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2
백작의 설명이 끝난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레 밀려 들어온 정보가 너무 충격적이라 그걸 받아들이는 것조차 급급했기에.
쌍둥이처럼 닮은 두 소녀 신의 사도 마도공학 프랑켄 박사···.
전부 내가 한참 전에 얻어냈던 단서들이었지만 이것들이 여기서 이렇게 하나로 합쳐지리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백작이 나를 동요시키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 지금 상대는 굳이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조차 없었다. 당장 손짓 한 번으로 나를 죽일 만큼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나는 상황이니 말이다.
게다가 믿긴 힘들지만 그 말대로라면 아무 관련이 없어 보였던 샤론을 납치한 이유도 설명이 된다. 모든 정황이 입을 모아 백작의 말이 사실이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의문은 단 하나뿐이었다.
프랑켄은 대체 누구인가? 이 모든 판에 관여한 걸 넘어 어쩌면 판 자체를 설계했을지 모르는 수수께끼의 인물.
다른 건 어느 정도 추측이라도 할 수 있는 데 반해 프랑켄에 관해서는 여전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의 정체를 떠나 무슨 목적을 가지고서 움직인 건지도 불명확했다.
혹시 눈앞의 사내는 그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걸까?
적어도 나보다 많이 알고 있는 건 확실했다. 샤론과 줄리엣이 마도공학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은 걸 보면 말이다.
“생각이 많아졌나 보군. 신중한 것도 좋지만 슬슬 내 제안의 답을 들려주지 않겠나? 나와 함께 과거 찬란했던 영광을 되찾을 테냐?”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이 자리에 함께 있던 제삼자의 인물 지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갑자기 끼어들었다.
“대체 아까부터 뭔 소리야? 나만 빼고 둘이서 뭔 얘기를 하는 건데?”
대화가 방해받았다고 여긴 건지 백작은 표정에 언짢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넌 살려둘 이유가 없었군. 역사상 손에 꼽힐 재능을 꺾어버린다는 게 아쉽지만 결국 너조차 신의 축복을 받지 못한 인간에 불과하니.”
“···하. 네가 뭔데 날 그딴 식으로 평가하는진 모르겠는데 신이니 뭐니 알 수 없는 소리나 해대고.”
소녀의 주변으로 마력이 마구 일렁거렸다. 그 짙은 농도와 강대함에 백작조차 순수하게 감탄하던 와중. 거대 뱀의 형체가 마구 뒤틀리며 골격을 비롯한 모든 기세가 변모하기 시작했다.
투둑-. 콰지직!
그것은 진화에 가까웠다.
뱀의 이빨은 더욱 날카로워졌으며 비늘은 훨씬 견고해졌다. 다리와 뿔이 돋아나며 등에서는 날개가 튀어나왔다.
실시간으로 뒤바뀌는 모습은 일견 기괴하였으나 왜인지 모를 경외심이 마음 한구석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비록 불완전하다고는 하나 눈앞에 마법이란 힘을 통해 초월적인 존재가 새롭게 탄생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마침내 변화가 끝난 뒤 드래곤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땐 소녀와 똑같이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백작을 노려보았다.
“···하. 하하! 대단하군! 정말로 대단해!! 설마 수호자를 소환할 줄이야! 물론 진짜 본체에 비하면 불완전한 레플리카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놀라운 재능이군.”
중간계의 수호자이자 모든 마법의 주인. 신화의 시대가 저물고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며 모습을 감춘 지고의 존재. 드래곤.
지나가 드래곤을 소환하는 건 지난번 아카데미 시험에 이어 두 번째였으나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격이 공간을 가득 뒤덮었다.
당시에 현현한 드래곤은 제대로 실체를 유지하지 못한 채 마력으로만 이루어진 반투명한 모습에 불과했으나 지금의 드래곤은 물질적인 피와 살을 가지고서 실재하고 있었다.
물론 그조차도 진정한 중간계의 수호자와 비교하면 반쪽짜리일 뿐이지만 소녀가 소환한 존재는 초월적인 신격을 두르고 있었다.
백작 역시도 지금까지의 여유롭던 태도를 지워버린 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드래곤을 주시하기 바빴다.
“크윽···!”
문제는 지나였다. 아무리 그녀가 희대의 천재라고 해도 저만한 격을 갖춘 존재를 소환한다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지난번과 비슷하게 드래곤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잠식당해 주도권을 뺏기고 있는 듯했다.
상대는 그러한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은 함부로 휘두르는 게 아니다!!”
과연 햇빛 아래에 선 백작은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가 앞으로 손을 뻗자마자 이전보다 훨씬 압도적인 숫자의 빛무리가 무방비한 소녀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크아아-!!
즉시 드래곤이 우렁찬 포효를 내뿜자 쏘아지던 빛무리는 힘없이 찢어지며 모습을 감추었다.
“역시 이 정도로는 무리인가 보군. 오히려 좋다. 이참에 태양신께 하사받은 힘을 제대로 시험해볼 기회가 찾아왔으니 전력을 다해주마.”
부서진 건물 벽면으로부터 찬란한 광휘가 백작을 비추자 곧 그의 등 뒤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생겨났다.
두둥실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은 영락없이 천사와도 같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신의 사도는 원래 다 저 정도로 강한 건가?
그렇다기엔 내가 너무 초라해지는데. 이건 나중에 한번 진지하게 여신님께 따져봐야겠다. 일단 지금은 무사히 살아남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렇게 시작된 드래곤과 천사의 대결은 내가 여태껏 봐왔던 그 어떤 전투보다도 거대한 격돌이었다. 마치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치열한 공방이 오갔으나 그 가운데서 살짝이라도 유리한 쪽은 백작이었다. 격렬한 충돌의 여파로 저택이 부서지며 햇빛이 점점 두 사람을 비춰나갔기 때문이다.
나와는 달리 지나는 햇빛에 닿는다고 즉시 몸이 타들어 가지는 않았지만 좋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지만 내가 저 사이에 끼어들어 도와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단순히 겁먹은 걸 떠나 어쭙잖게 난입했다가 지나의 집중력이 깨지기라도 한다면 금세 드래곤의 자아에 잡아먹혀 저번처럼 폭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저건 아무리 봐도 고래 싸움에 새우가 뭣 모르고 끼어드는 꼴밖에 되지 않으리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지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빨리 걔 데리고 도망이나 쳐!”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현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였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가 여기에 있어봤자 지나에겐 오히려 나를 지키면서 싸우느라 방해만 될 뿐이겠지. 그럴 거면 차라리 그녀의 말대로 샤론을 챙겨 저택을 떠나는 편이 더 도움 될 것이다.
판단을 끝내자마자 최대한 신속하게 여전히 쓰러져있던 샤론을 업어 메고서 도망칠 준비를 했다.
“어딜! 순순히 보내줄 듯싶으냐!?”
“이쪽에 집중하는 게 좋을 텐데.”
낌새를 눈치챈 백작이 우리를 공격하려 했으나 그보다 한발 앞서 지나가 백작의 앞을 막아섰다.
쾅! 콰앙!!
등 뒤에서 들리는 살벌한 전투를 뒤로 한 채 방문을 나서는 순간.
복도 맞은편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던 한 무리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말았다.
모두가 복면을 써서 얼굴을 숨기고 있었지만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환상에서 보았던 불타는 에펠탑에 걸려있던 깃발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으니까.
레지스탕스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들이 백작의 저택에 단체로 몰려든 것이다. 하필 내가 도망치려는 타이밍에 맞춰서.
그들은 안에서 나오는 나를 보자마자 즉시 무기를 빼 들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제일 앞에서 무리의 대장 격으로 보이던 인물이 팔을 뻗어 그들을 제지했다.
“잠깐만.”
“지부장님···! 적들이 분명합니다. 대의를 실행하는 날에 백작님의 저택을 습격하고 난동을 피운 자들입니다! 당장 죽여야 합니다!!”
부하의 말에서 정보를 꽤 얻어냈다.
대의를 실행하는 날이란 건 환상에서 봤던 그 풍경을 뜻하는 거겠지. 물론 백작이 말한 신의 시대를 되살리겠다던 자세한 내막까지는 저들이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작전 시행일에 레지스탕스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저택을 쑥대밭으로 만든 명백한 적이다.
그런데 대장은 어째서 우리를 살려두고 있는 걸까?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대장의 시선이 내게 업혀있던 샤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얘기만 들었을 땐 설마 했는데. 정말로 똑같이 생겼군요.”
익숙한 목소리. 복면을 벗으면서 드러나는 낯익은 얼굴.
언뜻 보면 분별하기도 힘들 만큼 샤론과 닮은 생김새. 그러나 미묘하게 살짝 어두운 진녹색의 눈동자.
어느샌가 샤론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내게로 옮긴 줄리엣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참 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렇게 재회할 줄은 몰랐네요. 이사님.”
“······.”
그녀는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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