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3
변명이 소용없으리란 건 금방 깨달았다.
줄리엣의 눈빛에는 의구심이 아닌 확신이 담겨 있었으니까.
학생인 크로의 모습을 보고 내가 이사라는 사실을 눈치챘다는 건 내가 괴도 레이븐이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겠지.
어떻게 알아냈느냐는 지금 상황에서 그리 중요한 질문은 아닌 듯했다.
레지스탕스의 수장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내가 사도라는 것과 예언까지 전부 아는 마당에 그 정도쯤이야 모르는 게 더 이상할 테니.
지금 중요한 건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냐는 것뿐이다.
눈앞의 유능했던 부하 직원을 무작정 믿기엔 상황이 꽤나 여의치 않았다. 당장 줄리엣의 뒤에서 우리를 노려보는 눈빛들이 상당히 노골적이었으니까.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줄리엣.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데.”
“이런 상황에서 잘도 뻔뻔하게 대화를 시도하시는군요. 하긴 그게 이사님의 특징이었죠. 이렇게 젊으실지는 몰랐지만요.”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푹푹 날아드는 신랄한 언어 공격.
그것만 봤을 땐 평소 회사에서의 모습과 똑같았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빛이 우리의 관계가 많이 달라졌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백작한테 어디까지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저 녀석이 혁명 따위에 관심 없다는 건 보증할 수 있어. 너를 이용할 생각뿐이라고.”
내 말을 듣고도 그녀는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기울이며 당당히 되물었다.
“그게 뭐가 잘못된 거죠?”
“···뭐?”
“사람은 원래 자기의 이득을 위해 남을 이용해요. 이사님이 재단의 발전을 위해 저를 비서로서 갈아 넣었던 것처럼요.”
“······.”
반박하려 했으나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합당한 보수를 지급한 것과 별개로 내가 줄리엣을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하게 부려 먹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서 혁명을 일으켰다 해도 상관없어요. 뭐가 됐든 그 덕분에 레지스탕스라는 조직이 설립되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요.”
“좋아. 거기까진 인정할게. 그럼 네 목적은 뭔데? 이 끝에서 네가 얻을 이득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듯이 줄리엣의 뒤에 서 있던 복면 쓴 사내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외쳤다.
“지부장님! 저런 반동분자 놈한테 휘둘리지 마십시오! 저희의 진격을 늦추려는 얄팍한 수작입니다!!”
아니 반동분자는 내가 아니라 너희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레지스탕스의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나오니 헛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그래도 줄리엣이 조직 내 영향력이 상당한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 불만을 제시한 사내의 입을 꾹 다물게 하였다.
“어차피 저 안에는 지금 우리가 들어가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겁니다. 그보다는 이자에게 집중하는 게 맞겠죠.”
저 문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줄리엣도 눈치챈 모양이다.
하긴 복도에 서서 얘기하는 이 순간에도 격렬한 진동이 이어지고 있으니 대충 짐작할 수밖에 없겠지.
이 복도에 계속 있다간 싸움의 여파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최대한 서둘러 이곳에서 멀어져야 하지만 혼자가 아닌지라 섣불리 도주를 시도하기엔 위험성이 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줄리엣과 대화로 풀어볼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어 보인다는 점일까.
지금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선택지는 줄리엣을 설득해 어떻게든 저택을 무사히 빠져나가는 거다. 그 뒤로는 프랑크 왕실과 아카데미가 알아서 잘 해결해 주겠지.
지나가 조금 걱정되긴 해도 드래곤이 내뿜던 위압감을 떠올리면 쉽게 패배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까도 말했듯이 네가 이 사태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몰라. 그래도 내 등에 업혀있는 애가 너랑 똑같이 생긴 게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쯤은 너도 짐작하고 있겠지.”
“···말이 길어지시는군요.”
줄리엣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반응을 보니 그녀도 샤론을 의식하고 있는 건 확실했다.
백작이 과연 어디까지 얘기했을까? 나한테 말했던 그녀들이 세계를 멸망시킬 열쇠라던 것도 전부 털어놓았을까?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넌 분명 런던의 고아원에서 나고 자란 브리튼 태생일 텐데 왜 백작한테 이용당하면서까지 프랑크 왕국의 혁명을 꿈꾸는 거지?”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네요. 저는 프랑크 왕국만의 혁명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에요.”
나지막이 내뱉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가웠다. 여태껏 내가 알고 지내오던 줄리엣과는 전혀 다른 낯선 모습. 진녹색의 눈동자가 음산한 빛을 띠었다.
“복수. 그게 제 답입니다.”
“······.”
대체 무슨 사연을 품고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당장 그녀를 설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그간의 정을 생각해 마지막 기회를 드리죠. 지금 그 아이를 내려놓고 조용히 떠나 두 번 다시 저희와 관련되지 마세요. 여태 잘 해왔던 것처럼 당신이 좋아하는 도둑 놀이나 실컷 즐기면서 사세요.”
이것 참 나를 위해서 그런 배려까지 해주겠다니.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려 하네.
“미안하지만 정중히 사양할게.”
내가 단칼에 거절할 줄은 몰랐다는 듯 줄리엣은 살짝 눈가를 찌푸리며 언짢은 티를 숨기지 않았다.
“어째서죠? 그 아이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당신의 목숨보다 더?”
“아니. 그렇다기보단···. 굳이 그러지 않아도 여길 빠져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랄까.”
최대한 얄밉게 말하면서 여유롭게 웃어주니 도발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완벽하게 먹혀든 것 같았다.
“하. 제 명을 스스로 재촉하는군요. 그 건방진 태도가 얼마나 유지될지 한번 기대해보죠.”
그와 동시에 땅을 박차고 달려드는 줄리엣.
그녀가 평범한 신분이 아니란 사실을 눈치챘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위협적인 전투력을 지닌 모양이다.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순수한 육체 능력만으로 이런 속도를 내다니.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을 최대한 유지했으나 속으로는 비명이 절로 튀어나왔다.
치맛자락 안쪽 가터벨트에서 단검을 꺼내 휘두르는 줄리엣. 공격 하나하나가 워낙 살벌해 어떻게든 피하는 데만 급급했다.
설상가상 그녀의 뒤에 있던 부하들도 우르르 달려들어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좁은 복도에서 적들을 전부 뚫고 정면 돌파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나자니 저 너머에선 신화의 격돌이 벌어지는 중이고.
고민 끝에 나는 결단을 내렸다.
“···모자?”
“기대해도 좋아. 오랜만에 돌아온 괴도의 마술쇼 시간이니까!”
전투보다는 도주. 사방이 막힌 좁은 복도에서 안전하게 탈출할 방법.
“마술의 꽃은 역시 순간이동 탈출 마술이지.”
“웃기지도 않는 장난질을···!”
줄리엣이 달려들기 전 모자를 천장 높이 위쪽으로 휙 던졌다. 그리고 모자의 안에서 붉은 손수건이 커튼처럼 길게 내려와 나를 완전히 덮어 적들의 시야에서 가려진 순간.
모자가 나풀나풀 떨어져 바닥에 닿고 난 뒤에 내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진 채였다.
마술쇼를 코앞에서 직관한 관객들의 만족스러운 리액션이 뒤따랐다.
“마술···?”
“아니 이건 마법이잖아! 텔레포트를 쓴 게 분명해!”
“텔레포트가 저렇게 이상한 방법으로 가능한 거였어?”
웅성대는 부하들과 달리 입을 꾹 다문 채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모자를 노려보는 줄리엣.
신경질적으로 모자에 단검을 휙 날려 화풀이를 하고는 등을 돌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꾸물대지 말고 빨리 수색하세요. 분명 멀리 가지는 못했을 테니까.”
“넵!!”
그렇게 적들이 이리저리 사방으로 흩어지고 휑해진 복도.
그 후로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술의 트릭은 매우 단순했다. 순간이동이라고 블러핑을 흘린 다음 모자 안에 숨어있던 것뿐이니까. 크기가 작아졌다기보단 모자 내부의 공간을 넓힌 쪽에 가까운 마법이다.
사실 땅에 떨어진 모자를 들춰보기만 하면 들통나는 명확한 약점을 지닌 마술이지만 그때를 대비한 서브 플랜 역시 준비해놨었다.
“후···.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기척. 나를 찾으러 아래로 내려간 레지스탕스들이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누구든 간에 우리를 구하기 위해 저택까지 쳐들어온 아군임은 분명했다.
‘드디어 전부 끝나는구나···!’
이 지옥 같던 수학여행도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희망에 부풀어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던 순간.
콰앙!!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
벽이 부서지며 복도로 뒹굴며 풀썩 쓰러지는 한 형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지나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채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터벅터벅.
들려오는 규칙적인 발걸음.
그 역시도 금방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지만 두 발로 직접 걷는 것만 보더라도 전투의 승자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괴도 레이븐. 당장 열쇠를 내놔라!!”
샤론을 넘겨준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고려할 가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쳐야 하나? 하지만 쓰러진 지나까지 챙겨서 백작으로부터 달아나는 게 가능할까?
그럼 싸워야 하나? 아무리 상대가 멀쩡한 컨디션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과연 저런 괴물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미묘한 대치가 길어지던 와중 이 자리에서 들릴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 사내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침묵을 깨트렸다.
“죄송하지만 그분은 저희 VIP 회원님이라서 말입니다. 거기까지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게 와서 죄송합니당..!!
참고로 지난번 퀴즈의 정답은 도도한 나초짱이었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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