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0
“여기인가?”
쪽지에 적힌 주소와 대조하며 헤맨 끝에 도착한 목적지.
어느덧 해가 저물고 어둑해진 런던의 거리 한편에 위치해있는 고즈넉한 주택가.
나름 아카데미 생활에 적응하면서 런던도 우리 동네처럼 친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샤론의 집 주변 풍경은 그런 내게도 낯설게 느껴질 만큼 인적이 드문 외곽에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의 집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구나.
레이첼이나 율리아는 물론 지나의 집까지 찾아갔던 걸 떠올리면 꽤 의외이기도 했다.
라파노의 저택에서 처음으로 마주쳐 사실상 제일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이자 라이벌이었지만 막상 지금까지도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의 굉장히 비밀스러운 녀석이기도 했다.
백작의 말에 따르면 샤론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아직 확신하긴 어려우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 즉 호문쿨루스라고 말했었다.
줄리엣은 그녀를 자매라고 부르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었다.
수수께끼나 다름없던 프랑켄과도 관련이 있는 듯했다.
이 모든 의문을 그날 바로 털어놓으려 했지만 샤론은 모든 걸 말해 줄 테니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라 약속을 미루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나는 이미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후우···.”
짧은 심호흡을 끝낸 뒤 문의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편한 옷차림의 샤론이 눈앞에 나타났다.
“늦은 시간에 미안.”
“아니야. 괜찮으니 들어오렴.”
평소와 다름없는 사근사근하면서도 차분한 말투. 그런 일을 겪고서도 샤론은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였다.
어쨌든 간에 마침내 입성하게 된 샤론의 집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조금 조명이 어두운 것만 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가정집의 풍경과 똑같았다.
다만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곧 일반적인 집과 다른 특이점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타인의 흔적이 없다.
단순히 동거인의 유무를 뜻하는 게 아니다. 혼자서 자취하는 것쯤이야 아카데미 학생에게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 타인이라 분류할 수도 없을 만큼 가까운 존재.
즉 가족을 뜻하는 말이었다.
아무리 본가에서 독립하여 혼자 지낸다 한들 가족의 온기가 배어있는 물품 한둘쯤은 배치되어있는 것이 정상이다. 이를테면 가족사진 같은 것들 말이다.
샤론의 집에선 그런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집에 사진 자체가 단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이 공간이 왜 처음부터 삭막하게 느껴졌는지 이해하고 말았다.
이곳에는 추억이 전혀 녹아 들어있지 않았으니까. 평범한 소녀라면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왔을 보는 사람마저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줄 그런 따뜻한 요소가 없었다.
“여기가 내 방이야.”
“아 실례할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방으로 나를 안내하는 샤론.
잠시 착잡한 상념을 중단하고 쭈뼛거리며 조심스레 그녀의 방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몇 번 경험했는데도 또래 여자아이의 방에 들어간다는 건 쉽게 익숙해지질 않네.
약간의 긴장과 두근거림은 안에 들어가자마자 금방 사라져버렸다.
방 안 역시 바깥과 전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하다고 해야 할까.
‘이건 뭐 여자애 방이 아니라···.’
그냥 사무실이나 다름없잖아.
다만 이곳은 그나마 특색이랄 게 존재하긴 했다. 방의 뒤편 벽에 꽂혀있는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스크랩된 기사들과 각종 자료 더미.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생각했다.
‘소녀가 아니라 탐정이라는 거구나.’
과연 내가 인정한 라이벌답다는 묘한 뿌듯함과 동시에 야트막한 씁쓸함도 묻어 나왔다.
탐정으로 살아가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 외에도 다른 행복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내가 괴도로 사는 삶을 중요시하면서도 다른 인생 역시 함께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여긴 내 집인 동시에 사무실이기도 해.”
“사무실?”
“응. 탐정 셜록으로서 의뢰를 받는 탐정 사무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평소 문밖에 걸어두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팻말을 내게 보여주었다.
[홈스 사무소]
“이야.”
보자마자 자연스레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래. 셜록 하면 당연히 홈즈가 따라 나와야지.
“사실 찾아오는 의뢰인은 거의 없지만. 최근에 방문한 손님은 너를 제외하면 딱 한 명뿐이네.”
“누구였는데?”
“너도 아는 사람이야. 가젯 형사 말이야.”
“아.”
그 열의 넘치는 여형사 누님 말이구나. 언제나 나를 반드시 잡고 말겠다며 잔뜩 벼르면서도 매번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괜히 미안해진달까.
그녀가 여기까지 직접 찾아왔다면 당연히 이유는 하나뿐이겠지.
실제로 벽에 붙여진 포스터와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니 나에 관한 주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열렬한 팬이 굿즈들을 잔뜩 수집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에 관한 내용만 있는 건 아니었다. 비중이 훨씬 적긴 했으나 런던에서 일어난 각종 범죄와 미제 사건 등도 함께 붙어 있었으니까.
“커피로 괜찮니?”
“응. 고마워.”
테이블에 마주 앉아 다과까지 올라왔으니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자 그녀가 먼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아마 궁금한 게 많겠지. 뭐든 물어봐도 좋아. 나도 몰라서 답해주지 못하는 게 아닌 이상 뭐든 알려줄 테니까.”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 역시 더는 거리낄 것도 없었기에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줄리엣이 누구인지 알아?”
“네 재단에서 일하던 나랑 닮은 비서분 말하는 거지?”
“응. ···잠깐만. 내가 뤼팽 재단 이사인 건 어떻게···.”
샤론한테 거기까지 말해준 기억은 없는데?
너무 자연스레 되물어오니 나도 깜빡 속아 유도신문에 넘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차를 호로록 마시며 대답했다.
“네가 뤼팽과 동일 인물이란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어. 애초에 카지노에서도 되게 수상했었고 공주님을 납치할 때도 아무렇지 않게 위조 신분을 들이밀었잖니.”
“······.”
진짜 못 당하겠네. 서로 정체를 밝힌 뒤로 임시 휴전 상태에 돌입해서 천만다행이지 만약 지금까지 계속 적대 관계였다면 속수무책으로 패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샤론이 내놓을 답을 듣기 위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대화의 흐름에 집중했다.
“전혀 몰라. 나도 율리아랑 레이첼한테 전해 들은 것뿐 직접 본 적도 그때가 처음이야.”
샤론은 줄리엣을 납치당할 때 처음 봤다고 했다. 반면 줄리엣은 샤론을 잘 알다 못해 자매라고까지 불렀었고.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 정도인가.
둘 중 한 명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한쪽이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일단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마도공학에 대해 알아?”
“어느 정도는. 마법과 과학을 접목해 만든 신기술이잖니. 기술을 활용하기가 무척 어려워서 한정된 분야에서만 사용되고 있다고 들었어.”
이건 마도공학에 대해 알려진 일반적인 상식에 딱 멈춰선 수준이었다.
사실 이마저도 일반인이 아니라 아카데미 학생이라 배울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 정도밖에 몰랐었지. 오퍼레이터를 만나 숨겨진 속사정을 듣기 전까지는. 프랑켄 박사의 실종이나 하양이의 존재 세계를 멸망시킬 기술 같은 내용 같은 것들 말이다.
만약 샤론이 정말로 마도공학 기술로 만들어진 호문쿨루스라면 최소한 남들이 아는 정보 이상의 무언가가 답으로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질문의 방향을 살짝 바꿔보는 게 어떨까.
“사도가 뭔지 알아?”
나도 처음부터 여신님께 선택받은 사도였지만 얼마 전까지는 신의 사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면 사도들은 모두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대신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
즉 시간의 여신의 힘으로 완성된 마도공학 기술 역시 그녀의 의도가 담겨있을 확률이 높았다.
만약 그렇다면 샤론 역시 어떤 식으로인가 신과 관련되어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
“아니. 그건 전혀 모르겠어. 답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럼 시간의 여신에 대해서 들어본 건 없어?”
“음···. 없는 것 같아.”
그녀는 정말로 신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문답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지만 샤론의 대답은 일관된 방향을 유지했다.
모든 의문을 해결해줄 확실한 열쇠라고 생각했으나 내 예상과 달리 그녀는 거의 아무것도 답해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만약 샤론이 정말 아무 상관 없는 무고한 피해자였다면 그녀가 내게 이런 자리를 권했을 리가 없다.
백작과 줄리엣이 했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날조된 거짓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즉 샤론은 어떤 식으로이든가 분명 이번 사건과 밀접하게 엮인 상태인 건 분명하다.
게다가 방금 이 집을 들어오며 둘러봤던 풍경까지 생각해 보면 그녀의 과거는 다른 사람과 제법 달랐으리라.
그 과거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나는 확신을 품고 마지막까지 미뤄두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프랑켄···. 누구인지 알고 있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밖에 비가 엄청 많이 내리는 거에용!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물에 잠겨있으면 어떡하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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