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5
의식을 되찾은 샤론과 마주하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심경이 복잡했다.
사건이 전부 마무리된 거라면 차라리 그냥 덮어버린 뒤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지만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니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몸은 좀 어때?”
말문을 트기 위해 던진 안부 물음에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네가 구해줬다고 들었어. 고마워.”
평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말투였지만 자세히 보니 샤론의 낯빛이 살짝 어둡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물어봐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뭐부터 언급해야 할지 막막할 만큼.
짧은 고민 끝에 일단 사건의 순서대로 하나씩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
“납치당할 때의 기억은 있어? 정확히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샤론은 그녀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며 쉽사리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재촉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리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말문이 트였다.
“기억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뒤죽박죽 섞여 있어. 꿈처럼 몽롱하고 비현실적이었다고 할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지금도 확신하기가 힘들어. 미안해.”
“아니야. 그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설명해줄래?”
고개를 끄덕인 샤론은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가며 얘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고 있던 도중에 갑자기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렸어. 이제 깨어날 시간이라고. 나는 방을 혼자 쓰고 있었으니 그냥 꿈속 망상이라 치부하고 넘기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어.”
평소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니면 입을 굳게 다물던 과묵한 샤론이 이렇게까지 술술 얘기해준다는 건 그만큼 그녀도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일까.
“그리고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을 때 갑자기 창가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자욱한 연기 가운데서 복면을 쓴 괴한들이 침입했어. 그중 제일 앞에는 나랑 똑같이 생긴 여자가 있었고···.”
줄리엣과 레지스탕스들이다.
백작이 직접 움직인 게 아니었던 건가? 그럼 내가 봤던 환상은 뭐지?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바로 납치당한 거야? 그놈들이랑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어?”
“그 여자는···. 나를 자매라고 불렀어. 대의를 수행할 때가 되었으니 기꺼이 협조해달라고 강압적으로 얘기했던 것 같아.”
원래는 대화로 상황을 풀어보려 했다는 건가?
뜻밖의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으면서 여러 생각에 잠겼다.
줄리엣은 자신의 목적을 복수라고 명확히 확정했다. 정확한 대상은 몰라도 그게 백작이 레지스탕스를 결성해 이루려던 기존 국가들의 붕괴와 관련 있는 건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복수 대상은 왕족이나 귀족 같은 국가의 기득권 세력인 걸까.
이건 다른 정보를 더 얻어야 정확히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으니 일단 넘어가고.
그보다 지금은 줄리엣이 샤론을 가리키며 사용한 호칭 자매라는 표현에 집중해보자.
백작은 두 사람을 가리켜 마도공학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낸 인공 생명체 즉 호문쿨루스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 말을 곱씹어 보니 희미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마도공학회를 찾아가 오퍼레이터를 만났던 당시 학회를 안내해준 안내인은 평범한 인간이라기엔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오퍼레이터에게 안내인이 안드로이드냐고 물어봤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안드로이드? 로봇을 뜻하는 거라면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그들은 말하자면 골렘에 가깝죠.’
안드로이드와 비슷하며 골렘에 가까운 즉 마법과 과학의 힘으로 만들어낸 생명체.
지금 생각하면 그게 바로 호문쿨루스인데 왜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 걸까.
아무튼 그녀들이 정말 백작의 말대로 호문쿨루스라면 샤론은 과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지금껏 자신이 인간이라 생각하며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온 것인가.
일단 줄리엣은 본인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는 거겠지.
애초에 백작이 그 사실을 알 만한 정보원도 부하인 그녀밖에 없을 테고 샤론을 자매라고 칭한 걸 보면 출신 배경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뜻일 테니.
“너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당신 같은 사람은 본 적도 없으니 당장 비키라고 했었지. 상대는 들은 척도 안 했지만.”
샤론은 기억을 떠올리면서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 뒤로도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해대더니 내가 이해를 못 하니까 그냥 기절시켜버렸어. 그게 내가 기억하는 전부야.”
“알 수 없는 말···? 혹시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해?”
어쩌면 그 내용 가운데 내가 원하는 결정적 단서가 포함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꿈처럼 기억이 희미하다던 아까의 언질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녀의 대답을 침착하게 기다렸다.
“음. 아버지가 돌아올 때가 됐다?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가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
“아버지···.”
줄리엣이 아버지라 부른 사람이 누구일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닥터 프랑켄. 결국 또다시 그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어떤 의문이던 끝까지 파고들면 항상 그의 이름이 배후에 있었다.
결국 근본적인 답을 찾기 위해선 프랑켄을 찾아서 직접 만나는 수밖에 없는 건가.
하지만 그가 어디 있는지 알 방법이 없는데. 마도공학회 부학회장인 오퍼레이터조차 프랑켄이 어디로 사라진 건지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정도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면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지 않을까.
···아니 생각해 보니까 최소 한 명은 있겠구나.
줄리엣이 샤론에게 아버지를 만나러 가자고 했다는 건 적어도 그에 관한 정보가 있다는 뜻이겠지.
문제는 그녀도 지금 프랑크 왕실에 쫓기느라 잠적해버렸다는 건데.
어떻게든 줄리엣을 찾아 그녀를 통해 프랑켄에 대한 단서까지 얻어야만 한다.
솔직히 만난다고 해서 순순히 협조해줄지는 의문이지만··· 그건 나중에 고민해도 되니까 지금 당장은 줄리엣을 어떻게 찾을지부터 생각해야겠지.
그리고 샤론과의 이야기도 확실히 끝을 맺어야 하고.
납치 사건에 관해 들어야 할 정보는 전부 들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딱 한 가지뿐이다.
과연 샤론도 줄리엣처럼 자신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냐는 것.
하지만 이걸 뭐라고 얘기를 꺼내야 할지 막막함이 들었다.
다짜고짜 삿대질하며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 맞냐며 대체 정체가 뭐냐고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샤론. 좀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 있는데 대답해줄 수 있어?”
“말하렴.”
“···네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주면 좋겠어. 최대한 오래전부터.”
정말 그녀가 만들어진 호문쿨루스라면 내가 조사하며 생긴 의문인 어린 시절의 흔적이 깨끗한 것이 착각이 아니라면.
샤론이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만 유심히 살펴도 정체를 밝혀낼 수 있으리라.
내심 마음 한편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주길 바랐다. 여타 평범한 소녀와 다를 바 없는 소소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주절주절 늘어 놓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샤론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금세 답이 나오던 아까와 달리 한참이 지나도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문을 꾹 닫았다.
이미 그것만으로 충분한 대답이 됐다고 판단한 뒤 질문을 주워 담으려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정보를 얻기 위함일 뿐이지 그녀를 괴롭히려는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됐어. 말하기 힘들면 그냥 안 해도···.”
“···얘기해줄게.”
내 말을 끊으며 힘겹게 중얼거리는 샤론. 그녀는 한쪽 눈을 짚은 채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대신 지금 당장은 역시 힘드네. 조금만 시간을 줄 수 있을까?”
“샤론.”
애써 지어내 보이는 미소가 너무나 위태로우면서 아련했기에.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놓고서 막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도 나한테 비밀을 밝혀줬으니까. 나도 그래야겠지. 그래야 공평한 거잖아.”
“······.”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수학여행도 전부 끝났고 이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니까.”
그렇게 샤론이 품은 비밀과 마주할 순간은 조금 늦춰지게 되었다.
“돌아가면 얘기해줄게. 전부.”
“···알았어.”
할 얘기는 전부 끝났지만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두운 방 안을 비추는 은은한 달빛이 우리를 감쌀 때까지.
사건의 후처리로 인해 계획과 달리 하루를 더 보내게 된 다사다난한 수학여행이 마침내 끝나고 우리는 다시 매연과 스모그로 가득한 정겨운 고향 런던으로 복귀했다.
수학여행···.
다시는 안 간다. 절대로.
이를 아득 갈며 필사의 각오를 다진 채 지친 몸을 침대에 내던졌다.
내일부터는 주말이니까 하루종일 쉬어야지. 샤론과의 약속도 지금 당장은 무리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샤론 역시 일단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회복할 때니까.
그렇게 깊이 잠들고 나서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아침부터 두 눈을 의심케 하는 편지 한 통을 받아들게 되었다.
[뤼팽 재단 압수 수색 결과 통지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할일이 너무 많은 거에용..!!
전부 때려치우고 글만 쓰고 싶네용..ㅠㅠ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