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1
“프랑켄···. 누구인지 알고 있어?”
내 질문에 샤론은 아까와 달리 곧바로 즉답을 내놓지 못했다.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서 망설이는 그녀를 재촉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아직 대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저 반응만 봐도 그녀가 프랑켄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여태껏 이름을 제외하곤 어떤 단서도 얻지 못했던 수수께끼의 사내.
그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분명히 지금까지의 의문 중 상당수가 해결될 것이다.
한참이 지난 후 샤론은 마침내 힘겹게 말문을 떼었다.
“···내 아버지일 거야. 아마도.”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답변에 나도 모르게 살짝 눈가를 찌푸리고 말았다.
다행히 곧바로 표정을 관리해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으나 순간 겉으로 동요를 드러낼 만큼 기묘한 대답이었다.
프랑켄이 샤론과 관련이 있으리란 건 확신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와 매우 가까운 사이일 수도 있다는 것 역시 대충은 짐작했었다.
줄리엣의 말 역시도 결정적인 힌트였다.
그녀는 샤론에게 ‘아버지’가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 함께 가자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뒤에 덧붙은 ‘아마도’라는 표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다른 제삼자도 아니고 당사자인 그녀가 왜 확신을 갖지 못하고 그런 애매한 말을 덧붙인단 말인가?
당연하게도 그 한 문장만으로는 의문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대로 끝나버리면 혼란만 더 가중될 뿐이기에 더욱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자세하게 얘기해줘.”
“그래. 저번에 내 어린 시절에 관해 얘기해달라고 했었지. 그게 대답이 될 거야.”
생각해 보니 그랬었지. 오늘의 자리가 미뤄진 이유도 그런 내 부탁에 샤론이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난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 그나마 희미하게 기억나는 것도 사진처럼 그때의 장면이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수준에 불과하니까.”
백작의 말대로라면 샤론은 만들어진 존재. 어린 시절이 아예 존재하지 않은 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걸 수도 있으며 성장 속도가 매우 빨라 남들보다 짧은 유년기를 거친 걸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평범한 소녀처럼 자라긴 힘든 환경이었으리라. 그렇다면 그녀가 어린 시절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최악의 경우 남아있는 기억조차 전부 인위적으로 조작된 데이터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제일 선명한 기억이···. 아버지에 관한 거야. 연구원처럼 하얀 가운이랑 안경을 쓰고 계셨어. 사람들은 그분을 혼시아 박사라고 불렀어.”
혼시아.
그 이름은 다름 아닌 샤론의 성씨였다. 원작에선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낯선 이름.
기억 속의 그가 샤론의 아버지란 사실은 이해했으나 프랑켄 박사와 동일 인물인 게 맞을까?
사람들이 모두 혼시아 박사라 불렀다는 말이 신경 쓰였다.
세상에 알려진 마도공학 개발자의 호칭은 닥터 프랑켄이었으니까.
어쩌면 딸인 샤론조차 그 사실을 확신하지 못해서 ‘아마도’라는 표현을 붙인 걸지도.
순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중간에 설명을 끊어봤자 방해만 될 테니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있기로 했다.
“아버지는 내가 세상을 바로잡을 거라고 말씀하셨어.”
세상을 바로잡는다···.
평범한 얘기로 들리지는 않았다. 보통 아버지가 자식에게 하는 말 치곤 너무 거창한 내용이었으니까.
‘그녀들은 인간의 세상을 멸망시킬 열쇠이다.’
이때 갑자기 백작이 했던 말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아무 관련 없는 얘기라기엔 공교롭게도 전혀 상반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실 아버지랑 그리 오랫동안 함께하지는 않았어. 이 집에서 같이 살던 때에도 아버지는 항상 무언가에 열중하느라 서재에만 틀어박혀 있었거든.”
그렇게 말하는 샤론의 말투에서는 숨길 수 없는 쓸쓸함이 배여 있었다.
저 아련한 감정이 과연 조작되어 흉내 낼 수 있는 건가? 아무리 선입견 없이 생각해 보아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적어도 샤론 본인은 아버지와 함께한 유년기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있었다.
비록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는 흐릿한 과거라 할지라도.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작스러운 소란에 잠에서 뒤척이다 깨어났을 때 집에 강도가 침입해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그녀는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평범한 강도는 아니었어. 그 남자는 명백하게 아버지를 노리고서 들이닥쳤던 거니까.”
강도의 목적이 박사를 죽이기 위해서였다고 어떻게 확신하는 걸까.
“강도가 집에 들어와선 필사적인 목소리로 프랑켄 박사를 몇 번이고 계속 외쳤거든.”
그 말을 듣고서야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샤론이 강도가 그를 노렸다고 판단했는지 뿐만 아니라 어째서 혼시아 박사를 프랑켄이라고 추측한 건지도.
“···사실 그다음 순간부터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떠오르지 않아. 나는 겁먹고 옷장 속에 숨어서 덜덜 떠는 것밖에 못 했으니까.”
어린 날의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이 샤론의 표정에는 자조적인 미소처럼 보이는 일그러짐이 살짝 떠올랐다 사라졌다.
“확실하진 않지만 두 사람은 짧게 대화를 나눴던 것 같기도 해. 어쩌면 서로 아는 사이였을 수도 있고. 그리고 다음 순간엔 세상이 고요해졌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조금은 짐작이 갔다.
그것은 분명 좋은 방향이 아니리란 사실을 말이다.
“한참이 지나고 옷장 밖으로 나갔을 땐 아무것도 없었어. 마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처럼. 전부 다 한순간의 덧없는 꿈이었다는 듯이···.”
그때 샤론의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일지는 모르겠지만 공식 서류상에 나와 있던 그녀의 기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떠올려보면 분명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한 어린아이였음은 틀림없었다.
“그게 내가 뚜렷하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의 첫 페이지야.”
“······.”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와서 얘기를 들은 것뿐이지만 그녀의 과거가 이어질수록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에 몰입하며 소녀의 처지를 곱씹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샤론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앞섰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리라. 전부터 쭉 친하게 지내왔고 좋아하던 친구의 안타까운 과거사를 듣는다는 건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앞서 그녀가 재차 입을 열어 뒷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얘기는 했지만 내 아버지가 프랑켄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어. 그 뒤로 혼자가 된 집을 샅샅이 뒤져봤는데도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찾을 수 없었거든. 그 강도가 아버지랑 함께 전부 훔쳐 가 버린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 집에 그런 건 없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전부 샤론의 아버지를 혼시아라 불렀지만 그가 실종된 밤에 들이닥친 강도만큼은 그를 혼시아가 아닌 프랑켄이라 불렀다.
이 긴 이야기 속에 내가 알지 못했던 여태껏 찾아 헤맨 단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다만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상당히 복잡하게 꼬아놓은 암호와도 같았기에 해석하는 데엔 시간이 꽤 필요할 듯했다.
일단 지금은 밝히기 힘들었을 속사정을 공유해준 그녀에게 감사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렇게 얘기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너한테 일어난 그 일은···.”
“있지.”
횡설수설 허둥대는 내 말을 끊으며 샤론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전에 크루즈에서 나한테 물었었잖아. 왜 탐정이 됐느냐고.”
그 얘기를 들으니 새록새록 기억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수학여행이었지만 그날 갑판 위에서 샤론과 서로 비밀을 공유한 순간만큼은 내 기억 속에서도 꽤 풋풋하면서 따뜻한 색채의 추억으로 남아있었으니까.
“나는 그 강도를 찾고 있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처음 너한테 관심을 가진 것도 괴도라면 그런 기이한 일을 벌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고.”
“아···.”
“물론 지금은 널 믿고 있어. 넌 그런 짓을 할 애가 아니니까.”
그렇구나. 그래서 샤론은 그렇게 필사적으로···.
그녀에 대한 모든 퍼즐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샤론이라는 소녀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선 듯한 느낌.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 말이 왜인지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세상을 바로잡을 거라고 하셨어. 그게 이런 뜻으로 얘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탐정으로서 모든 걸 바로잡을 거라고 맹세했어.”
모든 서론이 끝났다는 듯 샤론은 눈가에 이글거리는 의지를 피운 채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제 네 차례야.”
“···어?”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네가 나한테 물어본 질문들. 줄리엣 마도공학 사도 시간의 여신···. 그리고 프랑켄까지.”
“너는 대체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거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번화에서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벌써 250화를 넘긴 거에용!!
이렇게 오랫동안 읽어주시는 독짜님들 모두 넘무 고마운 거에용!!
앞으로도 완결까지 열심히 쓰겠슴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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