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결국 주인공과 대련을 맞붙게 되었다.
갑자기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던가 대련 과목 선생님이 출장을 나가서 대체 수업을 한다는 식의 희망적인 전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와 마주 선 레이어드가 검 자루를 만지며 얘기했다.
“전력으로 와.”
“그럴 생각이야.”
애초에 내 실력으론 봐준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가 없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무조건 티가 날 테니 녀석이 난리 칠 게 뻔했다.
결국 진심을 다해서 싸우는 수밖에 없는데 이기든 지든 승패를 떠나 내게 좋은 점이라곤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여신님이 말한 대로 내 실력을 점검해볼 기회로 여기자.
확실히 여태껏 힘을 흡수하면서 마법이 훨씬 강해진 건 사실이니까. 여차하면 생각보다 쉽게 이길지도 모른다.
“둘 다 준비됐나?”
“네.”
“네.”
“그러면 시작한다.”
삑!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대련이 시작됐다.
우선 처음은 탐색전. 주인공도 저번과는 달리 상당히 신중하게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러면 내가 선공을 던지는 수밖에. 기초 마법 중 하나인 화염구를 상대에게 날렸다. 비장의 일격이라기보단 상대가 어떻게 대응하나 확인을 위한 가벼운 견제기.
“응?”
어라. 불덩이 크기가 왜 저렇게 크고 빠르지?
“윽···!”
당황한 건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커진 눈동자로 마법을 노려보다 땅을 박차며 겨우 회피해냈다.
“호오.”
심지어 언제나 과묵하게 심판을 봐오던 선생님마저 작게 감탄사를 내지를 정도였다.
아니 강해졌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세졌다고?
불과 며칠 전의 나와 비교해도 훨씬 성장한 수준인데.
[후후.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더냐.]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
이걸 좋아해야 해? 지금 반 아이들의 의외라는 시선이 모두 쏠리고 있는데?
“역시.”
어이. 뭐가 역시라는 거냐.
착각이라고. 저번에는 진짜 전력을 다했던 거라니까.
괜한 오해만 깊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반대로 레이어드가 내게 돌진했다.
분명 목검에 불과한데도 날이 서늘하게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마법 대결인데 검을 쓰는 건 반칙 아니야?
서걱.
위협적인 횡베기에 황급히 몸을 뒤로 내뺐다.
그리고 동시에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마법을 시전했다.
날카로운 바람 칼날 3개가 동시에 적을 향해 날아갔다.
팅! 팅!
그중 2개는 검으로 쳐냈으나 나머지 하나는 허용하고 마는 레이어드.
어깨를 스친 칼날은 그대로 교복을 살짝 찢어버리며 생채기를 냈다.
처음으로 들어간 유효타.
“여기서 끝내겠나?”
“아니요. 계속하겠습니다.”
“알겠다. 진행하도록.”
잠깐. 내 의견은 왜 안 묻는 건데.
둘이서 짝짜꿍 얘기를 나눠 대련은 계속 속행되었다.
“흡.”
숨을 들이마시며 호흡법을 가다듬는 주인공.
그의 마력이 진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부터가 진짜였다.
휙!
아까와는 비교가 안 되는 움직임.
피할 수 없단 걸 직감적으로 깨닫고 다른 대응법을 떠올렸다.
슉!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내리치는 검날을 그대로 허용한다.
아니 허용하는 척하며 상대를 방심시키려 했다.
스르륵 사라지는 내 잔상과 함께 주인공의 뒤로 위치를 이동한 나는 로프를 휘둘렀다.
“통하지 않아. 저번에 당했으니까.”
“···대단하네.”
그런데 저번에도 통하지 않았던 건 똑같은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지.
마치 그때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말하는 레이어드.
그렇지만 이건 예상 못 했을걸.
주인공의 검에 막힌 줄 알았던 로프가 자기 혼자 꿈틀거리며 상대의 뒤를 급습했다.
“뭣!?”
그대로 상대 목을 휘감아 압박하는 채찍.
이번 전투는 아무래도 나의 승리인 거 같네.
“크윽···!”
목을 조르는 로프의 압박에 괴로워하던 주인공.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검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양손으로 로프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어라. 저거 맞아?
로프가 저렇게 쉽게 뜯어질 리가 없는데.
나는 경외감에 휩쓸려 그 충격적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성장에 취해서 대련 중반부터는 무조건 이길 거라 우쭐댔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사기적인 재능은 그런 내 오만을 바로잡아주었다.
결국 로프를 뜯어내고 제압에서 스스로 벗어난 레이어드.
이쯤 되면 승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항복. 제가 졌습니다.”
“음. 대련은 끝이다. 승자는 레이어드.”
“···무슨 소리야.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잖아!”
생각보다 목이 심하게 조였던 탓인지 칼칼해진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하는 주인공.
“레이어드. 승패를 받아들여라.”
뭔가 승자한테 하는 말 치곤 좀 이상하지만 선생님은 레이어드를 말렸다.
“하지만···!”
“상대는 이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항복했다. 그런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는 게 훌륭한 대련 자세라고 생각하나?”
“······.”
옳소! 역시 괜히 교육자가 아니다.
레이어드도 그런 선생님의 얘기에 납득한 건지 별말 없이 얌전히 승복했다.
그렇게 대련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자 아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꽂히는 게 느껴졌다.
“오올 찐따. 너 은근 좀 친다?”
“무슨 소리야. 누가 보면 내가 이긴 줄 알겠네.”
“하긴. 그 초크를 풀어낼 줄 누가 알았겠냐. 저 검쟁이가 비정상인 거지.”
이번만큼은 레이첼의 말에 동의한다.
그래도 전력을 다해서 졌으니까 레이어드도 만족했겠지?
마지막 상황이 좀 거슬리긴 해도 아마 괜찮을 거야.
생각하기 무섭게 이쪽으로 저벅저벅 다가오는 레이어드를 발견했다.
표정이 뭔가 어두운 거 같은데 분명 기분 탓일 것이다.
나는 먼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좋은 승부였어. 역시 아직은 쉽지 않네. 다음번엔 반드시···.”
“네가 이긴 거야.”
“···어?”
오늘은 또 왜 그러는데.
아까 선생님 말씀 못 들었니?
“왜 마지막에 그냥 보고만 있었어?”
“그건···.”
네가 하는 짓에 경악하느라 그랬지.
설마 거기서 로프를 맨손으로 뜯어낼 거라 상상도 못 했으니까.
“나는 그때 어떻게서든 제압을 풀기 위해 검을 땅에 버렸어.”
“그래서?”
“그러니까 내 패배야. 네가 만약 그때 공격했다면 난 대응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게 대체 무슨 개 같은 논리야.
왜 자꾸 사실에 초점을 안 맞추고 IF로 빠져서 만약의 상황을 가정하는 걸까.
내가 공격했다면 패배라고? 그런데 공격 못 했으니까 네가 이긴 거잖아.
아니면 그런 거냐. ‘검을 손에서 놓는 건 검사의 수치다.’ 이런 거냐고.
“야. 찌질하게 굴지 말고 그냥 인정해.”
옆에서 보다 못한 레이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말이 조금 거칠긴 해도 지금은 그녀보다 든든한 원군이 없었다.
“쳐 발렸으면 깔끔하게 인정을 하라고.”
“저기···. 레이첼?”
“아 말실수. 쳐 이겼으면···? 아무튼.”
방금 말은 취소. 역시 이 녀석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물론 상황으로 따져봤을 때 그런 표현이 나올 법한 클리셰긴 해도! 왜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패배했다고 단정 짓는 거냐고.
레이첼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잔뜩 서려 있는 눈빛인 레이어드.
“다음에 다시 붙어.”
“···또?”
“원래 대결은 삼세판이야.”
음. 그렇게 따지면 나는 벌써 두 번이나 졌는데.
삼세판이어도 이미 끝난 상황이라고.
그러고는 자기 할 말만을 남긴 채 훌쩍 떠나버린다.
[저 아이도 상당히 이상한 구석이 있구나.]
‘그러게요···.’
승부욕이 강하다는 건 원작을 보면서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도 더 정신이 나간 녀석이었잖아.
내 바람과는 다르게 주인공과의 악연은 쉽게 떼어질 것 같지 않았다.
***
어찌어찌 아카데미 수업을 끝마치고.
다시 밤이 되어 괴도 레이븐의 차례가 돌아왔다.
어제 하루 쉬었던 만큼 오늘은 더 열심히 활동해야지.
그래서 오늘 할 일은 무엇이냐?
“어서 오세요. 괴도 씨.”
“네. 마녀 씨. 오래간만이네요.”
우선 훔쳤던 그림부터 처분하기로 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마녀의 가게.
슬슬 나 정도면 단골이라 분류해도 되지 않나?
“후후. 또 화려하게 저질러주셨던데요.”
“다 마녀 씨의 덕분이죠.”
예의상 한 말이긴 해도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 덕분에 모방꾼의 지하를 들러 가짜 그림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어머. 그러면 보답으로 감사의 키스를···.”
“사양하겠습니다.”
“칫.”
왜 거기서 혀를 차는 건데.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인가요?”
“이걸 판매하러 왔습니다.”
나는 내가 훔친 그림을 보여주었다.
“며칠 전만 해도 이 그림의 모조품을 사겠다고 하시더니 오늘은 진품을 판매하시네요.”
“하하. 그게 바로 괴도니까요.”
“좋아요. 이런 좋은 물건은 쉽게 구할 수 없으니까요.”
마녀는 흔쾌히 거래를 수락하며 값을 지불했다.
물론 이 가게의 유일한 법칙인 ‘가격은 마녀 마음대로’가 적용되어서 말이다.
“그밖에 다른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그럼 혹시 모종삽이랑 화분 있나요?”
“어머. 분재라도 하시려고요?”
“따로 쓸 데가 있어서 말이죠.”
마녀의 가게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평범한 모종삽과 화분 역시 그 범주 내에 포함된 상품이었다.
잔금을 치르고 난 뒤 가게를 나서기 직전 마녀가 내게 물었다.
“오늘은 뭘 훔치시나요. 괴도 씨?”
“안타깝게도 오늘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요. 밀린 외상을 갚아야 하거든요.”
이제 모방꾼의 부탁을 들어줄 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코코 씨앗을 찾는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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