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4
아무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뉴페이스가 등장하자 백작은 당혹스러운 티를 숨기지 못했다.
“···카우보이?”
카우보이모자에 새하얀 망토 굽 높은 승마 부츠와 얼굴을 완전히 가린 새까만 가면.
그야말로 수상함이라는 단어를 의인화한 듯한 눈길을 끄는 옷차림이 지금 따라 어째선지 반갑게 느껴졌다.
만날 때마다 도망칠 수도 없는 열차 안에서 달라붙어 고막이 터질 정도로 수다를 떨어대던 그였지만 사실 그의 정체는 오퍼레이터와 같은 초월자였으니까.
태양 빛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달린 신의 사도나 소환 마법으로 구현된 드래곤처럼 불완전한 반쪽짜리가 아닌 태생부터 완전무결한 진정한 초월자.
기관장이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백작 역시 느낀 건지 그는 어느 때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줄곧 유지됐던 여유로움조차 완전히 사라진 모습.
“···네놈은 누구냐.”
상대의 날 선 질문에 기관장은 오묘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세계가 멸망될 때까지 영원히 나아갈 고독한 열차의 파트너···. 좀 오글거리나요?”
“열차? 설마 마도공학 열차의···!!”
의외로 백작은 기관장이 누구인지 대충 아는 모양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유명한 사람인가?
하긴 저렇게 특이한 행색으로 돌아다니면 당연히 유명해질 수밖에 없을지도.
“열차를 지켜야 할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
“흠.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건가요. 아니면 시치미를 떼는 건가요? 지금 당신의 그 어쭙잖은 계획이 열차 운행에 영향을 줄 것 같으니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갑자기 흐름이 살짝 비틀린 것 같다. 마도공학 열차가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었나? 그런 것치곤 탈 때마다 승객이 아무도 없던데.
“웃기지 마라! 나 역시 너희 학회 멤버십에 가입된 고객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갖다 바쳤는데···!!”
“그래서 이렇게 존대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말장난으로 넘어가려 하지 마라! 이건 너희 학회와는 무관한 일이니 끼어들지 말란 말이다!”
기관장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백작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좋게 좋게 얘기하니 들어먹질 않는군.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건가? 이 친구는 VIP 고객이다. 감히 네놈 따위가 건드려도 될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지.”
“하···! 너희가 그놈을 왜 그렇게 감싸고 도는지 내가 모를 것 같나!? 고작 그딴 예언 하나에 집착하며 허둥대는 꼴이라곤! 결국 그마저 신께서 점지해준 안배라는 것도 모르고!!”
백작이 고래고래 성을 내지르자 기관장은 되려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의 휘광에 단단히 사로잡혔군. 분명 그들이 우리보다 위대한 존재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전능한 절대자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결국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신들조차 운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
“한낱 피조물 따위가 신성모독을 입에 담다니! 더는 용서할 수 없다!!”
멀쩡한 상태가 아님에도 백작은 마치 역린을 찔린 듯 이성을 잃고 무작정 달려들었다.
그 흉포한 기세에 직접 상대하지 않는 나조차 움찔하고 말았지만 막상 기관장은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덮쳐드는 적의 돌격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곧이어 그가 팔을 앞으로 뻗자 장갑을 낀 손이 분리되며 포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 순간 포구에 푸른 빛의 에너지가 응축되더니 이내 레이저가 천사의 날개를 꿰뚫었다.
“···이건 장르가 다르잖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릴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방금 기관장의 공격은 순수한 마법이 아닌 과학의 힘이 접합된 유형임이 분명했다.
마도공학. 정확한 원리는 몰라도 그 수상쩍은 기술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백작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다 그대로 격추당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찬란했던 빛의 날개는 꺾여버렸으며 온몸은 흙먼지로 가득한데다 입가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하늘의 주인은 신일지 몰라도 이 땅의 주인은 인간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선물해준 뒤부터 정해진 운명을 왜 거스르려고 하는 거지?”
그 말에 백작은 고개를 들었다. 핏발 선 눈동자에 서린 광기는 섬뜩할 정도였다.
“그 더러운 반역자의 이름은 꺼내지도 마라···!!”
“누가 들으면 네가 땅에 내려온 신인 줄 알겠군. 태양신에게 넌 기껏해야 쓰다 버릴 장기말에 불과할 텐데.”
“닥쳐!!”
그 뒤로도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억지로 일어나 저항을 시도했으나 무의미한 발악으로 그치고 말았다. 지나와의 혈전으로 체력이 많이 깎여있던 그로서는 무슨 수를 써도 기관장에게 유의미한 피해조차 줄 수 없었다.
어떻게 이겨야 할지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적을 오히려 가지고 놀듯이 압도해버리는 기관장의 무력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동안 나름 제법 성장했다고 자부했었는데 아직도 나는 최강자의 반열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구나.
물론 평범한 인간이 초월자와 비등한 수준에 이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건 안다.
그런 업적을 이루려면 지나처럼 인류 최고의 재능을 갖췄거나 백작처럼 신의 선택을 받아야만 가능한 걸 테니.
재능도 평범하고 뒤를 봐주는 여신은 힘을 잃고 지팡이에 갇혀있는 신세이니 내가 뭔 수로 초월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어.
“후. 태양신의 사도라 그런지 쓸데없이 재생력 하나는 질기군.”
잠시 자괴감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전투는 끝에 다다라 있었다.
반전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관장은 서 있었으며 백작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제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쓰러져있는 백작. 숨은 겨우 붙어있는 듯하지만 그게 고작이었다.
“···백작은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그야 처리하는 편이 뒤탈이 없지 않겠나. 저자가 말했듯이 나는 열차에 얽매어있는 몸이라서 자네를 항상 지켜줄 수는 없거든.”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저를 구하러 오셨다고 했죠?”
“왜. 감동했나?”
기관장이 뜬금없이 등장했을 땐 의아해했으나 이내 자연스레 납득했다.
백작이 한 말에 따르면 샤론과 줄리엣은 마도공학으로 만들어낸 존재라 했으니 마도공학과 관련 있는 기관장이 그녀를 지키러 오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는 백작과의 대화에서 나를 구하러 왔다고 대놓고 말했으며 실제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샤론에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럼 정말로 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건데 대체 왜?
내가 VIP 회원이라서? 고작 그 이유 하나로?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겪은 모든 사건이 비현실적인 꿈처럼 느껴졌다.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뒤죽박죽 섞여 자고 일어나서 떠올리려 하면 머리만 아파지는 그런 허무맹랑한 꿈.
“아무래도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군.”
그 말대로다. 물어보고 싶은 건 산더미처럼 많은데 막상 뭘 어떤 식으로 물어봐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질문에 답해주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네만 자네나 나나 남은 시간이 많이 없는 것 같네.”
때마침 밑에서 들리던 시끄럽던 소리가 멎었다. 레지스탕스와 아카데미 사이의 싸움이 끝난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위층으로 올라오는 인기척들.
“그러니 지금은 푹 쉬고 다음에 나를 다시 찾아오게. 내가 어디 있을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기관장은 모자를 한번 까딱이고 미소를 지으며 반대편으로 서서히 멀어졌다.
“크로!! 괜찮아!?”
저 멀리서 들려오는 율리아의 다급한 외침.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드디어 전부 끝났다는 것을 깨닫고 안심하며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다시 깨어났을 땐 시간이 상당히 흐른 뒤였다.
내가 쓰러져있던 사이 제법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일단 레지스탕스가 거의 소탕되었다고 한다. 수장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죽고 저택에 우르르 몰려들었던 행동파 조직원들마저 모두 검거되니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졌다고.
하필 그날이 레지스탕스가 세운 혁명 결행일. 즉 왕실을 불태울 작정으로 모두 모여있었다고 한다. 백작이 보여줬던 불타는 파리의 환상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던 미래였다는 뜻이겠지.
아무튼 그 덕분에 거의 모든 레지스탕스 조직원이 체포됐지만 당시 무리를 이끌던 조직의 간부로 추측되는 여인 줄리엣은 도주에 성공했는지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프랑크 왕실은 이번 사태에 진심으로 유감을 표하며 아카데미 측에 배상을 약조했다. 정확히는 납치당했던 샤론과 나를 지목하며 여왕이 직접 머리까지 숙였다.
뭐 사실 그러한 부가적인 것들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눈을 뜨자마자 나는 오늘 겪었던 일들을 되새기며 의문점을 정리했다.
내가 무엇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지 그간 내가 얻어낸 단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을.
그러면서 지금 당장 알아낼 수 있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향했다.
똑똑.
“나야.”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샤론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장마라서 비가 자주 오네용
빗소리가 아주 좋은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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