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정말로 모르는 것일 가능성이 크겠지. 실제로 왕실도 그에게 지독할 만큼의 고문을 가했으나 알아낸 정보라곤 겨우 줄리엣이라는 이름 하나뿐이지 않은가.
레지스탕스가 그만큼 정보 은폐에 공을 들였다는 뜻이리라. 설령 한 사람이 붙잡히더라도 언제든 꼬리만 떼고 달아날 수 있도록.
이렇게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조직은 뿌리를 찾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결국 레지스탕스도 체제 전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조직이다.
특히 대서양을 건너온 블러드문을 중간에서 가로채려 한 것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만 한다. 즉 런던뿐만 아니라 파리에도 이번 작전의 개요를 알고 협력하기로 준비된 아군이 있을 수밖에 없다.
“파리에 소통책이 있겠지. 애초에 그 쪽에게 레지스탕스가 되라고 꼬드긴 상대도 파리 어딘가에 있을 테고. 뭐든 좋으니까 레지스탕스와 관련된 사람을 아무나 얘기해.”
그러자 백작은 지금까지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여태껏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던 그가 갑자기 눈에 띄게 벌벌 떨며 수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공포에 질린 것처럼.
그와 동시에 상대의 눈동자 너머로 탁 하며 걸리는 무언가.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상당히 강력한 수준의 마법적 보안 장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걸 깨트려야 한다.
현실에서였다면 쉽지 않았을 만큼 체계적인 구조였지만 내가 세상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선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쨍그랑-!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그의 입에서 나온 또 다른 백작의 이름.
무려 마법을 통해 이름을 언급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는 건 그만큼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는 뜻일 터. 이것이 결정적인 단서라는 확신을 느끼고 그에 관해 더 집요하게 캐물어 보았다.
눈앞의 백작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도 은밀히 포섭하고 이번 작전도 그가 직접 설계했다고 한다. 즉 레지스탕스라는 조직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큰 존재.
몇 차례 더 물어보았으나 그 외에 다른 이름이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약간 아쉽긴 했으나 이 정도면 충분히 본전은 뽑아먹은 듯했다.
심문은 이걸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직접 만나 확인하면 될 일이다.
아마 내 예측이 맞다면 납치당한 샤론 역시 그의 저택 근처에 있을 것이다. 딱 봐도 그가 레지스탕스의 중추나 다름없어 보이니까.
원하는 정보를 다 얻었다고 판단한 즉시 미련 없이 내면세계를 해제했다.
사실 여유로운 척하고 있었지만 사용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으니까.
여신님이 우려한 대로 정신 관련 마법은 리스크가 꽤 큰 모양이다. 만약 상대가 마법사였다면 아예 끌어들이는 것조차 불가능했을지도. 잘못 사용하면 반대로 내가 백치가 될 수도 있으니 함부로 써서는 안 될 것 같다.
“후우···.”
주변의 풍경이 전부 지워지며 다시 원래의 쿰쿰한 지하 감옥으로 되돌아왔다.
백작은 내면세계에 강제로 끌려간 탓에 정신력이 바닥난 건지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어차피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을 테니 딱히 동정심이 들지는 않았다.
애당초 상대가 먼저 우리를 건드렸으니 이 정도는 인과응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왕실처럼 무자비하게 폭력으로 고문한 것도 아니고.
한시가 아까웠기에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걸음을 돌려 지하를 빠져나오려 했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대놓고 나를 기다리던 여왕과 맞닥뜨렸다.
“들어간 지 5분도 안 지난 것 같다만 벌써 끝났나?”
“필요한 정보는 전부 얻었습니다.”
“혼자만 알고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이런 때일수록 아군은 많으면 좋은 법 아니겠나.”
공짜로 낼름 얻어먹겠다는 심보가 고약했으나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순순히 공유해주기로 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못해도 간부이거나 어쩌면 리더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정보겠지?”
“어차피 저는 지금 바로 놈한테 갈 생각이니 여왕님은 그냥 기다리시면 됩니다.”
내 말에 잠시 턱을 짚은 채 고민하던 여왕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잠깐 기다려라. 도움을 줄 테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로콜라가 아주 시원한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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