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6
압수 수색이라니.
보고도 믿기 힘든 내용에 주말 동안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겠다는 내 원대한 포부는 일어나자마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허겁지겁 뤼팽으로 변장한 다음 재단 사옥에 가보니 충격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사무실 내부. 마치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지고 어지럽혀져 있었다.
서랍 사물함 등은 전부 활짝 열어젖혀져 내용물은 텅텅 비어 있었으며 책상 위에 놓여있었을 각종 업무 서류들도 깨끗하게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건 압수 수색당한 게 아니라 그냥 강도가 쳐들어왔던 게 아닐까?
더 큰 문제는 건물 내에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주말이니 다들 쉬는 거일 수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건물 내에 상주해야 할 최소한의 인력조차 남아있질 않았다.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며칠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이사실 역시 난장판이 된 상태인 것을 확인한 뒤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아 마른세수를 반복했다.
이대로면 자연스럽게 진행 중이던 모든 프로젝트 또한 엎어질 수밖에 없다.
이 난리가 일어난 데다가 재단의 핵심 인재였던 줄리엣 또한 사라져버렸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귀족 컨설팅도 이제 불가능할 테지만 그보다도 후원 중이던 단체들도 당장은 도와주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냥 돈만 건네주는 거면 몰라도 내가 구상했던 건 재단을 통한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었으니까.
힘겹게 쌓아 올린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허무함이 밀려들면서 동시에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대체 왜? 아무 문제 없이 오히려 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순항 중이던 재단이 갑자기 압수 수색을 당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설령 압수 수색 대상이 됐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악랄한 의도가 엿보일 만큼 망가뜨릴 이유는 없을 텐데.
심지어 재단의 대표인 내가 압수 수색의 이유조차 모른다는 것 역시 절대 정상적이진 않았다.
나는 잠시 생각을 거듭하다 품에 넣어두었던 통지서를 꺼내 재차 읽어 보았다.
그곳에도 역시나 내가 원하는 단서가 있지는 않았다. 적혀있는 내용이라곤 뤼팽 재단 사옥의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는 통보가 전부. 심지어 담당 기관이 어디인지조차 나와 있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순순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확실하게 파악해둬야만 한다.
줄리엣이 적으로 돌아서 버린 현재 시점에서 재단과 관련된 가장 믿을만한 아군.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고 이번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단서를 가지고 있을 법한 인물.
곧장 머릿속에서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레아. 레이첼의 언니이자 항상 덤벙대는 뤼팽 재단 전속 메이드.
그녀라면 이 사태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론이 내려졌으니 더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집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
똑똑.
문을 두들기자 잠시 후 아무 예고도 없이 벌컥 열리는 문.
“응? 뭐야 이사님? 저희 집에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나를 반겨준 사람은 편안한 옷차림을 한 레이첼이었다. 문 앞에 있을 손님이 나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커다래진 눈에는 놀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레아 양을 만나러 왔는데 혹시 집에 있니?”
“어 있긴 한데 말이죠···.”
말끝을 살짝 흐리며 뺨을 긁적거리는 그녀.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자 레이첼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안내해주었다.
“일단 안에 들어와서 기다려주세요.”
“그래. 고맙구나.”
레이첼은 평소의 거친 성격과 달리 뤼팽에겐 꽤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긴 이번 수학여행 비용도 재단에서 전부 해결해주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태도일지도.
문제는 뤼팽 재단도 이대로 가다간 망해버릴 위기라는 거겠지만 그렇게 되면 레이첼도 더는 아카데미에 못 다니게 되는 건가?
쓸데없는 상념을 지우고 그녀를 뒤따라 집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나를 거실의 소파로 안내해주면서 멋쩍은 웃음과 함께 사정을 설명해주는 레이첼.
“음 사실 언니가 며칠 전부터 방 안에 틀어박혀서 안 나오고 있어서요. 수학여행 갔다 와보니까 쭉 저 상태인데다 딱히 이유도 설명 안 해줘서 그냥 놔두고 있었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사님이 오셨다고 하면 언니도 아마 정신 차리고 나올 테니까요.”
며칠 내내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니. 시기상으로 보았을 때 재단에 일어난 사건 때문임이 분명했다.
대체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레아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소파에 앉아 고민에 잠긴 채 레아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두 자매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자연스레 방 쪽으로 신경이 쏠리게 되었다.
방문을 두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레이첼.
“빨리 안 나와···? 지금 밖에 이사님이 기다리고 있다니까···!!”
아무래도 나한테 들릴까 봐 대놓고 소리치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작게 소곤거려도 집중하면 다 들린단 말이지. 아무튼 레이첼이 아무리 얘기해도 레아는 방 안에 틀어박혀 꿈쩍할 생각도 안 하는 듯했다.
평소 같았다면 그러려니 이해해주고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며 돌아갔겠지만 지금은 그런 친절한 배려를 베풀기엔 상황이 너무나 여의치 않았다.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가니 레이첼은 내 기척을 느끼고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대었다.
“어? 자 잠깐만요. 언니가 지금··· 옷을 갈아입고 있어서! 조금만 기다려주실래요?”
“레이첼. 잠깐만 나와줄래? 급한 문제라서 시간이 없어.”
내 목소리와 표정에서 사태의 심각함을 읽은 건지 레이첼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켜주었다.
똑똑. 방문을 노크하며 차분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레아. 네 도움이 필요해. 잠깐 출장 갔다 온 며칠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설명해줄 사람이 지금 내 주위에 너 말고 아무도 없어. 부탁할게.”
한참이 지난 후 방문 너머에서 조그마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이사님. 저 무서워요.”
그 뜻밖의 고백에 나는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목격한 건지는 몰라도 레아가 방 안에서 나오지 않던 이유는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약속할게. 너한테 어떤 피해도 가지 않을 거라고. 내가 최대한 지켜줄 테니까.”
사실 아무런 구체적 방안도 없는 공수표에 불과했지만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다행히 내 그런 진심이 닿은 건지 굳게 닫혀있던 방문이 천천히 열리며 문틈 사이로 울먹거리는 레아가 모습을 비추었다.
그 후로 본격적인 얘기가 진행되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레아가 며칠 만에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기다리지 못할 만큼 인내심이 없지는 않았기에 나는 가만히 앉아서 레아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일단 특별한 외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리적인 해코지를 당한 건 아니라는 뜻일 텐데 그렇다면 레아는 대체 무엇을 무서워하고 있는 걸까.
“휴우···. 죄송합니다···.”
“아니야. 진정됐으면 이제 얘기해줄 수 있겠어?”
“네. 그러니까 사흘 전의 일을 말씀하시는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지서에 적혀있는 내용에서도 압수 수색이 사흘 전에 이뤄졌다고 나와 있었다. 사흘 전이면 내가 크루즈 사건을 끝내고 파리로 향했던 수학여행 둘째 날이었으리라.
그때 런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제 그 사실을 확인할 차례였다.
“그날 아침에는 줄리엣 씨가 급한 용무가 생겼다면서 어딜 가봐야 한다고 했어요. 만약 이사님이 돌아오면 대신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하셔서 알겠다고 했었죠···.”
뜻밖의 정보가 들려와 눈가를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예상과 달리 줄리엣은 이튿날까지 런던에 있었다. 숙소 테러와 샤론 납치가 바로 다음 날 새벽이었음을 생각하면 사건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급박하게 진행됐다는 뜻이다. 이건 꽤 유용한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재단의 압수 수색 사건에 초점을 맞출 때였다.
“그래서?”
“점심때쯤에 갑자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서는 재단을 압수 수색하겠다고 통지했어요. 이사님에다 줄리엣 씨마저 자리를 비운 상황이라 제대로 항의할 결정권자도 없어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그 사람들은 건물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어요.”
레아의 설명에 집중하며 얘기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질문을 던졌다.
“그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온 건지는 못 들었어?”
“그게 그러니까···.”
그녀는 잠깐 뜸을 들이다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집행부 라고 했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날씨가 너무 더워서 머리를 싹둑 잘라버린 거에용..!
훨씬 시원해진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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