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3
돌아오는 발걸음은 의외로 그리 무겁지 않았다.
재단의 압수 수색부터 시작해 아직도 쌓여있는 문제는 산더미 같지만 그래도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성취감도 함께 뒤따라준 덕분이다.
거기에 더해 샤론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비밀을 공유한 덕분에 마음이 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흠. 첫 번째는 이미 정해진 것 같구나.]
“네? 무슨 첫 번째요?”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쓸 필요 없단다.]
의도한 것인지 주어만 쏙 빼놓고 의미심장한 혼잣말을 다 들리게 중얼거리던 여신님은 내가 물어보자 아무렇지 않게 시치미를 떼며 딴청 부렸다.
저렇게 얼버무리니 오히려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추궁하며 캐물어봤자 답하지 않을 게 뻔했기에 일단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딱 봐도 평소에 늘 하던 시답잖은 얘기의 연장선상이겠지.
그보다 이제 다음 목적지를 확실하게 정할 차례였다.
주말이 끝나면 다시 아카데미에 등교해야 하니 웬만해선 오늘 안에 끝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수학여행도 갔다 왔으니까 이제 슬슬 학기도 다 끝나가는구나.
방학은 제발 마음 편히 푹 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이 실타래처럼 얽힌 예언을 깨트려야만 한다.
다시금 목적을 상기하여 열의를 불태운 다음 계획을 짜내기 시작했다.
샤론의 조언 덕분에 내가 지금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이미 결정되었다.
하양이와 기관장. 그 둘 중 누구부터 만나는 게 좋을까?
정답은 금방 튀어나왔다.
기관장이 우선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그가 내 질문에 답해주겠다고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더 얻은 다음에 하양이를 만난다면 그를 통해 더 많은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하양이를 만나는 건 거울 세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시간이 소모되지 않는다.
기관장과의 대화가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시점에서 일단 그쪽에 먼저 시간을 맞춰주는 편이 조금이라도 효율적이겠지.
결론이 내려졌으니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마도공학 정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밤을 새운 탓인지 살짝 피곤한 상태이긴 했으나 숙면은 두 사람을 만난 뒤에 해도 늦지 않으니 잠시만 뒤로 미뤄두기로 하였다.
“여기도 이젠 낯익네.”
처음 런던 정거장에서 이곳으로 넘어왔을 때의 그 오묘한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무언가 기묘한 흐름이 공간을 뒤덮고 있는 듯한 그 특이한 느낌은 정거장에 사람이 아무도 없음으로써 더욱 완벽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 장소에도 벌써 몇 번이나 들락거리며 눈에 담다 보니 이제는 처음 순간의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출근길 지하철역처럼 정겹고 반갑게 느껴진달까.
아무 의자에 대충 널브러져 앉아 열차가 올 때까지 느긋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바쁜 일상 속의 여유라 해야 하나.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기다리려 하니 자연스레 눈꺼풀이 무거워져 자동으로 눈이 감겨왔다.
그대로 나도 모르게 수마에 빠져들 뻔했다는 것을 깨닫고 눈가를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기지개를 쭉 켰다.
정신 차리자.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곧 있게 될 기관장과의 대화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한 마디 한 단어도 놓쳐선 안 되잖은가.
이제부터 저 안으로 들어가 기관장과 만나서 어떤 얘기를 나눌지 생각해 보니 잠기운은 금방 달아났다.
‘기관장이라···.’
그의 특이한 행색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나는 며칠 전의 기억을 되새겼다.
파격적인 겉모습과 별개로 위기의 순간 백작의 공격을 막아내며 등장했던 그의 모습은 뒤에서 휘광이 비치는 것처럼 보일 만큼 믿음직스러웠었지.
솔직히 여태 쭉 귀가 아플 정도로 수다를 떨어댈 뿐 이렇다 할 무언가를 본 적은 없어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기관장은 오퍼레이터와 동등한 격을 갖춘 초월자였다.
그 사실을 몽테크리스토 백작과의 전투를 통해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태양신의 권능을 부여받아 햇빛 아래서 초월자와 맞먹는 전투력을 가지게 된 백작을 어린아이 상대하듯 압도적인 격차로 찍어눌러 버렸으니까.
그는 마도공학 소속이란 신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지금 시대를 아득히 뛰어넘은 첨단 무기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다. 카우보이모자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레이저 캐논이라던가.
그렇게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초월자였지만 그는 한 가지 의무에 얽매어있는 듯했다.
바로 열차를 지키는 것.
그것이 누군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인지 아니면 본인 스스로 선택하여 행하는 사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작과의 대화를 떠올리면 기관장이 열차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나를 살려준 것 역시 그 목적의 일환이라고 했었다.
즉 내 운명이 어떤 식으로든 간에 열차와 관련 있다고 추측할 수 있겠지.
지금으로선 이 정도 추론에서 그칠 수밖에 없지만 더 자세한 내용은 이제부터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테니 괜찮다.
물론 기관장도 모든 것을 전부 알려줄 가능성은 적다. 얘기할 수 있는 내용에 제약이 걸려있을 수도 있고 본인도 내가 궁금한 모든 걸 완벽히 알고 있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아.”
상념이 한도 끝도 없이 깊어지려던 찰나 저 멀리서부터 밝은 불빛과 함께 선로로 열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드디어 시간이 됐다.
나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열차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의지를 다졌다.
정차한 열차에 탑승하니 역시나 평소와 다름없이 텅 비어있는 내부 칸.
항상 볼 때마다 승객이 아무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운행되고 있는 걸까?
애초에 이렇게 이용률이 낮은 열차를 왜 그리 필사적으로 지키려 하는 걸까?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곧이어 등장한 기관장의 모습에 뒤편으로 밀려나 버렸다.
“오. 생각보다 일찍 왔군.”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우선 감사부터 전했다.
“그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뭘 그러나. 게다가 감사 인사는 저번에도 받았던 것 같은데.”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지? 하루종일 열차 안에 갇혀서 강제로 떠드는 수다를 받아준 사이?
흠. 뭐가 됐든 상대가 내게 호감을 표시하는데 그걸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지금으로선 아주 조그마한 호의라도 넙죽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니까.
“몸은 좀 어떤가?”
“덕분에 멀쩡하네요.”
“그거 다행이로군! 자네가 다치면 큰일이니 말이야.”
언뜻 들었을 땐 그저 내 안위를 걱정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큰일’이라는 표현에 왠지 다른 뜻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면 너무 지나친 해석인 걸까.
“그나저나 오늘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어딘가를 가려고 탑승한 게 아니에요. 만날 사람이 있어서 탄 거니까요.”
그는 다 알면서도 일부러 물어본 것인지 가면 너머로 능청스러운 감탄사를 흘렸다.
“오호. 혹시 그 만날 사람이 나인 건가?”
“잘 아시네요.”
“그렇군. 그때 했던 말대로 내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온 거겠지.”
기관장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지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전부 들을 준비가 되었나?”
나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표정이야. 그럼 우선 자리에 앉지. 열차가 출발할 때 서 있으면 위험하다고.”
“저는 어차피 다른 지역으로 갈 생각이···.”
“괜찮아. 짧게 끝날 이야기도 아니니까. 그리고 열차는 오래 멈춰있으면 안 되거든.”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로서도 딱히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하긴 나 하나 때문에 이야기하는 동안 열차를 계속 멈춰놓는 건 민폐 짓이지. 아무리 열차가 텅텅 비어있어 보여도 다른 승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읏차. 자네도 여기 앉게.”
“···네.”
태연스레 빈 좌석에 앉고서 옆자리를 팡팡 두드리는 기관장.
그 옆에 쭈뼛대며 앉으니 괜스레 지난번 학회로 갈 때의 악몽이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었다.
아마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야기가 쏟아지게 될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당시엔 영양가가 1%도 함유되지 않은 잡설뿐이었지만 지금은 단 한 마디조차 허투루 넘기면 안 될 만큼 중요하다는 것뿐.
자리에 앉고 나서 곧 열차가 미끄러지듯 스르르 출발하였다. 서 있으면 위험하다던 그의 경고와 달리 열차는 창밖 풍경을 보지 않으면 출발한 것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고요하고 아늑했다.
“궁금한 것들을 알려주기로 했으니 먼저 자유롭게 질문해봐라.”
무엇을 먼저 물어봐야 할까. 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상대가 제일 확실하게 알 법한 내용부터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마도공학이란 정확히 뭐죠? 그게 왜 세계를 멸망시킬 기술인 건가요?”
당장 이 열차도 마도공학으로 움직이는 기술의 산물이다.
오퍼레이터가 대충 설명해주긴 했으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하양이와 관련되어있는 이 기술이 대체 어떤 식으로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것인지 명확하게 이해해야 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잠시 답을 고르듯 생각에 잠겨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가 계속 쏟아지네용..
역시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게 최고인 거에용..!!
다음화 보기